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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바웃타임, 섹스를 위한 시간여행

조회수 2019. 9. 30. 17:1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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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바웃타임 (2013)

영화 <어바웃 타임>하면 가장 먼저 무슨 장면이 떠오를까?


OST였던 ‘How long will I love you’? 남자주인공과 여자주인공의 첫만남? 레이첼 맥아담스의 귀여운 앞머리? 빨간색 웨딩드레스, 폭우 속의 결혼식? (참고로 이 영화 때문에 웨딩 촬영을 할 때 비가 오면 갑자기 밖에 뛰쳐나가는 신부들이 그렇게 많다고 한다. 지금도!)


물론 이 영화는 거의 모든 장면이 아름답지만, 정작 나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남자주인공 팀이 여자주인공 메리와의 성공적인 섹스를 위해 몇 번이고 시간을 되돌아가는 장면이었다. 


"러블리 했다(괜찮았어요)"는 말을 들은 첫 번째 섹스, "웰 던(잘했어요)"이라는 말을 들은 팀에게는 두 번째이지만 메리에게는 처음일 섹스, 그리고 결국 마지막에는 메리로부터 "퍼펙트 가이(완벽남)"라는 말까지 끌어내는 팀의 노오력에, 나는 정말이지 영화를 보다 일어나서 기립박수를 칠 뻔 했다. (게다가 팀이 영화의 흐름상 메리와의 섹스가 그의 첫경험이었다는 걸 감안한다면 더더욱!)


왜냐하면, 만약 시간 이동의 능력이 생긴다면 남자는 끔찍한 섹스를 하고 난 후에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그 능력을 사용할지 몰라도, 여자는 끔찍한 섹스를 시작한 순간 시간을 빨리 감아서라도 그 자리를 뜨고 싶어할 것이거든. 하지만 팀은 메리에게 그저 그런 섹스를 한 남자로 남는 대신 시간을 되돌아가 상대에게 대단히 만족스러운 기억을 선사한다. 바로 그 점에 나는 그 장면을 <어바웃타임>의 최고 명장면으로 꼽은 것이다.

섹스 직후 팀의 (알몸) 시간 여행 예상도


여기서 문득 드는 의문인데, 그렇다면 팀은 무려 두 번의 시간 여행까지 거치며 총 몇 번의 사정을 했을까? 


일반적인 성인 남성과 여성이 하룻밤을 보낸다고 가정 했을 때 평균 사정 횟수는 두 번이라고 한다. 일단 밤에 한 번, 아침 발기를 했을 때 또 한 번 정도일 것이다. 예상컨대 팀은 그날 최소 3번은 사정을 했을 텐데, 다음날 제대로 걸어서 집에 갔으려나 모르겠다. 20대 초반, 젊은 패기였을 내 경험상으로는 말이다.


아니면 관점을 달리해서, 팀은 오히려 아예 사정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의 남자주인공 팀은 메리를 만족 시키기 위해, 아니 최소한 메리를 만족시킨 남자로 기억되기 위해 시간 여행을 한 남자다. 


그가 확실히 메리를 만족시켰다는 사실은, 그가 두 번째 시간 여행 이후의 섹스에서 메리가 팀을 무려 "완벽남"이라고 부른 것에서 알 수 있다. 그 정도 칭호를 얻었다면 팀은 메리의 포인트에 대해 아주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뜻이 된다. 무려 그런 남자가, 자신의 사정 횟수만을 신경 쓰겠어? 애초에 여자의 만족에는 안중에도 없이 제멋대로 5분 정도 엉덩이를 흔들다 찍 사정하고는, "좋았어?"라고 빙그레 웃음 짓는 남자들이 차고 넘치는 각박한 세상이다. 느그들이야 좋았겠지, 느그들이야! 이런 와중에 시간을 되돌려서건 요정 가루의 힘이건 나의 느끼는 포인트를 그 정도로 완벽하게 알고 있는 남자가 있다면, 나라도 사랑에 빠질 것 같은데요.


애초에 남성의 사정 횟수=섹스의 횟수로 보는 것 자체가 불공평한 일이다. 삽입하고, 앞 뒤 양 옆 몇 번, 그리고 사정. 그게 한 번이라고? 시간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 섹스는 짧으면 짧은 대로, 오래하면 오래하는 대로 불쾌하다. 결국 여자의 즐거움은 안중에도 없으니까 그렇게 제멋대로 섹스를 하는 거 아니겠어? (아마 여자의 오르가즘을 섹스의 지표로 삼는다면, 아마 오늘밤만 해도 섹스 한번 제대로 못한 커플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러니까 질문은 바뀌어야 한다. 


그 날 밤 메리는 총 몇 번의 만족스러운 섹스를 했을까? 그 자신이 기억하는 것과, 기억하지 못하는 것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물론 이건 각본가의 설정집 속에서만 대답될 질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이것은 우리가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일 수도 있다.  


시간을 돌아갈 능력이 없는 우리는, 지금까지 총 몇 번의 만족스러운 섹스를 했을까?


이 영화, 지금 보러 갈까요?


민서영

작가


책 〈썅년의 미학〉을 쓰고 그렸습니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나 하지 않는 말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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