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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가 되는 위로

조회수 2021. 2. 9. 17:1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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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 인사라도 이런 말은 삼가하자! 코로나19로 우리에게 필요한 섬세한 소통 방법.

“저 가게 코로나 걸린 곳이잖아. 들어가지 마”

확진 환자와 그들의 가족만큼이나 확진 판정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이 있다면, 확진 환자가 다녀간 가게 상인들이다. 전염병 특성상 동선을 공개해 추가 피해를 막으려는 노력은 당연한 것이지만 음성 판정을 받은 검사자, 접촉자의 동선까지 공개되는 과잉 대응을 비롯해 그에 따른 부작용도 상당하다. 또 반복되는 알림, 뉴스에 사람들의 불안은 가중된다. 방역 조치가 끝나 감염 우려가 없는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확진 환자가 방문했던 곳은 물론 동선에 따른 인근 가게까지 방문하기를 꺼린다. 하지만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뱉은 우려 섞인 말 한마디에 상인들은 원치 않게 가해자가 된 기분마저 느낀다. 따라서 방역 조치 이후에도 임시 휴업에 들어가는 등 자체적으로 격리된 상태를 유지하기도 한다. 확진 환자의 동선이 파악되면 그 즉시 폐쇄, 방역 조치가 이뤄지기 때문에 불필요한 불안과 말로 서로에게 상처 주지 말자. 불신이 더 큰 단절을 낳는다.

“기침하는 거 보니까 코로나 걸린 거 아니야?”

인후통, 고열 등 코로나19의 증상이 감기와 비슷해서 요즘은 기침만 해도 눈치가 보인다. 심리적으로 위축되었기 때문에 타인의 말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상대방의 건강을 걱정하는 건 “괜찮아?” 한마디로 충분하다. 혹은 “요즘은 기침하는 것만으로도 눈치가 보이지? 나도 그렇더라”처럼 공감의 말을 전하면 된다. 괜한 사족으로 불안을 가중시키거나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일을 만들지 말자. 또 말보다는 과일이나 차 기프티콘을 선물로 보내는 등의 구체적인 행동으로 위로하는 것도 좋다. 열 번의 말보다 한 번의 행동이 더 오래 기억되는 법이니까.

“너 고향 대구지?”

기치 못한 불행에 맞닥뜨렸을 때 성급한 판단 혹은 일반화만큼 위험한 것이 없다. 어느 정치인이 했던 실언처럼 말이다. 누군가 가볍게 내뱉는 말에 상대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을 수 있다. 고향에 있는 가족에 대한 걱정으로 잠을 못 이루거나 사람들의 시선에 엄청난 상처를 받았을 수도 있다. 지역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거나, 진심으로 걱정하는 마음을 간결한 말로 표현하자. 상대의 상황에 공감하고 당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정도면 된다. “걱정이 많지? 안타까운 마음이야” 단 두 마디. 또 대화를 나눌 때는 팩트가 아니라 상대의 감정, 마음에 집중해야 한다. 지금 상황이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가족들은 안전한지 등의 사실보다 상대가 느끼는 불안, 걱정을 함께 공감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상대를 걱정하는 마음에, 혹은 어떻게 위로해야 하는지 몰라 자신도 모르게 실언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땐 빠르게 사과를 건네자. 그런 의미로 한 말이 아니라고.

“자가격리 중이죠?”

사회적 거리 두기 캠페인이 한창이라지만 업무 특성상 또 개인적인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지역 이동이나 비행을 감행해야 하는 사람도 있다. 이후 자율격리를 통해 안전과 건강을 챙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의 볼멘소리를 듣는다. 또 확진 환자와 동선이 겹치거나 접촉을 이유로 집에 머무는 사람들에게 자가격리 중인지를 더블 체크하는 무례를 범하는 경우도 있다. 무단 외출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빚은 사람도 있지만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확진 환자 다수가 자신이 병에 걸려 아픈 것보다, 자신으로 인해 지인들이 감염, 격리되는 것에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 격리 중인 사람들도 이와 같은 마음이다. 괜스레 걱정이라는 명분 아래 상대에게 불편한 안부 인사는 건네지 말자. 특히나 얼굴을 보지 않고 전화나 메신저로 소통하는 요즘 같은 때엔 오해를 사기 십상이다. “끼니 거르지 마” “몸은 좀 어때?” 정도의 가벼운 인사면 마음을 전할 수 있다.

