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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뉘르부르크링을 달린 드라이버의 심경은 어땠을까?

자동차로 오랜 시간을 달리는 내구레이스는 인간과 자동차가 호흡을 맞춰 한계에 도전하는 마라톤이나 다름없다. 올해 뉘르부르크링 24시 내구레이스에 도전한 강병휘 드라이버를 통해 그 뜨거운 기록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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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모터스포츠 대회 챔피언 출신으로 지난 2016년부터 4년 연속 뉘르부르크링 24시 내구레이스에 출전한 강병휘 드라이버. 그는 2018년 i30 N TCR을 타고 현대팀 소속으로 처음 출전해 성공적으로 완주한 바 있다. 올해는 양산 모델인 i30 패스트백 N을 타고 대회에 참가해 24시간 내구레이스의 생생한 현장을 직접 겪었다. 밤새 뉘르부르크링을 달리는 드라이버의 심경은 어땠을까? 강병휘 드라이버에게 뜨거웠던 24시간의 참전 기록을 들었다.


네 번째 도전, 24시간 내구레이스의 문을 다시 두드리다

2019 뉘르부르크링 24시 내구레이스 V2T 양산차 클래스에 출전한 i30 패스트백 N

올해의 뉘르부르크링 24시 내구레이스는 평소보다 한 달 느린 6월 20일부터 23일까지 열렸다. 원래 5월 중하순에 열리던 대회 일정이 바뀐 이유는 비 때문이다. 5월 중순은 뉘르부르크 지역에 비가 많이 오는 시기라 매년 참가팀과 드라이버들의 개선 요구가 빗발쳤고 일정을 옮긴 것이다. 이로써 빗방울은 좀 덜 맞았을지 모르겠지만, 예년보다 부쩍 오른 기온이 레이스카와 드라이버를 괴롭혔다. 

뉘르부르크링 24시 내구레이스 본선 전에 열리는 퀄리-레이스를 통해 i30 패스트백 N의 성능을 살펴볼 수 있었다

뉘르부르크링 경기장은 여러 가지 형태로 변형해 대회를 운영한다. 독일 F1을 개최하는 5km 길이의 그랑프리 상설 서킷이 있고, 아이펠 산맥을 휘감고 돌아오는 20km짜리 북쪽 코스(노르트슐라이페)가 있다. 두 곳을 연결한 트랙 구성도 가능한데, 24시간 내구레이스의 경우 가장 긴 코스로 조합해 한 랩의 주행 거리가 25.3km에 이른다. 24시간 내구레이스를 위해 지구에서 가장 긴 코스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평소에는 24시간 내구레이스용 코스를 달려볼 기회가 없으니, 미리 연습 주행을 할 기회도 마땅치 않다. 


그래서 뉘르부르크링 24시 내구레이스 본선 경기를 약 한 달 앞두고 동일한 코스에서 달려볼 수 있는 '퀄리피케이션 레이스(선수들은 이를 줄여 퀄리-레이스라고 부른다)'를 개최한다. 참가팀과 선수들을 위한 공식 연습 주행인 셈이다. 퀄리-레이스는 6시간 내구레이스 형태로 열리며, 공식 연습과 예선, 결승으로 구분되기에 24시간 본선의 사전 시뮬레이션을 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특히 올해 내가 속한 '현대 팀 엥슬러'의 경우, 출시된 지 얼마 안 된 i30 패스트백 N 양산 모델로 도전했기 때문에 5월 19일에 열린 퀄리-레이스를 통해 최대한 많은 데이터를 확보하는 게 중요했다.


현대 팀 엥슬러의 드라이버 라인업. 왼쪽부터 프란츠 엥슬러, 루카 엥슬러, 기도 나우만, 강병휘 드라이버

현대 팀 엥슬러의 드라이버 라인업은 올해 초부터 구성되기 시작했으며, 엥슬러 부자(프란츠 엥슬러는 루카 엥슬러의 아버지이다)와 기도 나우만, 그리고 나까지 4명으로 이뤄졌다. 뉘르부르크링 24시간 내구레이스는 험난한 코스의 특성상 4명의 드라이버가 체력을 안배해 번갈아 타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3명이 한 팀을 이룰 수도 있지만, 그러면 한 명의 드라이버가 감당해야 하는 체력 부담은 더 커진다. 


