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댓글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뷰 본문

HMG저널

[칼럼] 한국은 지금 올드카 문화가 꿈틀대고 있다

한국은 올드카 문화의 불모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올드카에 대한 낮은 사회적 인식이 가장 큰 문제였죠. 하지만 최근 올드카에 대한 저변이 조금씩 넓어지고 있습니다. / 글 류민

100 읽음
댓글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얼마 전 외국에서 살던 대학시절 친구가 귀국했습니다. 오랜만에 만나 한참 수다를 떨었죠. 그런데 당분간 국내에서 지낼 거라며 그동안 타고 다닐 차를 함께 골라 달라고 하더군요. 그가 원하는 건 단종 20년이 다 되어가는, 대학 시절 그가 타던 국산 소형차였습니다. 유지 보수가 어렵고 돈도 많이 들 것 같아 말렸지만 소용없었습니다. 학창 시절 추억을 잊지 못하겠답니다.

그래서 친구와 함께 중고차 사이트를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시세가 제가 몇 년 전 봤던 것보다 2배 정도 올랐더군요. 상태에 따라 천차만별인 게 중고차 값이긴 합니다만 사진으로 봐서는 그렇게 관리가 잘 된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다른 중고차 사이트를 뒤져봐도 상황은 마찬가지. 해당 차종 동호회에서 알아보니 비교적 희귀 차종이라 최근 값이 올랐다고 합니다. 

이제 국내에서도 오래된 차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는 걸까요? 예전과는 분위기가 조금 달라진 것 같기는 합니다만 아직 ‘문화’라는 말을 꺼낼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판매가 적었던 일부 차종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현상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국내 올드카 문화는 왜

쏘나타는 한국 자동차의 대중화를 일군 모델입니다

그런데 국내에선 왜 ‘올드카 문화’가 정착하지 못할까요(오래된 차라고 다 ‘올드카’는 아닙니다. 이에 대한 구분법은 나중에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사회적 인식을 가장 큰 걸림돌로 꼽습니다. 자동차는 다른 공산품보다 애착이 더 생기는 대상입니다. 생산 시기의 사회상도 강하게 투영되는 물건이죠. 따라서 ‘올드팝’처럼 시대를 초월하는 문화로 향유될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하지만 우리 자동차 역사는 짧습니다. 대중화가 이뤄진지 이제 40년 남짓입니다. 게다가 국내에서 자동차는 오랫동안 부를 상징하는 도구로 기능했습니다. 즉, 우리에게 ‘자동차는 물건’이라는 인식이 강하고, ‘오래된 물건은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이는 자동차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와 비슷한 인식은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등 우리 생활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급격한 성장으로 인해 기존 선진국들이 겪었던 몇몇 과정을 건너뛰었고, 그로 인해 우리 나름의 사회적 가치관이 정립됐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지금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몇몇 개발도상국의 사정을 들여다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유선전화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데 스마트폰 보급률은 굉장히 높은 국가들이 적지 않죠.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과정이 생략된 것입니다.


올드카 문화를 막는 제도들

사회적 인식이 전부는 아닙니다. 현실적인 문제도 산적해 있습니다. 국내에선 올드카를 구입하는 것부터가 큰 난관이죠. 멀쩡해 보여서, 문제없다고 해서 샀는데 속은 다 썩어 있어 고생만 하다가 포기하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수리할 곳을 찾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해당 브랜드의 서비스센터나 대형 공업사는 낮은 수익성 때문에 기피하기 일쑤고, 소규모 전문 수리점에서 작업을 진행하면 오래된 차의 특성상 차주가 직접 부품 수급 등을 도와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차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과정도 즐거움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겐 스트레스일 수 있죠.

중고차 시세표의 원조가 바로 켈리 블루북(Kelly Blue Book)입니다

각종 제도도 발목을 잡습니다. 우선 올드카는 자동차보험의 혜택을 제대로 누리기 어렵습니다. 이에 대한 제대로 된 기준이 없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수입 올드카야 켈리 블루북(Kelly Blue Book, 미국 자동차 평가기관)이 제공하는 시세에 맞춰 차량 수가를 정하지만 오래된 국산차는 고철 취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차의 정확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면 자차 특약의 의미가 거의 없어지고 ‘차대차’ 사고로 피해를 당했을 때 상대 보험사에게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는 일도 생길 수 있습니다.