“괜찮은 거야? 왜 걸렸대?”

확진 환자수에는 못 미치지만 그럼에도 완치를 통해 격리 해제되는 사람의 수도 늘고 있다. 이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와줄지 묻는다거나 감염의 원인 등을 묻는 것 또한 실례가 될 수 있다. 상대는 아무 일에도 손댈 수 없을 만큼 몸과 마음이 지쳤는데 분석적인 답안을 찾는 건 오히려 또 다른 상처만 낳을 뿐이다. 일상으로 돌아온 지인에게 안부 인사를 건네고 싶다면 이유나 분석의 질문 대신 상대의 기분과 상태를 묻는 것이 낫다. “네가 어떤 상황일지 상상조차 못하겠어. 많이 놀랐지?” 등의 말 몇 마디면 된다. 혹은 “네 소식 듣자마자 마음이 너무 아팠잖아”처럼 상대에게 자신의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하는 것도 좋다. 적당한 말이 떠오를 때까지 침묵을 유지하는 것도 좋은 위로일 수 있다. 굳이 서로의 안부를 확인해야만 두터운 사이를 유지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자신에게 일어난 충격적인 이 사건에 계속 신경 쓰기보다 다시 일상을 되찾는 것에 집중하려는 사람도 있으며, 그 자체를 부정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많다. 상대가 안정을 찾을 때까지 혹은 내게 어려움을 쏟아내기 전까지 곁에서 기다려주는 것 또한 좋은 친구의 덕목이다.

“아니 왜 그렇게 마구 돌아다닌 거야?”

확진 환자의 이동경로를 알리는 과정에서 필요 이상의 사생활 노출이 지속적으로 문제로 꼽히고 있다. 확진 환자의 동선을 통해 자신이 감염 위험에 노출되었는지 확인하는 것을 넘어 개인의 사생활에 대한 불필요한 조롱이 이어진다. 특히나 술집, 호텔 등을 방문한 것이 밝혀지면 환자들은 2차 피해를 당한다. 왜 매일 같은 시간에 그곳에 갔는지 궁금해하는 댓글부터 감염자의 동선이 복잡하면 온 동네에 바이러스를 옮기고 다녔다며 악플을 단다. 하지만 바이러스에 감염되기 전까지 일상을 영위할 권리가 모든 사람에게 있고 재택근무가 모두에게 허락된 건 아니다. 또 ‘우리 동네는 코로나 청정지역’ ‘아, 확진 환자 나왔어. 우리 동네 뚫림’과 같이 아무렇지 않게 달리는 댓글도 유의해야 한다. 이러한 말에는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부주의하거나 불결한 행동으로 인해 옮는 것이란 선입견이 녹아 있다. 하지만 전염은 사고와도 같아서 사람들끼리 마주하는 모든 순간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누군가를 탓하기보다 서로 조심하는 태도면 충분하다.

“중국인 유학생은 휴학시켜야지”

감염병을 향한 대중의 반응은 3단계로 이뤄진다. ‘내가 감염되지 않았을까’라는 불안에서 시작해 ‘감염되거나 감염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에 대한 혐오 그리고 ‘불안과 분노를 표출할 대상’의 희생양 찾기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중국 우한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중국인 여행객, 노동자, 유학생에 대한 시선이 따갑다. 유학생들이 입국 후 14일간 자율격리를 통해 사태가 악화되지 않도록 노력함에도 ‘중국 포비아’가 우리 사회에 퍼지고 있다. 대학교에서는 온라인 강의 도입, 중국인 유학생 관리 등을 통해 대책을 강구함에도 무작정 휴학이나 기숙사 분리와 같은 요구가 늘고 있다. 이런 요구는 불안을 넘어 편견이나 혐오의 감정으로 커나갈 확률이 높다. 무작정 분리보다는 함께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서로의 위축된 마음을 지지해주는 말이 필요하다. 스포츠 경기에서 작전타임 동안 감독이 선수들을 격려하면서 건네는 ‘펩 토크’를 활용해보는 건 어떨까. 현재의 상황을 함께 이해하고 상대의 역할과 가치를 상기시키며, 우리가 함께 이뤄낼 목표를 공유하고 격려하는 과정의 대화다. 우리는 결국 함께 이겨내야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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