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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칼럼] 자율주행 시대가 오면 차를 소유할 필요가 없을까?

자율주행 시대가 와서 차를 공유하는 것이 일상화 되면, 우리는 더 이상 '나만의 차'가 필요 없을까요? 글/김형준(자동차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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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自動車)라는 단어의 의미를 곱씹어본 적 있으신가요? 자동차는 영어 단어 오토모빌(Automobile)에서 비롯했습니다. 그러니까, 오토모빌의 ‘오토(auto)’를 자동(自動)으로, ‘모빌(mobile)’은 차(車)로 직역해 쓴 것이지요. 이렇게만 보면 자동차는 현대 한국사회의 대표적 오역 사례라 할 수 있겠습니다. 조금 거슬러 올라가서 보면 오토모빌의 오토는 자동보다는 ‘자신’ 또는 ‘스스로’의 의미에 가깝습니다. 자동차의 시작점인 19세기 사정을 되짚어보면 단박에 이해가 돼요. 당시 자동차는 말이 끄는 힘으로 움직인 마차와 달리 몸체에 달린 증기기관·내연기관이 적용된 엔진이 스스로 만들어낸 힘으로 움직였습니다. 말하자면 당시의 자동차, 보다 정확히 오토모빌은 마차와 구분하기 위해 만들어진 신조어였습니다. 그런데 100여 년 이상 오용돼 온 자동차라는 단어가 비로소 제 몫을 하게 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진정한 자동(自動) 차(車)의 시대 말이지요. 21세기의 우리는 이를 자율주행 자동차(Autonomous Car)라는 신조어로 부르고 있습니다.

자율주행차는 어떤 경우 커넥티드 카(Connected Car)라는 단어와 뒤섞여 쓰이기도 합니다. 커넥티드 카는 문자 그대로 ‘연결된 자동차’라는 의미예요. 무엇과 연결된 자동차일까요? 뭉뚱그려 세상 모든 사물과의 연결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자동차, 사람뿐 아니라 도로와 교각, 표지판, 나아가선 우리가 거주하는 집까지도 연결의 상대가 되지요. 대단한 신시대의 얘기처럼 들리지만 실상 커넥티드 카는 오토모빌만큼이나 오래되고 우리 삶에 밀접한 개념입니다. 자동차는 마차를 대신하는 탈것으로 등장한 19세기부터 이미 이동수단으로서 지점과 지점을 ‘연결’해왔기 때문입니다. 자동차가 물리적인 시간과 거리의 제약을 허물면서 소외된 지역이 활발히 개발됐고 요긴한 물자를 필요한 곳에 제때 전하는 일도 가능해졌지요. 국가들은 교류가 활발해졌고 사람들은 차를 통해 새로운 사람과 음식, 문화, 자연을 경험하게 됐습니다. 현대 문명의 비약적인 발전이 시작된 것도,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이 무궁무진하게 확장된 것도 ‘공간을 연결하는’ 자동차(와 각종 이동수단) 덕분이었습니다. 

올해 초 IHS가 펴낸 자율주행차 판매 예측은 전보다 훨씬 상향됐습니다. 자율주행의 시대가 더 빠르게 오고 있다는 뜻이죠

이동이나 연결 모두 사람이 아닌 차량이 스스로 해내는 미래차 시대는 생각보다 멀지 않습니다. 세계 유수의 자동차 제조사들이 2020~2022년 자율주행차 상용화를 공언하고 있는 현실이니까요. 시장조사 및 분석기관의 전망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영국에 기반한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IHS는 자율주행차의 전 세계 판매량이 2021년 약 5만대, 2025년 약 100만대, 2040년에는 3300만대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어요. 물론 이 같은 전망도 신중하게 살필 필요는 있습니다. 전 세계를 통틀어 연간 8000만~9000만대의 신차가 팔리는 걸 감안하면 자율주행차의 비중은 7년 뒤에도 채 10%가 되지 않는 셈이니까요. 바꿔 말해 우리가 기다리는 ‘진짜 자동 차’는 고가의 럭셔리카 시장부터 시작해 서서히 대중 자동차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대 코나는 소형 SUV임에도 불구하고 FCA나 LKA 같은 첨단 장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동차 제조사가 CES 같은 가전박람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한 즈음부터의 자동차 기술은 종잡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FCA(전방 충돌방지 보조)나 LKA(차로 이탈방지 보조) 같은 자율주행 근접 기술은 기아 K3나 현대 코나와 같은 대중적인 차종에까지 광범위하게 적용된 것이 현실입니다. 고도의 기술이 제한적이나마 소형·준중형 승용차에 적용됐다는 건 대중화가 머지않았다는 얘기겠지요. 자율주행차는 허황된 미래가 아니라 당면한 현실이라 받아들여도 좋은 이유입니다. 

