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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GOUT Monthly] 사라지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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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큰 노래방이 조용하다. KBO리그가 정규 시즌을 무관중으로 시작한 지 어느덧 두 달이다. 응원단은 인터넷을 통해 팬과 함께 응원한다. 빈 좌석은 각종 인형과 ‘팬 입간판’ 등으로 채워졌다. 대전한화생명이글스파크는 팬이 보낸 인형이 좌석을 가득 채웠다.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는 진짜 ‘무’ 관중이 등장했다. 끊이지 않던 관중의 응원 소리 대신 더그아웃에서 보내는 응원, 코치의 지시까지 들려온다. 하지만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하지 않는가. 관중이 없는 자리가 다른 소리로 채워져도 여전히 구장에는 허전함이 감돌고 있다.


에디터 조예은 사진 두산 베어스, 한화 이글스, KT 위즈

#생생해도 너무 생생한 현장음


이번 시즌부터 주심과 주루 코치가 마이크를 차면서 생생한 현장의 소리가 중계되고 있다. 관중 소리에 묻히던 심판의 삼진 콜과 비디오 판독 설명이 귀에 바로 들어온다. 지금껏 묻혀 있던, 보이지 않던 것들이다.


조용한 그라운드에선 작은 소리도 잘 들린다. 심판은 무선 마이크까지 착용하니 목소리가 더 생생하게 전달된다. 원래 듣지 못했던 이야기는 팬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키움 히어로즈 박동원이 큰 홈런을 쳐내자 이영재 심판이 감탄하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친근한 대화에서 팬들은 소소한 재미를 얻었다.


생각지 못했던 소리도 들리기 시작했다. 5월 14일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 주심을 맡은 오훈규 심판이 최주환의 삼진 판정을 내리며 뱉은 말이 폭풍의 중심이 됐다. 포수 정보근에게 바운드 여부를 물었다. 특정 선수에게 판정에 영향을 미칠 질문을 한 것이다.


KBO 2020 공식야구규칙에 따르면 심판원은 의심스러운 바가 있으면 동료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 하다못해 선수와 깊숙한 사담을 나눠서도 안 된다. 그러나 오 심판은 판정을 결정지을 수 있는 질문을 선수에게 던졌다. 심판의 공정성과 소신이 훼손됐다고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오 심판은 이튿날 퓨처스리그로 강등됐다.


#너의 목소리가 들려


투수의 기합 소리도 가감 없이 들린다. 한화 이글스 박상원은 공을 던질 때마다 기합 소리를 낸다. 관중이 있을 때도 항상 기합 소리를 냈지만 무관중 상황에선 유독 크게 들렸다. 5월 17일 경기에선 롯데 자이언츠 허문회 감독이 이를 항의하기도 했다. 타자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박상원은 이닝이 끝나고 사과했다. KT 위즈 이강철 감독도 기합을 지적했다. 공을 던지는 순간이 아니라 던진 이후에 소리가 난다는 것이었다.


‘기합 논란’은 계속됐다. KT의 외국인 투수 윌리엄 쿠에바스는 더그아웃에서 박상원의 기합을 따라했다. 검지를 입에 대고 조용히 던지라는 제스처도 취했다. 한화 한용덕 전 감독이 이를 지적하며 비신사적인 행위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박상원만 기합을 넣는 건 아니다. 메이저리그 통산 124승을 거둔 박찬호도 기합 소리로 유명했다. 중요한 순간이면 더욱 커졌다. 선수들도 공을 던질 때 소리가 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한다. 일종의 투구 루틴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관중의 응원이 없다 보니 작은 소리도 더 크게 들리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평소보다 뚜렷하게 들리는 상황이니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기합과 함께 트래시 토크도 화제의 중심에 올랐다. 박상원이 항의를 받은 날, 전준우에게 홈런을 맞고 흔들리자 롯데 더그아웃에서 조롱의 말이 나왔다. 9회 초 롯데 한동희가 한화 김진영에게 동점 홈런을 치자 “에이스 공 좋네, 공 좋아”라는 음성이 들렸다. 다분히 상대 투수를 조롱하고 비꼬는 말이었다.