기도 나우만 선수는 독일 자동차 저널리스트이자, 벌써 10번째 뉘르부르크링 24시간 내구레이스에 출전하는 베테랑이다. 그는 작년에도 현대모터스포츠 N팀에서 i30 N TCR을 타고 함께 호흡을 맞춘 경험이 있다. 


다른 2명의 독일 드라이버는 프란츠 엥슬러와 루카 엥슬러 부자. 프란츠는 투어링카의 거장이다. DTM(Deutsche Tourenwagen Masters, 독일 투어링카 마스터즈)과 WTCR의 전신인 WTCC(World Touring Car Championship, 월드 투어링카 챔피언십)까지 섭렵한 그는 50대 후반이지만, 놀랄 만큼 빠른 드라이버다. 푸근한 동네 아저씨처럼 보이는 온화한 인상과 대비되는 매서운 실력을 가지고 있어 더 놀랍다.


4명의 드라이버가 i30 패스트백 N을 번갈아 운전하며 뉘르부르크링을 공략한다

루카 엥슬러는 19세의 앳된 드라이버지만, 이미 지난해 TCR 아시아 챔피언에 오른 슈퍼 루키이며 올해도 TCR 아시아 시리즈에서 부동의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나는 몇 개월 전, 말레이시아 세팡 서킷에서 열린 TCR 말레이시아에서 루카와 맞붙은 적이 있다. 가까이에서 관찰한 그의 주행 스타일은 혈기왕성한 나이를 증명하듯 그야말로 거침없었다. 결국 루카가 1위, 내가 2위로 포디엄에 함께 올랐다. 어제의 라이벌이 오늘의 동료가 된 셈이다. 


퀄리-레이스를 앞두고 4명의 드라이버가 뉘르부르크링에 모였다. 모두 경주차 안팎을 꼼꼼히 살피고 시트 포지션을 맞춰보며 일정을 시작했다. 서로 다른 체형의 드라이버들이 팀을 이루면 그 누구에게도 이상적인 시트 포지션을 맞출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지만, 4명 모두 체구가 비슷해 다행이었다. 


튜닝카 클래스에 출전하는 레이스카에는 대체로 커다란 리어 윙이 달리고, 변속하기 편한 시퀀셜 변속기가 장착된다

뉘르부르크링 24시간 내구레이스는 크게 보면 양산차 클래스와 튜닝카 클래스로 나뉜다. 양산차 클래스는 양산차의 성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레이스를 위한 최소한의 튜닝만 진행한다. 야간 주행을 위한 추가 조명 작업도 곁들인다. 튜닝카 클래스는 레이스를 위해 상당 부분의 튜닝이 허용된다. 외관상 뒤쪽에 높게 솟은 리어 윙의 유무로 클래스를 구별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TCR 클래스에 집중하다 오랜만에 양산차 클래스로 복귀한 터라 걱정이 많았다. 레이스카는 상위 클래스로 갈수록 다루기 편해진다. 경주차의 포용력과 성능이 높아지는 덕분에 드라이버가 챙겨야 할 부분이 줄어들고 온전히 레이스에 집중할 수 있어서다. 반면에 양산차는 뉘르부르크링의 울퉁불퉁한 노면을 놓치지 않기 위해 차의 작은 부분 하나까지 끊임없이 조종해야 한다. 공력 성능이 더 높아지는 것도 아니고 클러치를 밟으며 변속해야 하기에 드라이버의 움직임이 훨씬 바빠진다. 작년에 탄 i30 N TCR과 올해 타게 된 i30 패스트백 N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대회 결승 전에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견되면 그나마 다행이다. 24시간 동안 달리려면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6시간 내구레이스의 결승은 루카, 기도, 프란츠, 나, 그리고 다시 기도와 내 순서로 진행됐다. 퀄리-레이스의 목표는 경주차의 성능 및 주행 중 드러나는 문제점을 파악하는 것이다. 결승이 순조롭게 진행되는가 싶더니, 두 번째 주자인 기도가 달리던 중 피트 입구를 약 1km 남겨둔 지점에서 갑자기 멈췄다. 차량을 급히 견인해 점검해보니 연료가 바닥나 있었다. 연료탱크 밸브 불량으로 직전 주유 때 연료가 제대로 들어가지 않은 것이다. 대회 주최 측에서 똑같이 공급하는 부품인데 운이 나빴다. 경기 중에는 손상된 밸브를 교체할 수 없기에, 피트인 전략을 수정해 마저 달리기로 했다. 


