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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시차.. 〈인터스텔라〉

조회수 2020. 2. 4. 14:4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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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 (2014)

우리가 영화를 보는 장소는 다양하지만 때로는 비행기일 수도 있을 것이다. 출장을 갔던 지난 달, 나는 막막한 우주처럼 어둡고 오직 모니터 화면만이 밝은 비행기에서, 거의 잠들지 못한 채 영화로만 버텼다. 


〈인터스텔라〉는 당연히 극장에서 개봉했을 때 봤던 작품이지만 어쩐지 다시 손이 갔는데, 그건 아마도 내가 날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주로 날아간 그들과 계산상으로는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가장 강력하게 중력에 저항하며 나는 영화를 보았다. 


우주를 구성하는 힘 가운데 인간이 도저히 장악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시간이다. 우리는 우주의 어딘가로 나아가면 그것마저 빠르게 혹은 느리게 흐르고 〈인터스텔라〉에서처럼 때론 거스를 수도 있다고 상상은 하지만 아무도 그 시간의 변용을 경험해본 사람은 없다. 


시간의 속도와 양은 무섭도록 공평하다. 우리는 시간 앞에 무력한 존재이고, 늘 조금씩 죽음을 향해가는 유한한 존재다. 하지만 우주에서 시간이란 지구와 다른 속도로 흘러갈 수 있고 그때 사랑하는 이들 사이에 시차가 발생한다는 것, 인간이 장악할 수 없는 이 절대적인 상황이 주인공들 앞에 전개되면서 우리는 그 고난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바다로 이루어진 밀러 행성에서 브랜드를 구하려다가 늦어버린 쿠퍼가 그 잠깐 동안 지구에서의 시간이 24년 가까이 흘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처럼. 

하지만 가까스로 살아돌아온 쿠퍼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절망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지구에서 자신에게 보낸 가족들의 영상 메시지부터 찾아 읽었기 때문이다. 쿠퍼는 23년간 저장된 메시지를 처음부터 틀라고 컴퓨터에게 지시한다.


 가장 최근의 것이 아니라 가장 오래된 것부터, 그러니까 자신이 열 살 딸의 곁을 떠나온 바로 그 시점부터 순차적으로 알게 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것은 지구에 있는 가족들과 동일한 방식으로 시간을 경험하겠다는 선택이다. 

그리고 카메라는 한동안 수신되는 메시지 영상이 아니라 쿠퍼의 얼굴을 비춘다. 긴장한 채 자리에 앉아 안녕, 아빠, 하는 목소리를 듣는 것을 시작으로, 서서히 다채로운 감정들이 그의 얼굴에 차오른다. 눈물겹고 경이롭고 행복한, 그립고 미안하고 슬프고 안쓰러워하는 쿠퍼의 얼굴이 사랑하는 이들을 향해 있다. 지구 안팎의 시차에도 불구하고 쿠퍼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그 순간에는 그런 차이란 중요하지 않게 느껴진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인터스텔라〉는 인간이, 우주의 절대적 힘이라고 여겼던 시간과 중력에 대한 장악력을 갖는 과정을 그려낸다. 내가 처음 영화관에서 봤을 때 그다지 감흥이 없었던 것은 그 장악의 순간이 여전한 영웅담으로 느껴졌기 때문이고, 비행기에서 그렇지 않았던 건 그것이 사랑의 힘으로 한계를 넘으려는 인간적 분투로 읽혔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사랑이라는 것에 있어 시차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는 이들의 안간힘에 가까운 싸움. 그리고 그 변화가 일어난 건 내가 점점 집에서 멀어져 낯선 곳으로 가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비행기가 나를 먼곳으로 데려다 놓을수록 나는 벌써 두고 온 것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마음의 방향을 조금씩 틀고 있었으니까. 


우주에 있었던 쿠퍼가 지구에서의 메시지를 처음부터 경험하기를 원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비행기에서 내리고 나서도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인간의 삶이 시간의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 자체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시간과 중력마저도 무의미해진다는 광활한 우주를 영화와 함께 떠돌다가 현실로 돌아온 우리가 줍는 바로 이 일 초라는, 일 분이라는 가장 작은 단위의 시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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