트래시 토크는 이전에도 있었다. 더그아웃에서 이 같은 발언은 팀 동료를 위한 행동으로 평가받는다. 일종의 신경전으로 심각한 수위가 아니라면 용인된다. 하지만 적막한 야구장에서 더 크게 울린 야유는 팬들에게 그대로 노출된다. 지금까지는 ‘승부의 세계’에서 조용히 이뤄지던 행위가 수면 위로 나온 것이다. 모두 평소에는 보기 힘든 장면이다. 이전 같으면 팬들이 알지 못했지만, 지금은 작은 소리조차 그대로 전파를 탄다.

#관중 없는 야구는 적막해


프로 스포츠에서 관중은 중요한 존재다. 단순한 수입원을 넘어 프로 리그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열렬한 팬들의 응원은 팀의 사기를 올린다. 모든 사람은 주변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마치 1,000만 관객을 동원했다는 수식이 붙으면 영화에 대한 기대가 오르듯, 관중이 많으면 시청자는 흥미를 느낀다. 선수도, 시청자도 관중 수가 많으면 집중력이 오른다. 당연히 관중이 적거나, 흩어져 있으면 집중도가 떨어진다. 일반적으로 관중 수가 경기장 수용 인원보다 현저히 부족할 때, 현수막 등을 이용해 막아두는 이유다.


모든 프로 스포츠단은 팬을 위해 존재한다. 스포츠가 산업이 되고, 프로 리그를 운영할 수 있는 이유는 팬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코로나19로 경기장에 오지 못하는 팬들의 아쉬움을 달래려 노력하고 있다. KT는 응원단상에 대형 스크린을 놓고 ‘비대면 라이브 응원전’을 실시하고 있다. NC 다이노스는 관중석에 팬의 사진과 응원 문구를 담은 입간판을 설치했다.


코로나19 확산 추세가 꺾이지 않으면서 당분간 관중 입장은 힘들 전망이다. 팬들의 ‘떼창’ 대신 시원한 타격음, 주심의 삼진 콜, 더그아웃의 환호가 계속 구장을 채울 예정이다. 새로운 문제가 생길 소지가 다분하다. 유관중 경기에선 별문제가 되지 않았던 행위도 지금은 문제가 될 수 있다. KBO리그가 다 함께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선수도 구장을 채우던 팬을, 팬도 노을 지는 야구장을 그리워하고 있다. 시간이 나면 언제든 들를 수 있었던 야구장이 멀게만 느껴지는 시기다. 적막한 야구장이 팬들의 함성으로 뒤덮이는 그 날이 빠르게 찾아오길 바란다.

소경화 에디터: 현장감에 대한 갈증이 커져만 간다


야구팬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바로 직관러와 집관러다. 업무 외적으로도 야구장을 자주 찾는 나로서는 직관 특유의 분위기를 느낄 수 없는 것이 큰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집에서 주섬주섬 유니폼을 챙기는 순간부터 야구장에 들어설 때의 설렘, 잠실야구장 공씨네 주먹밥, 주황빛 석양으로 물드는 조명탑 뒤 하늘, 짜릿한 플레이를 더 극적으로 만드는 함성까지 뭐 하나 그립지 않은 것이 없다. TV 속 중계로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다. 


이러한 갈증은 팬 입장인 나뿐만이 아닌가 보다. 최근 무관중 경기 결과를 살펴보면 점수 차가 큰 경우가 잦다. 막판까지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는 타이트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는 경기의 흐름을 순식간에 좌지우지하는 현장 분위기의 부재로 인한 결과로도 해석할 수 있다. 혹자는 성급한 일반화라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선수들에게 역시 원동력이 사라진 건 분명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가 그립다. 


나상인 에디터: 야구장을 채우던 팬의 소중함을 느낀다 


응원은 앰프 소리가 들리니 어느 정도 충족된다. 오히려 야유 소리가 전혀 없다는 점이 허전하다. 1루 견제 응원은 KBO리그의 매력이기도 하다. 롯데의 ‘마!’를 필두로 각 구단만의 독특한 견제 구호는 야구를 보는 소소한 재미 중 하나다. 그것을 들을 수 없어 매우 아쉽다. 


또 하나는 홈런볼을 잡고 좋아하는 팬들의 모습이다. 홈런볼은 야구팬이 직관으로 얻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추억 중 하나다. 홈런과 관련된 대기록을 앞두고 있을 때면 외야 특정 구역에 바글바글 모여 앉은 팬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지금 박병호 선수가 300호 홈런에 아치 몇 개만 남기고 있는데, 평소 같았으면 고척스카이돔 예매를 알아보고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경기가 끝나면 지하철을 가득 메우는 팬들의 표정이 그립다. 9호선을 자주 이용하는데, 밤 10시쯤이면 잠실야구장에서 직관을 하고 나온 팬들이 열차 안에 많이 보인다. 각 팀 유니폼을 입은 팬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보면 그날의 경기 결과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평소에는 지하철이 혼잡해져 별로 달갑지 않은 풍경인데, 요즘엔 야구가 고프다 보니까 이런 것마저 그립다. 


