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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앞서갔던 추억의 차, 라비타를 돌아보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인정 받았던 우리 고유의 모델, 현대 라비타를 살펴봅니다. / 글 박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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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우리 방식대로 하겠어!” 1971년 현대차와 포드의 합작 협상이 결렬됐을 때 고 정주영 회장이 상대측에 던진 일갈입니다. 이후 3년이 지난 1974년 10월, 현대차는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에 최초의 독자모델 포니를 출품했지요. 당시 현대차의 기술력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을 특유의 도전정신으로 극복해낸 것입니다. 포니를 통해 우리나라는 아시아에서 두 번째, 전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고유모델 자동차를 선보이게 됐습니다.

첫 고유모델이었던 포니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한국 첫 번째 고유모델이었던 포니는 현대차에 또 다른 과제를 던졌습니다. 바로 해외 시장 개척입니다. 포니가 만들어지던 1970년대 중반 우리 1인당 국민소득은 500달러에 불과했습니다. 해마다 팔리는 국내 신차는 2만대 남짓했지요. 이렇게 작은 내수 시장 규모로는 포니가 시장을 100% 점유해도 투자금 회수는 커녕 회사를 유지하기도 어려웠습니다(이는 현대차가 연간 800만대 생산능력을 갖춘 글로벌 탑 5 브랜드로 올라선 지금도 마찬가지죠).

현대차가 양적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해외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마침 유럽에서는 MPV가 큰 성장세를 보이고 있었고, 현대차는 이 시장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기로 결정합니다. 국내보다 유럽인의 감성에 바탕을 둔 다목적 차량을 개발하기로 한 것입니다.

소형 MPV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르노 세닉의 모습입니다. 세계적으로 MPV 열풍을 몰고 왔던 모델입니다

2001년 데뷔한 라비타(코드명 FC)는 내수 시장보다는 해외(유럽) 시장 공략을 목표로 탄생한 소형 MPV(Multi-Purpose Vehicle)입니다. 소형 MPV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르노 세닉은 1996년 데뷔와 동시에 ‘유럽 올해의 차’에 선정됐고 출시 1년만에 예상보다 4배나 많은 20만대 가까이를 판매하며 말 그대로 대박이 났습니다. 이후 피아트 멀티플라 등 동일한 콘셉트를 지닌 경쟁 모델들이 속속 쏟아지기 시작했고 현대차 역시 발 빠르게 대응해 준비한 작품이 바로 라비타입니다.

아반떼 XD의 플랫폼을 기초로 길이를 줄이는 대신 너비 20mm, 높이 240mm를 키운 라비타의 차체는 탁 트인 시야와 여유로운 실내 공간을 자랑합니다. 간결한 직선에 볼륨감을 살린 특유의 사이드 패널, 이른바 어깨근육처럼 보이는 측면처리(그랜저 XG에서 처음 선보였고 NF 쏘나타, 투싼 등에도 이어집니다)를 보면 아반떼 XD와 디자인이 비슷해 보입니다.

페라리와 알파 로메오 등의 디자인을 담당했던 피닌파리나가 라비타의 디자인을 맡았습니다

하지만 라비타의 디자인은 해외에서 따로 그려낸 것입니다. 바로 페라리와의 오랜 인연으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카로체리아 피닌파리나(Pininfarina)인데요. 포니의 디자인을 계기로 주지아로의 이탈디자인(Italdesign)과 많은 협업을 해왔던 현대는 라비타로 처음 피닌파리나와 손을 잡았습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피닌파리나가 라비타의 초기 렌더링을 한창 작업하던 1998년초, 대우 레조의 디자인도 같은 곳에서 마무리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애초에 라비타처럼 5인승 MPV로 기획된 레조지만 우리나라 내수용은 화물공간에 접이식 시트를 구겨 넣어 신기하게도(?) 7인승 인증을 통과했습니다. 7인승으로 LPG 연료 사용이 가능해 세제혜택을 받았던 기아 카렌스가 국내에서 대히트하자 부랴부랴 수정한 것이죠.

라비타의 디자인을 주도했던 카 디자이너 로렌조 라마치오티의 모습입니다

반면 처음부터 유럽 시장을 겨냥했던 라비타는 초기 콘셉트를 그대로 살려 탄생했습니다. 당시 피닌파리나의 디자이너였던 로렌조 라마치오티(이 남자는 뒷날 FCA그룹 디자인 총괄로도 활약했습니다)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의 의도를 잘 이해해준 현대차가 고맙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현대차는 피닌파리나를 통해 르노의 모노 스페이스 등 당시 유행하던 유럽 디자인 트렌드를 학습했을 겁니다. 그러다보니 피닌파리나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지 않았을까 예상합니다.

쿼터 글라스 아래로 작게 붙은 피닌파리나 로고는 라비타의 가치를 높였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라비타는 뒤쪽 쿼터 글라스 아래에 피닌파리나 로고를 붙이고 판매됐습니다. 국내에서는 유례가 없는 일이었지요. 페라리의 디자인을 맡았던 피닌파리나의 명성 덕분에 당시 카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피닌파리나 로고를 따로 구하는 소동이 일어날 정도였습니다.

