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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GOUT Tip] 두 장으로 기록되는 역사

조회수 2019. 5. 3. 12: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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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퍼펙트게임’으로 만들어진 경기가 있다. KBO리그 레전드 투수인 최동원과 선동열이 펼친 1987년 5월 16일의 명품 투수전이 바로 그것이다. 그날의 승부는 결국 15회까지 가는 접전 끝에 2-2 무승부로 끝났다. 그 경기를 다시 보고 싶어 원본 영상을 찾아봐도 우리는 발견할 수 없다. 있어도 하이라이트 영상뿐. 그러나 우리는 경기에서 두 투수가 던진 첫 번째 공이 모두 볼이었음을, 마지막 타자는 삼진으로 잡았음을 알고 있다.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정답은 기록지에 있다.

에디터 강성은

몇 시간짜리 경기든 두 장으로 구성된 기록지는 한 경기의 내용을 모두 담고 있다. 선수들의 이름을 쓸 수 있는 칸과 그 옆에 그려진 네모의 칸들. 한 칸을 보면 한 타석이 보이고 전체를 보면 하루가 보인다. 그렇다면 그 기록지란 무엇일까?


#기록지가 뭐야?


기록지는 ‘갑지’와 ‘을지’로 불리는 두 장의 종이로 구성돼 있다. 출장하는 타자와 투수를 기록하는 부분이 있고 볼카운트와 각종 상황이 기호로 기록되는 네모 칸이 있다. 갑지와 을지는 비슷하게 생겼으나 역할은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기록되는 팀이 다르다는 점이다. 갑지에는 먼저 공격하는 팀의 타자와 먼저 수비하는 팀 투수의 기록이 담긴다. 원정팀 타자와 홈팀 투수의 기록을 적는 것이다. 을지는 그 반대다. 세세하게 살펴보면 갑지에는 관중 수, 박스스코어, 경기 개시 종료 시간, 소요 시간, 심판, 기록원, 비디오판독 내용 등을 기재하고, 을지에는 경기가 진행된 구장명, 온도, 습도, 일기, 풍향, 풍속과 홈런타자, 더블플레이를 적는다. 때문에 두 장의 종이는 항상 세트로 함께한다.

조금 더 자세하게 알아보자. 갑지와 을지의 왼쪽에는 타자의 이름을 쓰는 란이 있다. 타순에 따라 수비 위치를 함께 적는다. 타순 하나에 세 칸씩 있는데 이는 교체된 선수를 적기 위함이다. 타자 교체 시 표기는 사다리 모양으로 하며 앞선 타자의 마지막 타석 기록칸 옆에 표시한다. 만약 볼카운트 상황에서 교체됐다면 볼카운트란에 표시한다. 투수 교체 시에도 아래에 교체 선수의 이름을 적고 상대하는 첫 타자의 상황 기록란의 상단과 좌측에 물결로 교체를 표시한다. [그림 4]에 물결표를 보면 ‘여기부터 바뀐 투수의 기록’이라는 뜻이다.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상황 기록란은 어떨까? 투구 내용을 메모하는 위아래로 긴 볼카운트란과 타자의 상황을 적는 정사각형의 네모 칸을 하나로 보면 된다. 순서대로 위에서부터 아래로 쓰며 기호를 통해 나타낸다. 스트라이크(○), 헛스윙과 파울팁(⦵), 파울(△), 번트 파울(▲), 볼(\), 타격 완료(θ)로 표시한다. 번트 헛스윙은 헛스윙 기호의 원을 검게 칠하면 완성이다. [그림 1]을 참고해 옆에 다이아몬드가 그려진 정사각형 칸을 살펴보면 다이아몬드 모양은 그라운드를 표현한 것이다. 다이아몬드를 중심으로 점선으로 나뉜 구간은 각 루 간의 상황을 기록하는 곳으로 a구역은 홈과 1루, b구역은 1루와 2루, c구역은 2루와 3루, d구역은 3루와 홈 사이에서 생긴 상황을 풀어낸다. 야구가 많은 상황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요약하는 기호 또한 아주 다양하다. 이 글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몇 가지 기호를 소개해 독자들이 간단하게나마 기록지를 읽어볼 수 있도록 안내하려 한다.


