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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셔리의 정의와 제네시스가 추구하는 럭셔리

20세기 럭셔리의 핵심 키워드가 헤리티지라면, 21세기 럭셔리의 키워드는 혁신이다. 세상은 변하고 사람도 변하고 럭셔리의 정의도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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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셔리의 기준이 변하고 있다. 혁신 없이는 더 이상 ‘럭셔리 브랜드’라는 깃발을 달기 힘들어졌다. EQ900는 혁신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 대표적인 모델이다

‘럭셔리 브랜드’라고 불리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우선 ‘족보’가 확실해야 한다. 19세기 왕족과 귀족이 말을 탈 때 필요로 했던 안장 등의 마구(馬具)를 만들던 에르메스. 나폴레옹 3세의 부인 외제니 황후의 긴 실크 드레스를 여행 트렁크에 담는 패커(packer)로 일하다 자신의 포장 가게를 차린 루이 비통. 수도사들이 재배한 약초로 만든 향유와 연고 등으로 메디치 가문의 인정을 받은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왕족과 귀족의 까다로운 취향을 만족시켰던 이들 장인과 상인의 ‘족보’는 산업혁명 이후 새로운 권력을 가진 자본가들의 환심을 사는 데 유용하게 쓰였다.

하지만 족보는 ‘장인정신에서 나온 최고의 기술과 정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한때의 명성으로 끝날 뿐이다. 예로 든 에르메스, 루이 비통, 산타 마리아 노벨라 모두 자기 분야에서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했다. 에르메스는 1867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서 1등상을 받으며 뛰어난 품질과 견고성을 공인받았다. 목공 지식과 패커로서의 경험을 겸비한 루이 비통은 캔버스 천에 풀을 먹이고 방수 처리를 해 가벼우면서도 튼튼한 사각형 트렁크를 개발했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의 장미수는 뛰어난 살균과 소독 효과로 전쟁 부상병들의 고통을 덜어주며 자비로운 이름을 알렸다.

그렇다면 왕족과 귀족이 사라진 현재는 새롭게 럭셔리 브랜드로 진입하는 것이 불가능할까? 헤리티지는 꼭 서구에서만 시작돼야 하는 것일까? 이제는 헤리티지를 어디서부터 쌓아나가야 하나? 그렇다. 지금은 21세기. 럭셔리 브랜드가 되기 위한 자격 요건, 럭셔리 브랜드 신분을 유지하기 위한 필요 조건에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조건 중 하나는 ‘혁신’이다.


혁신이 21세기 럭셔리의 본질이 된 이유

애플은 21세기의 럭셔리를 가장 잘 보여주는 상징적 브랜드다

애플은 가장 대표적인 21세기 IT 럭셔리 브랜드다. 생각해 보라. 풋내기 20대였던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차고에서 개인용 컴퓨터를 개발했다는 탄생 신화. 어떤 경쟁자보다 앞서나갔던 기술력. 미래를 내다보며 인간을 생각하는 통찰력. 경쟁 제품보다 높은 가격에 개의치 않고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는 충성 고객. 애플은 럭셔리 브랜드가 갖춰야 할 각종 면허증을 짧은 시간에 다 취득했다. 하지만 다른 럭셔리 브랜드와 달리 ‘찬란한 과거’를 앞세우지 않는다.

아이팟, 아이튠즈, 아이폰, 아이패드, 애플워치. 애플은 신제품을 내놓을 때마다 ‘혁신’을 보여줄 뿐이다. 그리고 전 세계인은 끝없이 새로워지는 애플을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본다. 20세기까지의 럭셔리 브랜드가 ‘전통의 발전적 계승’을 보여주었다면 애플은 ‘21세기의 럭셔리 브랜드라면 혁신까지 갖춰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비슷한 예로 자동차 분야에서는 테슬라를, 가전에선 다이슨을 꼽을 수 있다. 그들은 다른 브랜드가 하지 않았던 모험적인 시도, 혁신적인 성능이나 디자인을 통해 해당 분야의 럭셔리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그야말로 혁신적이었던 루이 비통과 슈프림의 협업은 시장과 소비자를 놀라게 했다

사실 이건 브랜드에게 너무 가혹한 처사일 지도 모른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진리를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있다’로 돌려놓아야 하는 숙제를 떠안은 셈이니까. 하지만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것은 브랜드의 숙명이다. 최근 루이 비통과 스트리트 브랜드인 ‘슈프림’의 협업 사례에서 보듯 기존 럭셔리 브랜드들은 21세기에도 럭셔리 브랜드로 인정받기 위해 자존심을 팽개치고 혁신을 도모하고 있다. 

