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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C History] 1패 이상의 패배, 2006 준결승(vs. 일본)

박찬호가 소속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홈 구장인 펫코 파크, 벌써 3번째 한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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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가 소속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홈 구장인 펫코 파크, 벌써 3번째 한일전. 4강전을 앞둔 2006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국 국가대표팀은 정신적으로 무척 지쳐 있었다. 일본과의 질긴 인연에 선수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무엇보다 최강 불펜인 구대성이 옆구리에 담이 들어 등판이 불가능했다. 


‘일본 킬러’ 구대성의 공백은 4강전 패배의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연중 비가 내리는 날이 많지 않다는 캘리포니아, 그곳에 경기 도중 굵은 비가 쏟아졌다. 8회초 6-0으로 일본이 앞선 상황에서 내리기 시작한 비는 무려 45분간이나 경기를 중단시켰다. 마치 억울한 한국의 탈락을 슬퍼하기라도 하듯이 쏟아진 비였다.

<일본과의 준결승에 선발 등판한 서재응>

양팀 선발투수는 한국 서재응, 일본 우에하라 고지. 두 선수 모두 한일전에서는 첫 등판이었다. 한국은 1회말 이종범의 2루타로 잡은 1사 2루의 찬스를 살리지 못했고, 일본도 3회 1사 1, 2루와 3회 무사 2루의 선취득점 기회를 서재응의 호투와 한국 내야진의 그물 수비에 걸려 무산됐다.

<2루타로 선취득점 찬스를 만드는 이종범>

승부는 7회 초에 갈라졌다. 결과론적이기는 하지만, 그토록 매끄럽게 맞물려 돌아갔던 한국 투수 로테이션이 딱 한번 무너진 게 이 때였다. 한국 벤치는 잘 던지던 서재응을 6회에 교체했고, 6회를 잘 막은 왼손 전병두가 7회 선두 마쓰나카 노부히코(소프트뱅크)에게 2루타를 맞자 언더핸드스로 김병현을 투입했다.


김병현은 5번 다무라 히토시(요코하마)를 삼진으로 솎았다. 위기를 넘어가는가 싶었던 순간, 여기에서 일본 오 사다하루 감독이 승부수를 던졌다. 선발에서 빠졌던 좌타자 후쿠도메 고스케(주니치)를 이마에의 대타로 내보냈다. 김병현은 볼카운트 1-1에서 한복판 높은 공을 던졌다가 후쿠도메에게 우월 투런홈런을 맞았다.


좌완 구대성의 공백이 뼈아픈 순간이었다. 김병현은 몸에 맞는 공과 2루타를 맞고 1점을 더 내준 뒤 강판됐다. 힘이 빠진 투수들은 도미노처럼 넘어졌다. 손민한이 3피안타 1실점, 배영수도 다무라에게 솔로홈런을 맞았다. 반면 한국 타선은 일본 선발 우에하라와 야부타, 오쓰카 등 3명의 투수에게 눌려 단 4안타와 사사구 2개만을 기록하며 0-6으로 패했다.

<한국의 6번째 투수로 나선 배영수>

2라운드까지 유일하게 전승 팀이었던 한국은 주최국 미국이 만들어낸 희한한 제도에 결국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한국은 3번째 일본전이라는 마지막 고비를 극복하지 못하고, 6승1패를 기록하고도 4승3패의 일본에 결승행 티켓을 내주고 말았다. 일본은 결승전에서 아마 최강 쿠바를 10-6으로 꺾고 WBC 초대 챔피언이 됐다. 한국으로서는 두고두고 억울한 결과가 됐다.

투수 출신으로 투수 조련과 운용의 귀재인 김인식 감독과 선동열 투수코치를 비롯한 코칭스태프는 WBC에서도 투수력이 승부를 가르는 열쇠라고 판단했다. 구대성, 박찬호, 서재응, 김병현, 김선우, 봉중근 등 큰 무대 경험이 풍부한 빅리거들이 투수에 집중돼 있기도 했지만, 후쿠오카 합동훈련 때 실전 피칭을 시켜본 결과 해외파들의 컨디션과 구위가 국내파보다 더 앞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판단은 결과적으로 옳았다. 


WBC가 끝난 최종 기록에서도 한국은 참가 16개국 가운데 팀 평균자책점 2.00으로 1위에 올랐다. 7경기에서 6승 1패를 거두는 동안 63이닝을 던져 14실점, 14자책점을 허용했을 뿐이다. 반면, 팀타율은 2할4푼3리(218타수 53안타)로 10위에 그쳤다. 김인식 감독과 선동열 코치는 투수 기용과 교체에 있어서 기가 막힌 타이밍과 호흡 일치를 보여줬다. 한 박자 빠르게 투수를 바꿨고, 선코치가 건의하면 김감독은 선코치의 의견과 대부분 일치했다. 박찬호를 마무리 투수로 활용한 것도 그야말로 필승 카드가 됐다.

<(좌측부터) 당시 NFL 최고의 스타였던 하인스 워드와 김인식 감독, 박찬호>

한국은 잘 싸웠다. 김인식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는 ‘믿음의 야구’로 세간에 화제가 됐으며, 박찬호와 이승엽은 물론, 이종범, 이진영, 오승환, 박진만 등이 세계적인 레벨의 선수로 떠올랐다. WBC를 통해 한국 야구는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고, ‘세계화’의 길을 열었다.


WBC는 그다지 반갑고 즐거운 일이 없던 2006년 초봄, 온 국민을 한데로 묶어 주었다. 언론과 미디어, 국민은 WBC 대표팀의 선전에 즐거워했다. 2006년 3월 19일(한국시간) 일본과의 3번째 대결이 열린 4강전에는 서울시청 앞 광장을 비롯해 전국 방방곡곡에서 야구 대표팀의 유니폼 상징색인 파란색 물결이 넘쳐났다. 2006년의 큰 아쉬움은 3년 후 2009 WBC를 더 기대하게 만들었다.

다음 주 월요일(13일)부터는 2009 WBC 이야기가 시작되며, 오늘(10일) 오후 9시부터 JTBC3 FOX Sports에서는 2013 WBC 1라운드 대만과의 경기가 방영됩니다. 많은 시청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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