먼저, 안타는 사선으로 나타낸다. 안타를 쳤다면 1루까지 선(/)이 하나 그어지고 2루타는 [그림 2]에서 볼 수 있듯이 ‘〉’로 필기한다. 3루타는 2루타에서 3루 방향으로 선을 하나 더 그으면 된다. ([그림 3] 참고) 선을 그린 후 공이 떨어진 위치를 야수 번호를 중심으로 점을 찍어 기록한다. 기준은 기록실이다. 예를 들어 타자가 우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를 쳤다면 1루까지 선을 긋고 a구역에 우익수를 나타내는 9을 써준 후 앞쪽임을 표시하기 위해 숫자 밑에 점을 찍어준다. 만약 중견수와 우익수 사이로 빠지는 2루타라면 ‘〉’와 함께 ‘8·9’를 적는다. ([그림 2] 참고) 직선타인지 플라이성인지는 숫자 위에 직선(―)과 곡선(⁀)으로 표기한다.


아웃의 경우 타자가 좌익수 뜬공으로 아웃됐다면 뜬공을 의미하는 F와 좌익수를 의미하는 7을 합쳐 ‘F7’이 된다. 그렇다면 3루수 플라이는? 그렇다. ‘F5’다. 이것을 a구역에 기입하면 된다. 땅볼은 수비수의 송구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에는 송구 과정을 적는다. 3루 땅볼을 예로 들어 3루수가 타구를 잡아 1루수에게 던져 타자가 아웃되는 것이므로 ‘5-3’으로 기록한다. ([그림 5] 아래 칸 참고) 1루수가 직접 잡아서 베이스 터치 아웃시켰다면 3A다. 3은 1루수를, A는 1루 베이스를 나타낸다. 1루는 A, 2루는 B, 3루는 C, 본루(홈)는 D또는 H로 표시한다. 만루 상황에서 포수가 타구를 잡아 3루 주자를 홈에서 베이스 터치아웃을 시킨다면 2D 또는 2H로 나타낸다. 그리고 이 기호는 주자가 3루와 홈 사이일 때 일어난 상황이므로 d구역에 써야 한다. ([그림 3] 참고)


다이아몬드 안쪽은 타자가 그 타석에 어떻게 됐는지 결과를 나타낸다. 아웃이 됐으면 순서에 따라 로마숫자로 Ⅰ(원아웃), Ⅱ(투아웃), Ⅲ(쓰리아웃)으로 기록한다. 만약 타자가 공을 치고 좌익수 뜬공으로 원아웃이 됐다면 F7을 a구역에 쓰고 가운데에는 ‘Ⅰ’을 기입한다. 득점했다면 동그라미를 그린다. 동그라미를 채우는 여부는 투수의 자책점인지 비자책점인지에 따라 다르다. 자책점이라면 빗금으로 채우고 비자책점이라면 흰 동그라미로 비워둔다. 반자책점도 있는데 이것은 말 그대로 동그라미를 반으로 나눈 후 오른 쪽을 채우면 된다.


홈런은 네모 칸 안의 다이아몬드 위에 모든 루를 지나쳤다는 의미로 ‘◇’를 그려 그 안에 동그라미로 투수의 자책점 여부를 표현한다. a구역에 홈런이 넘어간 위치를 적고 b구역에 비거리를 쓰면 홈런이 기록지 위에서 다시 태어난다. 자, 이제 [그림 4]를 다시 한번 보자. 기록지를 보니 타자가 중견수 키를 넘는 비거리 130m 홈런을 때렸고, 투수는 자책점을 기록했다. 그런데 이럴 수가, 네모 칸 주위에 물결표시가 돼있다. 그렇다. 투수는 교체되자마자 초구에 홈런을 맞았다.


후속 타자로 인한 진루 표시에 대해 알아보겠다. 진루한 루의 상황 표기 구간에 후속 타자의 타순을 괄호 안에 한자로 표기한다. [그림 5]를 통해 예를 들어보겠다. 위 칸이 5번 타자고 아래 칸이 6번 타자다. 5번 타자가 우전안타를 치고 나갔다. 그럼 이 안타는 a구역에 선을 긋고 타구의 방향을 기호로 나타낸다. 이후 6번 타자가 공을 타격해 5번 타자가 2루로 가게 됐다면 5번 타자 칸의 b구역에 (六)을 쓴다. 이는 ‘5번 타자가 2루로 가게 됐고 이는 6번 타자의 도움으로 인한 것’이라는 의미다. 6번 타자의 기록을 보면 3루 땅볼을 쳐서 3루수가 1루수에게 송구해 아웃될 때 5번 타자가 진루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안타를 치고 나갔으나 후속 타자가 모두 아웃이 돼 잔루로 기록됐다면 가운데에 ℓ을 적는다. ([그림 2] 참고)


삼진은 a구간에 K를 메모하자. 볼넷은 B, 사구는 HP, 고의4구는 IB다. 최근 생겨난 자동고의사구의 경우 볼카운트 칸에 X를 표시하고 IB를 기록한다. ([그림 6] 참고)

#기록원은 어떤 일을 해?