그래도 24시간 내구레이스 본선 전에 교체할 수 있는 시간이 있으니 불행 중 다행이었다. 나는 6시간 중 2시간 30분 정도를 주행해 결승선을 통과했다. 양산차 그대로의 파워트레인으로 달렸는데 내구성에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희망을 얻었다. 



그린 헬, 인간의 용기와 기계의 한계가 만나는 곳

뉘르부르크링 24시간 내구레이스가 개최될 때면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인파가 경기장을 찾는다

마침내 24시간 내구레이스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시차 적응 및 컨디션 조절을 위해 결승 5일 전 독일에 도착해 몸풀기에 들어간다. 이미 화요일부터 관람 인파로 경기장 주변이 빼곡하게 찬 모습이다. 거주 인구가 200명이 채 안 되는 뉘르부르크 지역에 2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리는 모습은 경이로울 정도다. i30 패스트백 N을 살펴보니 지난 퀄리-레이스 때 보이지 않았던 N 버튼이 스티어링 휠에 새로 생겼다. 무더운 운전석에서 몇 시간을 버텨야 하는 드라이버의 탈수 증상을 막아줄 식수 공급 장치도 더해졌다. 


6월 19일 수요일에는 드라이버 장비 검사 및 선수 등록 절차를 마쳤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500명 이상의 드라이버들이 2019 뉘르부르크링 24시 내구레이스에 출사표를 던졌다. 다음날 오전, 공식 연습을 시작으로 마지막 점검 기회가 생겼지만, 안타깝게도 단 한 번밖에 없는 연습 주행에서 차를 타보지 못했다. 네 번째 주자로 배정됐는데, 다른 차가 사고를 일으키며 적색기가 발령돼 나머지 연습 주행 세션이 모두 취소됐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연습 주행이 아닌 1차 예선에서 한 달 만에 차를 타보는 상황이 됐다. 

뉘르부르크링에서는 예측할 수 없는 날씨 탓에 크고 작은 사고가 빈번히 일어난다. i30 패스트백 N은 1차 예선 때 큰 사고를 당했지만, 밤새 수리해 2차 예선에서 클래스 1위를 달성했다

비가 내렸는지 마른 노면과 젖은 곳이 섞여 있고, 예상보다 공기가 차가워 뒤 타이어의 워밍업이 유독 늦은 것 같았다. 노르트슐라이페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코너에 진입해야 하는 슈베덴크로이츠 코너의 언덕을 넘자마자 눈앞에 젖은 노면이 펼쳐졌다. 순간 빙판 위를 미끄러지듯 반시계방향으로 크게 스핀했다. 차 뒤쪽이 오른쪽 펜스에 강하게 부딪힌 후 반대쪽 펜스에 다시 부딪히고, 그러고도 200m를 넘게 미끄러진 뒤에야 가까스로 멈췄다. 절망적이었다. 순식간에 드라이버를 집어삼키는 녹색 지옥의 공포를 새삼 깨달았다. 


200km/h에 가까운 속도로 달리다 스핀했기에 다시 예선에 복귀할 수 있을지 파악하기 어려웠다. 팀에 사고 소식을 무전으로 알리고 차에서 내린 뒤 다가온 구급차에 몸을 실었다. 다행히 크게 다친 곳은 없었지만, 팀 미캐닉들이 분주해졌다. 국적도 서로 다른 여러 팀원들이 팀워크로 똘똘 뭉쳐 밤을 새우고 아침이 될 때까지 차량을 수리했다. 미안함과 고마운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현대 팀 엥슬러의 매니저 안드레아스 클링지는 “뉘르부르크링에 있는 현대차 테스트센터와 뤼셀스하임에 있는 현대차 유럽기술연구소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라고 말했다. 금요일 오후 2차 예선이 시작되기 2시간 전에야 비로소 수리가 끝났다. 우리 팀은 다시 좋은 페이스를 찾았고, 결국 클래스 1위에 오르며 기적 같은 하루를 보냈다. 그야말로 지옥과 천국을 오가는 롤러코스터가 따로 없었다.

i30 패스트백 N은 결승 초반 5시간 동안 선두권을 유지하며 순조롭게 경기를 풀어나갔다

24시간 내구레이스 결승은 토요일 오후 3시 30분에 시작해 일요일 오후 3시 30분 이후 결승선을 통과하면 끝난다. 처음 2시간은 클래스 1, 2위를 오가면서 여유 있게 선두권을 유지했다. 더 빠른 클래스의 경주차도 20대 이상 추월하며 순위를 끌어올렸다. 출발 주자로 나선 루카가 기도에게 운전대를 넘겼고, 다시 내가 넘겨받아 저녁 주행을 맡았다. 이후 프란츠가 네 번째 주행을 시작했다. 


