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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유리동물원'부터 드라마 '로스쿨'까지 종횡무진하는 배우 이휘종

조회수 2021. 5. 17. 15:0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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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종은 과거의 일을 후회하는 것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다. 대신 매 순간 최선을 다할 뿐이다.

이휘종은 자란다


이휘종은 과거의 일을 후회하는 것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는다. 대신 매 순간 최선을 다할 뿐이다.
editor 손정은 photographer 김선진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와 함께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유리동물원>. 연기 전공 학생들 사이에서 필수 코스라는 이 희곡은 작가의 자전적인 작품으로, 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 시대를 배경으로 가족의 해체를 담고 있다. 그동안 다양하게 해석되며 변주되어 온 공연이 이번에는 조금 다른 온도로 무대에 오른다. 무거운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는 2021년의 관객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도록 접근했다고. 


그리고 그 중심에 배우 이휘종이 서 있다. 그가 맡은 톰은 자신의 기억 속으로 관객들을 초대하는 내레이터. 작가가 가족에 대한 자신의 죄책감을 투영한 캐릭터이기에 부담스러울 법도 하지만 이휘종은 특유의 긍정적인 에너지로 톰을 채워가고 있었다. 그리고 더 많은 것들을 담아내기 위해 첫 공연을 마친 후에도 여전히 공부 중이었다.

Q.

이번 작품은 워낙 유명한 희곡이에요. 이전에 접한 적이 있나요?

A.

제가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는데, 입시를 준비할 때 지정 희곡으로 있었던 것 같아요. 독백도 되게 유명하고요. 그래서 속기로 막 읽었지, 제대로 읽어본 건 이번에 공연을 하게 되면서 깊게 들여다본 것 같아요.

Q.

들여다보니 어땠나요?

A.

1940년대에 쓰여진 작품이니까 그때의 느낌이 많긴 하지만, 확실히 잘 쓴 작품인 것 같아요. 가족 간의 갈등이 드러나는 부분이나 캐릭터들의 모습은 지금 봐도 공감 되는 부분이 있고요. 좋은 작품이라고 전해지는 것에는 역시 이유가 있구나 싶었어요.

Q.

톰은 작품의 내레이터이자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가족 구성원입니다. 가족 소개를 부탁드려요.

A.

톰에게 누나인 로라는 아픈 손가락이에요. 늘 챙겨줘야 하고 보호해야 하는 사람이고요. 누나의 다리가 불편한 것에 대해서도 저는 연기하면서 ‘내 탓도 있는 걸까’라는 마음이 들어요. 톰이 어머니와의 대화 중에 “누나는 이상해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 부분도 저는 조심스러워요. 저한테 이상하다는 말은 심한 말이거든요. 그런 심한 말을 가족 구성원이 해버리니까요.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어머니에게 현실을 직시하게끔 하려고 일부러 더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래서 그런 말을 하는 톰의 슬픈 모습들을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날카롭게 말하면서도 가슴 아픈 톰의 심정과 그걸 듣고 있는 아만다의 죄인 같은 모습을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Q.

그럼 톰에게 어머니 아만다는 어떤 존재인가요?

A.

저는 작품을 읽었을 때 아만다 때문에 마음이 아팠거든요. 아만다가 말이 많아지고 자신의 기준을 자식들한테 주입하는데,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을 상황들이 생각나더라고요. 로라를 키우려면 아만다가 강해져야 하고, 남편이 없으니 아들에게 가장의 역할을 요구하게 된 거죠. 그리고 집에서 아만다가 말을 안 하면 분명 말 한마디 없는 조용한 집이 될 거예요. 그래서 아만다가 말이 더 많아질 수밖에 없었을 것 같아요.

Q.

그런 마음이라면 톰의 마지막 선택이 더욱 힘들겠네요.

A.

물론 이건 완전히 제 관점이긴 해요. 마지막에 원작과 달리 저희 공연은 촛불이 꺼지지 않은 상태로 나가는데, 저는 그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톰이 로라의 촛불을 끌 수 없었다고 하지만, 저는 촛불이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거든요. 그리고 작품에서 어머니의 촛불은 언급되지 않는데, 저는 그 이유가 어머니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먼저 나서서 스스로 자신의 촛불을 꺼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Q.

