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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엔 따뜻한 것을 보고 싶다..〈필라델피아〉

조회수 2019. 11. 27. 11:3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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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1993)

여름을 지나 서늘한 계절로 이동하는 그사이의 계절. 그리고 그 계절의 낮. 그때는 닐영을 듣는다. 방대한 그의 음악 세계 중 비교적 잔잔한 곡들을 골라서.


들으면 들을수록 수채화 같은 음악. 물감 위에 물을 섞고 붓으로 스윽 스윽 밀어내듯 서서히 번져나가는 음과 노랫말이 그리는 청각적 장관.


아직 닐영을 모르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의 사진도 뮤직비디오도 라이브 영상도 보지 말고 오로지 음악만 들어보라고, 그가 펼쳐놓은 도화지 위에 음 하나 하나로 채색되는 그림의 맛을 느껴보라고 말하고 싶다.


으흠. 너무 감성적인 포장 같지만 정말이지 빈말이 아니다.


필라델피아.


동명의 영화 사운드 트랙 수록곡인 이 곡에는 차분한 아름다움이 있다. 이 노래를 귀에 꽂고 횡단보도가 사방으로 있는 거리에 서서 바삐 거니는 사람들을 보면 저마다의 사연이 움직이는 게 보인다.


그러다 보면 각자의 사연 뒤로하고 다들 저렇게 살아내는데, 사는 게 별것도 아닌데 하는 어쩌면 조금은 속없고 철없는 현실 회피적 여유를 느낀다. 풍경 속으로 완전히 밀착되는 음악.  

순전히 이 음악 때문이었다. 영화 필라델피아를 보게 된 것은.


1993년 개봉작인 필라델피아는 에이즈 환자의 인권을 정면으로 다룬 첫 할리우드 영화로 전 세계에서 2억 달러가 넘는 흥행 수익을 올렸고 아카데미 ,베를린 영화제, 골든 글로브, 그래미, MTV 어워드 등 여러 시상식에서 남우 주연상과 주제가상을 받아 작품성과 화제성에서 두루 성공을 이룬 작품이다.


에이즈에 대한 공포와 동성애에 대한 혐오가 만연했던 시기, 성공한 변호사가 그로 인해 부당한 해고를 당하고 이에 맞서 이겨낸다는 스토리로 다소 단조롭게 진행되는 구성이지만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는 힘있게 전달된다. 그것은 배우들의 호연이 있었기에 가능했지만 영화의 시작, 중간, 끝에서 힘을 불어넣은 세 곡의 음악도 한몫했다.


영화의 시작은 거의 한 편의 뮤직비디오다. 필라델피아의 지극히 일상적인 풍경들 위로 깔린 이 음악은 감독으로부터 영화 음악을 의뢰받고 일전에 친구가 사망했을 때 써두었던 노래를 다듬어 만들었다고 한다.


주인공의 운명을 예견하는 듯한 가사가 청량한 사운드와 얽혀 평화로우면서도 처연한 분위기를 만든다. 변호사로 승승장구하며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성애자이자 에이즈 환자임을 감추며 살아야 했던 앤드류 배켓(톰 행크스 扮)은 회사 중역에게 자신의 병을 들킨 후 치졸한 방식으로 해고당한다.


흑인으로서 차별을 받아온 경험이 있는 변호사 조 말러 (덴젤 워싱턴 扮)는 그를 변호하기로 하지만 그 역시 동성애자를 완전히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 와중 참석한 게이 파티 후 앤드류와의 대화에서 마음의 빗장을 한 껏 열게 된다.

그 매개체로 또 하나의 명곡이 쓰였다. 최고의 오페라 스타 마리아 칼라스의 음성으로 전해진 아리아 ”어머니는 돌아가시고”(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 중)는 눈앞에서 어머니의 죽음을 봐야했던 비통함과 그러나 결국 이겨내고야 말겠다는 비장함을 동시에 담고 있다.