루이 비통이 슈프림과 손을 잡다니. 브랜드 간 위계 질서가 엄격했던 20세기 같으면 생각도 못했을 일이다. 이런 상황이니 21세기에 일반 브랜드가 혁신을 통해 럭셔리 브랜드로 부상한 사례는 한 손으로 셀 수 있을 만큼 드물다. 그 드문 사례로 꼽을 수 있는 것이 시계 브랜드 ‘위블로’와 ‘리차드 밀’이다.

위블로의 주력 라인업인 빅뱅. 위블로는 러버 소재 스트랩, 다양한 첨단 소재를 이용한 다이얼 등으로 혁신을 보여줬다

1980년 설립된 위블로는 시계 브랜드 재건의 명수, 장 클로드 비버가 2003년에 CEO로 합류하면서 새로운 럭셔리 시계 브랜드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위블로는 ‘골드 다이얼에 가죽 스트랩’이라는 럭셔리 워치의 고정관념을 깨고 과감하게 고무 소재를 도입했다. 그리고 세라믹, 마그네슘, 티타늄, 지르코늄 같은 첨단 소재를 사용해 ‘클래식 퓨전’이라는 콘셉트를 구현했다. 

브랜드 이름이자 그 브랜드를 만든 시계 장인의 이름이기도 한 리차드 밀은 위블로보다 더 과감하다. 작은 다이얼 안에서 머리카락 들어갈 공간도 없이 초정밀 부품들이 맞물려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이건 시계가 아니라 F1 머신의 엔진에 가깝다. 실제로 그 부품들은 우주선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탄소 섬유, 알루미늄-리듐 합금, 알루미늄-규소-탄소 합금 같은 소재로 만들어졌다. 신생 브랜드 위블로와 리차드 밀은 수백 년 역사를 자랑하는 럭셔리 시계 브랜드들의 좁디 좁은 틈을 ‘혁신’으로 파고들어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21세기의 럭셔리 브랜드로 떠오른 제네시스

EQ900는 ‘럭셔리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인간’이라는 성찰의 결과물이다

한국 사람은 자긍심도 강하지만 때에 따라 스스로의 가치를 낮춰 보는 습관도 없지 않다. 이 오래된 습관을 잠시 떨쳐내면 우리나라에도 ‘혁신’의 이름으로 21세기 럭셔리 브랜드로 도약을 시도하고 있는 브랜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제네시스다. 솔직히 아직은 도전자의 입장이지만, 브랜드가 출범한지 고작 3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감안하면 그 성과는 적지 않다. 아니, 충분히 칭찬받을 만하다. 

위에서 위블로와 리차드 밀이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혁신의 힘으로 21세기 럭셔리 브랜드로 도약한 사례를 살펴보았다. 사실 이 브랜드들은 럭셔리 브랜드로 도약할 수 있는 인자를 품고 있었다. 위블로는 럭셔리 시계 브랜드의 본고장인 스위스에서 태어나 명품 제국 LVMH에 의해 길러졌고, 리차드 밀은 최고의 시계 장인이 만든 브랜드였다. 하지만 제네시스는 좀 다르다. 

‘대중 자동차 브랜드인 현대차가 만든 럭셔리 브랜드’라는 태생에는 사실 불안한 요소가 섞여 있다. 연간 기준으로 글로벌 800만대 이상을 판매하는 브랜드는 현대차를 포함해 4, 5개에 불과하다. 일부에서 아무리 비난해도 그들의 기술력이 세계적인 수준에 올랐음을 부인할 수 없다. 사실 그 정도의 규모와 기술력이면 기계적으로는 충분히 럭셔리 자동차를 만들 수 있다. 문제는 ‘대중 자동차 제조사가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를 세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지워야 한다는 것. 가격에 비해 뛰어난 품질의 자동차를 잘 만드는 것과, 가격은 비싸더라도 최고 품질의 자동차를 만드는 것은 100m 달리기와 마라톤만큼 다르다. 현대차가 제네시스로 럭셔리 자동차 시장에 도전한다는 건 그 자체로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하는 혁신이었다.


제네시스, 혁신의 방향이 옳았다

럭셔리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인간이다. 사소한 디테일 하나까지 인간을 배려하는 것. 제네시스가 추구하는 방향이기도 하다

1세대 제네시스(BH)는 그런 의구심을 상당부분 해소했다. 고급스러우면서도 당당한 디자인, 람다 엔진과 탄탄한 섀시가 만드는 주행성능, 한 단계 높아진 안전성과 정숙성까지. 제네시스는 자동차를 평가하는 항목 모두에서 기존의 한계를 뛰어 넘었다. ‘종합적인 품질의 혁신’을 이뤄낸 것이다. 이 혁신적인 성과는 2009년 ‘북미 올해의 자동차’로 선정되는 쾌거로 이어졌다. 아시아 메이커의 대형차가 ‘북미 올해의 자동차’에 선정된 것은 제네시스가 처음이었다. 