처음으로 작품의 제목을 접한 관객들은 이런 가족의 모습을 유추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아요.

A.

유리동물원은 로라가 가지고 있는 유리 공예품을 모아놓은 그 자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족의 모습이지 않을까 해요. 깨지기 쉽고 다시 붙이기도 어렵고. 깨지기 쉽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정말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고요. 그래서 저는 유리동물원이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나 기억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여러 해석이 있었지만, 제가 생각하는 유리동물원은 가장 소중한 순간이에요.

Q.

스스로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나요?

A.

언제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정확히 떠오르는 장면이 있어요. 초등학생 때였던 것 같아요. 제가 어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있었고 어머니는 제 귀를 파주시고 있었고. 옆에 선풍기가 틀어져 있었어요. 그때 제가 어머니에게 “우리 집은 정말 행복한 것 같아.”라고 얘기했던 순간이 있어요. 그 장면이 되게 소중하게 기억에 남아 있어요. 저보다도 어머니께 큰 의미로 남아있는 것 같더라고요. 종종 그때 얘기를 하시곤 해요.

Q.

왠지 그 장면이 눈앞에 같이 그려지는 것 같아요. 톰과 비교했을 때, 실제로는 어떤 아들인가요?

A.

저는 어머니와 수다를 자주 떠는 아들이에요. 그래서 아만다와 톰이 행복했던 시절에 서로 장난을 치고 대화를 나눴을 것 같은 모습이 지금의 제 모습이 아닐까 싶어요. 톰과 비슷했던 순간도 있긴 했죠. 아만다처럼 어머니께서 잔소리를 하시니까. 그런데 저는 그것도 결국은 사랑에서 나오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어릴 때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톰처럼 ‘어휴’ 하고 질색했지만. 그리고 저도 누나가 있어요. 톰과 로라처럼 살갑게 대하는 건 절대 못 하지만, 스무 살이 넘고 어른이 되면서 왠지 애틋해지더라고요. 싸우지도 않고요. 누나가 저를 훨씬 더 많이 챙겨주는 편이죠. 저는 누나를 누나로서 인정하고요.

Q.

톰은 계속해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면서 자유로운 미래를 꿈꿔요. 평소에 과거, 현재, 미래 중 어디에 중심을 두고 사는 편인가요?

A.

지나간 일에 대해 후회는 많이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에 갇혀 있기 보다는 ‘그럼 어떻게 해결할까?’ 하고 넘어가는 것 같아요. 제가 노래를 더 열심히 배우게 된 것도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을 하면서 제 스스로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거든요. 부딪힌 후에 해결법을 찾다 보니 실수도 많이 하긴 하지만, 실수를 해봐야 내가 뭘 잘못했는지 아는 거니까요.

Q.

그렇게 달려온 시간이 벌써 5년이에요. '유리동물원' 개막과 함께 데뷔 5주년을 맞이했더라고요.

A.

제가 미래지향적이지 못해서 지금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그러다 보니 좋은 기회들이 생겼고, 어느새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네요. 보통 회사에서는 1년에서 3년까지는 사회 초년생이고 4, 5년부터 이제 대리로 승진하는 느낌인 건가요.(웃음) 예전에 비해 지금은 기준이 생긴 것 같아요. 데뷔했을 때는 모두 다 친했으면 좋겠고 그랬는데, 그게 맘처럼 잘 안되더라고요. 내가 주었던 마음만큼 돌아오기가 어렵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요. 순진함이 순수함으로 바뀌었달까요.

Q.

순진함이 순수함으로 바뀐 건 어떤 느낌인가요?

A.

제가 느끼기에 순진함은 아무것도 모르는 맑은 골든 레트리버 같은 느낌이라면, 순수함은 이제 어느 정도 알고 있는 푸들 같은 느낌이랄까요. 푸들이 되게 똑똑하거든요. 한 마디로 ‘때가 묻었다’ 그런 얘기입니다.(웃음)

Q.

예전 인터뷰에서 ‘익어가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한 것을 봤어요. 어떤가요, 잘 익어가고 있나요?

A.

