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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렌지 돌려도 비타민C 96% 유지하는 세계 3대 식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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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끈하게 쪄 호호 불어먹으면 든든한 식사가 되고, 기름에 통째로 살살 굴려 먹으면 휴게소에 온듯한 착각이 들며, 기름에 바싹 튀기면 고기를 먹는 것 같은 강렬함을 선사하는 채소가 있습니다. 가열해도 비타민C가 파괴되지 않는 효자 식품, 바로 '감자'인데요. 


주식에서 간식, 밥 반찬에서 패스트푸드까지 안끼는데가 없다는 식탁위의 감초에요. 그런데 전세계인의 사랑을 듬뿍 받는 감자가 천대받던 시절도 있었답니다. 책으로 쓰면 족히 10권은 나올거라는 감자의 이야기, 들어보지 않을래요?

이걸 어떻게 먹어요?
신대륙에서 온 악마의 열매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과 함께 발견한 것이 감자에요. 이때까지만 해도 감자는 먹을 수 있는 뿌리에 불과했죠. 정복자들이 유럽으로 돌아갈 때 식량으로 먹기위해 감자를 배에 실었는데요. 이때 처음으로 감자가 유럽으로 전해졌어요.



유럽으로 물 건너온 감자는 철저하게 외면당했어요(감자가 원해서 온 것도 아닌데 말이죠!). 1596년 스위스의 식물학자 카스파 바우힌은 자신의 저서에 '감자를 먹으면 배에 가스가 차서 붓고, 음란한 생각을 하게 되며 나병을 일으킨다'라고 묘사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감자에 대한 루머는 끝없이 생성됐는데요. 성경에 없는 작물로 만지기만 해도 병이 옮는 '악마의 열매'라고 불렸어요. 1630년, 프랑스의 브장송 의회는 "감자를 먹으면 나병에 걸린다"라고 단정 짓고 감자 심는 것을 금지하기에 이르렀답니다.

감자는 먹을 수 없는 작물로 낙인찍혔습니다.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꽃을 보기 위해 관상용으로 감자를 키웠어요. 감자를 무시하는 경향은 빈곤에 시달리던 하층민에게 더 두드러지게 나타났는데요. 아무리 배가 고파도 감자는 절대 먹지 않았어요. 가축의 사료로 감자를 활용할 뿐이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 감자의 유용함을 알리기 위해 평생을 바친 학자가 있었는데요. 바로 감자 전도사라고 불리는 프랑스의 농학자 '앙투안 파르망티에'입니다. 

유럽의 대기근이 시작됐을 때, 프랑스 정부는 막대한 상금을 걸고 밀을 대체할 구황작물을 구했어요. 이때 파르망티에가 루이 16세 에게 감자 보급을 제안했는데요. 파르망티에는 프러시아 7년 전쟁의 포로로 잡혀 있을 당시 감자를 먹으며 생을 연명했지만, 오히려 건강한 상태로 풀려났어요. 그가 내린 결론은 '감자는 훌륭한 빵 대용품, 세상에 알리자'라는 것이었죠. 

파르망티에의 제안에 따라 루이 16세와 왕비 앙투아네트는 감자꽃 장식을 달고 대대적인 감자 홍보에 나섰어요. 국영 농장에 감자를 심고는 "여기 심은 감자는 왕족과 귀족을 위한 것이다. 훔쳐 먹는 자는 엄벌에 처하겠다"라는 표지판을 세웠어요. 낮에는 경비를 삼엄하게했지만 밤에는 밭을 방치했는데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한 백성들은 감자 서리를 했고, 일부는 "감자가 맛있다!"라는 소문을 내기 시작했어요. 이런 부단한 노력과 리브랜딩 전략 끝에 감자가 식용으로 받아들여졌답니다.

삶과 죽음을 결정한
감자

감자는 전쟁과 함께 성장하고 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유럽에서는 크고 작은 전쟁들이 끊임없이 일어났는데요. 거듭되는 전쟁 때문에 식량이 턱없이 부족했고, 국민들의 배고픔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어요. 이때 사람들을 버틸 수 있게 한 원동력이 바로 감자였답니다.

1778년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의 전쟁은 30년 감자전쟁이라고 불립니다. 두 나라는 적군의 주식인 감자를 없애는 것을 주요 전략으로 삼았어요. 1789년 영국과 프랑스가 벌인 나폴레옹 전쟁 당시 식량이 부족해져 빵을 만드는 밀의 가격이 말도 안되게 비쌌죠. 영국인들은 난색을 표할 정도로 감자를 싫어했지만 나폴레옹 전쟁을 겪으며 감자를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전쟁의 굶주림을 감자로 이겨내고, 감자에 대한 편견 또한 전쟁이 벗겨줬다고 할 수 있어요.

제1차 세계대전에서도 감자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요. 미국 병사들이 독일 병사들의 주식이었던 감자밭을 습격해 불바다로 만들었고, 세계대전이 빨리 끝나게 됐어요. 일각에서는 독일이 감자 때문에 패망했다고 말한답니다.

유럽에서 감자를 제일 먼저 재배한 곳은 아일랜드에요. 영국은 지속적으로 아일랜드의 작물과 물자를 수탈했는데요. 다행이 감자는 수탈하지 않았고, 아일랜드 사람들은 감자를 주식으로 삼았어요. 기르기도 쉽고, 요리도 간편할 뿐 아니라 영양도 풍부했던 감자 덕분에 아일랜드의 인구는 200만에서 800만으로 급증하게 됩니다. 그러나 1845년 감자마름병이 아일랜드 전역의 감자밭을 뒤덮었고, 감자 농사를 모두 망치고 말았어요. 오직 감자에 의존해 오던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재앙과도 같은 일이었죠. 



1851년 감자 대기근은 끝이 났지만 100만 명이 굶어 죽고, 100만 명은 굶주림을 피해 나라를 떠났어요.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도 이때 이민 간 아일랜드인의 자손이라고 해요. 그 당시 100만 명은 엄청난 인구로 이 사건이 미국 이민의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보는 사람도 많습니다.

악마의 열매라 불리며 멸시 받았지만, 훗날 수많은 사람들을 굶주림에서 구한 감자. 영화 '마션'의 주인공도 흙과 배설물을 이용해 감자를 키우고, 먹으며 꿋꿋이 살아남는데요. 오늘 저녁은 뜨끈하게 쪄낸 감자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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