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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의 딱딱한 편견을 깨는 성평등 그림책 이야기

조회수 2021. 5. 9. 05: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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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편견 없는 세상에서 자랄 수 있도록 성 인지 감수성 교육 콘텐츠를 만드는, 딱따구리 유지은 대표

어릴 때 읽었던 그림책 속에는 늘 성에 갇힌 예쁜 공주, 공주를 구하려는 용감한 왕자가 등장합니다. 미디어 속에서도 연약한 공주는 분홍색 옷을 입고, 강인한 왕자는 파란색 옷을 입은 이미지로 그려져 왔습니다. 이렇게 성 인지 감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영유아 콘텐츠는 고정관념과 편견을 재생산할 수 있는데요.


스타트업 딱따구리는 이 견고한 성 고정관념의 벽을 뚫기 위해 교육 콘텐츠를 만듭니다. 성 평등 그림책 큐레이션 서비스 '우따따'를 운영하면서 영유아기 때 만들어지는 성 고정관념을 해결하고, 양육자와 영유아를 위한 워크북을 만드는 등 성 인지 감수성 성교육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딱따구리의 유지은 대표가 아이들에게 보여주려는 다채로운 세상 이야기를 루트임팩트 박영은 디렉터와 함께 들어보시죠.

* 본 콘텐츠는 루트임팩트 박영은 디렉터가 멘토 겸 질문자가 되어 딱따구리 유지은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딱따구리 유지은 대표

영은 안녕하세요, 저는 루트임팩트에서 일하고 있는 박영은입니다.


지은 딱따구리의 대표 유지은입니다. 반갑습니다. 딱따구리는 2019년 1월에 창업한 회사인데요. 영유아 대상으로 성 인지 감수성 성교육 교육 콘텐츠를 만든 지 벌써 2년 하고도 2개월 째네요.

영화 <빌리 엘리어트> 중 한 장면

영은 '그냥 돈 많이 벌어야지' 이 마음만으로는 사실 딱따구리 같은 회사를 운영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요. 어떤 계기로 이 회사를 시작하게 되셨나요?


지은 <빌리 엘리어트>라는 영화로 소개를 해볼까 합니다. 발레를 하고 싶어 하는 주인공 소년이 나오는 이야기인데요. 아버지가 "사내는 발레 같은 거 하는 거 아니다, 권투나 레슬링 같은 걸 하라"고 말하면서 화를 내거든요. 


제가 서비스를 구상했을 때 당시, 우리나라에서도 성 평등 이슈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었어요. 하루는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콘텐츠들을 보게 되었어요. 근데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이나 애니메이션에서 정말 많은 성차별적인 요소들이 들어가 있더라고요. '나는 여자니까 혹은 남자니까'라는 식으로 자신의 가능성을 제한하고, 남을 쉽게 재단하게 되는 요소를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학습하고 있는 거예요.

영은 어떤 콘텐츠가 혹시 그런 편견을 담고 있을까요?


지은 흥미로운 조사 결과들이 되게 많아요. 예를 들어서 미국에서 옷을 이렇게 조사해봤더니 남자아이들 옷에는 '장난꾸러기', '용감한', '히어로' 이런 식의 글씨들이 많이 있었는데, 여자 아이들에게는 '얌전한', '공주 같은', '예쁜' 이런 식의 문구가 많았다는 거예요.


그림책에서는 그림책의 주인공은 대부분 남성이고, 다음으로 주인공이 많은 게 동물 그다음이 여성 이런 순서거든요. 어느 정도로 격차가 심하냐면 지금부터 전 세계의 모든 그림책의 생산을 중단하고 여성 주인공으로만 그림책을 만들어 보자고 했을 때, 여성 주인공 그림책이 남성 주인공 그림책의 수만큼 나오려면 50년이 걸린다고 해요.


그만큼 성비 불균형이 심각한 거죠.


영은 그렇다면 지금 딱따구리가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것은 어떤 건가요?


지은 현재는 시중에 나와 있는 그림책을 성 인지 감수성 기준으로 큐레이션 해서 가정으로 보내드리는 큐레이션 서비스를 하고 있어요. 


단순히 그림책뿐 아니라 아이들에게는 고정관념이나 편견에서 조금 더 벗어나서 좀 더 다양한 상황과 다양한 캐릭터들을 만날 수 있도록 워크북 활동도 같이 있어요. 내가 주인공이 되어서 이런 문제를 해결해보는 활동 같은 것들이에요.

영은 이 서비스의 소비자인 어린이들이 다양한 그림책을 접하면서 새롭게 알게 되는 것도 많고, 재미도 느낄 것 같은데요. 서비스를 운영하시면서 감동을 받거나 기분이 좋으셨던 순간이 있으실까요?


지은 다섯 살짜리 여아를 두신 양육자분의 후기가 기억이 나는데요. 분홍색 옷이 아니면 입지 않고 역할 놀이를 할 때도 항상 "여기가 성이야"라며 구역을 정해두고, 그 구역에 들어간 다음에 "나는 공주니까 왕자가 와서 구해줘야 해"라고 하던 아이가 있었어요. 


그 아이가 저희의 그림책이랑 워크북을 만나면서 바뀌기 시작했어요. 스스로 성을 탈출하는 방식으로 짜인 워크북이라든지, 왕자를 용으로부터 구하는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모습을 가진 공주가 나오는 그림책을 보고서 ‘세상에는 이런 공주도 있구나’ 알게 된 거죠. 


