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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영혼없는 답장, 눈을 질끈 감았다

애 엄마가 제주로 2박 3일 MT를 간다는 것
마더티브 작성일자2019.03.19. | 36,972  view

10월의 어느 월요일. 부서원끼리 점심을 먹는 날이었다. 보글보글 끓는 김치찌개를 한술 뜨려는데 부장이 공지했다.


11월 말에 제주도로 2박 3일 부서 MT 갈 거니까 시간 비워두세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MT라니. 제주도라니. 그것도 2박 3일이라니. 집에는 태어난 지 35개월 된 아이가 있다. 우리 부부는 딱 그 시간만큼 단 한 번도 배우자를 홀로 남겨둔 채 외박한 적이 없다. 내가 MT를 가게 되면 우리의 ‘연대책임’에 균열이 나게 되고, 서로에게 빚지지 않으려 노력해온 시간들이 무너지게 된다.


나에게 2박 3일 MT는 배우자를 지옥에 볼모로 두고 홀로 천국을 만끽하는 거나 다름없다. 늦은 귀가는 어떻게 양해를 구해도 외박은 유죄다. 부장에게 아이 때문에 못 간다고 단호히 거절했다. 나와 같은 직장맘인 부장은 더 단호했다. “이것도 일이니까 하루라도 가도록 하자. 아이가 그 정도 연령대면 해볼 만해.” 결국 1박 2일 일정으로 비행기 표를 끊었다.

단단히 묶어뒀던 끈이 풀리다

드디어 출발 당일. 그때까지만 해도 마음이 들뜨지 않았다. 상공에서 제주를 내려다보기 전까지는.


“우리 비행기는 이제 곧 제주 공항에 도착합니다.” 한 시간 정도 지나자 승무원의 안내 방송이 나왔다. 반사적으로 창문을 봤다. 맑고 투명한 바다를 지나자 제주 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에서 나는 아이를 찾으러 오후 7시까지 돌아가야 하는 ‘애데렐라’ 엄마가 아니었다. 몸도 시간도 공간도 오롯이 혼자만의 의지로 통제할 수 있는 하나의 사람이었다. 내면 깊은 곳에 잠들었던 ‘나’라는 인간이, 지극히 개인적인 자아가 깨어나는 듯했다. 비행기가 활주로에 착륙하는 순간, 아이도 남편도 기억에서 희미해졌다. 엄마라는 이성과 의지로 단단히 묶였던 나의 감정과 욕구는 그렇게 봉인이 해제됐다.

봉인 해제

엄마가 되고 나서야 알게 된 것들

저녁 시간. 서귀포의 한 식당에서 문어숙회에 제주에일 한잔을 곁들였고, 숙소로 돌아와서도 와인에 과일을 안주 삼아 새벽 3시까지 술자리를 이어갔다.


엄마가 되기 전의 나는 어떠했나. 자발적으로 신데렐라처럼 살았다. 회식이나 모임에 나가면 밤 12시를 기점으로 귀가해 하루를 손쉽게 마감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피곤하니까. 사람들은 언제든 또 볼 수 있으니까.


엄마가 된 나는 왜 잠을 참아가며 이 밤의 끝을 잡고 있나. 절실함의 차이였다. 아이를 낳은 뒤로 저녁 약속은 남북통일처럼 요원해졌다. 약속이 잡히더라도 밤 9시 전에는 어떻게든 자리를 떠야 했다. 엄마가 그리운 아이와 나의 일손을 원하는 남편이 집에서 기다리고 있으니까. 좋아하는 사람들과 마주 앉아 시간제한 없이 술잔을 기울이는 건 언제든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아니었다. 그걸 깨닫고 나니 제주에서의 밤을 1초라도 더 지새우고 싶어졌다.

서귀포로 가는 버스에서 찍은 사진. 꿈같았던 시간.

애 없이 제주를 걷다

제주에서의 둘째 날. 쇠소깍으로 갔다. 제주올레 6코스 시작점이다. 이곳에서부터 이중섭거리까지 14.4km를 완주하는 게 이날 일정이었다. 나는 올레든 둘레든 걷는 건 딱 질색인 사람이었다.


육아는 운동 포비아인 닝겐도 걷게 하는 걸까. 생각 이상으로 즐거웠다. 걸으면 걸을수록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오롯이 두 발로 걷는다는 건 매력적인 일이었다. 그것도 제주의 바다를 옆에 끼고 걷는다는 건. 아이와 함께 이 길을 걷는 장면을 잠시 상상해봤다. 뛰어가는 아이를 붙잡으러 쫓아가고, 안 걷겠다고 떼쓰는 아이를 들쳐 안고... 여기가 제주인지 올레인지도 모른 채 애 보느라 바빴겠지. 그러니 한 걸음 한 걸음이 소중해졌다.


