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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변과 역전의 WRC 스페인 경기

WRC 스페인 경기는 이변의 연속이었다. 현대모터스포츠팀은 제조사 순위에서 역전 당해 2위로 떨어졌고, 티에리 누빌은 아슬아슬하게 시즌 1위를 달리고 있는 상황.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스페인 경기에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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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랠리에서 시즌 막판 우승을 노리는 팀들의 불꽃 튀는 접전이 펼쳐졌다

2018 시즌 드라이버 1위인 현대팀의 티에리 누빌(189점)은 2위 포드팀 세바스티앙 오지에 선수에게 단 7점 차이로 추격 당하고 있고, 제조사 순위에서는 현대팀이 1위 도요타팀(317점)에 20점 뒤진 2위인 상황. 드라이버는 매 경기마다 1위 25점, 2위 18점, 3위 15점으로 점수가 줄어 10위는 1점을 받게 된다. 11위부터는 점수가 없다. 제조사 점수는 출전하는 레이서 3명 중 상위 2명의 점수를 합친 것이다. 이렇게 연간 14경기의 점수를 누적해 최종 챔피언을 가리는 방식이다.

매 경기는 320km 안팎을 목~일요일 4일 동안 20개 정도의 스테이지(SS)로 나눠 달린 뒤 주파시간을 합산해 가장 빨리 달린 순으로 순위가 정해진다.

스페인에서는 포장도로와 비포장도로가 번갈아 펼쳐지기 때문에 드라이버와 제조사 모두에게 경기차 세팅이 까다로운 곳이다

스페인 랠리는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포장도로(타막)와 비포장도로(그래블)가 8 : 2 수준으로 혼재돼있기 때문. 드라이버는 스테이지마다 다른 지형에 빨리 적응해야 하고, 타이어 선택과 마모 관리도 굉장히 중요하다. 게다가 랠리가 펼쳐지는 동안 비까지 내리면서 변수는 더욱 커졌다.

토요일 비가 내리는 데다 기온까지 뚝 떨어지면서 노면이 무척 미끄러워졌다. 이럴수록 타이어의 선택이 무척 중요하다

기온도 10도 수준으로 뚝 떨어진 상황. 차가운 노면에 어떤 타이어로 대응할 것인지가 모든 팀의 고민거리였다. 레인 타이어는 빗길에서 좋은 성능을 내지만 내구성이 떨어져 주행 후반부에 속도를 높이기 어렵고 펑크의 위험도 높다. 소프트 타이어나 하드 타이어는 빗길 접지력은 떨어지지만, 타이어 온도가 올라가고 노면이 약간 말라가는 상황에서는 더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스페인을 달리는 동안 쉴 새 없이 바뀌는 노면 상태는 드라이버를 웃게도, 울게도 만들 수 있다.

전설의 드라이버 세바스티앙 로브가 스페인 랠리에 복귀했다

이번 랠리에는 조금 특별한 변수가 있었다. ‘랠리의 전설’ 세바스티앙 로브가 시트로엥 C3 랠리카의 운전대를 잡고 출전한 것. ‘WRC 9회 연속 우승’이라는 대기록의 보유자인 로브는 이번 시즌 멕시코, 프랑스 랠리 등에 출전하며 몇 년 만에 현역으로 복귀했지만 위협적인 모습은 보이지 못해 한물 간 드라이버라는 느낌을 줬다. 그런데 그가 이변을 연출할 줄이야.

비포장도로는 보통 앞선 차량에 불리하다. 코스를 최초로 달리며 장애물과 거친 자갈 등을 모두 걷어내야 한다

경기 초반, 도요타팀의 타낙과 현대팀의 다니 소르도의 컨디션이 좋아 보였다. 금요일 SS7까지의 순위는 타낙이 2위 소르도보다 26.8초나 앞서는 1위를 달렸고 누빌은 59.7초 뒤진 9위로 떨어졌다. 잘못하면 2018 시즌 1위를 타낙, 2위를 오지에에게 내주고 3위로 급락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커졌다. 게다가 제조사 순위에서도 현대와 도요타는 더욱 점수 차이가 벌어지게 될 것처럼 보였다. 현대팀 캠프에는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올해 드라이버와 제조사 더블 챔피언을 노리던 현대팀이었기에….

