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떠나고 싶은 도시 5

조회수 2016. 11. 14.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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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일론 코리아
가을가을한 요즘
우리나라가 아닌 해외는
어떤 풍경을 담고 있을까?
파리와 런던 LA와 뉴욕 그리고 베를린에 사는 사람들이 바라보는 시선을 공유해봤다.

많은 이들이 내게 묻는다.

파리에 산다는 건 어때?’


지금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도, 

이 도시를 그리는 사람들도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같은 질문을 한다.

바로 이 점이 파리라는 도시가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증명한다.
사랑한다면 그 어느 도시보다 열렬히 사랑할 수 있고, 미워하려면 그 어느 도시보다 마음껏 미워할 수 있는 곳.

그 누구도 같은 마음으로

이 도시를 살아내고 있지 않으니까.

어떤 감정이든 최대한 끌어올려 오롯이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곳, 요즘은 열렬히 사랑하는 쪽이다.
걷기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홀로 자주 산책을 하는데, 


그때마다 오래된 파리의 흔적을 둘러보며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한다.

걷는 게 얼마나 대단한 건가 싶다가도 그 순간의 공기와 바람 냄새야말로 내가 파리에서 얻는 소중한 행복 중 하나가 될 때면 감사한 마음마저 든다.

누군가 지금 이 순간 내게

파리에 산다는 건 어때?’라고 묻는다면 


지금은 그저 ‘축복’이라고 답할 수 있다.

오늘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엔 낮게 구름이 내려앉았다. 그런 날에는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 파리가 뭐라고.

젊다. 그리고 낯설다.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 대한 사적인 설명이다.

역사의 상처, 과오가 도시 곳곳에 남겨져 어쩐지 엄숙할 것 같은 이 도시는 사실 가장 크게 변하는 도시 중 하나다.
이 변화의 중심에 젊음이 있다.

전 세계 각국에서 모인 젊음은

스스로 베를리너를 자처하기도,


이방인으로 남은 채

변화의 중심에 서기를 원하기도 한다.

이들은 도시에 남겨진 상처를 천천히 메우고 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서로 다른 색을 입히며.
젊음은 체계로 얽힌 도시와 지루한 거리 속에 또 다른 정체성을 자유롭게 심고 있다. 베를린에는 질서 정연한 정의를 비웃듯 젊음이 부유하고 있는 것.

벽 위에 그림 속에서,

대로에서 음악에서

그들의 흔적이야기를 찾을 수 있다.

매일 카메라를 든다.


카메라를 통해 바라보는 뉴욕

늘 새롭고 신선하다.


마치 이곳이 내가 사는 곳이

아니라는 느낌마저 들 정도.

카메라 프레임 속에서는 내가 상상하는 것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상상이 된다. 마치 늘 상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엉뚱한 일이 벌어지는 것 같다고 할까.
도시는 귀를 기울이는 자에게 비밀 이야기를 풀어놓을 것처럼 위와 같은 비슷한 장면을 계속 보여주지만, 몇 시간의 긴 걸음 속에서도 아무런 이야기나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 때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나는 긴 호흡을 한 다음 카메라를 들고 뉴욕의 거리로 나간다.
언제나 그렇듯 그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고서 사람들과 공유하기를 바라는 작은 희망을 품고서.

그라피티 아티스트 넥페이스는

나를 스케이트보더의 기운이 넘치는 장소가 아닌


건즈앤로지스가 처음 공연한

오래된 바(Bar)로 데려갔다.

인디펜던트 갤러리 ‘슬로 컬처’는 20명의 젊은 아티스트와 플레이보이의 컬래버레이션 작품을 전시해 1953년생 플레이보이 캐릭터를 쿨한 이미지로 바꿔놓았다.
방 하나를 구하려 해도 젊은 룸메이트들은 1920년대에 지은 스패니시 방갈로 스타일이라거나 60년대에 세운 할리우드 스타일 아파트라는 식의 건물 히스토리부터 이야기한다.

젠트리피케이션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자주 가던 다운타운의 인디 클럽을 잃었고,

게으른 마리화나 냄새의 베니스 비치는 힙스터들로 바빠졌지만, 로스앤젤레스 곳곳에 히스토리에 대한 존중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은 마치 찰스 부코스키의 소설에 나오는 옛날에 집착하는 특이 환자 같지만, 나와 내 주변에서는 평범한 일이다.

런던은 벌써 쌀쌀한 기운이 감돈다.

그렇지만 크로이든의 쇼핑몰 2층에 있는

캠든커피하우스만큼은

계절의 변화가 없는 듯하다.

내가 커피를 내리는 이 카페는 어제도 오늘도, 아마 내일도 같은 사람들이 온다. 오전에 오는 동네 할아버지와 할머니 몇 분은 이제 주문도 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 내 커피를 기다린다.
그렇다고 내가 ‘어쩌다 런던에 오게 됐는지, 런던에 와보니 어떤지, 런던의 어떤 뮤지션을 가장 좋아하는지’ 따위의 얘기는 한번도 나눈 적이 없다.

물론 젊은 한국 여자애가

내리는 커피 따위는 마실 수가 없다며

박차고 나간 이도 없고. 


런던 사람은 늘 아무렇지 않게 나를 대한다.

이방인도, 아닌 것도 아닌 그냥 런던에 사는 사람. 선입견을 가진 건 오히려 내 쪽이었다. 그건 얼마 전까지 함께 일한 티나가 알려준 사실.

예쁜 외모에 도도한 인상을 풍기던 그녀는

어떤 생각을 하면서 자랐을지 가늠도 안 되는

생소한 폴란드에서 온 친구였다. 


어쩐지 어려웠고, 그래서 런던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진부한 날씨 얘기만 주고받으며 지냈다.

그러다 자신의 이야기를 먼저 한 건 오히려 도도한 티나였다. 3년 전 여행차 런던에 처음 왔고, 펍에서 어떤 남자를 만났으며, 지금은 그 남자에게 단단히 빠져 다니던 회사도 그만두고 아예 런던으로 왔다는 얘기였다.
그때부터인 것 같다. 카페에 오는 사람들을 두고 혼자 이런저런 추측을 하지 않는 것 말이다.

런던은 런던이고,

나는 한국에 사는 게 너무 갑갑해

훌쩍 런던으로 와버린 이방인이 아니라

캠든커피하우스의 바리스타인 거다. 

그게 이 도시가 나를 외롭지 않게 해준다. 테이트 모던과 템스 강이 있는 사우스뱅크와 함께.

EDITOR 강예솔

DIGITAL EDITOR 강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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