송서미 에디터: 팬과 선수가 함께 호흡하는 날이 어서 오기를 


선수를 인터뷰하면서 가장 자주 들은 이야기는 팬들과 호흡할 수 없어 아쉽다는 말이었다. 팬들 역시 모니터로 즐기는 야구의 아쉬움을 토로했다. 에디터 역시 대면 인터뷰가 불가능해 전화 인터뷰로 소식을 전해 듣고 있는데 그들의 표정과 제스처를 담지 못하고 오로지 목소리만으로 감정과 의사를 담는 데 아쉬움이 남는다. 


이에 구단 마케팅팀은 올 시즌 무관중 경기로 선수단의 사기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인형 관중을 만들기도 했고, 팬들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구단 자체 TV를 활용해 소통의 창구를 활성화하고 있다. 하지만 팬들의 함성과 응원을 직접 듣는 것만큼 선수에게 힘이 되진 못할 것이다. 특히나 홈런이나 끝내기, 역전 등 극적인 순간을 선수와 팬이 함께 즐길 수 없다는 게 가장 슬프다. 하루빨리 현재 상황이 나아져 팬들이 경기장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신철민 에디터: 모든 순간이 그리움이다 


야구장을 가기 위해 내딛는 첫 발걸음부터 경기가 끝나고 응원가를 부르며 돌아가는 모든 순간이 그립다. 경기가 시작하기 전, 구장 주변의 북적북적한 분위기, 어두운 계단을 한 걸음씩 올라가 마침내 눈앞에 드넓은 야구장이 펼쳐지면 산 정상에 오른 것 같은 상쾌함이 느껴진다. 애국가가 끝나면 팬들의 박수와 환호로 경기가 시작하고 공 하나에 일희일비하는 시간이 이어진다. 


밀리고 있던 경기에서 기다리던 적시타가 터지면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모두 자리에 벌떡 일어나 환호성을 지른다.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친구다. 경기 내내 어색했던 옆자리의 사람과 하이파이브하고 어깨동무하며 얼싸안는다. ‘아파트’와 같은 응원가를 함께 부르면 분위기는 한층 더 무르익는다. 고대하던 마지막 아웃 카운트가 올라가면 그때만큼은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다. 경기장 바깥까지 들려오는 응원가가 승리의 여운을 이어준다. 당연한 줄 알았던 이 모든 게 당연하지 못한 지금, 이 순간이 빨리 사라지기를 기대한다. 


최윤식 에디터: 관중석의 다채로움, 집관러도 관중이 그립다 


야구가 색을 잃은 느낌이다. 경기장을 찾아가는 것보다 집에서 TV로 보는 것을 더 선호하지만 화면 속으로 보는 야구도 관중이 그리운 건 마찬가지다. 수천여 명의 팬들로 가득 메운 경기장은 홈과 원정으로 나뉘어 반반씩 같은 유니폼을 입고 있다. 그러나 그 속에도 저마다의 색깔이 있었다. 시원한 삼진에 주먹을 불끈 쥐는 투수를 따라 맥주를 불끈 쥐고 들어 올리는 회사원, 신명나는 응원가에 빠져 춤사위 한판을 벌이는 학생들까지 개성이 넘쳤다. 물론 구단별로 팬 입간판, 인형, 현수막 등으로 헛헛함을 채우려 노력하지만 사람이 내뿜는 열기를 메우기엔 역부족이다. 


KBO리그는 이 그리움을 발전의 밑거름으로 삼길 바란다. 적막함은 모든 소리에 귀 기울이고 집중하게 만든다. 이로 인해 가까이 있을 때는 미처 몰랐던 잘못이 보인다. 2020년 KBO리그가 그렇다. 불가항력으로 팬을 잃은 KBO는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이 위기를 기회 삼아 대안을 찾고 실천하는 노력을 보여줘야 한다. 현장에서 한 걸음 멀어진 팬들은 이제 모든 것을 명확하게 보고 있다.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20년 111호(7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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