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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GOUT Voice] 애정과 증오 사이

조회수 2020. 8. 27. 12: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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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스포츠는 말 그대로 팬의, 팬에 의해, 팬을 위해 존재한다. 지난해 KBO리그 올스타전에선 ‘팬 퍼스트’를 내세워 팬과 함께하는 행사를 꾸몄다. 연습경기 자체 중계, 경기 중 감독 인터뷰, 심판과 코치의 마이크 착용 등 팬을 위한 콘텐츠 향상도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매 시즌 팬서비스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심판의 석연찮은 판정은 언제나 화두에 오른다. 쓴소리가 계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렇게 이어진 비판이 때론 비난이 되기도 한다. 지나치게 과열돼 법적 제재가 우려되는 경우도 나온다. 이럴 때마다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팬심으로 한 행동은 어느 수준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에디터 조예은 사진 롯데 자이언츠


#저녁 같이 드실래요


팬은 응원 팀의 승패에 일희일비한다. 승리에 기뻐하고 패배에 분노한다. 그만큼 부진한 팀에 누구보다 실망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지난달 LG 트윈스 차명석 단장의 SNS에 글을 남긴 팬도 그랬다. 선수 육성과 관련된 비판의 목소리였다. 장문의 댓글에 차 단장은 즉각 답했다. 팬을 야구장으로 초대한 것이다. 빈말이 아니라 구체적인 일정까지 언급하며 대화를 나누자는 의사를 남겼다. 차 단장은 약속한 날 팬을 기다렸지만 끝내 만나지 못했다. 해당 팬은 사용하던 SNS 계정까지 탈퇴했다.


첫 만남은 불발됐지만 다른 팬이 그를 찾아갔다. 팬을 반갑게 맞은 차 단장은 감독 선임, 불펜 혹사 등 여러 질문에 답했다. 선물을 들고 찾아간 팬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한 그는 팬을 위한 라이브 방송을 계획하며 소통의 의지를 내보였다.


이런 사례가 있는가 하면, 심각한 수위의 글을 남기는 팬도 있다. 경기에서 실책을 범하거나 실점을 한 선수의 SNS에 비난의 댓글이 달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비난을 피하려 SNS를 비공개로 돌리는 선수도 늘어나고 있다. 이런 그릇된 팬심은 온라인상에서 그치지 않고, 심각하게 번지기도 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롯데 자이언츠 이대호에게 벌어진 치킨 투척 사건이다. 2018년 3월 31일 롯데가 홈구장인 사직야구장에서 NC 다이노스에 5-10으로 졌다. 개막 후 7연패를 기록한 경기였다. 이날 퇴근하는 이대호를 향해 롯데팬 한 명이 치킨 상자를 던졌다. 상자를 등에 정통으로 맞은 그는 그대로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선수를 향한 오물 투척은 KBO리그 출범 이래 꾸준히 문제가 됐다. 해태 타이거즈 김응용 감독이 맞은 참외, LG 박용택이 가까스로 피한 얼음이 든 페트병 등 다양한 물건이 그라운드로 날아왔다. 2018년에는 심판의 판정에 불만을 품은 팬이 슬리퍼를 그라운드로 던지기도 했다.

#팬이 감독도 바꾼다?


프로 스포츠에서 성적에 가장 큰 책임을 지는 사람은 감독이다. 최근 한화 이글스 한용덕 전 감독이 성적 부진을 책임지고 자진해서 팀을 떠났다. 지난해에는 롯데 양상문 전 감독과 이윤원 전 단장이 성적 부진을 이유로 동반 사퇴했다. 팬이 감독의 사퇴를 요구하기도 한다. 2006년에는 당시 LG의 지휘봉을 잡은 이순철 감독의 퇴진을 바란 팬들이 잠실야구장에서 사퇴를 촉구하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직접적으로 시위에 나서는 경우도 있다. 한화 김성근 전 감독과 KIA 타이거즈 김기태 전 감독이 대표적이다.


김성근 감독은 SK 와이번스 시절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란 기록을 세우며 뛰어난 성적을 거둔 명장이다. 팬이 많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한화에서 사퇴한 후 일본프로야구 소프트뱅크 호크스에 몸담고 있는데, KBO리그를 떠난 지금도 그를 응원하는 팬들이 남아있다. 지난해 KBO 퓨처스리그 팀과 교류전을 위해 한국을 찾자, 경기장에 김 감독의 팬들이 찾아와 팬서비스를 요청하기도 했다.


