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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강아지 시점, 〈벤지〉

조회수 2019. 11. 6. 16:4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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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지 (1974)

세상엔 귀여운 것이 참 많다. 그리고 사실, 귀여운 게 최고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날에도 귀여운 동물 영상을 보면 사르르 녹아내리고 사랑하는 조카를 만나면 비록 비루한 내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정화된다.


같은 맥락으로, 심신이 지친 날에는 주로 동물이 등장하는 콘텐츠를 감상하곤 하는데, 자고로 동물이 등장하는 영화는 예로부터 아주 많았고 특히 우리의 친구 개가 등장하는 영화, 드라마는 큰 인기를 누려왔다. 긴털을 우아하게 날리던 래시부터 사고뭉치 베토벤, 감동 실화의 주인공 하치, 사랑스러운 마음이까지!

귀여워..

여기서 하나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이 모든 작품의 주인공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개의 많은 행동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어찌 되었든 주인공은, 래시를 키우는 소년이고 베토벤을 맡게 된 가족이며 하치가 기다리는 아저씨 그리고 마음이를 잃어버린 아이들이다.


이제부터 소개할 영화 '벤지'가 특별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영화는 '벤지'란 개를 뒤따라가며 시작된다. 그리고 3~4분 동안 계속 뒤만 따라간다. 사람이 나오기 시작하지만 여전히 화면은 벤지의 뒷꽁무니가 중심이다.

뭐지?

사실 줄거리는 간단하다. 벤지는 떠돌이 개다. 귀여운 남매 폴과 신디의 집에 들러 아침을 먹고, 옆집 아주머니네 고양이를 한번 괴롭혀준다. 공원을 지나며 친한 경찰 아저씨와 잠시 놀다가 카페에 들러 주인 할아버지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쓰레기를 뒤져 간식을 먹고 버려진 저택에서 휴식을 취한다. (집시가 따로 없다!)


사람들은 똑똑하고 정 많은 벤지를 사랑하고 모두 각자의 원하는 이름으로 벤지를 부르며 행복해한다. 영화는 벤지의 일상과 그 속의 사람들을 보여주다가 극적인 사건 한 가지를 해결하며 기승전결 구도로 끝이 난다.

행복한 벤지의 일상

70년대 영화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개'의 시점을 따라 흘러가고 자유로움을 찬양하는 영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들판을 뛰어다니는 모습을 비춰주면서 벤지를 집안에서만 키우고 싶어 하는 아이들에게 유모의 대사를 빌려 벤지가 답답해할 거라고 이야기한다.


개의 자유를 존중하는 영화라니, 멋지지 않은가!


영화엔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은 흐름을 주도하거나 개입하지 않는다. 벤지는 말만 안 할 뿐 즐거워하고 주장하고 걱정하고 사건을 해결한다. 그렇다. 이것은 정말로, 진정한 '개' 영화였던 것이다. 개가 주인공인 영화! 전지적 개 시점! 


꼭 보여주고 싶었던 썸네일, 벤지의 눈빛을 외면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인간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이다. 모든 개인은 필연적으로 자기중심적이고 모든 인간 또한 인간 중심적이다. 인간의 입장에서 동물을 판단하고 분석하고 이해한다. 요즘엔 좀 나아졌지만 예전엔 대부분의 동물 다큐멘터리에서 동물들에게 대사를 부여하고 더빙까지 입혔던 것을 모두 기억할 것이다.


자기중심적일수록 공감능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고 필연적으로 자기중심적인 인간은, 공감능력을 키우고 사회를 이루고 살기 위해,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며 타인의 감정을 느껴보려고 애쓴다. 그러나 최근 공감능력 상실 시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 사회는 공감능력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타인의 고통을 비웃고 약자를 무시하고 유체이탈 화법을 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여러 대기업의 갑질이 논란이 되었을 때 그 원인 중 하나로 공감능력의 상실이 지적되었고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거울 뉴런(공감을 가능하게 해주는 뇌세포)이 잘 활성화되지 않는다는 실험 결과까지 나왔다. 이런 사회에서 개의 시점으로 기록된 이 영화는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귀여운 것에서 시작해 거울 뉴런까지 이야기가 너무 멀리 와버렸지만, 인간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공감능력은 필수이며 개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벤지 같은 영화도 보아야 한다? 물론 벤지도 인간의 자유롭고 싶은 바람을 투영한 영화겠지만, 하루 쯤은 인간 중심 사고를 버리고 벤지와 함께 들판을 달려보는 건 어떨까.


이 영화, 지금 보러 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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