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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카 4관왕, 봉준호의 '기생충'이 영화 역사에 세운 것들

조회수 2020. 2. 15. 14: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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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상은 당연한 귀결?

2020년 2월 10일, 아카데미 시상식을 바라보는 모두가 '기생충'이 국제 영화상은 받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변은 초반부터 시작되었다. '기생충'이 각본상을 수상한 것이다. 이는 바로 전에 있었던 영국 아카데미에서 각본상을 수상한 것과 오버랩되는 일대의 사건이었다. 각본상은 한국 영화 최초의 오스카 상이었다. 예상대로 국제 영화상을 수상한 후 화면에 스쳐간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 팀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받을 건 받았고 시상식을 즐기겠다는 식의, 봉 감독 말마따나 ‘릴렉스’한 자세였다.


봉준호 감독이 감독상을 받았을 때, 오스카의 변화의 바람이 느껴졌다. 어쩌면 작품상을 받을지도 모르겠다는 예감이 뇌리를 스치고 가슴을 설레게 했다. 그리고 그렇게, '기생충'은 한국, 아니 세계 영화의 역사를 쓰는 동시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1인치 자막의 장벽을 넘어선 흥행 기록

'기생충'의 기록은 실로 놀랍다. 2월 9일 기준, '기생충'은 미국 흥행 3천5백만 달러를 넘어섰다. 프랑스와 일본에서도 각각 1천만 달러를 넘는 흥행을 기록했다. 일본은 프랑스의 기록마저 넘어선 기세다. 이처럼 '기생충'은 비평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흥행에 있어서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압도적인 면모를 보인다. 역대 한국 영화 북미 흥행 1위인 것은 물론이고 얼마 전 개봉한 영국에서도 반응이 심상치 않다.

작품성을 거론하기 이전에 흥행을 논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봉준호 감독이 골든 글로브에서 말한 것은 ‘1인치 자막의 장벽’이다. 아시아의 영화들이, 비영어 영화들이 북미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신 것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하지만 ‘1인치 자막의 장벽’을 가장 효과적으로 허문 것이 바로 '기생충'이다. 3천5백만 달러의 흥행, 단 3개관에서의 개봉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약 1천 곳이 넘는 영화관을 확보하며 달려온 '기생충'의 북미 흥행은 틀림없는 ‘주류 영화‘의 수준이다.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에 분명히 영향을 미칠 요소다.


'기생충'이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그리고 보이지 않는 차별의 차가운 빙벽마저 넘어서 흥행을 할 수 있었던 것에는 '기생충'이 지닌 흥미진진한 설정과 전개, 미학적 성취 뿐만 아닌 풍자에 그 이유가 있다. '기생충'은 계급구조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들이대고 있는 영화다.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가 섬뜩할 정도로 선명하게 대칭을 이룬다. 영화는 가족이라는 인류 공통의 최소 단위를 내세워 이를 다시 햇빛에 노출된 부자와 제한된 빛을 받는 중간계층(혹은 그렇다고 믿는), 빛을 볼 수 없는 지하 방공호의 하층민으로 구분한다. 한편 ‘지하철 냄새‘를 통해, 부자의 시선에서는 중간계층도 하층민과 마찬가지임을 표현하는 장면은, 예의와 계급의 문제가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극복해 세계와 소통을 가능하게 만드는 영상정보, 즉 ‘시네마’라는 초월적 언어의 가능성을 영화는 드러낸다.

아시아 영화 최초의 각본상

아시아 영화가 단 한 번도 수상하지 못한 상이지만 각본상의 다른 후보들을 모두 제치고 '기생충'이 수상했다. 이는 보수적인 아카데미, 특히 자막으로 영화를 보는 것을 싫어한다는 미국 영화계에서 거둔 성과이기에 더욱 빛난다. 한국영화가 아카데미에서 수상을 이룬 건 101년 역사상 처음이며, 아시아 작가가 각본상을 탄 것도 92년 오스카 역사상 '기생충'이 최초다. 외국어 영화로는 2003년 '그녀에게'의 스페인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 이후 17년 만의 수상이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가 강력한 후보였지만, 아카데미는 결국 '기생충'의 손을 들어주었다. 문자 그대로 스토리텔링의 승리다. 봉준호와 한진원이 쓴 이야기는 언어의 장벽을 넘을 힘이 있었다. 번역으로는 한국적인 맛을 살릴 수 없다거나 문화의 장벽 때문에 서양에서는 한국적인 이야기가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세간의 분석은 '기생충'의 수상 앞에 멋쩍어지고 말았다. 충분히 좋은 각본은 번역의 벽을 넘어선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예다.

