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징후.. 유현목의 〈오발탄〉

조회수 2020. 1. 9. 17:1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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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발탄 (1961)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의 ‘한국영화 100년사, 위대한 정전 10선’ 섹션의 상영작 중 세 편의 영화가 1960년대 작이다. 김기영의 〈하녀〉(1960), 유현목의 〈오발탄〉(1961), 이만희의 〈휴일〉(1968).


이들은 한국영화에 이른바 작가영화의 시작을 알렸고 그들을 말할 때면 이 작품들을 빼놓을 수 없다. 1960년대는 어떤 시대인가. 한국 전쟁 이후의 가난, 절망, 시련이 당대의 정치적 암흑과 맞물리던 때. 시대의 영향 아래서 개인의 삶과 욕망은 어디로 향해 어떻게 드러났던가.


김기영, 유현목, 이만희는 각기 전혀 다른 방법과 관심사로 자신의 대답을 제시해왔다. 그들 가운데 유현목은 ‘한국영화의 리얼리즘적 계보의 시작을 알렸다’는 평을 얻을 만큼 시대사와 개인의 운명을 가까이에 두고 개인의 비통에 주목했다. 〈오발탄〉이 대표적이다.

영화는 전후 서울 해방촌의 다 쓰러져 가는 집에 모여 사는 일가족의 비극을 그린다. 정신이 나간 듯 어딘가로 자꾸만 “가자! 가자!”고 외치는 어머니. 책임져야 할 가족을 둔 장남 철호는 치통이 극심하지만 치료받을 생각조차 못 하고, 전후 군 생활을 그만둬야 했던 둘째 영호는 곳곳을 기웃대며 기회만 엿본다.


한편 영호는 여인 설희와 재회해 잠시 사랑에 빠지지만, 설희의 비극적 죽음 앞에 이상한 결심을 해보인다. 이들 형제의 동생 명숙은 전쟁 때 크게 다친 애인과의 결혼이 좌절되자 ‘양공주’가 되길 자처한다. 일가족이 직면한 실패, 좌절, 비애는 끝이 없고 결국 이들은 파국을 맞을 것이다.

특히 이들 형제를 그리는 이 영화의 방식은 상당히 징후적이며 현재의 시점에서 다시 보고 이야기해 볼 지점이 상당하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짐을 떠안고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철호를 보자. 영화의 마지막 택시 시퀀스에서 철호는 가족사의 고통 앞에서 거의 넋을 잃었고 썩은 이를 무자비하게 뽑아냈으며 피를 철철 흘리며 택시에 올랐다.


피 흐르는 입으로 “가자, 가자”를 외칠 때 철호는 흡사 자신을 스스로 숙주 삼아 자기 파멸에 이른 자처럼 보이는 것이다. 한편 은행을 털고 도주하다 붙잡히는 영호의 시퀀스는 이 영화를 비극의 가족 드라마에서 한순간에 권총과 추격과 좌절된 소영웅이 등장하는 장르물로 만들어버린다.

한편 남성 인물들보다 상대적이며 절대적으로 덜 회자된 이 영화 속 여성 캐릭터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전쟁, 남성, 가족의 문제에서 자기 욕망이 꺾이자 명숙이 내린 선택, 밤에는 (아마도 성을 파는) 지하에서 일하고 낮에는 공부하며 밤에는 옥탑에 살던 설희의 죽음, 도주하는 영호를 쫓아가 자수를 권하는 ‘여배우’의 이상한 영화적 쓰임 같은 것에 관해서 말이다.


〈오발탄〉의 인물들은 그 비중의 크고 작음을 떠나 각자 시대의 비극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풍부한 서사의 결을 만들어낸다. 지금의 우리에게 더 적극적으로 〈오발탄〉을 읽게 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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