그의 한화 생활은 시위로 시작해 시위로 끝났다. 2014년 10월 한화그룹 본사 앞에선 1인 시위가 벌어졌다. 김응용 전 감독의 후임으로 김성근 감독을 원하는 한화 팬이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팬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 기대에 부응하듯 한화는 김성근 감독과 계약했다. 거액 FA도 영입하며 2007년 이후 멀어진 가을야구가 손에 잡힐 듯했다. 하지만 팬들에게 주어진 성적표는 6위와 7위. 팀 운영과 투수 혹사 등 논란이 이어지면서 팬심도 바닥을 쳤다. 영입 촉구 시위는 2년이 지나 사퇴를 외치는 시위가 됐다. 1인 시위뿐 아니라 집회 신고를 하고 단체 시위까지 벌였다. 김성근 감독은 2017시즌 도중 감독직을 사임했다.


우승 감독도 피할 수 없었다. 김기태 감독은 2017시즌 KIA의 우승을 이끌었다. 하지만 다음 해 5위에 그치며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무기력하게 탈락했다. 그리고 2019시즌 최하위를 기록하며 중도 사퇴를 결정했다. 성적 문제도 있지만 선수단 관리에서도 잡음이 나왔다. 베테랑 투수 임창용을 방출하면서 팬심은 등을 돌렸다. 광주-KIA 챔피언스 필드, 현대기아차 본사에서 팬들의 시위가 이어졌다. ‘김기태 퇴진 운동 본부’ 카페는 한때 회원 수가 만 명을 넘었다.


#팬심은 어디까지


그라운드에 불을 지르거나, 선수단 버스를 향해 소주병을 던지던 시기는 지났다. KBO리그의 팬 문화는 시대와 함께 바뀌어왔다. 일부 관중의 비매너가 아직 이어지고 있지만, 팬들의 시민 의식도 성장함에 따라 이전보다 성숙한 관람 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구단과 KBO도 관중 캠페인을 지속해서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온라인상에서의 비난은 계속 심해지고 있다. IT 기술의 급속한 발전이 이어지며 스마트폰 보유율이 88.5%에 달했다. 그만큼 인터넷을 통해 의견을 내는 야구팬도 많아졌다. 건전한 의견부터 심각한 수위의 비난까지 다양한 말이 오간다. 발전하는 기술에 윤리의식이나 가치관 등 사회적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면서 악플러가 인기를 얻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2010년엔 응원 팀의 선수와 구단 직원에게 수천 통의 욕설 문자 메시지를 보내 입건되기도 했다. 비속어가 섞인 비난이 선수의 SNS에 달리는 것은 이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비난은 선수뿐 아니라 프런트, 응원단까지 향하기도 한다.


프로는 성적으로 말한다. 특히 KBO리그는 많은 돈이 오가는 한국 최고의 프로 스포츠다. 애정도 미움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성적에 대한 비판은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과열된 팬심은 애정 어린 쓴소리를 넘어 상처로 번지기도 한다. 여자농구 국가대표 센터인 박지수는 인신공격성 악플에 시달리며 우울증까지 겪었다. KIA 투수 홍상삼은 부진했던 시기 악플에 시달리며 공황장애를 앓았다. 물론 팬은 프로야구의 주인이다. 그렇지만 누군가를 다치게 하는 팬심은 팬심이 아니라 폭력일 수밖에 없다.


코로나19로 인해 개막이 한 달 넘게 미뤄졌다. 선수와 구단뿐 아니라 팬들도 야구를 그리워하며 기다렸다. KBO리그에 대한 팬의 사랑은 남다르다. 사직야구장을 ‘세계에서 가장 큰 노래방’으로 만들고, 누구보다 팀에 관심 가득한 시선을 보낸다. 자신을 찾아온 팬과 이야기를 나눈 차 단장은 “팬분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만큼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글을 남겼다. 힘든 시기 속에서 선수는 팬의 소중함을 깨달았고, 팬은 야구에 대한 애정을 다시 확인했다. 관중 입장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며 ‘직관’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다. 프로는 팬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선수들도 팬의 응원 속에서 야구할 날만 기다리고 있다. 팬들도 이에 발맞춰 성숙한 팬 문화를 보여줄 때다.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0년 112호(8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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