기록지를 채우는 기록원은 어떤 시간을 보낼까? KBO리그의 기록원은 경기 시작 두 시간 전에 출근한다. 기록지에 날짜, 온도 등 기본적인 경기장 환경을 적고 오더가 교환되면 선발 출장선수 명단을 작성한다. 심판의 ‘플레이 볼’ 사인과 함께 경기가 시작되고 기록원은 시간을 기입한다. 경기의 시작과 끝, 중단과 개시, 홈런, 비디오판독 등 정확하게 기록해야 하기에 시계는 필수품이다. 경기 중에는 내용을 적고 간단히 할 수 있는 통계를 작성한다. 심판의 마지막 이닝 세 번째 아웃의 시그널이 나오는 순간 경기가 끝나면 기록한 내용을 토대로 타격, 투구, 수비 등 개인과 팀의 성적에 대해 최종 정리를 한다. 관중 수, 최종 점수, 투수의 기록판정 등 모든 것을 담아야 일과가 끝난다.


지금까지 기록지부터 기록원까지 소개했다. 더 많은 내용을 담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페이지는 한정돼있고 글로만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아 아쉽게도 이 정도로 소개는 마무리하겠다. 이 글의 목표는 ‘기록지’를 처음 접하는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는 것이다. 관심이 생겼다면 그 다음 단계인 기록강습회를 추천한다.


#기록강습회에 가볼까?


KBO리그 모든 경기의 기록을 담당하는 KBO 기록위원회는 매년 1, 2월에 강습회를 개최한다. 실제로 현장에서 일하는 공식 기록원들이 직접 기록하는 법을 알려준다. 수업은 3일간 진행되며 마지막 날에는 실기테스트를 시행해 성적우수자에게 수료증을 발급한다. 성적우수자에게는 2월에 진행하는 전문기록원과정 수강의 기회가 주어진다.


에디터도 지난 1월 서울에서 열린 기록강습회에 참여했다. 3일 동안 기록지 작성뿐만 아니라 야구 규칙에 대한 설명까지 밀도 있는 강의를 들었다. 6시간씩 강의가 진행됐고 시험도 보기 때문에 느지막이 집에 도착하더라도 복습은 필수였다. 여러 부호를 외우고 기록해야 하는 사항들을 익히고 기록지를 쓰는 것도 연습해야 해 꽤나 힘들었다. 하지만 인내심과 집중력을 키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또한, 열심히 한 자에게 그에 대한 보상이 있는 법. 몇 주 뒤, 집으로 전달된 수료증을 보니 모든 것이 기억세포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저장돼 버렸다.


혹시 야구팬으로서 새로운 재미를 찾길 바라는가? 그렇다면 2020년 1월에 열리는 기록강습회에 찾아가 보자. 내가 알던 야구보다 더 넓은 세상이 열릴 것이다. 이제 막 입문한 이들에게는 강의 내용이 조금 어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질문을 기다리는 친절한 기록원분들이 쉬는 시간마다 돌아다니기 때문에 본인 하기에 따라 앞으로의 야구 관람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글과 말로만 이뤄진 수업이 아닌 다양한 영상과 그림을 통해 기록을 배울 수 있으니 이해하기에도 좋다.


접수할 때 한 가지 팁을 주자면 10시에 접수가 시작돼도 바로 등록이 안 될 수 있다. 에디터도 십여 분의 사투 끝에 접수에 성공했으니 안 된다고 관두지 말고 계속하길 바란다. 지금 안 열렸다고 ‘이따 해야지’라고 마음먹는 순간, 내년을 기약해야 할 것이다. 매년 수강자가 꽉 차는 강습회이니 말이다. 다음 겨울에는 기록이라는 새로운 소재로 야구의 또 다른 매력을 꼭 느껴보길 응원한다.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19년 97호(5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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