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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GOUT Dream] NC 다이노스 강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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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인생의 전환점


매년 1,000명 안팎의 선수가 고등학교를 졸업한다. 대학교까지 합치면 더 많다. 10%의 확률을 뚫고 프로가 된다고 해도, 1군 엔트리에 들 수 있는 건 단 28명이다. 그리고 단 10명이 선발로 경기에 나간다. 바늘구멍 속의 바늘구멍인 셈이다. 모든 선수는 그 자리에 서는 것을 꿈꾸며 운동에 매진한다. 재능과 노력을 겸비했음에도 쉽지 않은 것이 프로다. 실패가 계속되며 스스로에 대한 확신을 잃기도 한다. 한 계단을 오르지 못해 야구를 놓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런 고민과 좌절 속에서 발전하고 성장하는 선수도 있다. 우리는 그들에게 ‘빛을 봤다’고 말한다. 올 시즌 들어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있는 강진성이 바로 그렇다.


Photographer 황미노 Editor 조예은 Location 창원NC파크

# ‘깡’진성 신드롬


<더그아웃 매거진>과 첫 만남이에요. 기분이 어떤가요? (7월 8일 인터뷰)


우선은 기분이 너무 좋아요. 야구를 잘하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난다고 해야 할까요? <더그아웃 매거진> 인터뷰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저도 프로 생활 9년 만에 처음 해보게 됐네요.


본격적으로 더위와 장마가 시작되는 시기예요. 컨디션은 좀 어떤가요?


잘 먹고 잘 자면서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어요. 날 것도 위험할 수 있으니 최대한 먹지 않으려고 해요.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연습을 하기보단 잘 쉬려고 합니다.


팬들이 없어서 아쉽겠어요.

극적인 맛이 떨어져요. 그러다 보니 좀 처지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그저 경기에 나가기만 해도 즐겁고 재미있었는데, 지금은 좀 허전해요. 앰프 응원으로는 부족해요. 팬들이 그립습니다.


그래도 NC 다이노스가 1위를 달리고 있어 힘이 날 것 같아요. 팀의 사기는 어떤가요.


매우 좋아요. 이동욱 감독님도 코치님도 좋은 분위기를 유지하도록 신경 써주세요. (양)의지 형도 뒤에서 잘 이끌어주고 있어서 힘을 내고 있어요.

본인도 6월 말까지는 타율 1위였어요. 정말 좋은 시즌을 보내고 있네요.


일단 제가 잘하고 있으니까 팀이 상위권에 있는 것 같아요. (웃음) 타율은 신경 쓰지 않아요. 지금은 그저 한 타석 한 타석 소중히 치르려 하고 있어요.


이번 시즌 들어 한층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그러게요. 항상 준비는 잘 해왔는데 잘 안 돼서 속상했어요. 스스로 실망도 했고, 시즌이 끝나고 후회도 많이 했어요. 그래도 지금은 잘 풀리고 있어 만족스러워요.


맹활약을 보이면서 비의 히트곡 ‘깡’과 함께 언급되곤 해요. ‘깡'진성이라는 별명은 어떤가요?


너무 좋아요. 야구를 잘해서 얻은 별명이잖아요. 야구를 못 할 땐 별명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원래 신경도 안 썼죠. 마침 제가 잘하고 있을 때 노래가 같이 유행해서 좋은 별명을 얻었어요.


어제도 선취 득점을 내는 2루타를 치고 홈까지 밟았어요. 1깡 하셨네요!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최대한 집중하려고 해요. 선두타자나 주자가 없는 것보다 앞 타자가 누상에 나갔을 때 솔직히 더 재미있기도 하고요. 긴장도 되지만 그래도 칠 수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아요.

#노력은 언젠가 빛을 본다


5월엔 MVP급 성적을 보여줬어요. 타격폼을 바꾼 영향이 크겠죠?


제가 고집이 있어요. 감독님이 작년부터 계속 폼을 바꾸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절대 안 바꿨거든요. 프로 들어와서 바꾼 건 처음이에요. 그 타격폼으로 퓨처스리그에서 좋은 성과를 냈기 때문에 확신도 있었고요. 이대로 끝까지 이어가면 분명 1군에서 잘 칠 수 있으리라 생각했죠.


고집을 꺾은 계기가 있을까요?


캠프 성적이 좋지 않았어요. 코로나19 때문에 시즌을 준비할 시간이 길었잖아요. 그래서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돌아와서도 두어 달 정도 연습 경기를 했어요. 그때까지는 폼이 그대로였는데 감독님께서 연습 경기 막바지에 “도저히 안 되겠다. 한번 바꿔보자”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지금의 타격폼이 나왔군요?