감독상, 한국이 낳은 불세출의 천재감독

각본상이 아시아 최초의 오스카, 국제영화상이 따놓은 당상이었다면 감독상부터는 이변의 시작이었다. 골든 글로브와 영국 아카데미 등에서 샘 멘데스의 존재감은 엄청났다. '1917'은 그만한 자격이 있는 영화이기도 했다. 영화 전체를 하나의 롱 테이크로 연결한 촬영기법과 스크린에 표현하는 생생한 전장의 묘사는 살아 숨 쉬는 착각을 줄 정도다. 게다가 '아이리시 맨'의 마틴 스콜세지는 미국 영화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 중 하나로 꼽히는 인물이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의 쿠엔틴 타란티노 역시 강력한 후보. 거기에 '조커'의 토드 헤인즈까지 누구 하나 가벼운 인물이 없었다.


그 가운데에서 봉준호가 감독상을 수상했다. '아메리칸 뷰티'부터 작품성을 인정받고, 미국이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을 만들어낸 샘 멘데스, 전설 그 자체인 마틴 스콜세지, 봉준호가 사랑하듯, 관객들도 사랑하는 쿠엔틴 타란티노를 모두 제치고 그가 수상한 것이다. 이는 전율을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봉준호는 한국 영화계가 자랑하는 불세출의 천재 감독이다. '플란다스의 개' 이후 나온 그의 작품들, '살인의 추억'부터 '기생충'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쉽게 넘길 수 있는 작품이 없다. 그가 그려낸 작품들 즉, 2000년대 초반 최고의 작품으로 기억되는 '살인의 추억', 1천3백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형 괴수물의 새로운 지평을 연 '괴물', 일그러진 모성의 양면을 서늘하게 그려낸 '마더', 환경문제와 계급구조의 고착과 역전의 과정을 하나의 우화로 그려낸 '설국열차', 비인도적 도축업의 환경을 예로 들어 자본과 저항, 생명윤리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담아낸 '옥자'까지 살펴보면 '기생충'이 나오기까지 그가 얼마나 자유롭게 자신의 작품을 만들었는지 헤아리게 된다. 장르와 클리셰, 문법에 얽매이지 않는 천재적 재능에 ‘봉테일’이라 불리는 특유의 세밀한 집착까지 유감없이 발휘한 봉준호이기에 이와 같은 결과를 얻어낸 것이다.

한국 영화가 이렇게 인정받기 전에, 세계 영화계가 먼저 주목했던 것은 물론 일본이다. 구로사와 아키라라는 일본 역사에 길이 빛날 감독이 있었다. '라쇼몽'이나 '7인의 사무라이' 등은 한 번쯤 들어봤을 제목이다. 무수히 많은 헐리우드의 영화들이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향을 받았다. '황야의 무법자' 같은 세르지오 레오네의 스파게티 웨스턴 영화는 아예 구로사와 아키라의 '요짐보'라는 영화를 무단으로 도용한 작품이다. '스타워즈'는 물론이고 조스 웨던이 '어벤져스'를 만들 때도 구로사와 아키라의 작품을 참고했음을 밝히기도 했다. 그 대단한 구로사와 아키라조차 '란'이라는 작품으로 후보에 한 차례 오르는데 그친 것이 감독상이다.


아시아인이 감독상을 수상한 것은 이안 감독이 유일하다. 이안 감독은 '와호장룡'으로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하지 못했고 이후 '브로크백 마운틴'과 '라이프 오브 파이'로 감독상을 두 차례 수상하게 된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봉준호 감독이 감독상을 받았다. 하지만 이안과 봉준호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와호장룡' 이후 이안은 헐리우드에서 영화를 제작했다. 감독은 아시아계지만 자본과 언어는 미국의 것이다. 반면 봉준호는 한국에서 한국 배우들로 찍은 작품으로 감독상을 수상했다. 이안이 허문 감독상의 벽, 봉준호는 그곳에 또 하나의 길을 냈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던 짜릿한 반전이었다.