마치 음악에 빗대어 자신의 처지를 이야기하듯 한 줄 한 줄 가사를 읊으며 음악에 빠져드는 앤드류. 직접적인 차별을 온몸으로 맞으면서도 시종일관 담담했던 그가 한 곡의 음악과 함께 고조된 감정을 드러낸 유일한 순간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조 말러도 마침내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동화된다. 많은 이들에게 명장면, 명연기로 회자되는 장면이다.


그렇게 이어진 부당해고에 대한 법정 다툼은 결국 앤드류와 조의 승리로 끝나지만 그 승리를 만끽할 새도 없이 앤드류는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비로소, 그가 떠남을 세상에 알리는 종소리처럼 은은하게 번져 흐르기 시작하는 닐영의 Philadelphia.


첫 장면처럼 마지막 장면에서도 사람들의 모습 위로 음악이 흐른다. 가족들이 슬픔을 머금고 웃는다. 떠난 자를 품고 다시 시작해야 하는 일상. 그를 기리며 가족들은 그의 어린 시절이 담긴 비디오 테잎을 재생한다.


그 비디오 안에는 그저 한 ‘사람’이 있다. 앞으로 펼쳐질 삶에 대해 희망을 품고 있는 여리고 작은 아이. 동성애자, 에이즈 환자라는 편견의 수식을 모두 지운 그저 한 사람.


결국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거기에 있다. 이것은 단순히 동성애나 에이즈 환자에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닌 차별받는, 또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를 차별하고 있을 모두를 위한 이야기다.


그렇게 숱하게 들었음에도 영화 속에서 이 음악을 듣고 나서야 City of brotherly love라는 가사가 귀에 들어왔다.

형제애의 도시. 그리고 이것이 이 영화의 제목을 설명한다. City of brotherly love는 도시명의 어원(그리스어인 필라델포스Πτολεμαῖος Φιλάδελφος.


형제애의 도시라는 의미)에서 생긴 필라델피아의 별칭이자 곡 안에서 동성애자를 상징하는 중의적 표현이 되기도 한다. 또한 필라델피아는 미국이 독립선언서를 승인하고 인간의 보편적 권리를 선언한 곳이기도 하다.


영화와 음악의 잔향을 품은 채 톰행크스의 1994년 아카데미 수상 소감을 봤다. 이 소감은 역대 아카데미 최고의 수상 소감으로 꼽히곤 한다. 언뜻 보면 평범해 보일 수 있는 이 소감에 최고라는 수식이 붙은 이유는 동성애를 받아들이지 못하던 당시 사회 분위기에서 실제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되었던 동성애자들을 언급하고 그들의 영혼이 아름다웠음을 이야기한 톰 행크스의 진정성이 사람들 가슴에 있는 차별에 대한 어떤 부분을 건드렸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의 소감을 보고 어째서 사람이 사람으로서 서로를 존중하는 일이 이리도 힘든 일일까 슬퍼서, 그래도 이렇게 존중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에 기뻐서 마음이 뒤죽박죽인 채로 울어버리고 말았다.


어릴 때는 사랑이 답이라는 말을 믿었다. 하지만 너무 복잡한 세상, 너무 다양한 인간군을 만나면서 그 말을 믿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사랑이 답이었으면 좋겠다고, 그 말이 통용되는 세상이면 좋겠다고 늘 생각한다.


나쁜 것보다 따뜻한 것을 보고 싶다. 그래서 다시 그 노래를 꺼내 듣는다. 그래도 살만하다고 보이게 하는 마법의 음악. 영화 속 가족들이 그를 사랑으로 감싸 안은 채 이별하던 모습도 거리를 걷는 사람들 모습도 다 따뜻하게 떠오른다. 음악이 끝나면 사라질 환상이어도 괜찮다.


잠시나마 모든 풍경이 아름다워지는 음악 한 곡쯤 간직하고 있다는 것은 그래도 분명한 현실이니까.


이 영화, 지금 보러 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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