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자고 싶었던 모든 남자들에게

조회수 2021. 2. 8. 18:1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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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깍지가 확 벗겨지는 순간! 그녀들이 말하는 우리가 헤어진 진짜 이유.

섹스의 정중한 표현으로 ‘사랑을 나눈다’는 말이 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의 전부를 너에게, 그의 전부를 나만이 가질 수 있는 시간이니 내가 가진 사랑과 그의 사랑을 나눠 갖는다는 표현은 섹스의 시간을 묘사하는 가장 적합한 표현일지 모르겠다. 서로의 가장 은밀한 부분을 탐닉하고 오롯이 너와 나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은 시간이 멈춘 듯 황홀하다. 하지만 섹스를 사랑과 같은 선상에 놓았을 때 사랑의 속성 중 하나인 상대성이 개입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찰나다. 사랑에 빠지는 이유와 속도를 예측할 수 없는 만큼 식는 이유와 속도도 지극히 개인적이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그의 말과 행동, 그의 신체 일부가 걸림돌이 되기도한다. 게다가 섹스는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몸의 대화다. 무의식 속에서 무심코 마주친 행동과 오감을 자극하는 조건은 사랑을 나누고 싶은 마음을 저버리는 결과를 몰고 오기도 한다.

To. 약자에게 강한 너에게

지금도 너만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대학에 들어가 적응하지 못하고 왕따 당하던 시절, 고등학교 때부터 나를 오랜 시간 봐온 네가 고백을 했을 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어. 당시 집안에 안 좋은 일이 겹치면서 우울증이 찾아왔고 너에게 전적으로 의지했었지. 그런데 너는 가끔 ‘칼답’을 하지 않으면 내 친구들과 부모님께 내가 정신병자라는 사실을 알리겠다고 협박을 하더라. 당시에는 어렸으니까, 누구도 나를 좋아하지 않는데 더 비정상적인 사람이 될 것 같은 두려움에 사과부터 할 수밖에 없었어. 그런데 자세히 보니 너는 나한테만 그런 게 아니더라. 잘 지내던 사람들과도 다툼이 있을 때면 그들의 약점을 물고 늘어지는 너를 보면서 헤어져야겠다고 결심했어. 헤어지는 순간까지 너는 6개월이나 만나면서 잠자리도 하지 않는 나를 못마땅해했지만 만난 지 한 달째 되던 순간부터 너를 향한 신뢰는 완전히 무너졌었어.

To. 지금도 그리운 선배에게

내가 선배에게 첫눈에 반했던 그날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해요. 복학생의 여유와 세련된 스타일에 후광이 비쳤죠. 저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우리는 첫 데이트를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선배의 입술이 내 입술과 가슴, 클리토리스에 닿을 것을 생각하니 성욕이 뚝 떨어지더라고요. 음식을 깔끔하게 먹지 못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공포 영화를 본 것 같은 충격을 남겼어요. 좌우로 부지런히 꿈틀거리는 동시에 입술 구석에 묻어 있는 고춧가루의 흔적은 첫눈에 반한 선배의 모습이 아니었죠. 입술 사이로 나는 추압 추압 소리와 음식물의 잔해까지 사랑할 자신은 없었거든요. 지금이라도 식사 매너를 고쳤다면 연락주세요.

To. 체취만 남긴 너에게

아마 냄새만 아니었더라면 우린 참 괜찮은 커플이 되었을 거예요. A의 소개로 술자리에서 처음 만난 당신은 정말 제 이상형에 가까웠거든요. 적당히 취기가 올라 당신이 내 옆으로 와서 앉았을 때, 사실 화장실에 가서 제모 상태를 점검했어요. 왠지 오늘 밤 정말 뜨거워질 것 같았거든요.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와 단둘이 산책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요. 그때 알았어요. 우리가 화장실 앞에 자리를 잡아 나는 줄 알았던 냄새가 당신의 것이라는 사실을. 술 냄새, 입 냄새, 땀 냄새, 담배 냄새 등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온갖 기분 나쁜 냄새에 술이 홀딱 깰 정도였죠. 밀폐된 공간에서 함께 있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어요. 그 냄새만 어떻게 한다면 당신의 인기는 배로 뛸 거라는 사실을 꼭 알려주고 싶어요.

To. 나를 기억하지 않길 바라는 그에게

안녕하세요, 최근에 이혼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잘 이겨내길 바라요. 사실 동기들에게 오빠의 이혼 소식을 듣고 제가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렸는지 몰라요. 5년 전 우리는 신입 사원과 맞사수로 처음 만났죠. 그러다 눈이 맞았고 100일을 채 넘기지 못하고 헤어졌어요. 이후 소문이 돌아서 저는 2년을 채우지 못하고 이직을 해야 했지만, 그때 내린 결단은 아마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행동이라고 여겨져요. 내 옆에서 오빠가 함께 사는 여동생과 통화를 한 적이 있었죠. 그때마다 동생에게 “나 시에 들어가니까 밥 차려놔”라고 하는 모습이 정말 충격적으로 다가왔어요. 카페에 가서도 대놓고 지나가는 여자들의 얼굴과 몸을 평가할 때마다 특이하다고 생각했어요. 처음에는 뭔가 좀 이상하다고만 생각하다가 점점 피하게 됐죠. 제가 신앙 때문에 혼전 순결을 지켜야 한다며 오빠와의 잠자리를 피했었잖아요. 저 사실 무교예요. 요즘 뉴스를 볼 때마다 오빠가 종종 떠올라요. 그리고 그때의 나 자신에게 무척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있어요.

