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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그리고 새로운 시작] 조우진의 배구 시작은 각서와 약속

조회수 2021. 1. 20. 11:3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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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1년간 선수 생활 종지부
|호남대 배구선수 조우진이 아닌 이제는 새로운 시작
|제일 기억에 남는 경기는 고성대회 中
▲ 조우진(S, 186cm) 2020 BBQ배 전국대학배구 고성대회에서 선수로서 경기를 뛰고 있다.

[kusf/ 글=이유진 기자, 사진=이유진 기자, 본인 제공] 운동선수에게 운동이 다가 아니다. 이는 일반 학생에게 하는 말인 ‘공부가 다가 아니다.’라는 말과 비슷하다. 꼭 프로선수로서 성공하지 않아도 다양한 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 운동선수에서 새로운 길을 택하여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 의미를 담아 ‘도전 그리고 새로운 시작’이라는 제목을 담은 기획 기사를 제작했다.

배구선수 조우진과 ROTC

Q. 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

조우진(이하 우진) : 일단 배구를 시작한 계기는 어렸을 때부터 배구를 보는 걸 좋아했어요. 배구부가 있는 다른 초등학교에서 키를 큰 학생을 데려가려고 찾아왔어요. 그때 저는 또래보다 키가 큰 편에 속해서 시작하게 됐어요.


Q. 처음에 운동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반응은? 

우진 : 처음에는 부모님이 반대를 심하게 했어요. 부모님 두 분 모두 운동을 하셨어요. 그래서 운동이 힘든 걸 아셨어요. 부모님이 말렸지만, 그래도 배구가 하고 싶어서 운동을 그만두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작성했어요.(웃음)


Q. 제일 기억에 남는 학교생활은? 

우진 : 아무래도 고등학교 때가 제일 재미있고 힘들었던 것 같아요. 일단 고등학교 때부터 어느 학교와 시합을 하든 경기력 편차가 적었어요. 경기를 뛰는 건 나름 재미있었지만. 대학으로 인한 고민도 심했어요. 슬럼프도 있었고요.

그리고 저희 학교(인하대학교 사범대학 부속 고등학교, 이하 인하사대부고)가 코치님들이 자주 바뀌는 편이었어요. 저의 포지션이 세터였는데, 세터라는 포지션이 지도자가 바뀌면 바뀔수록 영향이 큰 포지션이에요. 그래서 마음을 다잡지 못해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요. 


Q. 이런 슬럼프와 힘들었던 시기를 어떻게 이겨냈는지? 

우진 : 일단 부모님의 아낌없는 지원으로 포기할 수 없었어요. 그리고 초중고 다 같이 나온 (신)호진(인하대, L/R)이가 있어서 잘 버틸 수 있었어요.

그리고 (신)호진이는 거의 뭐 현재 친구 중에서는 제일 친한 친구고 비밀도 없고 다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예요. 대전에서도 함께 있었고, 인천으로 전학도 함께 갔어요. 대학은 함께하지 못했지만 둘도 없는 친구예요. 이런 든든한 친구가 있어서 힘든 시기를 잘 버텼다고 생각해요.

▲조우진이 아쉬워 하고 있다.

Q. 선수 생활을 하면서 힘들었던 점

우진 : 일단 저는 몸이 잘 따라주지 않아 부상을 달고 살았어요. 실력이 올라가려고 하면 다치고 이런 생활이 계속 반복됐어요. 그리고 고등학생 때 지도자분들이 자주 바뀌어서 힘들었어요.

그리고 아버지는 소프트테니스, 어머니는 펜싱 국가대표였어요. 부모님 두 분 모두 국가대표 출신이다 보니 부담감이 컸어요. 주변 시선과 기대에 충족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감도 존재했어요.


Q. 선수로서 경기를 뛰면서 제일 기억 남는 순간 

우진 : 음.. 제일 재미있었던 건 대학교 때 치른 시합인 것 같아요. 대학시합에서는 코트에서 제가 하고 싶은 걸 다 할 수 있었어요. 주변 압박 없이 재미있게 그리고 부담 없이 경기를 치렀어요. 정말 즐기는 배구를 했던 것 같아요. 그중 제일 기억에 남는 경기를 하나 뽑으라면 「2020 BBQ배 전국대학배구 고성대회」(이하 고성대회)에서 구미대학교와 치른 경기예요. 그때 저희 주 공격수인 라이트 포지션 선수가 다쳤어요. 그런데도 저희끼리 합을 잘 맞춰서 경기에서 이길 수 있었어요.

