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을 잃은 〈진보세력〉 무엇을 해야할까

조회수 2019. 12. 30. 11:0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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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더 마인호프(2008)

딱 1980년대가 그랬다. 광주학살. 지금은 민주화운동이라는 말을 쓰지만 학살(아마 이보다 정확한 표현은 없을 것이다) 나라를 지키라고 세금 내가면서 만든 군대가 시내로 쳐들어와서 무고한 시민들을 죽이던 그 현실, 그 날의 20대 대학생이라면 어떤 선택을 해야만 했을까.


1980년대는 대한민국 역사의 가장 진보적인 시간. 운동권이라 불리우는 세력이 탄생했고 거리는 최루탄과 투석전이 난무했다. 재야지식인 혹은 양심적인 종교인으로 구성되었던 반독재투쟁은 20대 대학생의 집단적 참여로 숫적인 부분부터 투쟁의 방식까지 변화를 거듭한다. 


정신적으론 더욱 강렬했다. ‘민주주의의 회복’ 혹은 ‘성경의 정신’ 같은 지극히 온화하고 도덕적인 당위성을 벗어나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수용하여 좌파적 사고를 학습하고, 투쟁 조직을 정비하고 나아가 연북연공노선. 북한을 비롯한 공산주의 진영과 연대하겠다는 1980년대 그날의 극단성.

하지만 세상은 다른 방향으로 내달렸다. 1986년 대학생 중심의 독자적이며 급진적인 투쟁은 국민으로부터 외면 받았고 1987년 6월항쟁은 ‘대통령 직선제’, ‘진정한 민주주의의 회복’ 같은 차라리 1970년대의 이상과 가까운 지점에서 성공을 거둔다. 


그리고 수십년만에 회복된 대통령선거의 결과는 오랫동안 반독재투쟁을 해왔던 김영삼, 김대중이 아닌 전두환의 공식적 후계자 ‘노태우’ 당선! 오랜 노력 끝에 얻어낸 값진 민주주의가 광주학살의 주역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기가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리고 고작 2년후인 1989년. 사회주의 사상을 학습한지 10년이 안되는 시점에 베를린 장벽은 붕괴했고 동유럽의 수많은 공산국가가 무너지는 가운데 베이징에서는 덩샤오핑이 보낸 군대와 탱크에 의해 민주주의의 요구가 처참하게 짓밟히는 것을 전 세계인이 목도하게 된다.


자,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국민들은 여전히 투철한 반공의식과 한미동맹에 대한 깊은 신뢰를 갖고 있고, 기껏해봤자 ‘좋은 민주주의 실현’ 정도에서 갈팡질팡하는 사정. 여전히 기득권을 가진 세력은 강고하기만 한데 수년간 낭만적으로 상상했던 그런 공산주의 국가는 없으니 무엇을 지표로 삼고 어떤 운동을 해나가야 한단 말인가. 그렇게 1980년대의 청춘은 1990년대를 맞이한다.

영화 바더 마인호프.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 독일 청춘들의 가열찬 행보를, 비극적 실패로 끝나고 마는 과정에 대한 객관적 보고서이다.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미국은 제국주의 국가이다.
제국주의 국가를 타도하지 않는 한 세계는 해방될 수 없다.
독일 정부와 정치인 같은 주류세력은 미국 제국주의의 앞잡이다.
기존의 정치 질서를 타개하지 않는 한 독일은 해방될 수 없다.

어디 이것만 바뀌어야 되겠는가. 독일 특유의 경건한 루터교 분위기에 대한 반발. 성은 해방되어야 하며 가부장제의 눈으로, 남성의 눈으로 여성을 바라보면 안된다. 일상을 짓누르는 모든 권위와 통제와 규율 앞에 저항하며 일상 생활에서부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가야만 한다!


어떻게? 세상은 뜻대로 바뀌지 않고, 기존 권력은 경찰과 정보기관을 앞세워 조직적으로 탄압을 한다. 그렇다면 우리도 총을 들어야 한다. 무기를 마련하고, 정치인을 죽이고, 자금 확보를 위해 은행을 털고, 비행기를 납치하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기존 체제를 흔들어야 한다. 독일 〈적군파〉의 등장을 알리는 순간이다.


그런다고 세상이 바뀔까? 대다수 국민은 끔찍한 폭력성을 두려워하고, 극단적 테러리즘은 독일정부의 탄압을 합리화하고, 자금과 도피처를 찾아 이슬람 반군에 의탁하지만 그들의 종교심, 도덕주의, 가부장주의 등등은 참아주기 역겹고 참으로 후진적이다. 그렇다면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해야 할까. 젠장 할, 젠장 할!

우리를 비웃는다고? 폭력은 나쁜 거야. 좌던 우던 극단적인 것은 잘못된 거야? 그렇다면 뭘 어떻게 해야 세상이 바뀔까? 제국주의적 폭력, 자본주의의 폐해, 제도와 권력이 부리는 폭력, 가난과 빈곤, 억압과 고통 등등 온갖 것 가운데 대체 어떻게해야 인간이 조금이라도 해방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하긴 뭐. 이미 충분히 길들여졌으니 순응하고 살면 그만이라는 건가? 노예처럼, 사육당하는 짐승처럼?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진감 넘치는 서사로 흥미를 자아내는 〈바더 마인호프〉. 영화는 1970년대의 사회상을 통해 본질적인 질문을 건네고 있다.


바더 마인호프, 지금 보러 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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