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투어 마을참견 1 <생태 조경사 김봉찬 삼촌의 효돈 생태 투어>
매서운 겨울 북서풍이 한라산에 걸려 비켜 가는 효돈 마을은 연중 따뜻하고
귤이 맛있기로 유명하답니다.
효돈이 귤마을이라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죠.
여기, 한국에 생태조경이라는 개념이 들어오기 전 홀로 외서를 뒤적이며 생태조경의 길을 개척한
효돈 토박이가 있으니 바로 김봉찬 삼촌이에요.
대표적인 생태조경 전문가이자, 제주도 1호 생태조경사인 김봉찬 삼촌과 함께
‘나만 아는 효돈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바람이 한라산 남사면에 부딪쳐 지형성 강수가 발생할 때 비가 흘러드는 계곡이 정상 바로 아래의 ‘산 벌러진 내’인데, 그 가장 큰 본류가 효돈을 지난답니다.
효돈천 상류에는 돈내코, 하류에는 쇠소깍이 위치해 있는데 서로 연결되어 있어요.
식생은 사라지는데, 계곡은 농토로 부적합해 자연 식생이 그대로 남아 있죠.
깊은 계곡이 중요한 이유예요. 효돈천은 우리나라에서 난대림 식생이 가장 잘 보존된 곳이에요.
제주에서 가장 따뜻한 지역이라 아열대에 가까운 식생도 만날 수 있죠.
생물종 다양성에 큰 기여를 하고 있는, 살아 있는 ‘생명 문화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랍니다.
마을의 자연을 관찰하다가 문득 생각했어요. ‘왜 효돈천은 아름다울까?’, ‘바위가 막 흩어져 있는데, 우리는 어째서 그걸 아름답다고 느낄까?’ 오랜 고민 끝에 답을 얻었죠. 자연에는 언제나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 존재해요.
이게 분출되면 그럴 때는 잠시 균형을 잃기에 불안해질 수 있어요.
이를테면 화산 폭발 직후는 아름답지 않지만 쓸릴 것이 다 쓸려 가고, 무너질 것이 다 무너진 후,
안정을 찾고 나면 그 질서는 아름다움을 되찾거든요.
기이한 형태로 쌓인 돌들이 완벽하게 균형을 이룬 계곡이 우리에게 미감을 주는 이유죠.
이때 깨친 원칙을 바탕으로 정원을 디자인하고 있어요.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확실히 낯선 개념이었죠.
생태조경은 산업화 이후 나날이 인공적으로 변해가는 도시에 대한 반성으로
생겨난 조경의 새로운 흐름으로, 각 식물의 자연 생태계를 복원해 조성한 정원이에요.
그저 예쁜 꽃을 구해서 옮겨 심는 것이 아니라,
그 꽃의 본래 서식하던 환경을 만들어주는 거죠.
정원을 이루는 온갖 생물들이 자체로 어울려 살 수 있고,
이러한 생태계가 지속되는 상태를 생태 정원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Q. 생태조경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
A. 제주대학교에서 생태학을 전공했고, 1990년대 초 여미지식물원 조경사로 취업했어요.
당시 식물원에는 인공 연못이 있었는데, 연못 청소는 너무나 귀찮은 일이었죠.
세제를 사용하면 안 되는 곳이라 손으로 일일이 이끼를 제거해야 했어요.
다른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다가 자연 늪지는 고인 물이라도 썩지 않는다는데
생각이 미쳤어요. 자료를 찾아보니 생태조경이라는 게 있더라고요.
혼자 공부하면서 식물원 구석에 있는 수조 2개를 가지고 실험했어요.
하나는 그냥 물을 채우고, 다른 하나는 생태 조경 분야에서 이야기하는 대로
여러 조건을 갖춰 수조를 꾸몄어요. 그리고 1년 뒤 수질 검사를 했더니
각각 4급수, 2급수가 나왔어요. 자연과 비슷한 생태계를 조성한다면
수조의 물이 썩지 않는다는 걸 확인했고, 저의 진로에 대한 결심을 생태 조경사로 굳혔죠.
날씨가 원체 따뜻하고, 바위틈의 고인 물은 별로 차갑지 않거든요.
대학 시절, 학과 사람들과 답사를 왔을 때는 교수님이 효돈 지역의 이런 풍경을 흥미롭게 여기던
기억이 나요. 어렸을 적에는 월라봉에도 자주 갔어요.
참나리, 원추리, 참꽃나무가 무척 많아서 꺾어오곤 했죠. 지금은 사라졌지만,
옛날에는 반딧불이도 있었어요.
