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프릴이 그리는 색의 온도

조회수 2021. 2. 9. 17:0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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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를 마주한 에이프릴, 6가지 색을 담은 그녀들의 새로운 시작.
드레스 시눈, 팬츠 일립시스

Q 가장 기억나는 졸업과 입학에 대해 말해보자. (윤채경) 시흥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나는 예고 진학을 목표로 하고 스스로 엄청난 기대치를 가졌다. 학교 친구들로부터 진심 어린 응원도 받았다. 예고 입학은 시흥에서 엄청난 이슈가 되어 예고 입학이 확정됐을 때 학교에 현수막도 걸렸다. 그때 잠깐 스타가 된 기분을 누렸다(웃음). (김채원) 고등학교 졸업 당시가 데뷔 후여서 우리 멤버들도 와줬고 어깨가 으쓱 올라갔었다. 데뷔곡 ‘꿈사탕’으로 고3 때 친구들과 함께 무대 위에 섰는데, 아직도 유튜브 영상으로 남아 있어 추억이 되었다. (이진솔) 아무래도 이번 졸업이 기억에 남는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멤버 언니들이 오지 못해 아쉽긴 했지만, 마스크를 쓴 팬분들이 꽃다발과 화환을 주셨다. 그렇게 많은 분들께 축하 받은 것이 난생처음이어서 기억에 남는다. (양예나) 데뷔 후에 예술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입학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 같아서 괜히 설레기도 했고, 로망도 있어서 추억에 남는 것 같다. (이나은) 지금은 카메라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지만, 어릴 땐 자신감이 없었다. 초등학교 졸업 때 졸업장을 받으러 앞으로 나가면 최종 꿈을 스크린에 띄워준다. 속마음은 연예인을 적고 싶었지만 어린 나이에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못하는 쑥스러움이 있어서 다른 걸 썼던 기억이 난다.

Q 데뷔 당시에 멤버 평균 나이 17.5세였다.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시절, 고민이나 심적인 스트레스는 어떤 방법으로 달랬나? (이진솔) ‘왕사춘기였다’고 표현하고 싶다(웃음). 중학교 2학년 때 데뷔했으니까… 어쩔 수 없는 사춘기 시절이 있었는데, 누구에게 털어놓는 성격이 못 되어서 혼자 펑펑 울었었다. 그러면 조금 진정이 되면서 다시 ‘열심히 해야지’ 하는 의지가 생겼다. 아무 생각 없이 눈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울면 속이 좀 후련했다.

Q 데뷔 당시 개인 티저까지 찍었던 마스코트 사월이는 잘 있나? (김채원) 에이프릴을 상징하는 하트에서 기운을 받아 새싹이 돋아나는 씨앗인 사월이(웃음)! 잘 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V라이브를 찍었더라. 단독으로 혼자서! 이 친구가 방송 욕심이 가득해서 예전 ‘팅커벨’ 활동 때는 무대 위에 올라가 우리와 함께 폭풍댄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잘 돼서 펭수처럼 유명해지면 좋겠다. 어쩌면 그게 최종 목표일 수도.

재킷 더갱, 팬츠 인스턴트핑크, 네크리스 봉보, 이어링 일레란느.

Q 에이프릴의 대표곡이라고 생각하는 노래는? (김채원) 아무래도 ‘봄의 나라 이야기’가 아닐까. 짝사랑을 테마로 한 슬픈 노래 가사지만 욕심내지 않고 순수한 사랑으로 응원하는 이야기다. ‘봄’이라는 이미지의 에이프릴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을 확립해주었고, 그 이후에 좀더 대중에게 알려지게 된 계기가 됐다.

Q 지금 보면 손발 오그라드는 무대 영상은? (양예나) ‘꿈사탕’. 역시 데뷔의 흑역사 저주는 풀지 못할 것 같다. 그거 절대 못 본다. 지금도 얼굴에 남아 있는 볼살이 아기 같아 보인다는 얘기를 많이 듣고 있는데, ‘꿈사탕’ 영상을 보면 너무 어릴 때라 메이크업을 하지 않은 순수한 느낌이 콘셉트였기에 블러셔는 물론, 색조 메이크업을 전혀 하지 않아서 보기가 힘들다. (이나은) 그러고 보니 나는 속눈썹도 붙이지 않았다. (김채원) 거의 민낯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 시절에만 할 수 있었던 콘셉트였던 것 같다. 지금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으니까, 좀더 나이가 들면 좋은 추억으로 남겠지. (이진솔) 개인적으로 ‘MAYDAY’. 내가 고등학생이 되고 난 후 컴백한 곡인데, 당시는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 많이 데뷔하던 시절이었다. 아무래도 그 곡이 역대급으로 발랄한 노래라 그것에 맞춰 귀여운 척을 하며 무대에 임했다. 진짜 그 콘셉트에 충실했다고 생각한다. 가끔 볼 기회가 생기는데 지금은 끝까지 못 보겠더라. 실눈 뜨고 겨우 본다. 내가 그때 왜 그랬을까? 자책의 무대 영상이다.

Q 꿈이 이루어질 거라는 메시지를 담은 데뷔곡이다. 만약 에이프릴을 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윤채경) 잘하진 못하지만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옷, 가죽공예, 가구 DIY 등을 하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해본 적도 있다. 어릴 때 몸이 약해 한의원 단골이었다. 또래 친구들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한약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한자를 읽으며 처방전도 한자로 써주는 한의사 선생님이 너무 멋있어 보여서 어릴 때 한자급수시험 3, 4급도 땄었다. 몰론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웃음). 아마 한의원에서 일하는 직업을 갖게 될 것 같다. (김채원) 원래 꿈은 가수가 아닌 아나운서와 선생님이었다. 가수를 하지 않았다면 누군가를 가르치고 있었을 거다. (이진솔) 선생님 진짜 잘 어울린다. 채원 언니는 딕션이 좋아서 귀에도 잘 들어오고 말하는 톤이 강의하기 좋은 적당한 높낮이라 잘 가르쳤을 것 같다. 나는 이것저것 경험해보고 싶다. 뷰티에도 관심이 많아 학원에서 강사나 방송국 FD 등 현장에 특화된 직업을 다양하게 경험할 것 같다. 몸으로 뛰는 것을 좋아하니 현장 체질이다. (이나은) 연예인을 하고 난 후 많은 생각들이 내 안에 자리 잡긴 했다. 억압 받고 강요 받는, 어떤 정해진 규칙 아래 움직이거나 짜여진 것 안에서 크리에이티브한 느낌을 배제시키는 것은 견디지 못할 것 같다. 확실히 활동적인 편이라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나를 얌전하게 묶어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활발하고 교감이 통해야 가능한 사육사나 수의사가 되고 싶다. 아버지께서 인테리어 쪽 일을 하시니 그쪽으로도 생각해봤을 것 같고 가구를 좋아해서 목공일도 하지 않았을까. (윤채경) 목공 해서 나와 함께 브랜드를 만들어보는 건 어때? 사업계획서 한번 써볼까. 우리 좋아하는 느낌들도 비슷하니까. 아이돌 최초 목공 브랜드 CEO(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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