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모'의 탄생

조회수 2021. 2. 2. 1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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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인 사유리가 우리 사회에 던진 키워드 '비혼 출산'. 여성 앞에 펼쳐진 결혼과 임신의 자유 속 변화를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이 필요할 때.

지난 11월 16일 방송인 사유리의 이름이 주요 매체에 올랐다. 매체 헤드라인과 실시간 검색어를 차지한 그녀의 이름 옆에는 고혹적인 D라인을 뽐내는 사진이 함께였다. 40대 여성이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는 평범한 소식이 뜨거운 이슈가 된 것은 그녀가 결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혼하지 않고 출산을 해 아이를 기르는 ‘비혼모’라는 단어 또한 덩달아 화제가 되었다. 방송인 사유리가 비혼 출산을 결정한 배경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평소 아기를 갖고 싶어 일찍이 냉동 난자 보관을 진행했던 그녀는 41세에 찾은 산부인과에서 자궁 나이가 48세라는 소식을 들었다. 당시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이 없었고 출산을 위해 아무나와 결혼을 감행하는 건 감히 시도할 수 없었다. 깊은 고민 끝에 임신과 출산, 양육의 과정을 오롯이 혼자 책임지는 비혼모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녀의 결심과 함께 화제가 된 건 한국에서는 비혼 출산이 불가능하다는 사실. 실제로 사유리는 임신을 위한 인공수정과 출산 과정을 일본에서 진행했다. 한국에서는 왜 비혼 출산이 금지인 것일까?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입장처럼 한국에서 비혼 상태로 정자를 기증받아 임신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하지만 이를 시술해줄 산부인과가 없다. 대한민국 생명윤리법상 임신을 위한 체외수정 시술 시 배우자가 없는 경우 시술을 불법으로 규정하지 않지만, 대한산부인과학회가 2017년 만든 보조생식술 윤리 지침은 “정자 공여 시술은 원칙적으로 법률적 혼인 관계에 있는 부부만을 대상으로 시행한다”고 규정한다. 법이 비혼 여성을 위한 시술을 제한하지 않지만 동시에 보호하지도 않다 보니 혹시 모를 분쟁에 대비해 일선 병원에서는 시술을 꺼리는 것이다. 방송인 사유리의 비혼 출산 이후 보조생식술 윤리 지침은 법률적 혼인 관계에서 사실상의 혼인 관계에 있는 부부로 환자 조건을 개정했지만 여전히 비혼 여성은 시술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비혼 출산에 대한 세계의 온도 또한 각각 다르다.

일찍이 개인 간 동거 계약만 있으면 세금, 육아, 교육, 사회보장 등 법률적 부부와 동일한 대우를 해주는 시민연대협약(PACS)을 도입한 프랑스는 비혼 출산 허용에 머뭇거리고 있다. 현재는 동거나 법적으로 결혼한 지 2년 이상 되어 난임을 겪고 있는 이성애자 부부만 인공수정과 정자 기증을 허용하고 있다. 지난 1월 발의한 비혼 여성과 동성 부부의 체외수정을 허용하는 생명윤리법안 입법을 추진 중에 있다. 현재 상원을 통과한 상태다. 비혼 출산이 자연스러운 미국의 경우 주에 따라 법령이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비혼 출산에 큰 규제를 하지 않는다. 우월한 DNA를 가진 난자와 정자를 사고팔기까지 한다. 1990년 정자 기증을 합법화한 영국의 경우도 비혼 출산이 가능하지만 23세에서 39세로 연령 제한이 존재한다. 덴마크는 2007년 개정된 현행법에 의해 혼인 여부 및 성 정체성에 상관없이 40세 미만의 여성은 시험관 아기 시술을 신청할 수 있다. 원한다면 정부 지원까지도 받을 수 있다. 비혼 출산을 허용한 국가들은 공통적으로 사회 변화에 맞춰 불가능했던 제도가 가능하도록 개선되었다. 이들은 진화하는 사회에 발맞춰 저출산 문제 해결, 다양성의 인정 등 여러 이유로 비혼 출산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사회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차병원그룹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차병원에서 미혼 여성에 시행한 난자 동결 보관 시술은 2010년 14건에서 2019년 493건으로 증가했다. 약 10년 사이 30배가 훌쩍 넘는 수치다. 여성이 자신의 출산 시기를 제어하고 인생에서 임신과 출산을 선택하기 위한 노력은 실천 가능한 선에서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늦어지는 초혼 연령, 고령화 산모, 저출산처럼 여성의 활발한 사회 활동이 이루어질수록 발생할 수밖에 없는 당연한 문제를 누군가의 탓으로 돌리기 전 현실적인 고민이 시급하다. 과연 이 사회가 여성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것일까? 낳지 않을 권리와 낳을 권리를 인지하고 실천하는 것은 개인의 용기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은 사례를 통해 목격하고 있다. 변화의 속도에 맞는 제도와 인식의 진화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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