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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터스포츠에 대한 투자,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무형의 가치

현대자동차는 몇 년 전부터 모터스포츠에 적극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모터스포츠에 대한 투자로 현대자동차는 무엇을 얻었을까. / 글 황욱익(자동차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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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업계에서 모터스포츠를 보는 시각은 두 가지다. 판매량 증대를 위한 마케팅 수단이냐 혹은 기술 개발과 경쟁을 통한 우위 점령이냐. 21세기에 들어오면서 모터스포츠의 인기는 예전만 못 한 것이 사실이다. 자동차들은 점점 전자제품화 되었고 친환경이라는 테마가 대두되면서 모터스포츠를 소모적이고 무모한 것으로 치부하는 시각도 생겨났다. 그렇지만 기술 경쟁 혹은 협회가 정한 (아주 빡빡한) 규정에 맞춰 경쟁해야 하는 룰의 존재는 여전히 자동차 회사들을 뭔가 불끈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현대자동차도 마찬가지다. 규모나 역사를 봤을 때 다른 자동차 메이커에 비해 늦은 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현대자동차가 빠르게 변하는 21세기 모터스포츠 무대에서 가장 잘 적응하고,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브랜드라는 점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생각보다 파장이 컸던 결실

올해 초 굉장히 뜻밖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유럽에서 진행된 TCR 비공개 테스트에 참가했던 현대의 i30 N TCR에 대한 소식이었다. 이 테스트는 WTCR 인터내셔널 시리즈 개막전 직전에 진행되었는데 WTCR에 출전하게 될 모든 자동차 메이커의 경주차가 참가했다. 테스트에 참가했던 지인은 ‘올해는 현대자동차가 TCR에서 가장 경쟁력이 높을 것이다. 다른 자동차 메이커들에 비해 출력이나 밸런스 어느 한 곳 부족한 것이 없다. 만약 내가 팀을 운영하게 된다면 현대자동차를 선택할 것이다’라고 전해 왔다. 처음에는 그냥 웃어 넘겼지만, 이런 내용은 점점 구체화되기 시작한다.

지난 4월 7일 WTCR 인터내셔널 시리즈 모로코 개막전 우승을 시작으로 4월 29일에 열렸던 2라운드 헝가리 레이스3에서 현대 i30 N TRC은 포디엄의 1위부터 3위까지 모두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올해는 WTCR이 출범한 첫해라 그 의미가 더욱 값지다고 할 수 있다. 모터스포츠의 본고장인 유럽의 관련 매체들은 현대자동차의 i30 N TCR에 대해 대서특필했고, 여러 매거진의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나 역시 중계를 보면서 굉장히 감격스러웠다. 실제로 경기 중계 내내 가장 많이 화면에 잡힌 것도 현대자동차 i30 N TCR이었다. 현대자동차가 개발한 경주차끼리 선두 경쟁을 벌이는 모습이라니. 이런 모습을 내 생애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성과는 오래가지 못했다. i30 N TCR이 다른 경주차와 비교해 압도적인 성능 차이가 있음을 확인한 주최측이 BOP(Balance Of Performance) 규정을 강화시켰기 때문이다. BOP 규정은 레이스에 출전한 차량들의 성능을 제한하는 것으로 더 치열한 승부를 만들기 위해 사용된다. 주로 엔진 출력이나 무게 등에 불이익을 주는 식이다. 예컨대 190마력으로 BOP를 조정하면 200마력을 낼 수 있는 차라 해도 190마력에 맞춰야 하는 것이다. 현대자동차로써는 안타까운 일이었다. 잘 만든 차의 성능을 애써 낮춰야 했으니까. 

기존의 성적이나 남은 시리즈 운영을 놓고 보면 안타까웠지만, 이 사건은 역설적으로 모터스포츠 무대에서 현대자동차가 단순한 강자가 아닌 리딩 브랜드로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 오랜 전통을 가진 자동차 메이커들과의 경쟁에서 압도적인 성능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유럽의 한복판에서 일어난 사건이라 더욱 파장은 컸다. i30 N TCR의 포디엄 싹쓸이는 국제 모터스포츠 업계에서 그야말로 충격적인 사건이 되어 버렸다. 이 사건을 계기로 현대자동차는 가격 대비 성능비가 좋은 차를 만드는 회사가 아닌, 훌륭한 고성능 차를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을 가진 회사로 입지를 다지게 된다.