SS4 로드오더 선두로 달린 누빌은 코스를 살짝 이탈해 돌무더기에 부딪치며 팬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었다

누빌은 금요일 SS4에서 코스 옆에 쌓여있는 돌에 차량 일부를 부딪혀 자칫 탈락할 뻔했다. 다행히 차에는 문제가 없어 경기는 계속 진행됐지만, 스페인 랠리를 앞둔 연습 주행에서 전복 사고를 당하는 등 최근 컨디션이 썩 좋아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현대팀의 미켈슨과 소르도가 SS4, SS5에서 번갈아 가장 빠른 시간을 기록해 팀 분위기를 끌어올렸다. 현대팀 입장에선 올해 시리즈 포인트 2위인 오지에도 타낙보다 39.4초 뒤져 부진한 것이 그나마 위안이었다고나 할까.

토요일에는 스페인 출신 드라이버 소르도가 홈 랠리의 이점을 살려 선두에 올랐다

현대팀의 분발이 필요했던 토요일 첫 스테이지인 SS8은 악천후로 취소되었고 SS9에서 누빌이 한 단계 순위를 끌어올리며 작은 희망을 살려냈다. 그런데 대이변은 SS10에서 찾아왔다. 컨디션이 워낙 좋았던 타낙이 우승할 것으로 모두들 예상했지만 갑자기 보조석 앞 타이어에 펑크가 났다. 도요타 캠프의 스태프들이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경악하는 모습이 그대로 TV 전파를 탔다. 타낙은 급히 차에서 내려 트렁크에 있던 타이어로 교체하고 완주했지만 2분 가까이 손해를 보며 종합 순위가 9위까지 떨어져버렸다. 그리고 그 틈을 타 소르도가 0.3초 차이로 도요타팀의 라트발라에 앞서 선두를 차지했다. 스페인 출신인 소르도에게 홈 팬들의 응원이 전해진 것일까?

누빌이 두 개의 스테이지를 승리로 장식하며 페이스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는 과연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팀의 기세가 오르면서 누빌도 점차 페이스도 좋아졌다. 비 때문에 코스가 진흙탕으로 변했음에도 SS11과 SS13에서 가장 앞서며 순위가 5위까지 뛰어 올랐다. 선두와의 차이를 14초까지 줄였고, SS14에서는 12.7초까지 차이를 좁히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선두를 달리던 소르도는 진흙탕 속에서 고전하며 6위로 떨어지는 일희일비가 이어졌다. 하지만 소르도 역시 선두와는 16초 정도의 간격이라 충분히 포디움을 노릴 수 있는 위치였다. 노익장 세바스티앙 로브도 SS13을 지나면서 3위까지 치고 올라왔다. 로브가 이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선두권 싸움의 중요한 변수가 될 수도 있었다. 토요일 마지막 스테이지인 SS14까지 마친 스페인 경기 종합 순위는 1위 라트발라(도요타), 2위 오지에(포드), 3위 로브(시트로엥), 4위 에반스(포드), 5위 누빌(현대), 6위 소르도(현대).

현대팀은 좋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4, 5위를 차지하며 소중한 포인트를 얻었다

마지막 일요일 첫 스테이지는 SS15. 로브가 가장 빠른 기록을 내며 마침내 선두에 올라섰다. 누빌은 페이스를 더욱 높이며 상위권과 간격을 더욱 좁혔다. 1위와의 차이는 11.2초로,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초반 부진을 털고 우승까지도 욕심낼 수 있을 정도였다.

