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행의 미래

조회수 2021. 2. 9. 1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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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은 기본! 심부름, 청소, 쇼핑까지 대신해주는 시대. 우리의 일상을 바꿔놓은 대행 서비스, 어디까지 써보셨나요?

오전 8시 알람이 울린다. 평소라면 지하철에 있을 시간이겠지만 재택근무로 침대 옆이 곧 사무실이라 1시간이나 더 잤다.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하기에 앞서 대충 씻고 아침을 먹기 위해 현관으로 향한다. 문 앞에는 새벽 4시 37분에 배달된 샐러드와 일주일 치 식량이 기다리고 있다. 샐러드를 먹을 계획이었지만 SNS에서 맛있다고 난리 난 요거트를 마주하자 호기심에 계획을 바꿨다. 할인율이 낮음에도 이번에 B쇼핑몰을 선택한 건 이 요거트를 단독 수입해 납품 대행을 하기 때문이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오전 업무를 시작한다. 줌(Zoom)으로 하는 주간 회의도 이제 익숙하다. 회의를 끝내고 정산 기간이라 거래처 영수증과 각종 비용을 정리한다.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음악을 켠다. 이런 반복적이고 단순한 일은 누가 좀 대신해줬으면 좋으련만. 12시가 되자 초인종이 울린다. 일주일에 한 번 점심시간에는 청소 도우미가 온다. 집에 있어야 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감당할 수 없게 된 집안일에 지난달부터 청소 대행 서비스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일주일 치 술값보다 저렴한 금액이다. 화장실 청소를 신경 써달라는 부탁을 하고 마스크로 얼굴의 반을 안전하고 덮은 채 가벼운 산책에 나선다. 조금 걷다 보니 휴대폰 알람이 구매 대행 서비스로 주문한 핀란드산 가구의 도착을 알린다. 이제 슬슬 가구를 조립해줄 사람을 알아봐야겠다. 못하는 일에 끙끙대는 대신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게 더 현명하다는 것을 혼자 살면서 깨달았다. 2021년을 살아가는 일상에 대행 서비스는 오밀조밀 깃들어 있다. 다양해지고 사소해지는 대행 서비스는 한번 맛을 들이면 헤어나올 수 없다.

대행 서비스란 일정 비용의 수수료를 지불하고 특정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종의 아웃소싱과 같다. <싱글즈> 설문조사에 참여한 2030 중 44%가 대행 서비스를 이용해본 경험이 있다. 여러 카테고리 중에서 아무래도 가장 많이 이용해본 서비스는 배달 대행 서비스다. 쇼핑, 집안일, 각종 심부름, 반려동물 케어 서비스가 그 뒤를 이었다. 대행 서비스는 코로나19에도 꽤 영향을 받는다. 팬데믹 이후 대행 서비스의 이용 빈도가 늘었다고 응답한 사람이 무려 87%에 달한다. 생활 영역이 좁아지니 할 수 있는 경험의 폭도 좁아진다. 마주하게 되는 일상의 노동에서 벗어나 편안한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구는 점점 커진다. 대행 서비스의 가장 큰 강점은 편리하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대행 서비스를 이용해본 사람들은 그 편리함을 쉽게 잊기 힘든 모양이다. 대행 서비스를 이용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재이용 의사를 물어본 결과 과반수가 ‘앞으로도 이용할 계획이다’라는 의사를 밝혔다. 쇼핑(100%), 집안일(72%), 반려동물 케어(73%)에 다시 서비스를 이용할 생각이라고 한다. 마스크를 쓰고, 외부 공간에서는 체온 측정을 하고, QR코드와 개인 정보를 통해 이동 동선에 흔적을 남기는 일은 이제 일상의 자연스러운 풍경이 되었다. 대행 서비스 또한 새로운 산업 장르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코로나19로 생활 리듬이 완전히 달라지면서 대행 서비스는 어디까지 진화할 것인지, 무분별하게 생겨나는 대행 서비스 중 소비자는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해야 할지 그 한계와 방향성을 예단해본다.

귀차니즘을 위한 투자

사람들이 대행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유는 꽤 단순하다. 시간이 아깝고, 귀찮기 때문이다. 귀찮은 일에 일정 돈을 쓰는 걸 아깝게 여기지 않는다. 이런 소비 트렌드는 지난해 등장한 라이프스타일을 대변하는 단어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편리미엄, 편세권, 맥세권 모두 일상의 편리함과 평화, 더 많은 기회를 제공받는 데 사용된다. 실제로 응답자의 26%가 한 달에 5만원 이상의 금액을 대행 서비스에 지불하고 있다. 몇 달 전 당근마켓에 바퀴벌레를 잡아주면 3만원의 비용을 지불하겠다며 ‘벌레 헌터’를 찾는 글이 올라왔다. 각종 심부름 대행 서비스에서도 이런 업무를 접수받는다.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 가구 옮기기, 편의점 배달, 고양이 화장실 모래 비우기 등 서비스의 종류는 무한하다. ‘대신한다’는 개념에 대해 소비자는 시간이 아깝거나 하기 싫은 일을 대신해주는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대행 서비스를 이용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삶을 편리하게 해주는 서비스라면 기꺼이 돈을 낼 의사가 있다는 사람이 응답자의 81%에 달한다. 편리한 삶이란 곧 시간을 아끼는 것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편리한 삶은 누구나 꿈꾸는 희망사항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 이에 돈을 쓸 준비가 된 사람들이 대다수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너도 쓰고 나도 쓴다