사실 올 여름에도 제주에서 3박 4일간 머물렀는데, 그땐 전혀 다른 것들을 보고 느꼈다. 아이랑 같이 갔기 때문이다. 제주의 자연을 감상하기보다는, 제주를 배경으로 깔깔 웃고 뛰는 아이를 두 눈에 담기 바빴다. 심지어 아이가 파도를 무서워해서 바닷물에 발 한 번 담가보지도 못했다.


아이와 함께 간 해녀박물관, 아이와 함께 먹은 한라봉 피자, 아이와 함께 마신 커피... 결국 그땐 아이와 추억을 공유하기 위한 여행이었다. 반대로 이번 여정은 일(?)이었지만, 온전히 제주의 모든 것을 만끽할 기회였다. 아이와 함께한 제주도 좋았지만, 아이 없이 제주를 누리는 것도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제주 바다를 끼고 걷는 올레길 6코스

서너 시간을 걸었다. 내가 다리인지 다리가 나인지 도통 모르는 호접몽스러운 통증 속에서도 끝까지 완주하겠다며 이를 악물고 걸었다. 마음 편히 홑몸으로 걸을 날이 또 언제 올지 모르니 한 발이라도 더 내딛고 싶었다.


목적지에 도착해 점심을 먹고 카페에서 잠시 쉬었다. 서울로 돌아가기 6시간 전이었다. 다리 통증과 전날 못 잔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와 물에 젖은 솜처럼 몸이 처졌다. 남편에게 다음 날 아침 비행기로 돌아가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그래ㅋ


영혼이 0.0000000001g도 담기지 않은 답장이 왔다. 'ㅋ'이 하나뿐이라는 건 남편이 원치 않는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비행기 시간을 다음날 오전 10시로 바꿨다(늦었지만 남편에게 미안하고 고맙다 전하고 싶다).    


숙소에서 잠시 쉰 뒤 다 같이 방어축제장으로 갔다. 거기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야 말았다. 동기가 제조한 럼앤콕을 마셔버렸다. 알코올 도수가 20도 이상인 술에 취약한 나는 럼앤콕 두 잔에 속된 말로 맛이 가 버렸다.

추락주의 옆에 선 애 엄마의 자태

딱 거기까지 해야 했는데, 2차로 부채새우라는 고생대 생물처럼 생긴 갑각류를 먹으러 가서 또 소주를 한잔했다. 동기의 말에 따르면, 다들 정리 후 숙소로 돌아가는데 나만 ‘혼자서 산책하겠다’며 방향을 틀었다. 자정을 앞둔 시각이었다. ‘길도 모르면서 한밤중에 어딜 간다는 거냐’고 타일러도 막무가내였고, 결국 부장이 끌고 들어갔다고 한다.


기억은 흐릿하지만 그때의 마음만큼은 복기할 수 있었다. 2박 3일이 너무 짧다는 허무함. 이대로 끝낼 수 없다는 아쉬움. 그런 감정들 때문에 숙소로 선뜻 돌아가지 못하고 방황한 게 아니었을까. 밤 12시를 알리는 종소리에 서둘러 성을 빠져나가면서도 자꾸 뒤를 돌아본 신데렐라처럼.

떠나야 돌아올 수 있다

다음 날 아침. 정해진 시간에 맞춰 김포행 비행기에 올랐다. 시야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제주를 바라보며 나는 헛된 상상을 했다.


만약 엄마가 아니었다면, 나는 더 행복했을까.


아이를 낳은 뒤로 일상을 제어할 수 없을 때마다 불쑥 솟아오르는 가정법이다. 엄마만 아니면 하고 싶은 걸 하고, 가고 싶은 곳에 갈 텐데. 엄마로 사는 게 고되고 힘이 들수록 아쉬운 것들이 넘쳐흘렀다. 언제나 돌아가야 하고, 모든 선택을 책임져야 하는 엄마라는 역할이 이렇게 무거운 줄 몰랐다.

분명 제주 바다였는데 눈을 떠보니...(먼 산)

하지만 나는 안다. 더는 엄마 이전의 삶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걸. 말랑말랑한 볼, 보드라운 피부, 깔깔거리는 웃음, “엄마가 제일 좋아”라고 말하는 목소리. 아이가 주는 감각 없이 내 세계는 존재할 수 없으며, 아이가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조차 없게 됐다. 혼자만의 자유에 유혹되면서도 결국 다시 돌아가는 이유다.


엄마, 보고 싶었어.


집 현관문을 여니 아이가 달려 나와 안아줬다. 그렇게 다시 엄마로 돌아왔다.

이 글은 마더티브 홈페이지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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