결승이 시작되고 7시간이 지났을 때, 프란츠가 다급하게 피트로 돌아왔다. 자동차 내부 CAN(Controller Area Network) 통신망에 오류가 발생, 새로 설치한 레이스 디스플레이가 먹통이라고 했다. 네 바퀴에 제동력을 분배하는 비율도 바뀐 탓에 코너로 진입할 때 균형을 잡기조차 어렵다고 했다. 주행을 강행할 수도 있었지만, 차량 상태를 알려주는 각종 게이지가 작동하지 않아 수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원인을 찾기 어려운 전장 부품에 문제가 생겼다. 팀 엔지니어들이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섰다

레이스 엔지니어가 차량 상태를 파악하는 스캐너와 점검 기기를 들고 차량 내부의 모든 전선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니 다른 팀에서도 크고 작은 문제들을 해결하려 피트에서 수리하는 모습이 늘어났다. 사실 24시 내구레이스를 치르는 동안 아무런 문제 없이 완벽하게 주행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문제를 얼마나 빨리 해결하고 끝까지 달릴 수 있는지 겨루는 것도 내구레이스의 일부다. 


다시 지옥으로 떨어진 기분이었다. 차라리 기계적인 손상이라면 원인을 빨리 파악할 텐데, 눈에 보이지 않는 전장 문제로 예상보다 수리 시간이 길어졌다. N을 응원하기 위해 모인 수많은 팬들 앞에서 이렇게 포기하게 되는 건 아닌지 불안함이 밀려온다.

다시 달리기 시작한 i30 패스트백 N.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온 열정을 다해 달렸다

긴 밤이 끝나가기 전, 4시간 30분 만에 피트에서 i30 패스트백 N의 우렁찬 엔진 소리가 울려 퍼졌다. 쪽잠도 못 잔 동료들과 악수를 나누며 새로운 용기와 각오를 품고 차에 올랐다. 저 멀리 동이 터오고 우리 팀 드라이버들은 각자 베스트랩을 연거푸 갱신하며 페이스를 올렸다. 내가 프란츠의 기록을 조금 앞당기면, 루카가 다시 앞당기는 식이다. 경기 후반 8시간은 계속해서 다른 차를 추월해 나갔다. 하지만 이미 많이 뒤처진 랩을 만회하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24시 내구레이스가 끝나고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 N을 응원하는 팬들의 격려에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흘렀다

일요일 오후 3시, 나의 네 번째 주행이 끝나고 프란츠에게 마지막으로 운전대를 넘겼다. 30분 뒤 우리의 i30 패스트백 N이 V2T 양산차 클래스 3위, 전체 97위로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N 로고가 선명하게 새겨진 깃발을 흔들어주는 수백 명의 인파, 혹독한 24시간을 묵묵히 견디고 완주에 성공해준 i30 패스트백 N, 지난 나흘간 잠 한숨 제대로 자지 못한 팀원들이 표정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뉘르부르크링 24시 내구레이스에 참여한 지난 4년 간, 독일에서 N의 위상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이제 유럽의 수많은 프로 드라이버가 현대팀에 들어오고 싶어 한다. 관람객들은 N 재킷과 모자를 자랑스레 구입하고, 일반 도로에서 N 오너들끼리 마주칠 때마다 반갑다며 손을 흔든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 속에서, 우리가 순수하게 좋아할 수 있는 새로운 브랜드가 영글고 있다.

글. 강병휘

필자는 포르쉐 인스트럭터 및 PR 담당, FCA 상품 기획 트레이닝 매니저를 거쳐 현재 프리랜서 자동차 칼럼니스트로 활약하고 있다. 모터스포츠 경력도 다채롭다. 2013년에 국내 KSF 제네시스 쿠페 시즌 챔피언을 지냈으며, 2018년 TCR 코리아 챔피언, 2019년 TCR 말레이시아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2016년부터 4년째 뉘르부르크링 24시 내구레이스에 참가해 4년 연속 완주했다.




◆ 이 칼럼은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이며, HMG 저널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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