제가 그런 말을 했군요.(웃음)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아직 익으려면 한참 남은 것 같고 열심히 찾아가는 중이지 않나 싶어요. 아직 어딜 가든 거의 막내기도 하고요. 그래서 아직은 늘 새로워요. 그래서 더 열심히 하게 되고, 꾸역꾸역 이라도 머리에 뭔가 넣게 되고 그래요. 그렇게 5년 동안 열심히 살지 않았나 싶어요.

Q.

자기 자신을 채우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하는 편인가요?

A.

뭔가를 많이 하긴 하는 것 같아요. 일단 책을 많이 사요. 다 안 읽더라도 많이 사요. 반 정도 읽다가 다른 책으로 넘어가고, 넘어가고… 그래서 침대 옆에도 책이 쌓여 있어요. 최근에는 손글씨 쓰는 책을 샀는데, 요즘 새로운 취미로 해보고 있어요.

Q.

계기가 있었어요?

A.

이번 작품에서 홍보팀에서 뭘 써달라고 하셔서 쓰다가 봤는데, 홍준기 배우의 글씨가 너무 귀여운 거예요. 형은 사람 자체가 너무 귀엽거든요. 그런데 글씨체까지 귀여운 거죠. 그래서 ‘이 사람은 어떻게 뭘 해도 귀엽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저도 글씨를 잘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

새로운 취미조차 책으로 하고 있네요. 안 그래도 공연을 준비하면서 다른 자료를 많이 활용한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A.

작품을 맡으면 다큐멘터리나 책을 통해서 캐릭터가 겪었을 심리 상태를 많이 찾아보는 편이에요. 그게 쌓이면 제가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할 때 더 편해지더라고요. 원래 남들 앞에 서는 걸 잘하지 못하는 편이라, 여기저기서 가지고 온 것들이 제 안에 많이 쌓여있어야 그나마 무대에서 버티고 서 있는 것 같아요.

Q.

스스로 생각하기에 깨지기 쉬운 사람인가요? 요즘은 ‘유리 멘털’과 ‘강철 멘털’로 나눠서 말하더라고요.

A.

저는 섞여 있어요. 중간쯤인 것 같은데, 다행인 건 성격이 되게 긍정적이에요. 남의 얘기를 들을 때도 저를 칭찬하는 건 잘 듣고, 나쁜 얘기를 하면 귀담아듣지 않아요. 물론 연출님의 말이나 작품에서 필요한 피드백은 당연히 듣죠. 그런데 그 외에는 안 좋은 이야기를 들어서 크게 도움이 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건 그냥 흘려 들어요.

Q.

나쁜 얘기를 흘려 듣고 싶다고 모두가 마음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A.

저는 그게 너무 잘 되는 편이에요. 덕분에 지금도 되게 즐겁게 살고 있어요. 매일매일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하고요. 물론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죠. 처음을 두려워하는 편이라 첫 촬영이나 첫 공연, 첫 만남 같은 것들에 스트레스가 조금 있기는 한데, 그것도 하면 할수록 무뎌지는 것 같아요. 첫 공연 전에는 언제나 떨리고 걱정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이 온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Q.

처음을 두려워한다고 했지만, 도전을 피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이번에 드라마 <로스쿨>에서 악역을 맡았다고요.

A.

좋은 기회가 와서 하게 되었는데 잘했는지는 모르겠어요. 저는 열심히 했지만, 이제는 봐주시는 분들의 몫이니까요. 돌이켜 보면 촬영할 당시에는 조급한 마음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차차 방영이 될 텐데, 저도 기대가 돼요.

Q.


마지막으로 관객들을 톰의 집으로 초대하는 초대장을 보내볼까요.

A.

유리 조각에 빛을 비추었을 때처럼 아름다운 장면도 있고, 깨지기 쉬운 존재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도 있어요. 그런 장면들을 확인하러 와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희가 만드는 이야기를 보시고 여러분의 유리동물원에 대해 생각해보시면 어떨까 싶어요.

ATTENTION, PLEASE
연극 <유리동물원>
기간 2021년 4월 6일-2021년 5월 30일
시간 화-금 20:00 주말•공휴일 15:00 18:30
장소 대학로 아트원씨어터2관
가격 R석 6만원 | S석 4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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