그리고 고등학생 때 기억에 남는 대회는 2019 태백산배 중고배구대회예요. 제가 그때 한참 슬럼프를 겪고 있었는데, 주변에서 많이 도움을 줬어요. 좋은 순위는 아니지만 3위라는 값진 결과를 얻을 수 있었어요. 그래서 제일 기억에 남아요. 


Q. 선수 생활을 그만둔 것에 대한 후회 

우진 : 후회...는 조금 돼요. 10년 동안 선수로서 생활했지만, 배구선수로 성공하지 못한 게 아쉽기도 해요. 하지만 현재 다른 활동 하면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괜찮아요.(웃음)


그는 대학교 진학 뒤 치른 시합들이 제일 즐거웠다고 전했다. 조우진에게 부담감과 압박감이 줄어들면서 즐기는 배구를 할 수 있었다.

▲ 조우진이 토스를 올리고 있다.

Q. 인하대 신호진 선수와 10년 넘은 세월 동안 알고 지낸 절친으로 알고 있다. 어떻게 보면, 배구선수로서 고공행진을 하는 신호진 선수가 부럽진 않았는지

우진 : 아예 안 부럽다고 하면 거짓말이라고 생각해요. 가끔 (신)호진이를 보면 아쉽기도 하고 배구를 더 하고 싶기도 해요. 근데, 현재 몸이 좋지 않다 보니 배구를 못 하게 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어요. 배구로 (신)호진이가 위로 올라가면, 저는 다른 분야에서 위로 올라가면 된다고 생각해요(웃음).


Q. 호남대학교(이하 호남대)에 진학한 이유 

우진 : 1부대 대학을 가지 못하게 돼서 호남대에 오게 됐어요. 일단 제가 호남대를 가려고 마음을 먹었을 때부터 배구를 안 하려고 생각을 했어요. 호남대에 진학한 뒤 배구가 주가 아닌 심판이나 공부가 주였어요. 배구가 아닌 다른 쪽으로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고 심판도 열심히 했어요.


Q. 그렇다면 평소에도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는지? 

우진 : 일반 학생처럼 열심히는 아니었어요. 아무래도 운동을 하다 보니, 고등학생 땐 바빠서 잘못했어요. 그래도 중간중간 따로 시간 내서 공부했던 것 같아요. 수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책이라도 꼼꼼하게 혼자 읽어봤어요. 그리고 영어 단어는 심심할 때 외웠어요. 중학생 땐 했었다.


Q. 1월에 ROTC로 입대하는데, 선수 생활과 학교생활을 병행하면서 ROTC를 준비하는 과정이 힘들진 않았는지 

우진 : 사실 처음부터 ROTC를 할 생각이 없었어요. 1학년 후반부터 공부하고 시험을 봤어요. 그리고 실기까지 모두 통과해서 들어가게 됐어요. 그리고 저는 ‘대학생은 바빠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할 게 없어서 노는 것보다 바쁘게 사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저는 바쁘게 살아서 좋았어요.(웃음)


Q. ROTC를 지원한 이유가 따로 있는지? 

우진 : 선수 생활을 하면서 많이 다치면서 몸이 안 좋았어요. 그래서 일반 병사로 가는 것보다 장교로 가고 싶었어요. 의무복무는 2년 4개월이지만, 적성에 맞으면 직업군인을 할 생각도 있습니다.


인터뷰를 통해 조우진이 배구 시작부터 ROTC 지원 이야기까지 모두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목표로 하는 바 혹은 하고 싶은 일을 최선을 다하며 이뤄냈다. 이를 통해 조우진의 근성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이제는 그의 첫 새 출발인 배구 심판에 대한 이야기와 배구선수가 아닌 ‘사람 조우진’의 또 다른 이야기를 들을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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