전형적인 톨보이 해치백(Tallboy Hatchback) 스타일의 라비타는 루프가 높습니다. 거기에 앞 윈드스크린을 크게 뒤로 뉘여 달아 유리 면적을 상대적으로 넓게 만들었습니다. 측면 벨트 라인을 아래로 내려잡은 도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이드 윈도 면적도 상당히 넓습니다. 탑승객에게 탁 트인 시야를 제공하기 위한 배려지요. 시트 포지션도 높은 편이었습니다.

라비타는 국산차 가운데 처음으로 속도계와 엔진 회전계 등 계기판 주요부를 센터페시아 상단에 배치한 모델이었습니다. 스티어링 휠 앞쪽에는 몇 가지 경고등만 있었죠. 이 이질적인 느낌을 싫어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이것은 운전자의 시선 이동 측면에서 효율적인 설계였고, 오늘날까지 꾸준히 활용되는 배치입니다.

기어 레버를 바닥이 아닌 센터페시아 하단에 두어 차 안에서 자리 이동이 수월한 것도 라비타의 특징이었죠.

또 6:4로 분할되는 2열 시트에는 더블 폴딩 기능을 넣어 공간 활용성을 높였는데, 시트를 완전히 접으면 용달차 못지않은 화물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운전석 무릎 공간에 있는 우산 보관함, 서랍식으로 여닫히는 컵홀더와 동전보관함을 비롯해 접이식 테이블, 바닥 수납함, 화물공간에도 추가된 파워아울렛 등은 당시 다른 국산차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장비죠. 라비타의 주무대를 다양한 레저 문화가 발달한 유럽으로 정한 만큼, 현지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했기 때문일 겁니다.

현대차의 독자적인 4기통 디젤 엔진은 이후 U 계열 엔진이라 불리며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사진은 U2 1.6리터 VGT 엔진입니다

아반떼 XD와 플랫폼을 공유하는 라비타기에 파워트레인 구성도 동일합니다. 가솔린 엔진의 경우 1.5L, 1.6L, 1.8L가 있었고 그 가운데 1.5L와 1.8L가 국내에 판매됐습니다. 유럽의 경우 1.5L 디젤 모델도 선보였는데요. 초기에는 이탈리아의 엔진 전문 업체 VM 모토리의 3기통 디젤 엔진을 활용하다 2005년 페이스리프트 모델 출시 때 현대차의 독자적인 4기통 디젤 엔진으로 교체됐습니다. 이 엔진이 오늘날 다양한 모델에서 활용되고 있는 U 계열 디젤 엔진이죠. 변속기는 자동 4단, 수동 5단이었습니다.

국내에서는 세제혜택을 받지 못해 크게 성공하지 못했지만, 유럽에서는 꾸준한 인기를 얻었습니다

데뷔 첫해 라비타는 국내에서 1만 대 이상 팔렸습니다. 세제혜택과 LPG 연료 사용을 가장 큰 장점으로 내건 국내의 다른 7인승 MPV들과 달리 라비타는 자동차 본연의 매력으로 승부해 거둔 실적이기에 그 정도면 꽤 성공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진짜 유럽형 소형 MPV’를 찾는 수요는 곧 크게 줄기 시작했습니다. ‘차체는 크되 연료비와 세금이 낮은 차’를 선호하던 당시 국내 실정상 라비타가 설 자리가 없었습니다. 결국 2007년 라비타는 국내 시장에서 단종됩니다. 반면 연간 3만대 이상 꾸준히 팔린 유럽에서는 터키 공장에서 생산해 계속 판매됐고 2008년에는 두 번째 페이스리프트 모델을 투입하기도 했습니다. 터키 공장 외에도 말레이시아, 이집트, 그리스 등 신흥 시장에서도 조립생산되던 라비타는 2010년 ix20에 바통을 넘겨주고 무대 뒤로 사라집니다.

효율이 좋았던 라비타의 트렁크 공간은 산악자전거도 거뜬히 넣을 수 있었습니다

과거 개인적으로 라비타를 종종 탈 수 있었습니다. MTB(산악자전거) 마니아였던 지인이 심사숙고해 구입했던 차였기 때문입니다. 공간활용성이 뛰어난 건 두 말 할 필요도 없고, 차가 희귀하다 보니 화려한 스포츠카도 아니면서 엄청 튀더군요. 오너의 만족감은 최고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만약 오늘날 라비타가 다시 국내에 등장한다면 어떨까요? 과거에는 아쉽게도 눈물을 삼켜야 했지만 이번엔 대박이 날지도 모릅니다. 시대가 달라졌으니까요. 라비타는 그만큼 시대의 정서를 앞서갔던 차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글. 박영웅

‘자동차를 만들 수 없으니 비평을 하자!’ 필자가 1999년 월간 <자동차생활>에 입사, 자동차 전문기자가 된 배경이다. 만 4년차 기자 때는 뜻을 같이하는 후배들과 사내벤처 형식으로 수입차 전문지 <스트라다>를 창간, 편집장에 올랐다. 2010년 업계를 떠났다가 3년 뒤 <자동차생활> 편집국장으로 다시 복귀한 필자는 2015년부터 천재교육에서 재창간한 <탑기어> 한국판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또 XTM의 ‘탑기어 코리아 시즌7’에 진행자로 출연한 이력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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