사실 그때도 바꾸지 않으려고 했어요. 코치님과 오래 상의했죠. 감독님께서 좋은 마음으로 제안하셨고, 코치님들도 도와줄 테니 바꿔보자고 설득해서 수긍했어요. 신기하게도 바꾼 첫날 대타로 나가서 안타를 쳤어요. 연습 경기 내내 안타 치기가 참 힘들다가 바꾸자마자 안타를 치니 이건가 싶었죠.


타석에서 어떤 부분이 편해졌는지 궁금해요.


예전보다 공이 정확하고 길게 보여요. 덕분에 카운트가 몰려도 좋은 타구를 만들어낼 수 있게 됐어요. 예전에는 투 스트라이크 상황에서 불안했는데, 지금은 어떻게든 공을 맞힐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공이 길게 보이니까 그런 점이 좋네요. (변화구 공략에도 큰 도움이 되겠네요.) 맞아요. 속구를 예상하다가 변화구가 들어와도 타격이 돼요. 저도 모르게 공을 잡아놨다가 때리게 되더라고요. 두 다리가 착지 된 효과겠죠?

옛날 자세로 1군에서 고전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퓨처스리그와 1군 투수의 공 자체가 너무 달랐어요. 저는 대타로 나서는 일이 잦아서 한 타석이 중요했는데, 정확도가 떨어지니 결과를 내는 일이 적었죠. 레그킥을 할 땐 힘이 있었지만 공을 정확하게 맞추지 못했어요. 제 느낌상으로는 맞으면 멀리 가는데 정확한 타격이 안 되니까 안타가 될 확률이 낮았죠. 지금은 다리를 땅에 찍고 치면서 정확도가 생겼어요. 안타나 홈런도 꽤 나오고요. 이젠 제 폼에 확신이 생겼어요.


좀 더 일찍 타격폼을 바꿨으면 어땠을까요?

고집을 조금만 덜 부렸다면 빨리 바꿨을 수도 있죠. 하지만 지금도 잘하고 있으니까 그냥 이 상황에 감사해요.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죠.


원래 좋은 배트 스피드가 더 좋아졌다는 평가가 있어요. 웨이트 트레이닝의 효과일까요?


몸을 잘 만들었어요. 웨이트 트레이닝만큼은 꼭 신경 써서 해왔어요. 야구를 못 할 때도 웨이트는 꾸준히 했죠. 트레이너님이 잘 가르쳐주셨고 저도 자주 물어봤어요. 제게 필요한 운동을 계속하면서 힘이 붙었고, 자연스레 배트 스피드도 늘어났어요. (어떤 운동 위주로 하나요?) 처음에는 이두나 삼두, 벌크업 위주로 했다면 지금은 회전 운동이나 민첩성 운동을 주로 해요. 복합적인 능력을 기르는 운동이 많이 생겼더라고요. 새롭고 효과적인 운동이 나오면 트레이너님에게 붙어서 배우려고 해요.


그래서인지 벌써 두 자릿수 홈런을 바라보고 있네요.

레그킥을 할 땐 힘이 있어도 공을 때리는 포인트가 뒤로 가곤 했어요. 지금은 두 다리를 착지하고 공을 길게 보니 타격 포인트가 앞으로 형성이 돼요. 왼발을 착지하고 최대한 앞에서 치려고 하니까 저도 모르게 넘어가는 것 같아요.

#야구와 함께 걸어온 인생


경기고등학교 시절부터 거포 유망주로 꼽혔어요. 청소년 국가대표 출신이잖아요.


‘야구가 쉽구나’라고 생각하던 시기죠. (웃음)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경기에 나갔으니까요. 감독님도 팍팍 밀어주시고 형들도 잘한다며 칭찬해주니 진짜 잘하는 줄 알았어요. 3년 선배로 오지환 형이 있어요. 제가 경기고에 들어가니까 ‘포스트 오지환’이라고 하더라고요. 이런 이야기까지 들으니 기분 좋았죠. 2학년 땐 더 잘했어요. 투수도 했고, 청소년 대표도 했어요. 그때만 해도 메이저리그에 가거나, 1차 1번을 받을 줄 알았어요. 프로는 당연히 가는 거였고요.


뜻대로 다 되는 시기였네요.


네, 그래서 자만했어요. 쉬엄쉬엄 해도 잘하겠구나 싶어 연습을 게을리 했어요. 특히 3학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엔 너무 운동을 안 했어요. 제일 중요한 시기에 놓아버린 거죠. 그렇게 3학년이 되고 나서 내내 슬럼프였어요. 게으름의 대가를 치른 셈이죠.


