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이유
첫사랑은 강렬한 흔적을 남긴다. 이미 끝난 관계라도 그때의 온도와 공기는 아직 남아 있다. 2017년 결혼정보회사 가연의 설문에 따르면 응답자 중 무려 88.4%가 첫사랑을 추억하고 있다고 답했다.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는 ‘완전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아서’가 49%로 1위에 꼽혔고, ‘첫사랑이라는 타이틀 때문에’가 24%로 2위를 차지했으며, ‘사랑 받았던 기억 때문에’가 18%로 그 뒤를 이었다. 대체 첫사랑이 뭐길래, 그녀는 왜 잊을 수가 없는 걸까?
박진태 (29세·승무원)
근래 들어 소개팅 플랫폼을 이용하는 지인이 늘고 있다. 편리하게 이성과 만날 수 있다는 점에 혹하지만, 그래도 순간의 치기를 채울 뿐이라는 생각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아날로그 연애가 더 취향에 맞다. 느린 추억일수록 잔상이 짙게 남는다. 예전에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던 길, 길목에서 파는 꽃이 너무 예뻐 충동적으로 꽃을 사서 선물한 적이 있다. 아무런 기념일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꽃을 든 채 그녀를 만나러 걸어가던 그때 그 감정이 지워지지 않는다.
이윤재훈 (25세·청과업 종사)
최근 친구들과 클럽에 갔다. 정신없이 놀고 있는데 누가 갑자기 내 손을 붙잡으며 “너 아직도 이 향수 쓰네”라고 했다. 깜짝 놀라 돌아봤더니 전여친이었다. 내가 어리둥절해하는 동안 그녀는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너무나 영화 같은 재회라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벌렁거린다. 우리는 어린 나이에 만나 꽤 뜨겁게 연애했었다. 솔직히 아직도 미련을 떨치지 못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그녀와의 추억이 자꾸만 눈에 아른거린다.
한용현 (23세·군인)
한번 연애를 하면 길게 한다. 그래서인지 모든 인연과의 만남이 소중하지만, 첫사랑의 기억은 유난히 존재감이 크다. ‘첫사랑’이라는 세 글자만으로도 느껴지는 묘한 기운이 있지 않나. 연애라고는 아무것도 모르던 고등학생 때, 교복을 입고 풋풋한 사랑을 했다. 돌이켜보면 특별할 것 없는 연애였는데도 설레는 감정을 처음 느껴본 터라 깊게 자리한 듯하다. 오랜 연애 끝에 결국 좋지 못한 이유로 틀어졌다. 그래도 당시의 어설프고 여린 마음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안진수 (23세·학생)
나를 참 좋아하던 그녀가 가끔 생각난다. 대학 신입생 때 캠퍼스에서 그 애를 처음 만났는데, 고맙게도 나를 먼저 좋아해줬다. 누군가가 먼저 좋아해주는 연애를 한번쯤 해보고 싶던 차라 고백을 수락했다. 그런데 막상 연애를 시작하고 보니 나는 사람을 사랑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타입이었다. 그 탓에 상대를 많이 애타게 했다. ‘좀더 성숙했다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하며 후회될 때가 가끔 있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덕분에 한층 성숙해진 것 같다.
송덕현 (27세·취업준비생)
대학생 때의 사랑이 크게 남는다. 전역 후 복학한 첫 강의에서 그녀를 만났다. 하얗고 귀여워서 자꾸 눈길이 갔다. MT에서 친해질 기회가 생겨 친구로 지내다 충분히 가까워졌다는 생각이 들즈음 고백을 했는데, 거절당했다. 그러나 사건은 과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터졌다. 으슥한 골목길, 술에 잔뜩 취한 그녀가 나에게 키스를 해온 것이다. 귀에서 종소리가 들린다는 말을 그제야 실감했다. 그 초겨울 밤을 잊을 수가 없다.
박수민 (28세·대학원생)
옛사랑은 어떤 찰나만 또렷하게 새겨진다. 스무 살 초반, 썸녀와 롯데월드에서 데이트를 했다. 마지막으로 관람차를 탄 뒤 레이크 팰리스 아파트 야경을 보면서 마음을 고백한 것까지 정확하게 기억한다. 그런데 이 장면 말고 다른 순간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이 외에 정말 많은 과거가 있을텐데 말이다. 얼마 안 가 시시하게 끝난 것만 어렴풋이 기억난다. 나도 모르는 새 삶을 편집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첫사랑이 특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