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세] 선출들이 사는 세상, 제2의 선수 생활을 하고 있는 명지대 홍기성 <1부>

조회수 2020. 6. 30. 17:5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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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SF=김세린 기자] 대학 농구 선수가 프로 농구 선수로 데뷔하는 경우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초등학생일 때부터 10년 넘게 농구에 전념한 선수들이 대학 선수를 그만둔다면 다음 목표를 무엇으로 잡을까? 2019 KOREA 3X3 대학부 대표와 2019 전국생활체육대축전 경기도 대표로 맹활약하며 제2의 선수 생활로 빛나고 있는 명지대학교 홍기성(183cm, PG) 선수를 만나서 TMI(=Too Much Information) 토크를 해보았다.

▲ NYS배 루키챌린지에서 MVP를 받은 홍기성(출처=선수 본인)

Q. 안녕하세요. 제가 홍기성 선수의 프로필을 조사해봤습니다. 1995년생, 키 183cm에 포인트 가드. 상산전자고를 졸업하였으며 명지대 선출이다. 제가 조사한 내용이 맞나요?

홍기성(이하 선수): 프로필상 183cm이고 실제로는 180cm입니다. 그때는 키를 높이는 게 관행이어서(웃음).

Q. 농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선수: 11살 때부터 서울 동산초등학교에서 농구를 시작했습니다. 저희 형도 농구 선수를 했거든요. 형이 하는 게 재밌어 보여서 시작을 했어요. 부모님 모두 운동선수 출신인데, 근데 그게 잘못된 선택이었죠(웃음).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 학창 시절을 보내며 살았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Q. 엘리트 과정이 일반 학생들이 받는 수업 과정이랑 많이 다른가요?

선수: 수학여행을 한 번도 못 가봤어요. 방학 때는 더 힘들게 농구를 했어요. 고등학생 때부터는 수업을 거의 안 들었어요. 그래서 일반 친구들이랑 교류할 일이 많이 없었어요.

Q. 어쩌다가 본가인 서울을 떠나 경상북도 상주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니게 되었나요?

선수: 원래는 경복고를 다녔어요. 그 당시 모든 선수들이 가고 싶어 하던 학교가 경복고였어요. 제일 먼저 자유로운 분위기를 조성했거든요, 두발 자유에 유니폼도 멋있고 다 농구도 잘해서 우승하는 그런 학교. 그래서 중학생일 때 스스로 잘한다고 생각했고 코치님도 인정을 많이 해줬어요. 코치님이 꼭 그 학교를 다니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막상 적응을 못해서 상산전자고로 전학을 갔어요. 보이는 게 다가 아니었어요. 자유로운 분위기인 줄 알았는데 실상은 아니었거든요.

Q. 대학 선수를 빨리 그만둔 것으로 아는데 왜 그만두셨나요?

선수: 대학교 2학년 올라가자마자 대학 선수를 그만뒀어요. 열심히 농구만 하며 살았는데 막상 대학교에 들어가서 방황을 했기 때문에 의미가 없었다고 지금은 생각해요. 그만둔 시점이 2015년 5월이에요. 14년 11월에 다리 수술을 하고 15년 3~4월에 복귀를 했어요. 생각보다 빨리 복귀했었는데, 갑자기 동국대랑 시합하는데 저보고 중간에 뛰라고 했어요. 아직 준비가 안 돼서 저는 뛸 생각을 안 하고 있었거든요. 결국 경기에 들어가서 엄청 못했어요. 진짜 지금도 시간도 정확하게 기억해요. 1분 6초 동안 뛰었는데 그 짧은 시간 동안 에러를 2개 하고 팀 파울 때 파울을 하고 나왔어요. 그러고 느꼈죠. 그만둬야겠다.

Q. 대학 선수를 그만둔다고 하니 부모님이나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선수: 고등학생 때는 본가가 서울임에도 불구하고 지방까지 가서 학교를 다닐 만큼 엄청 열심히 했어요. 부모님도 열심히 한 것을 인정할 만큼. 그래서 항상 힘들어도 계속 농구를 했는데 그렇게 하던 애가 못하겠다고 하니깐 바로 이해를 해주셨어요. 그냥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셨어요. 친구들은 미친놈이냐고 그랬죠(웃음).