대행 서비스는 개인의 만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단 한 사람만을 위해 일대일로 이루어지는 만큼 전문 업체부터 중고 거래 플랫폼을 이용해 사람을 찾는 방법까지 다양해지고 있다. 배달, 가사 도우미와 같이 전문적인 업체가 생기기도 하고 각종 심부름을 대신해주는 시스템을 갖춘 브랜드가 탄생하기도 했다. 처음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내게 맞는 업체를 찾기 위해 이용 후기(47%)를 제일 먼저 뒤진다. 개인의 만족도가 중요한 주관적인 서비스인만큼 생생한 후기를 위해 인터넷 검색과 SNS를 통해 주로 정보를 얻는다. 그 외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는 가격이다. 반려동물 케어, 개인 정보가 요구되는 공적인 업무와 같은 특정 서비스에 대해서는 업체의 전문성이 선택의 주요인이라는 예외도 존재한다.

이용하고 싶은 대행 서비스란

대행 서비스는 여전히 편리함을 가져다준다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일상이 무너지면서 사는 재미를 새롭게 찾아야 하는 시기가 불시착했다. 휴일이면 일주일 내내 머물렀던 이 공간에서 어떻게 하면 또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낼 수 있을지 고민의 수렁에 빠진다. 인간의 순수한 재미를 채워줄 수 있는 건 호기심이다. 소비의 폭이 좁아진 만큼 나를 위한 투자에는 과감해진 사람들에게 지금 제일 간절한 건 심심함을 타파할 무엇이다. 편리함을 넘어 가족이나 회사 일과 같은 개인의 새로운 영역에 대행 서비스를 이용해보고 싶다는 응답 또한 흥미로운 부분. 사직서 발송 대행 서비스는 이미 출시해 시행 중이다. 립(Leave), 출근길 사직서와 같은 앱은 양식에 맞게 사직서를 작성해 상사의 메일로 전송된다. 퇴사 플래너를 전문적으로 고용하는 업체도 있다. 퇴사 플래너는 사직서를 함께 작성하고 고객 대신 사직 의사를 회사에 전달하며 반납 물품을 정리해준다. 사직서가 수리된 뒤에는 퇴직금 정산, 근로소득 원천징수 등 필요한 서류를 전달받아 고객에게 보내준다. 금액은 10만~20만원 선이다. 회사, 가족 등과 대면 접촉 시 불편할 수 있는 감정을 피하고 내 상황을 지키기 위한 노력의 일부인 셈이다.

개인 정보가 경쟁력이다

일상과 밀접한 대행 서비스의 특징은 양날의 검으로 작용한다. 집 주소와 전화번호를 기본으로 일에 따라 주민등록증과 같은 지극히 개인적인 정보까지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툭 하면 터지는 개인 정보 유출은 일상과 밀접한 대행 서비스일수록 그 불안이 더 커진다. 대행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한편으로 찜찜한 마음을 품게 되는 것 또한 혹시나 개인 정보가 유출될까 하는 불안한 마음 때문이다. 개인 정보 유출은 곧 범죄로 이어질 수 있으니 더 위험하다. 정보 보호에 관해 확실한 믿음을 줄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된다면 큰 경쟁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대체될 수 없는 너와 나

기술이 발전하고 진화한다고 해도 절대 대체될 수 없는 게 사람이다. 관계에서 오는 감정은 그 무엇도 대체할 수 없다. 실제로 응답자의 53%가 친구나 연인 간의 감정이 오가는 일은 대행 서비스에 절대 맡길 수 없다고 답했다. 나만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42%)이다. 돈과 시간, 에너지를 떠나 대체할 수 없는 한 인간의 고유 영역은 그 누구에게도 침해받고 싶지 않다. 추억이나 감정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절대 돈으로 살 수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의 일은 대행 서비스에 포함될 수 없다.

미래의 대행 서비스

설문에 참여한 응답자들은 시종일관 ‘편리함’을 외친다. 여기서 편리함이란 단순히 육체적인 노동을 의미하지 않는다. 불확실하고 모호하며, 그 어떤 변화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일은 남의 손에 맡겨버리고 싶은 마음도 포함된다. 하고 싶은 것과 하고 싶지 않은 것이 분명해질수록 대행 서비스의 영역은 섬세하게 세분화된다. 놓쳐버린 일상의 순간만큼 마주하게 되는 일상에 대한 감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평소라면 지나쳤을 일에도 감정과 기분이 좌우된다. 지금까지의 대행 서비스는 단순함을 무기로 했다. 귀찮거나 전문적인 영역의 일을 주로 대신해왔다. MZ세대가 등장하고 이전에 없던 근무 형태와 삶의 방식을 탑재해야 하는 혼란의 시기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유연한 사고와 과감한 선택이 필수적이다. 콤팩트한 생애 전략을 위해 물리적, 정신적으로 세상에 없던 편리한 대행 서비스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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