혁신은 2세대 제네시스(BH)에서도 이어졌다. 더 간결한 디자인으로 제네시스만의 느낌을 표현하기 시작했으며 상시 4륜구동 시스템인 ‘HTRAC’도 적용했다. 처음 승용 4륜을 도입했음에도 오래 전부터 승용 4륜을 써왔던 브랜드에 거의 뒤지지 않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도 혁신의 고삐를 놓지 않았다. 차체 구조를 개선하고 초고장력 강판 사용을 늘려 주행 성능과 안정성, 정숙성을 동시에 개선했다. 서스펜션과 조향감도 매만져 주행 감성을 더욱 높였다. 

2015년 제네시스가 독자 브랜드로 출범하면서 발표한 EQ900는 다시 한 계단 진화했다. 럭셔리는 그저 호화롭고 화려한 것이 아니다. 럭셔리를 향유하는 사람을 지극하게 생각하고 아낌없이 배려하는 것이 진짜 럭셔리다. 그 동안의 경험을 통해 ‘럭셔리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인간’이라는 성찰을 얻은 제네시스는 동력 계통, 차체, 첨단 주행지원 기능뿐만 아니라 스마트 자세 제어 시스템과 시트, 심지어 스티치 한 땀에도 인간을 위한 고민을 담아 EQ900를 탄생시키면서 실제 오너들에게 기존 럭셔리 브랜드 못지않다는 평가를 얻어왔다. 

럭셔리를 새롭게 정의하려는 제네시스 G90는 11월 말 공식 출시 예정이다

제네시스는 이제 또 하나의 분기점을 맞는다. EQ900가 G90로 변경되면서 드디어 ‘G 세단 라인업’이 완성된다. 곧 선보일 G90는 다양한 측면에서 혁신성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우선 돋보이는 것은 내비게이션을 무선으로 다운로드해 업데이트 하는 ‘내비게이션 자동 무선 업데이트’와 운전자의 습관을 분석해 배터리와 브레이크 패드 관리 등의 운전자 맞춤형 차량 관리 가이드를 제공해주는 ‘지능형 차량 관리 서비스’다. 이와 함께 HDA와 내비게이션 기반 스마트크루즈콘트롤, 차로 유지기능, 대향차 충돌 회피기능 등이 조화를 이뤄 자율주행 레벨 2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첨단 주행안전지원 기술을 통해 운전자는 물론 탑승자의 피로도를 크게 줄였다.

‘이 차는 안전하다’는 안도감은 심리적인 승차감을 크게 높여준다. 차체를 지탱하는 서브 프레임과 서스펜션, 작은 고무 부싱, 플로어 패널까지 하나하나 새롭게 설계하고 보강해 소음과 진동을 더욱 정제했다. 이로써 세계 최고 수준의 뒷좌석 승차감을 가지게 될 거라는 전망도 들려온다. 업그레이드된 인테리어의 화려함은 수 억 원대의 럭셔리카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고급스러운 나파가죽, 빈틈없는 내장재 조립, 리얼 우드, 장인의 숨결이 느껴지는 가지런한 스티치와 파이핑 등은 제네시스의 저력을 보여주는 단서다.

하지만 가장 기대되는 것은 서울이라는 메가시티의 느낌을 녹인 전체적인 디자인 콘셉트다. 제네시스 디자인 담당 이상엽 전무는 G90 프리뷰 행사에서 ‘제네시스의 뿌리는 대한민국 서울’임을 강조한 바 있다. 서울은 전통과 첨단이 다이내믹하게 섞인 도시다. 서울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이 G90에 어떻게 녹아있는지 살펴보는 것은 제네시스의 미래를 예상하는 키워드가 될 것이다. 

21세기는 전통이 아니라 혁신의 힘으로 럭셔리 브랜드가 되는 시대다. 끝없이 인간을 위하고 생각하면서, 더 나아갈 곳이 없다고 생각되는 곳에서, 다시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철옹성처럼 공고해보이는 럭셔리카 시장에 처음 도전할 때는 무모하다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지만 자체적인 혁신을 거듭해 이제는 21세기의 럭셔리 브랜드의 첫 계단을 밟고 올라선 제네시스. 그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글.송원석

송원석은 글로벌 남성지 <에스콰이어>, < GQ > 에디터를 거쳐 <루엘> 부편집장, 이탈리아 남성지 <젠틀맨>의 편집장을 역임했다. 세상의 온갖 좋은 것들을 두루 경험한 그는 럭셔리 시장에 대한 탁월한 시각을 기반으로 다양한 기업의 브랜딩 활동을 펼치고 있다. 

◆ 이 칼럼은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이며, HMG 저널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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