WRC 최강자 자리를 놓고 겨루다

이번에는 WRC로 무대를 잠깐 옮겨보자. WRC는 양산차를 기반으로 만든 경주차들이 경쟁하는 레이스다. 비포장 도로를 달리며 기록을 경쟁하는 방식인데 태초 모터스포츠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유럽에서 WRC의 위치는 모터스포츠 카테고리 중 가장 상위에 있다. F1이 완전 경주용으로 만들어진 머신이 서킷에서 겨루는 것으로 국한되는데 반해 WRC는 양산차를 기반으로 만든 경주차가 험난한 비포장 도로를 달리면서 경쟁한다. 모든 레이스에서 가장 중요한 건 경주차의 성능이지만, WRC는 험로를 달리는 만큼 내구성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유럽에서는 ‘주말 WRC 경기 결과에 따라 다음 주 자동차 판매량이 변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현대자동차의 WRC 도전은 무려 199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식적인 기록은 1998년이지만 그 이전에도 현대자동차는 포니와 스쿠프 등을 통해 다양한 모터스포츠 무대에서 활동했었다(물론 대부분은 현대자동차가 직접 운영하는 팀이 아닌 별도의 레이싱팀이나 개인 자격의 참가였다). 1999년에 WRC의 하위 클래스인 2리터 MC 부문에서 종합 2위를 달성한 뒤, 2000년부터 2003년까지 최고 클래스에 도전했지만 결과는 생각만큼 좋지 못했다. 아무래도 경험 부족이 컸고, 유럽의 보수적인 모터스포츠 분위기에 적응하기도 쉽지 않았다.

그 후 10년 가량이 흐른 2013년 말, 현대자동차는 N이라는 이름을 가진 고성능 디비전을 발표하면서 WRC 복귀를 선언했다. 본격적인 워크스팀(Works Team) 체제를 꾸린 현대자동차는 복귀 첫 해인 2014년 종합 4위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다음 해인 2015년에는 종합 3위, 2016년에는 종합 2위, 작년에도 종합 2위의 성적을 기록했다. 성적은 꾸준한 상승 곡선을 그렸다. 어느새 현대자동차는 유럽의 전통적인 WRC 맹주들을 하나 둘 꺾으며 탄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자신감은 프리 시즌에서도 돋보인다. 매년 WRC 시즌이 시작되기 전 현대월드랠리팀이 가장 먼저 드라이버 라인업과 경주차를 발표하고 시즌 운영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에 나서는 것을 보면 말이다. 물론 아직까지 챔피언의 자리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끊임없는 도전과 열정은 어느새 현대월드랠리팀의 키워드가 되었다. 열정적으로 승부에 임하는 팀에게 팬덤이 생기지 않을 리가 없다. 국내와 해외를 막론하고 현대 WRC 팀의 열성적인 팬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외국의 자동차 관련 상점에서는 i20 WRC 경주차 모형을 볼 수 있었고, 기존 모터스포츠 강팀들의 상품과 함께 현대월드랠리팀의 다양한 굿즈가 나란히 놓여 있는 장면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불과 4년 만에 일어난 일이다.

여기서 올해의 흐름을 잠깐 살펴보자. 올해는 정말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현대월드랠리팀의 에이스 티에리 누빌이 6라운드 포르투갈 랠리와 7라운드 사르디냐 랠리까지 석권하면서 종합 선두로 나서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현대월드랠리팀의 WRC 통산 10승 중 9승을 기록한 티에리 누빌의 상승세도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다. 올해 전반기 7번의 경기에서만 무려 3승을 챙겼으니 다른 해보다 전반기에 보다 확실한 주도권을 잡았다고 할 수 있다.