Q. 그 결정에 후회는 없으셨나요?

선수: 그때 그 결정에 후회가 됐어요. 제가 선수 생활을 할 때 김남기 감독님이 계셨어요. 군대를 갔다 와서 다시 하기로 했는데 복학을 하니 감독님이 바뀐 거예요. 명지대 선수들이 평균적으로 키가 작아요. 가드가 많은데 굳이 또 가드 복학생이 온다고 하니 불필요하게 포지션이 겹치는 바람에 그렇게 그냥 끝나버렸죠. 다시 선수 복귀 의사를 밝혔을 때 처음에는 안된다고 했어요. 몇 개월 지나서 제가 다시 물어봤죠. 그때는 다시 들어가서 선수로 등록은 안 하고 운동만 같이 했어요. 근데 발이 다시 안 좋기도 했고 분위기에 적응을 못했어요. 저는 그렇게 차이가 많이 안 난다고 생각했는데, 후배들은 저랑 나이 차이가 조금 나니까 불편했던 것 같아요.

Q. 선수 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이 뭔가요?

선수: 고등학교 다닐 때가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집은 서울인데 학교는 상주여서 타지생활을 했거든요. 그리고 운동이 엄청 힘들었어요. 거의 농구부가 아닌 육상부였어요. 같이 체력 훈련을 하는데 마라톤부보다 더 많이 뛰었어요. 그때 산 많이 갔죠. 가기 싫었는데(웃음).

▲ 인왕산을 등산하며 찍은 사진 (출처=선수 인스타그램)

Q. 제가 선수 프로필을 조사하면서 인스타를 봤는데 등산한 사진이 많았어요. 원래 산 타는 걸 좋아하나요?

선수: 지금은 그냥 요새 할 일이 없어서요. 코로나 때문에 농구할 곳은 없는데 땀은 흘리고 싶어서요. 집에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나가는 게 좋아요. 근데 산을 가면 오히려 살이 쪄요. 평소보다 더 많이 먹어요(웃음). 원래 운동을 좋아해서 헬스장도 자주 가고 한강에도 뛰러 자주 가요. 배 나온 모습을 보기 싫어서 운동을 해요.

Q. 대학 선수로 뛰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나요?

선수: 2014년에는 3X3이 완전 초창기였어요. 그때 저희가 명지대로 나가서, 중국에서 열리는 대회에 한국 대표로 출전을 했었어요. 그때가 엄청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3X3이 재밌다는 걸 알았거든요. 8강인가 대만팀에 졌어요. 중국팀들은 한국 KBL에서 뛰던 용병들이 있어서 그 팀을 이기고 싶단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웃음). 그리고 어떤 외국인 선수가 있었는데 검색을 해보니깐 살인 미수로 감옥에 갔다 온 걸로 나와서, 잘못 걸리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Q. 같은 선후배여도 결국은 프로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경쟁을 하는데 실제로 서로 많이 견제하나요?

선수: 저희 학교 농구부는 14학번까지는 한 학년당 8명, 그 후로는 6명씩 뽑았어요. 학교가 다른 학교에 비해 약체여서 그중에서 프로로 진출하는 사람은 한 학년당 1-2명밖에 안돼요. 아무래도 같은 포지션이면 선배든 후배든 시합 뛸 때 응원은 하지만 실수하면 가끔 속으로 좋아했어요(웃음).

Q. 그렇다면 엘리트 농구와 아마추어 농구의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선수: 가장 큰 차이점은 훈련 시간이랑 체계적인 운동이요. 요새 대학 훈련은 많이 효율적인 것 같아요. 같이 수업을 들어보면 10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게 바뀐 거 같아요. 트렌드 자체가 바뀌어서 그런 것 같아요. 근데 실력 자체는 동호회랑 큰 차이가 없는 거 같아요. 연습게임 가면 이기거든요. 실력으로 큰 차이가 없는데 지는 이유는 부담감에서 오는 것 같아요. 대학 선수들은 부담감을 안고 하고 저희는 지면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게임을 하니깐요.

  홍기성 선수와의 인터뷰는 2부에서 계속된다. 2부에서는 3X3 농구에서의 활약상과 후배들에게 해주는 진심 어린 조언이 담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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