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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스텔라를 타고 세계 일주를 꿈꾸는 남자

타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타투이스트 이랑의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그는 지금 30년 넘은 현대 스텔라를 타고 세계를 유랑할 꿈을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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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이 넘는 세월을 뛰어넘어 2019년의 빌딩 숲을 달리는 스텔라

1983년에 등장한 스텔라는 현대차가 독자 개발한 최초의 국산 중형 세단이다. 포니의 뒤를 잇는 두 번째 국산차 스텔라 역시 세계적인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빚은 클래식한 외모로 눈길을 끌었다. 스텔라의 등장으로 국내 중형차 시장은 빠르게 성장했고, 이후 국민 중형 세단으로 발돋움한 쏘나타의 밑바탕이 되었다. 그런데 출시된 지 30년이 넘은 스텔라를 타고 세계 일주를 계획 중인 오너가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올드카로 세계 일주라니, 무모한 도전이 아닐까?' 



한때 맨몸으로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과 동숭동 대학로에서 길거리 타투 퍼포먼스를 벌이며 타투 합법화 및 대중화 운동을 펼쳤던 유명 타투이스트 이랑. 타투를 주제로 한 영화를 만들고 직접 출연하기까지 했던 그가 어째서 타투를 그만두고 세계 일주를 준비 중인 여행가로 변신한 걸까? 그를 직접 만나 얘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1989년식 스텔라 GXL의 오너 이랑. 그는 스텔라와 함께 세계 일주를 떠날 준비에 한창이다

1989년식 스텔라를 타고 있는 이랑과 함께 도로 위로 나섰을 때, 새빨간 스텔라에 쏟아지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나이 지긋한 이들은 추억이 가득한 눈길로 이랑의 스텔라를 구석구석 훑어봤다. 스텔라가 1988 서울 올림픽의 공식 차량으로 활약했던 걸 아는 이들은 아련한 향수에 젖었을 것이다. 그는 이런 추억 속의 차를 타고 세계 여행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타투이스트로 치열하게 살았던 30대를 뒤로하고,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던 사진가의 꿈을 펼쳐 보기로 했어요. 세계 일주를 계획한 건, 마흔이라는 나이에 어디에서 사진 정규 교육을 배우는 것보다는 세계를 자유롭게 경험하면서 몸으로 직접 부딪치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에요. 나를 가두고 있는 틀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올 필요가 있었어요.” 



누구나 한 번쯤 세계 일주를 꿈꾼다. 하지만 대부분이 시작도 하지 못하고 좌절하곤 한다. 일상 바깥으로, 나를 둘러싼 울타리 밖으로 넘어가는 일은 그만큼 어렵다. 이랑은 그 어려운 일을 시작하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궁금해진다. 좀 더 편하고 성능 좋은 차가 숱하게 많은데, 30년도 더 된 올드카를 타고 세계 일주를 떠나려는 이유는 뭘까?



“지금까지 국산·수입차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차를 경험했어요. 작고 재미있는 차, 넓고 편안한 차를 타보면서 자동차마다 알맞은 용도와 성격이 있다는 걸 알게 됐죠. 그런데 차의 한계를 오너가 멋대로 규정해버리는 건 너무 재미없지 않나요? 30년 넘은 올드카라고 해서 세계를 마음껏 돌아다니지 못할 거라는 생각도 일종의 편견이에요. 이미 해외에는 수십 년 된 올드카로 세계 곳곳을 누비는 여행가들이 더러 있거든요.”

1.5ℓ 카뷰레터 엔진을 품은 스텔라가 열정적으로 달린다. 지붕 위의 'TRAVEL' 표시등 때문에 간혹 택시로 오인하는 취객도 있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새로운 자신을 찾기 위해 떠나는 여행인데, 틀에 박힌 편견 따위는 과감히 부숴야 한다. 하지만 올드카 중에도 꼭 스텔라여야 했던 이유는 뭘까? 