가장 최근 경기였던 사르디냐(이탈리아) 랠리는 WRC 역사에 남을 명승부 중 하나로 꼽힐 만큼 막판까지 치열한 승부가 벌어졌다. 총 20개의 SS(기록을 계측하는 경쟁구간)로 치러진 사르디냐 랠리에서 현대월드랠리팀의 티에리 누빌은 SS19까지 선두와 0.8초 차이를 보이며 2위에 랭크되어 있었다. 직전에 있었던 6라운드 포르투갈 랠리를 석권하면서 드라이버 챔피언십 1위를 탈환한 현대월드랠리팀과 에이스 티에리 누빌에게 사르디냐 랠리는 라이벌을 멀찌감치 떼어낼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다. 드디어 마지막 SS20 시작. SS20은 추가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는 파워스테이지였다. 현대월드랠리팀은 어느 때보다 강력한 질주를 선보였고, 결국 현대월드랠리팀이 마지막 SS에서 1.5초를 앞당기며 우승을 차지했다. 2위와의 차이는 불과 0.7초. 극적인 역전 승부였다. 

올해 남은 랠리는 총 6개. 시즌 후반 현대월드랠리팀은 가장 유리한 조건에서 출발할 수 있게 됐다. 물론 모터스포츠는 마지막까지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지만 지금까지의 흐름을 이어간다면 첫 종합우승이라는 쾌거를 달성할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현대자동차가 모터스포츠에 들인 노력의 결과물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현대자동차는 모터스포츠라는 불모지에서 실패하고 좌절하면서 지금의 자리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얻은 것들은 돈으로 일일이 환산할 수 없을 정도다. 파급력 있는 각종 모터스포츠 관련 매체의 지면을 차지한 것은 물론 중계방송의 광고 효과, 우승을 통해 얻은 브랜드 파워 등. 무형의 가치를 인정받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만 현대자동차의 이런 활동은 유럽 내 N 판매량과 국내 N 모델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어지고, 그 결실을 맺고 있다. 유럽과 국내에서 판매되는 고성능 모델인 i30 N과 벨로스터 N은 발매와 거의 동시에 초기 물량이 매진되는 현상을 일으킬 정도였다.

수많은 자동차 메이커들이 모터스포츠에 뛰어들고 나름의 방식으로 그 결과를 얻어가고 있다. 방법은 여러가지다. 단순한 광고효과를 노린 경우도 있고, 모터스포츠를 통해 충성도 높은 고객을 확보하기도 한다. 어느 것이 맞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왕 시작한 거 화끈한 결실을 보겠다는 결심은 기업 입장에서 아주 당연한 일이다.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돈을 벌려면 돈이 되는 자동차를 팔면 된다. 하지만 생명력이 길고 철학을 판매하는 자동차 메이커가 되려면 모터스포츠에 투자하라’고 말이다. 명차라 불리는 차를 만드는 전통의 자동차 메이커들은 저 말을 따라왔다. 이제는 현대자동차가 그 동안의 노력과 도전에 대한 결실을 얻을 차례다. 남은 WRC 경기에서 현대월드랠리팀이 챔피언 자리에 오르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글. 황욱익

바퀴 달린 건 다 좋아하는 남자. 카트 레이서이자 자타가 공인하는 테스트 드라이버이며, 국내 최초 자동차 전문 토크쇼 < The Garage >의 기획자이자 진행자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는 성격 상 세계 각지를 직접 돌아다니며 자동차와 관련된 다양한 경험을 쌓았으며, 실전과 이론을 겸비한 전천후 자동차 칼럼니스트이다. <딴지일보>와 <모터매거진>을 거쳤으며 현재는 <라라클래식>을 통해 자유기고자, 자동차 이벤트 기획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2016년 출판된 <클래식카 인 칸사이>가 있으며 전세계 자동차 메이커의 히스토리와 클래식카 문화를 다룬 2권의 단행본을 집필 중이다. 

◆ 이 칼럼은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이며, HMG 저널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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