그런데 차가 알아서 달리고 돌고 멈춘다면 운전자는 왜 필요할까요? 운전자 없이도 스스로 움직이는 차라면 그게 지하철이나 버스와 다를 건 무엇일까요?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자동차를 구입할 이유가 있을까요? 내연기관 자동차 등장 130여 년 만에 마주한 신세계 앞에서 (대체로) 직접 문을 열고 시동 걸어 운전하는 데에만 익숙해 있던 우리의 당혹감은 이처럼 하염없습니다. 그런다고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자동차의 시대를 거부해야 할까요? 그건 현대 문명을 거부하고 산속에 칩거해 사는 일과 다르지 않을 겁니다.

퍼스널 컴퓨터가 등장한 뒤부터 타자기가 자취를 감추고, 내비게이션의 보급이 전국도로지도 책의 씨를 말렸던 것처럼, 그리고 휴대전화를 손에 쥐고 살게 되면서부터 지인의 전화번호를 잊고 지내게 된 것처럼 우리는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반기고 적응해 살아갈 나날부터 먼저 꿈꿔야 마땅할 겁니다. 그리고 그건 우리의 의지나 다짐만으로 이뤄지는 일이 아니기도 해요. 많은 자동차 회사가 이미 자율주행 시대를 대비해 공유 자동차 사업을 준비하고 있으니까요.

이 거대한 자동차 도로가 녹지나 공원으로 변하면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도 크게 바뀔 겁니다

개인의 소유물이었던 자동차가 공공의 공유물로 바뀌고, 자동차 기업이 공공 자동차 보급에 본격적으로 달려들면 노인, 어린이, 장애인 등 운전이 어렵거나 아예 불가능한 이들은 전에 없는 편리를 누리게 될 겁니다. 도심환경 개선 효과는 또 어떻고요. 도심이 자율주행차만으로 채워지면 인도와 차도의 경계는 무의미해집니다. 차가 주변 사물을 인식하고 소통하며 자율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이지요. 내가 쓰지 않는 시간 동안 타인과 공유하면 차를 하염없이 세워둘 일도 줄어듭니다. 지금처럼 주차공간을 확보하지 못해 안달할 일도 적어지겠지요. 차가 자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으니 주차시설을 아예 도심 외곽으로 옮길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럼 자동차를 위해 존재하던 도심 공간 대부분을 녹지나 편의시설 등 사람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는 일도 가능해질 겁니다. 강남대로, 테헤란대로, 세종대로 등 거대한 자동차 도로에 잔디밭과 운동·공연 시설이 깔리고 푸드트럭과 같은 다양한 팝업스토어로 들어찬다고 상상해보세요. 이보다 멋진 도심 생활이 또 있을까요?

포르쉐 패스포트는 일종의 월 정액 구독 서비스입니다. 일정 금액을 내면 매달 모델을 바꿔가면서 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율주행 시대의 모든 자동차가 공공재로만 기능할 거라는 짐작은 이릅니다. 100년 이상 자동차를 기획하고 개발하고 생산해 판매하며 자동차 산업의 중심을 지켜온 제조사들이 다른 방법론을 찾고 있으니까요. 제조사들은 소유 자동차와 공유 자동차의 틈새 어딘가에서 또 다른 길을 모색하고 있고 그런 움직임은 자동차의 ‘구독’이라는 새로운 서비스로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구독(subscription)은 신문이나 잡지 등을 정기적으로 받아보려 할 때 쓰는 표현이라 자동차를 구독한다는 의미가 선뜻 와 닿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신문, 잡지 외에도 다양한 콘텐츠를 구독이라는 서비스로 소비하고 있습니다. 음원 스트리밍이 일반적이고 최근에는 넷플릭스와 같은 영상 콘텐츠 스트리밍 서비스도 대표적인 구독 서비스의 하나입니다. 요즘 일부 자동차 브랜드와 공유경제 스타트업이 운용하는 자동차 구독도 기본 개념은 이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사용자는 얼마간의 월간 또는 연간 이용료를 지불하고, 서비스 제공자는 그 값에 걸맞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지요. 