자동차 검사도 큰 문제입니다. 국내 자동차 검사는 검사 대상 차의 생산·출고 연도와 관계없이 최신 기준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20년 전 유로 2 기준으로 생산된 차가 지금은 유로 6 기준을 통과해야 하는 겁니다. 자동차 관련 환경기준은 나날이 엄격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검사 기준이 바뀌는 시기에는 아직 보증기간도 끝나지 않은, 비교적 최근에 출고된 자동차가 불합격을 받는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사정이 이러니 출고 30~40년이 지난 차가 검사를 한 번에 통과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대기오염을 줄이겠다는 의지는 이해하지만 이게 과연 형평성에 맞는지는 한 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참고로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검사 대상 차의 생산·출고 연도 기준에 맞춰 검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일부 국가는 클래식카·올드카 전용 번호판을 발급해 별도로 관리하며 연간 주행거리가 적을 경우 세금을 깎아주거나 각종 혜택을 주기도 하죠. 그들은 잘 관리된 클래식카·올드카를 규제해야 할 노후차로 보지 않고 미술품과 같은 문화유산이자 자동차 산업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크리스티나 소더비 같은 해외 아트 경매 시장에 희귀 클래식카가 출품되는 배경에도 바로 이런 인식이 깔려있습니다.


제조사가 올드카에 관심을 보여야 한다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있는 메르세데스-벤츠 뮤지엄에는 그들이 쌓아온 역사가 가득합니다

제가 올드카 이야기를 꺼내든 건, 최근 몇몇 주요 자동차 회사들이 이에 대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는 TV 광고에 올드카를 선보이더니 지난 부산모터쇼에선 클래식카·올드카 전시 공간을 따로 마련하기까지 했습니다. 포르쉐 코리아 역시 올해 개최한 창립 70주년 행사에 과거 이름을 날렸던 모델들을 대거 동원했습니다.

현대자동차는 ‘헤리티지 라이브(Heritage Live)’라는 행사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헤리티지 라이브는 현대자동차의 역사적인 차를 소개하는 토크쇼로, 작년 11월에 시작해 지금까지 세 차례 진행됐습니다. 고급차 역사를 다룬 1회에서는 포드 20M과 그라나다, 1세대 그랜저 등을 만날 수 있었고 스포츠카가 주제였던 2회에서는 스쿠프와 티뷰론, 투스카니가, 3회에서는 레저형 차(RV)를 주제로 포니 왜건, 라비타 등이 등장했습니다. 모두 쉽게 볼 수 없는 희귀 차종이죠. 헤리티지 라이브는 자동차를 좋아하는 어린 꿈나무들은 물론 현대자동차와 함께 성장해온 장년층에게도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국내에선 지금껏 만날 수 없었던 자동차 역사 관련 이벤트이자 자동차를 통해 과거의 향수를 만끽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기 때문입니다.

클래식카 경연대회인 페블비치 콩쿠르 델레강스(Pebble Beach Concours d'Elegance)의 모습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근사한 행사가 생기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겁니다 ⓒPebble Beach Concours d'Elegance

사실 역사를 얘기하는 것만큼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 효과적인 방법은 없습니다. 유럽 자동차 회사들이 박물관이나 클래식카·올드카 관리 조직인 클래식 센터를 운영하는 것도 수익보다는 브랜드 이미지를 위해서입니다. 헤리티지 라이브에 대한 반응이 좋았던 것은 우리 자동차 문화가 올드카를 논할 정도로 성숙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을 겁니다.

제조사가 나서면 사회적 인식이 바뀌고, 저변 확대와 제도 개선도 기대해볼 수 있습니다. 자동차 기자가 아닌, 한 사람의 자동차 마니아로서 이런 활동이 지속적으로 일어나길 기대합니다. 손주의 손을 잡고 온 어르신이 “저 차가 할아버지가 젊었을 때 타던 차야”라고 말할 수 있는 모델이, 우리에게도 많아졌으니까요.

글. 류민

글로벌 자동차 전문지 <모터 트렌드>의 수석 에디터. 궁금한 것을 끝까지 파헤치는 집요함과 간결한 표현에 대한 집착을 바탕으로 심도 깊되 이해가 쉬운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 이 칼럼은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이며, HMG 저널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작성자 정보

HMG저널

Connecting to the Future

    실시간 인기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잠시 후 다시 시도해 주세요 Please try again in a mo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