도요타의 마지막 희망 라트발라는 SS17에서 작은 사고로 선두권에서 멀어졌다

SS16에서 종합 4위로 달리던 에반스가 실수로 인해 6위로 떨어지면서 누빌은 4위, 소르도는 5위로 한 계단씩 올라가 기대감은 더욱 높아졌다. 그리고 또 다른 행운이 현대팀에게 미소를 짓는 듯했다. 경기 마지막을 목전에 둔 SS17, 도요타에게 다시 한번 불운이 닥친 것. 2위로 달리던 라트발라가 1위 탈환을 위해 욕심을 내다가 가드레일과 살짝 부딪히며 휠이 깨졌고 이로 인한 타이어 손상으로 48초 가량 손해를 보면서 6위로 추락했다.

덕분에 누빌은 3위로 올라설 수 있었다. 2위는 포드팀의 오지에. 이대로 경기가 끝나준다면 누빌이 3, 4포인트 차이로 2018 시즌 1위를 유지할 것이 확실시됐다. 올해 마지막 호주 경기에서 오지에보다 앞서 들어온다면 무조건 챔피언이 될 수 있는 유리한 고지에 오르게 된다.

그런데 불행은 현대팀에게도 악수를 청했다. 마지막 14.5km의 SS18. 가장 빨리 들어온 순서로 1~5위까지 5, 4, 3, 2, 1점이 추가로 주어지는 보너스 파워스테이지였다. 누빌은 SS18을 3위의 기록으로 잘 달리고 있었다. 이대로 골인하면 예상대로 올해 누적 포인트에서 오지에보다 3점 정도 앞선다. 그런데 마지막 커브 2개를 남긴, 골인 지점으로부터 겨우 70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앞서 달린 선수가 튕겨낸 돌을 보조석 뒷바퀴로 밟아버렸다. 이로 인해 타이어가 터졌고 차는 휘청이기 시작했다.

현대 월드랠리팀과 도요타 가주레이싱팀의 포인트 차이는 12점으로 줄었다. 최종 승부는 호주에서 펼쳐진다

이 사고로 2.5초 정도 손해를 본 누빌은 SS18을 6위로 골인하고 말았다. 3위였다면 받았을 파워스테이지 보너스 3점을 놓쳤고, 게다가 포드팀 에반스에게 스페인 경기 전체 누적 시간기록을 0.5초 차이로 뒤지며 종합 순위도 3위에서 4위로 떨어져 다시 3점을 손해봤다. 320km를 잘 달리다가 골인 700m를 앞두고 6점을 날린 셈이다. 오지에는 스페인 경기를 2위로 마무리하며 2018 시즌 누적 204포인트로 1위에 올라가버렸다. 누빌은 201점으로 시즌 2위였던 오지에와 자리를 바꿨다. 우승은 로브의 차지였다. 2013년 우승한 이후 5년 만에 포디움의 정상을 밟았다.

다행히 현대팀은 누빌이 4위, 소르도가 5위를 차지하며 각각 12점과 11점을 추가해 불운이 겹친 제조사 선두 도요타와의 격차를 20점에서 12점으로 줄였다. 현재 현대팀은 드라이버와 제조사 모두 2위지만 마지막 남은 호주 경기 결과에 따라 순위는 얼마든지 뒤집을 수 있다.

현대팀이 2017년 호주 랠리 우승의 순간을 다시 한 번 재현할 수 있을까?

참고로 작년 호주 랠리 1위와 3위는 현대팀의 누빌과 패든이었다. 올해 11월 15~18일 열리는 호주 경기에서 작년 정도의 좋은 성적을 올린다면 제조사와 드라이버 챔피언을 동시에 차지하며 그야말로 극적인 역전 드라마를 펼치게 된다. 물론 도요타 역시 절박하기는 마찬가지다. 그토록 갈망하던 르망24 우승을 차지한 올해, WRC 우승까지 차지한다면 영광의 2018년을 만들 수 있을 테니까. 

제조사 우승을 노리는 현대와 도요타, 그리고 드라이버 우승을 노리는 누빌과 오지에까지. 마지막까지 치열한 접전이 펼쳐질 호주 랠리에 전 세계 모터스포츠 팬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글. 주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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