4라운드 지명을 받고 NC에 입단해 고졸 신인으로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줬어요.


그때는 정신없이 시즌을 보냈어요. 아는 것 하나 없는 신인이니까, 아침부터 저녁까지 코치님, 감독님만 따라다녔어요. 정신 차릴 때쯤 시즌이 끝났죠.


좋은 활약을 보여준 뒤 경찰 야구단에 들어갔어요.


경찰 야구단에선 정말 열심히 했어요. 나만의 것을 만들어 나오겠다는 결심을 했죠. 잘하는 선배도 있고, 친한 후배도 많았어요. 같이 운동하면서 제 실력을 쌓으려고 했죠. 유승안 감독님께서 제가 부진해도 계속 타석에 설 기회를 주셔서 배우고 발전할 수 있었어요.


포수에 도전하기도 했어요.


고등학교 시절부터 계속 3루수였어요. 그런데 유승안 감독님이 포지션 변경을 해볼 의향이 없냐고 하셨죠. 시작하고 2개월 만에 제가 못하겠다고 말했어요. (웃음) 그런데 끝까지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별도리가 없이 제대할 때까지 계속했어요.

포수로서의 강진성 선수를 스스로 평가한다면?


포수로서는 꽝이에요. 정말 어렵더라고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대신 타격에선 자신 있었어요. 성적도 좋았고요.


재활하고 포수에서 내야수로, 그리고 또 외야수로 자리를 옮겼어요.


말하자면 긴 사연이에요. 전역을 하고 NC 마무리 캠프에 합류하기 전에 고양 다이노스 야구장에서 포수로 연습하고 있었죠. 그런데 2루 송구 과정에서 욕심을 부렸는지 팔꿈치에서 ‘뚝’ 소리가 났어요. 너무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MCL(Medical Collateral Ligament, 팔꿈치 내측측부인대)이 끊어졌다고 하더라고요. 빨리 수술해야겠다는 소견을 받아 바로 했어요. 제대하자마자 끊어진 건 드문 일이라고 들었어요. 다행히 저는 야수라서 재활이 길진 않았고 7개월 만에 복귀했죠.


그리고 또 수술을 했어요.


의욕이 너무 앞섰죠. 블로킹 훈련 중에 무릎에서 뚝 소리가 났어요. 이번엔 연골이 찢어졌더라고요. 그때 다 내려놓고 1년 동안 재활만 열심히 했어요. 그리고 복귀해서 첫 스프링 트레이닝에 포수로 참가했죠. 김경문 감독님께서 마무리쯤에 “다시 내야수 하자”고 말씀하셨어요. 영 아니었나 봐요. 그래서 다시 내야수로 돌아갔는데, 감독님께서 외야도 도전해보자고 하셨어요. 내야만 보는 대타는 경쟁력이 떨어지고, 수비보다는 타석이 중요했으니까요. 제 자리를 만들어주시려고 한 것 같아요. 한 타석이라도 더 나가려면 외야도 해야 했죠.


이렇게 계속 포지션이 바뀌면 힘들지 않나요?


포지션뿐만 아니라 모든 게 다 쉽지 않았어요. 대전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선 펑고를 받다가 펜스에 부딪혀 앞니 3개가 부러졌어요. 당시에는 참 괴로웠죠. ‘이빨이 부러지다니, 하지 말라는 계시인가’라는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병원에 다녀와서 대타로 나가 홈런을 쳤죠. 그게 데뷔 첫 홈런이었어요. 병도 주고 약도 주고 참 아이러니 하더라고요.


지금 자리는 자신에게 잘 맞는 자리인 것 같나요?


지금은 1루수로 자주 출장하고 있어요. 처음엔 엄청 떨렸죠. 그래도 계속 선발로 경기에 나가다 보니 좀 여유가 생겼어요. 초반에는 ‘어디로 가야하지? 뭘 해야 하지?’라며 고민했는데 지금은 어디로 송구를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계산할 수 있게 됐어요. (선발로 뛰면 안정감이 생겼군요.) 한 타석씩 대타로 나갈 때는 정신이 없었어요. 잘 치면 좋고 못 치면 아쉽고, 그게 다였죠. 하지만 지금은 3~4타석씩 들어서니까 훨씬 나아요. 여유도 찾았고요. 그래도 첫 타석만큼은 집중해서 출루하려고 노력해요.


편한 타순이 있나요?


솔직히 하위 타순이 편해요. 하지만 타순 가리지 않고 내보내주시는 데 감사해요.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좋은 시즌을 보내고 있는데, 스스로 더 보완하고 싶은 부분도 있나요?