To. 기괴한 판타지 러버에게

신입 사원 연수가 끝나고 우리가 사귄 지 두 달쯤 되었을 때일 거야. 회사 야유회가 끝나고 간 뒤풀이는 3차까지 이어졌고 우리 모두 얼큰하게 취해 있었지. 술 게임을 하다가 진실 게임에 이르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19금 이야기가 시작됐어. 누군가가 너에게 이성의 외모에서 중요하게 보는 부분은 어디인가 하는 질문에 너는 ‘허리’라고 대답했어. 그런데 주변에서 너에게 더 솔직해지라며 야유를 보내더라. 결국 너는 ‘혀’라는 대답을 했고 너희 팀 사람들은 “그래, 혀 정도는 되어야 XX이지” 라고 깔깔거리며 웃었어. 이어진 질문에서도 너는 자꾸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대답을 뱉었어. 누군가 SM 플레이의 가학적인 면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하자 너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그 즐거움에 대해서 항변하기 시작했지. 남자 동기들까지 인정하는 너의 기괴한 취향과 이성의 끈을 놓자 쏟아지는 너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더라. 싸한 기분이 들어서 다음 날 너에게 헤어지자고 했어. 당시 비밀 연애 중이었기에 너는 어제 무슨 실수라도 한 거냐며 한 달을 쫓아 다녔지. 도대체 어떤 야동을 보며 섹스 판타지를 키워왔던 거니?

To. 가뭄보다 건조한 너에게

너를 만나고 ‘으른’의 연애에 대해 알게 되었어. 소개팅 첫 만남에서 이미 확 달아올랐지만 우리는 간신히 자제력을 찾았지. 두 번째 만남에서는 결국 욕구를 이기지 못하고 1차를 끝내자마자 모텔로 들어갔어. 엘리베이터에서부터 서로를 잡아먹을 듯 키스를 퍼부으며 네가 나를 꼭 끌어안을 때마다 바짝 선 너의 그곳이 내게 닿았어. 그래서 나도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저돌적이었던 것 같아. 모텔 방에 들어가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옷을 벗었고 네가 나를 촉촉이 적시는 순간은 그 어느 때보다 황홀했어. 이제 내가 너를 적셔줄 차례가 됐고, 아마 바로 그 순간이었던 것 같아. 풀어헤친 셔츠 사이로 너의 가슴과 팔뚝에 허옇게 날이 서 있는 각질을 보았지. 추운 겨울이었으니 속살 관리에 소홀했을 수 있어. 그런데 차마 그곳에 입술을 가져다 댈 수가 없더라. 네 위에 올라 입술에 키스를 퍼붓다 갑자기 화장실로 달려간 건, 사실 너의 각질을 보고 구역질을 할 것 같아 그랬던 거야.

To.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소년

너를 처음 보았을 때, 세상에 청량함을 사람으로 표현한다면 그건 아마 너를 놓고 하는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 사람들이 너를 ‘포켓 보이’라고 부를 정도였으니까. ‘귀여운 사람’을 이상형으로 노래를 불러온 내게 그래서 너의 존재는 더 특별했어. 동기들에게 네가 학과 학생회에 참여한다는 소식을 듣고 가입할 정도로 너와 가까워지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 학생회 회의가 끝나고 단둘이 한잔하기로 한 날 둘 다 조금 과음을 했지. 너의 자취방에서 한 잔 더 하기로 하고 들어갔을 때 속으로 쾌재를 불렀어. 네 방에서 2차를 시작하고 알딸딸하게 취했을 때 자연스럽게 분위기는 무르익었고 키스를 하며 네가 내 손에 깍지를 꼈을 때 모든 낭만이 산산이 조각나고 말았어. 지나치게 귀여운 너의 단풍 손은 내 손보다 작았고 그걸 인지한 순간 몸의 모든 감각 회로가 멈춰버렸어. 너의 그 작은 손이 내 몸 구석구석을 돌아다닐 상상의 나래가 펼쳐졌고 더 이상 몰입할 수 없었어. 그리고 내게는 남자의 절대적인 조건이 하나 생겼지. 나보다 손이 클 것!

To. 멀리 보아야 아름다웠던 그대에게

잘 지내고 있나요?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영혼의 단짝을 찾은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영화와 음악 취향, 입맛, 좋아하는 공간까지 그렇게 잘 통하는 사람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죠. 우리가 세 번째 만남을 갖던 날, 맥주를 마시며 장장 4시간이나 영화 이야기를 하고 공원을 산책하던 중 당신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죠. 그러고는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어요. 그리고 입술이 점점 가까워졌죠. 그 순간 대화할 때는 미처 몰랐던 당신 입술 옆 여드름 존이 눈에 들어왔어요. 빨간 뾰루지 중심으로 노랗게 익은 여드름. 테이블을 마주하고 앉았을 때는 몰랐던 존재였어요. 그걸 본 순간 당신의 입술을 차마 내게 들일 수 없었죠. 나도 모르게 얼굴을 피했고 우리는 키스부터 꼬였어요. 그 뒤에 당신을 만날 때마다 눈에 들어온 건 입술 옆 여드름 존이었어요. 키스도 넘기 힘들었던 우리의 사랑은 그렇게 끝이 났죠. 갑작스럽게 내가 지방으로 발령이 났다고 했던 말, 사실은 안전 이별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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