“30년 전 아버지의 첫차가 현대 포니였어요. 제가 중학생 시절이었는데, 경기도 구석 시골 마을에 자동차가 들어오니 사람들이 죄다 몰려나와 차를 구경하고 부러워했죠. 저 역시 우리 가족의 첫차를 많이 아끼고 사랑해줬고요. 그 추억 때문에 포니를 사려 했는데, 상태 좋은 매물을 구하는 게 말처럼 쉽지 않았어요. 그때 갑자기 스텔라가 눈 앞에 나타난 거죠.”



그의 눈앞에 나타난 건 각종 옵션이 들어간 고급 버전의 스텔라 GXL. 스텔라는 생각도 해본 적 없는데, 눈 앞에 나타난 스텔라를 보고서는 한눈에 반해버렸다. 포니보다 힘이 좋은 1.5ℓ 엔진에 후륜구동이라는 것도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매료되듯 순식간에 스텔라를 데리고 왔다. 딱 2년 전의 일이다. 순간적인 결정이었지만, 지금은 그 선택에 너무 만족하고 있다고 한다.

30년 세월이 고스란히 스며 있는 클래식한 인테리어. 당시엔 이 차가 고급형 스텔라였다

이랑의 얘기를 듣고 스텔라를 다시 봤다. 새로 도색한 외장 컬러와 13인치 순정 휠은 지금 봐도 예쁠 만큼 매력적이다. 차를 아끼는 오너의 진심이 묻어났다. 



“클래식한 스타일, 예리하게 꺾인 강인한 라인이 정말 멋지지 않나요? 스텔라 역시 포니를 디자인한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외관을 빚었다고 들었어요. 게다가 포니의 뒤를 이어 현대차가 선보인 두 번째 독자 개발 모델이잖아요. 이 차를 처음 본 순간, 포니를 대체할 만한 차로 적격이라고 생각했어요.”



문을 열자 색이 바래 은은한 남색 내장재와 회색 직물 시트가 어우러진 모습이 드러났다. 숨길 수 없는 세월의 흔적이 드러나긴 했지만, 기품이 있었다. 이 차는 1989년식 스텔라 GXL, 당시엔 고급 버전에 속하는 모델이었다. 대시보드를 가로지르는 우드 그레인과 그 가운데 콕 박힌 전자 시계, 전동식 윈도 스위치, 냉·난방 공조 장치와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 등 꼭 필요한 옵션은 다 갖추고 있다.

4단 수동변속기가 주를 이루던 그 시절, 5단 수동변속기는 운전의 재미와 연비를 높여주는 훌륭한 옵션이었다

이랑은 이 차의 또 다른 매력이 5단 수동변속기라고 말한다. 2000년대에 등장한 자동차 중에도 5단 수동변속기가 달린 차가 제법 많았으니, 스텔라가 나온 80년대 후반을 생각하면 훌륭한 옵션 중 하나였던 건 틀림없다. 



“스텔라 초기형 모델의 변속기는 4단 수동과 3단 자동 두 가지였어요. 5단 수동변속기는 나중에 추가됐는데, 이것도 나름 고급 옵션이에요. 직접 기어를 바꾸는 손맛에 묵직한 논파워 스티어링 휠이 어울리면서 후륜구동 모델 특유의 경쾌한 움직임을 만끽할 수 있죠. 기어가 한 단 더 있으니 연비도 좀 더 좋아지고요. 세계 일주를 떠나면 수만 km를 달려야 하는데, 주유비 부담이 좀 덜하지 않을까요?”

최고 94마력을 발휘하는 스텔라의 1.5ℓ 엔진은 30년 세월이 무색할 만큼 훌륭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사실, 이랑이 장거리 여행을 떠날 거라고 자신 있게 말할 때, 내심 엔진에 대한 걱정부터 들었다. 여러 대륙과 기후를 넘나드는 혹독한 여정을 30년 된 엔진이 감당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세계 일주 도중에 엔진이 고장이라도 나면 어떻게 고쳐야 할지 막막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이랑은 엔진에 대한 자랑을 늘어놨다. 