보완할 부분은 아직 많죠. 타석에서도 그렇고, 수비도 아직 미흡해요. 더 안정감 있는 수비를 해야 해요. 열심히 해서 발전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롤모델은 누구인가요?


누구를 말하면 좋을까요? (웃음) LA 에인절스 마이크 트라웃이 제일 멋있어서 어릴 때부터 그 선수 영상을 봤어요. 콜로라도 로키스의 놀란 아레나도도 좋아해요. 특별한 롤모델은 없고 그저 안정감 있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매 순간 열심히 첫 무대와 같이

입단 9년 차예요. 좋은 후배가 많이 들어와서 조급할 때도 있을 것 같아요.


누가 들어오고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았어요. 다만 나이가 계속 차는데 자리를 잡지 못하는 상황이 제일 불안했어요.


그만큼 올해를 시작하는 마음가짐이 남달랐겠어요.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부담감을 내려놨어요. ‘어떻게든 뭔가를 보여줘서 1군에 남아있겠다’는 생각을 버렸죠. 그냥 후회 없이 한번 해보자 했던 것 같아요.


‘노력하는 선수’로 유명해요. 이렇게 계속 도전할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부모님이죠. 고등학교 때부터 계속 뒤에서 지지하고 지원해주세요. 힘들게 뒷바라지해 주셨는데, 야구로 효도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계속 잘 안 풀리다 보니 올해가 끝나고 야구를 그만둘까 고민도 했어요. 마음을 내려놓고 나니 편하게 운동도 편하게 하고 성적이 나오더라고요. 점점 제가 꿈꾼 게 현실이 되고 있어요.


이미 한 시즌 출전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어요. 이대로라면 시즌을 완주하게 될 텐데, 주변에서 어떤 조언을 해주던가요?


의지 형, (박)석민이 형, (이)명기 형, (모)창민이 형이 조언을 해주세요. (주로 어떤 이야기인가요?) 석민이 형이 “너는 처음이고 풀타임 경험이 없어서 안될 때는 쉬고 잘될 때 더 해라”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해요. 전에는 안 좋으면 불안한 마음에 뭔가를 더 시도했거든요. 형들의 말을 들은 후에는 푹 쉬려고 해요.


5월에 최고의 한 달을 보냈지만, 6월은 조금 아쉬운 성적을 기록했어요.


많이 불안했죠. 그런데 주변에서 “못 칠 때 된 거다”라고 말해줬어요. 여태까지 잘 해왔으니 편하게 하라는 조언도 받았고요. 그런 이야기를 듣고 편해졌어요.


다시 반등하고 있잖아요. 올 시즌 목표가 궁금해요.


개인적인 목표는 두 자릿수 홈런이에요. 딱 하나 남았는데 그걸 빨리 달성하고 싶어요. 그리고 아프지 않고 최대한 많은 경기에 나가 활약해서 팀이 정규시즌 우승, 한국시리즈 우승하는 데 도움이 되고 싶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KT 위즈전에서 끝내기 안타를 친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연장 10회, 마무리 투수를 상대로 투아웃에 친 거라 짜릿했어요.


그럼 팬들에게는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나요?

지금처럼 하루에 ‘1일 1깡’은 한다.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기대할 수 있는 선수라는 평가를 받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선 우선 제 실력을 증명해야겠죠.

마무리 질문입니다. 강진성에게 야구란?


참 재미있고 저를 행복하게 하지만 어쩔 땐 너무 힘들게 하고 괴롭혀요. (그럼에도 야구를 할 수밖에 없는 매력은 무엇일까요?) ‘단짠’ 매력? 야구를 잘하면 너무 행복해요. 온통 제 세상 같죠. 부진할 때면 빨리 행복하던 순간으로 돌아가려고 해요. 잘 안 되는 걸 극복하는 것도 재미가 있어요. 비록 그 시기가 길었지만, 그걸 묵묵히 잘 이겨내고 지금 행복하게 하고 있어요.


안방 1열에서 응원을 보내는 팬들에게 한마디 부탁해요.


하루빨리 코로나 19가 종식돼 야구장에서 응원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응원에 보답하기 위해 열심히 해서 우승하도록 하겠습니다.


***

변화는 엄청난 결과를 냈다. 하지만 순전히 그것만이 지금의 실력을 만든 건 아니다. 9년의 세월이 있기에 지금의 그가 있다. 고민도 불안함도 양분이 됐다. 2020년, 강진성은 인생일대의 클러치 상황을 맞았다. 땀과 눈물, 노력으로 만든 주자가 득점권에 서 있다. 점수의 향방은 그의 배트에 달렸다. 과연 결과는 어떻게 될까?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분명 시원한 적시타가 드넓은 창원NC파크를 가를 것이다.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0년 112호(8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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