작품상, 당연한 귀결

하나의 편견이 있었다. '기생충'이 다 받아도 작품상의 벽은 높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그것이다. 많은 이들이 입을 모아 아카데미의 보수적인 태도를 지적했다. 즉 '기생충'의 수상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보는 시선에는 아카데미의 태도만 담겨있지, '기생충'의 작품성은 없었다. 우리가 아카데미를 바라보는 시선은 결코 순수하지 않았다.


'1917'은 좋은 작품이지만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기에는 인물들의 깊이가 부족하고 드라마가 약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특히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상이란 상은 다 쓸어가면서 과대평가 되었다는 일부의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1917'은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영화이지만 분명 약점도 지닌 작품이다.

또 다른 경쟁작인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아카데미에 투표하는 회원들이 50대 60대가 주류라는 장점을 지니고, 또 쿠엔틴 타란티노의 애상적 영화라는 특징을 지녔지만 여름에 개봉했다는 점과 작품성의 측면에서 '아이리시 맨'이나 '기생충'보다는 낮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아이리시 맨'은 위대한 마틴 스콜세지의 작품답게 탄탄한 완성도를 자랑하지만 넷플릭스 영화라는 태생적 한계를 안은 작품이기도 하다. 지난 제 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도 같은 이유로 작품상을 받지 못했다.


반면 '기생충'은 분명한 약점이라 생각했던 ‘언어의 벽’을 제외하고는 작품성으로 흠잡을 데가 없다. 평론가들은 입을 모아 칭찬했고, 메타 크리틱, 로튼 토마토, iMdb 등에서 1위를 달렸다. 언급한 평점 사이트들의 공신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감안해도 평단의 분위기는 '기생충'의 수상이 이변인 것이 아니라 다른 작품이 수상하면 이변이라 할 정도였다. 만약 '기생충'이 영어로 된 작품이었다면 이런 논란은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결국 오스카는 '기생충'의 승리로 끝났다. 작품 자체의 완성도를 생각하면 이상하지 않은 결말이다. 이것은 결코 이변이 아니다. 가장 훌륭한 작품이 승리한, 당연한 귀결일 뿐이다.

역사를 바꾼 봉준호 vs. 변화된 오스카

너무나 많은 역사가 바뀌었다. 최초로 아시아 영화가 작품상을 받았고, 외국어 영화 중에서도 최초의 사례다. 국제영화상과 작품상을 동시에 받은 것도 '기생충'이 유일하다. 게다가 하루에 트로피를 네 번 들어 올린 사람은 1954년 월트 디즈니 이후 처음이라고 한다. 월트 디즈니는 각각 4개의 다른 작품으로 받았다.


우리는 경사를 맞이했다. '기생충'의 위대한 승리를 기념하는 글과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기생충'의 수상으로 가장 크게 기뻐하는 것은 아마 오스카 그 자체일 것이다. 오스카는 언제나 같은 비난을 받아왔다. 보수적이고 외국어 영화를 인정하지 않는 편협한 태도를 보인다는 식의 비판이 그것이다. 봉준호 감독도 아카데미 시상식을 일컬어 ‘로컬’이라 일축했을 정도로, 오스카에 대한 인식은 최악에 가까웠다.

그렇기에 오스카는 간절히 '기생충'을 원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한국 영화가 아카데미에서 작품상을 받는 꿈을 꾸었지만, 오스카는 언젠가 '기생충'과 같은 작품이 나타나 보수적이고 외국에 배타적이라는 지긋지긋한 낙인을 지워주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오스카는 이날, '기생충'의 손을 잡았고, 이로 인해 오스카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봉준호 감독은 트로피를 품에 안으며 꿈을 실현했다. 그리고 오스카는 '기생충'을 품에 안으며 동시에 세계를 품을 수 있게 되었다. '기생충'과 오스카는 서로의 손을 잡고 세계를 향한 문을 열어젖힌 것이다.

Editor Soobi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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