“2년 전 이 차를 처음 가져왔을 때 차량의 상태를 점검해보려고 전국 곳곳을 돌아다녔어요. 폭염이 한창일 때 강원도의 굽이진 산길을 달리기도 했죠. 그런데 정말 멀쩡하더라고요. 특히, 엔진 상태는 걱정 안 해도 될 만큼 좋았어요. 그래도 혹시 몰라서 카뷰레터 엔진 전문 수리점으로 소문난 정비소를 찾아가 점검 받았는데, 상태가 좋으니 걱정 말라고 했어요. 평소에도 단골 정비소를 자주 들르며 꾸준히 관리하는 데다, 온라인 동호회와 곳곳의 부품 대리점을 통해 장거리 여행에 필요한 부품을 구하고 있어요. 세계 일주를 떠날 때 차량 상태를 100%로 만들 거라 가정하면, 지금은 70% 수준까지 컨디션이 올라왔어요.”

누적 주행 거리 11만8,000km를 갓 넘긴 스텔라의 계기판. 30년 세월이 무색해 보인다

30년 된 엔진이 여전히 쌩쌩한 이유는 뭘까? 이 차를 거쳐간 주인들의 애정 어린 손길이 있었겠지만, 연식에 비해 누적 주행 거리가 짧은 것도 어느 정도 영향이 있을 거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처음 데려온 뒤로 꾸준히 관리해주긴 했지만, 뭐에 홀린 듯 덥석 데려온 스텔라의 상태가 이리 좋을 줄 몰랐어요. 나름 운이 좋았던 거죠. 지금은 전국 여행을 준비 중인데, 내년 4월에 떠날 세계 일주를 대비한 예행연습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세계 곳곳의 길을 박차고 달리게 될 스텔라의 13인치 순정 스틸 휠

사실 이랑이 걱정하고 있는 부분은 엔진이 아니라 타이어다. 장거리 여행을 떠나려면 성능 좋은 타이어가 필요하지만, 13인치 순정 휠에 맞는 고성능 타이어는 구하기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다. 



“아무래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닐 생각이라, 특정 지역의 노면 상황이 어떨지 예측하는 데 한계가 있어요. 배를 타고 블라디보스톡으로 가서 동유럽까지 달리는 거리만 거의 1만 km에 달하거든요. 특히 러시아는 도로 상태가 안 좋대요. 길이 얼었다 녹길 반복하니까요. 물론 그 뒤로 또 어떤 길을 달리게 될 지 알 수 없죠. 타이어뿐 아니라 서스펜션과 차체, 구동계 곳곳에 부담이 크겠지만, 그렇다고 순정 휠과 서스펜션을 포기하고 다른 부품으로 바꾸는 건 저 스스로 용납이 안돼요. 스텔라가 처음 나온 온전한 상태 그대로 세계 일주에 도전하는 것이 진정한 도전이고 가치 있는 일 아닐까요?”


2020년 4월 스텔라와 함께 세계 일주를 떠날 예정인 이랑. 그의 도전이 멈추지 않길 응원한다

“저는 언제나 도전하는 마음으로 살아왔어요.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게 두렵지 않아요. 현대그룹의 창업주 故 정주영 명예회장도 늘 '해보긴 해봤어?'라고 말씀하셨잖아요. 이 말을 처음 듣는 순간 제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치열하게 살아왔어요. 올드카로 세계 일주에 도전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하지만, 아무도 안 해봤잖아요? 제가 그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게는 새로운 인생의 전기를 맞이하는 순간이 될 것 같고요.”



불혹의 나이에 가진 세계 일주의 꿈. 이랑은 세계를 유랑하며 마주하는 풍경과 인연을 사진으로 기록할 생각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 5년이 넘도록 준비했으며, 앞으로 1년 뒤 그의 새로운 도전이 펼쳐질 예정이다.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그의 앞날이 밝게 빛나길 응원한다. 




사진. 박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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