밭농사에는 부적합하지만 정원 식물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져요. 유럽의 대표적인 정원 식물 중
‘만병초’가 있는데, 효돈에서 무척 잘 자라요. 꽃, 풀, 고사리 등 종을 가리지 않죠. 정원 식물을
대량 생산해서 장차 효돈 마을이 ‘정원의 메카’가 되면 어떨까 하는 그림을 그려보곤 해요.
특히 한라산에는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희귀한 정원 식물이 많이 자거든요.
흙 좋고 따뜻한 효돈에서 재배하는 일을 상상해보는 거죠.
Q. 마을의 품 안에서 생태 조경사로 자랄 수 있었는데, 다른 마을에서 자랐더라면 어땠을지
A.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영향은 받았죠. 고등학교 때 공부하기가 싫어서
돈내코 근처에 있는 암자에 도망가 혼자 지냈어요.
심심하니까 주변의 아름다운 식물들로 표본을 만들곤 했죠. 대학에선 생물학과에 들어갔는데,
선행 학습을 하고 온 것이나 마찬가지더라고요.
3년쯤 지나니까 제주도에 모르는 식물이 없더군요. 그 길로 계속 식물을 공부하려다가 결국은 연못 청소 때문에 생태 조경사의 길에 들어섰죠. (웃음)
지금 생각해보면 서로 연결되어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한때 아버지의 귤밭이었고, 이제는 김봉찬 삼촌의 생태 정원 카페가 된 공간.
땅과 시선의 높이가 일치하도록 조성한 반지하 형태의 실내에서 정원을 바라보면 이끼와 낮은 풀로 덮인 축축한 습지가 눈 앞에 펼쳐져 있어요. 계단 아래 그늘에 조성한 고사리 정원,
습지 식물로 구성한 빗물 정원, 귤 창고를 부순 자리에 오름 식생을 옮겨 만든 폐허 정원 등 제주의 야생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다양한 정원을 둘러볼 수 있어요.
제주 서귀포시 효돈로 54
2. 월라봉
감귤박물관이 위치할 뿐 아니라 기슭에는 귤밭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어 귤 마을 효돈의 면모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에요. 김봉찬 삼촌은 박물관 옆 산책로를 따라 걸어볼 것을 추천하는데,
특히 좌우의 식생을 유심히 살펴보자. 제주의 공식 도화인 참꽃나무, 잎 길이 1.5m를 거뜬히 넘기는 풀고사리 대군락, 상록고사리의 일종인 발풀고사리, 흑난초 자생지 등을 발견할 수 있답니다.
내려가는 길목의 애기업개돌과 구덕찬돌 등 독특한 모양의 암석도 놓치지 마세요.
제주 서귀포시 효돈순환로 441
3. 효돈천
흔치 않은 난대림 식생이 원시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살아 있는 ‘생명 문화재’ 효돈천. 솔잎란,
담팔수나무, 산유자나무 등을 찾아보아요.
트레킹 명소이기도 하니 바위틈을 직접 걸어보는 건 어떨까요. 2km의 짧은 길이임에도 3시간 이상 소요될 만큼 험난한 여정이지만, 그 이상의 성취감이 있어요.
평소에는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이지만, 비가 내리면 물길이 거세질 수 있으니
날씨를 잘 살피는 게 중요해요.
4. 쇠소깍
‘쇠’는 효돈마을의 옛 이름인 쇠돈을, ‘소’는 물웅덩이를, ‘깍’은 끝을 의미한다.
한라산 정상부의 ‘산 벌러진 내’에서 시작되어 지표 아래로 흐르던 물이 하효 해변 근처 암반을 뚫고 퐁퐁 솟아 장관을 이뤘다.
소나무를 조림하는 바람에 자연 식생이 완벽히 보존되진 못했지만, 여전히 암벽 사이로 독특한
식생을 발견할 수 있다. 물색이 묘하기로 유명한데, 배타기 체험을 하는 이들도 많이 찾는다.
제주 전통배 ‘테우’를 체험하기에 좋다. 마을 해설사가 동승해 테우를 끌며
쇠소깍과 효돈 마을에 대해 들려준다.
제주 서귀포시 쇠소깍로 128
쇠소깍에서 이어지는 하효 해변은 검은 모래와 몽돌로 이루어져 독특한 멋이 있는 곳이에요.
볕에 달궈진 모래는 뜨끈뜨끈하면서도 보드라워 모래찜질 효과를 느끼며
검은 모래 위를 걸어보는 건 어떨까요.
6. 제주 올레 6코스
하효항에서 보목포구 방향으로 걸어가는 바닷가 길로 가볍게 걸어보면 좋을 코스예요.
김봉찬 삼촌은 특히 현무암 사이의 식생을 유심히 보라고 알려주셨는데요 해풍을 맞으면서도 꿋꿋이
자라난 암대극, 해국, 개쑥부쟁이, 우묵사스레피 등이 살포시 고개를 내민 모습을 구경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