리스나 렌털, 카셰어링도 그와 비슷한 운용상품이지만 자동차 구독은 한 달, 길어야 1년 정도로 서비스 이용 기간이 짧은 편입니다. 또 이용 계약을 맺은 차량 한 가지만 탈 수 있는 일반적인 임대 서비스와 달리 자동차 구독은 구독 기간 동안 정해진 횟수나 가짓수만큼 자동차를 바꿔 탈 수 있게끔 운영됩니다. 물론 생활양식에 맞춰 다양한 차를 번갈아 탈 수 있는 점은 큰 매력이지만 당장의 자동차 구독은 그 못지않게 비싼 비용을 치러야 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스포츠카나 럭셔리카 같은 고가의 자동차 브랜드가 중심이 돼 ‘실험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현실이기도 하고요.

인공지능이 당신의 운전 실력을 높여줄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의 지시를 따르기만 하면 아마추어 레이서 수준의 드라이빙이 가능할 지도 모릅니다

공유나 구독 그 무엇도 아닌 순수한 소유의 개념도 결코 사라지진 않을 겁니다. 일반적인 자율주행차가 공공재의 성격에 가까워지면 오히려 자동차의 소유 개념은 지금보다 훨씬 ‘값진’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자율주행 시대의 핵심 기술들 그러니까 연결과 인공지능, 증강현실 등이 보다 안전하고 더욱 풍족하며 지금보다 더 화끈한 운전 경험을 선사할 것이기 때문이지요. 허튼소리나 막연한 상상이 아니에요. 달리는 즐거움을 핵심 가치로 삼는 자동차 브랜드의 중역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자율주행 기술을 통해 한층 짜릿한 운전이 가능할 것임을 힘주어 말하고 있습니다. 운전자의 조작 패턴을 분석한 똑똑한 인공지능이 미리 계산된 최적의 주행경로를 토대로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조작 명령(또는 조언)을 건네면 못해도 아마추어 레이서만큼 빠르게 달릴 수도 있으리란 설명이지요. 윈드실드 너머로 HUD와 같은 증강현실 그래픽이 펼쳐지는 가운데 “1초 뒤에 풀 브레이킹입니다!” 같은 지침이 들려오는 장면. 어때요, 꽤 흥분되지 않나요?

공유차 시대에도 우리는 차를 소유하는 것을 멈추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처럼 자율주행 기술이 완전히 정착하고 공유자동차 시대가 오면 사람들은 차를 사지 않을 거란 속단은 금물입니다. 비단 나보다 더 영리한 인공지능 기반 기술이 운전을 더욱 즐겁게 만들어주리란 기대 때문만도 아닙니다. 운전대를 잡는 것보다 맡기는 게 더 익숙한 환경이 되더라도 우리는 줄기차게 자동차를 소유하려 들 거예요. 자율주행, 무인주행, 공유자동차, 구독 자동차 등 미래 모빌리티를 설명하는 수많은 표현의 귀착점은 결국 ‘개인 맞춤형 경험’에 있거든요. 바꿔 말해 미래엔 ‘나만의 주행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한 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제 찍은 아침 풍경 사진을, 오늘 밤 중계 예정인 유럽챔피언스리그 결승전 경기를, 내일 오픈 예정인 넷플릭스 드라마 새 시즌을 달리는 자동차에서 보다 풍족하게 만끽하고 싶은 우리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색감이 선명하고 자연스러운 대시보드 디스플레이, 편리하고 감각적인 사용자 환경, 청음에 최적화된 정숙하고 차분한 승차감, 그러면서도 세련된 스타일과 멋진 철학이 담긴 자동차를 찾으려 하진 않을까요? 억만 금보다 소중하고 값진 ‘내 시간’을 위해서 말이에요. 이 또한 먼 얘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스마트폰에서, 노트북에서, 하물며 이어폰이나 파우치 하나에서조차 ‘나만의 취향’을 담아 소비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니까요.

글. 김형준

올해로 만 17년째 자동차 전문기자로 활동 중이다. 자동차 전문지 <카비전>과 <톱기어> 한국판, 남성지 <지큐>에서 일했다. 지난해 방영된 SBS <드라이브 클럽>의 고정 패널로 출연하며 자동차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냉철한 시각을 보여준 바 있다. 최근까지 글로벌 자동차 전문지 <모터트렌드>의 편집장으로 자동차 문화에 대한 심도 깊은 자동차 문화를 알려왔다. 

◆ 이 칼럼은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이며, HMG 저널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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