그때부터는 꼭 왕자를 기다리지 않고 자기가 스스로 탈출하거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역할 놀이가 바뀌었다고 하시더라고요.


또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어요. 아빠가 된 한 남성분의 이야기인데요. 본인이 어렸을 때부터 사회가 말하는 남자다운 모습에 부합하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하시더라고요. 학창 시절에도 괴롭힘이나 놀림 같은 것을 받았고, 커서도 남자답지 못하다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아들을 낳으신 거예요.


'내 아들이 나와 같은 문제를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모르겠는 거죠. 그러다가 저희 서비스를 만나셨는데, ‘남자도 울어도 된다. 남자도 반드시 경쟁을 좋아하지 않아도 된다’와 같은 메시지의 그림책을 아이한테 읽어주셨다고 해요.


그때 오히려 본인이 치유 받는 기분이 들었다고 하시더라고요. 저희 같은 서비스가 잘됐으면 좋겠다는 후기를 써주셨어요.


영은 완전 감동적인 후기네요. 정말 그런 후기를 받으면 기분도 좋고, '내가 이 일을 하기 잘했다' 이런 생각이 많이 드실 것 같아요.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을 것 같은데요?


지은 맞아요. 제가 왜 창업을 하게 되었고, 우리가 꿈꾸는 세상이 무엇인지에 관해서 인터뷰한 기사의 '좋아요'와 '화나요' 수를 캡처한 사진을 가져와 봤어요. 디렉터 님이 보시기에는 사람들이 왜 '화나요'를 더 많이 눌렀을 것 같은가요?

(왼쪽부터) 딱따구리 유지은 대표와 루트임팩트 박영은 디렉터

영은 글쎄요. 사실 인터뷰 기사를 읽고 그렇게 화가 날 이유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는데요.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좀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여자 아이들은 공주가 되고 싶어 하고, 핑크색을 좋아하고, 남자아이들은 파란색 좋아하고, 칼싸움을 좋아하는 게 본능적인 거 아니야? 불편함의 렌즈를 끼고 보니까 그게 불편한 거지’라고 하시는 분들도 꽤 많은 거 같거든요.


지은 네, 맞아요. 저희가 서비스를 일구어나가면서 제일 어려운 점은 사회에 이미 만들어져 있는 고정관념과 편견과 싸우는 일이거든요. 그런데 이 사진이 단편적으로 저희 서비스를 아직 잘 모르시는 분들이 저희를 어떻게 받아들이시는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해서 가지고 왔어요. 


저희가 말하는 성 평등은 여자애들한테 공주 인형을 빼앗아서 공룡을 주고, 남자아이들한테는 공룡과 파란색을 빼앗아서 공주 인형을 주자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다만 아이들이 바라볼 수 있는 세상이 너무 한쪽에만 치우쳐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은 거예요.


그러니까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것을 보고, 다양한 것을 선택할 수 있게 다양한 것을 권해주자는 이야기예요.

루트임팩트 박영은 디렉터

영은 그러면 이렇게도 이야기해도 괜찮을까요? 굉장히 여러 가지 다양한 걸 다 읽고 나서 ‘그래도 엄마 난 핑크 공주가 좋아’라고 얘기를 한다면 그건 괜찮은 건가요?


지은 그렇죠. 그건 그럴 수 있죠. 그러니까 선택사항을 많이 주자는 거예요. 그리고 거기서 아이가 선택하는 것은 그 아이가 좋아하는 것이지, 여자여서 공주를 좋아한다는 식으로 가면 안 된다는 거죠.


영은 이 ‘화나요’의 숫자에는 오해에 기반한 것도 많지 않을까 라는 그런 생각도 들기도 하네요. 저는 제 인터뷰 기사에 '화나요'가 많이 달리면 충격받을 것 같긴 하거든요. 어떠세요?


지은 아, 근데 사실 해당 서비스를 처음 구상했을 때 각오를 했던 부분이에요. 악플을 거의 다 읽어요. 그런 걸 보시고 부모님은 조금 상처받아 하세요. 하지만 저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편이고요.


영은 강한 멘탈의 소유자시네요. 그럼 정말 속상하셨던 적도 있으세요?


지은 저는 우는 것보다 화를 더 많이 내서요. 울거나 좌절하는 것보다는 최근에 굉장히 많은 다양한 성 관련된 범죄들이 계속 사회에서 심각한 수준으로 터져 나오고 있잖아요. 사람들이 자꾸 저 가해자들이 이상해서 저 문제를 저질렀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거예요. 


사실 그 친구들이 처음부터 범죄자나 가해자로 태어난 것이 아닐 거고, 그들도 그렇게 자라난 거란 말이에요. 그래서 저는 젠더 이슈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 젠더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환경을 바꿔주려고 노력해야 하거든요. 그래야만 아이들이 차별과 고정관념을 학습하지 않고 자랄 수 있으니까요. 근데 우리 사회는 자꾸 범죄에만 자꾸 초점을 맞추니까 이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런 것 때문에 자주 분노하고는 합니다.


영은 이해가 갔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그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범죄자로 변신했거나 그렇게 태어난 게 아닐 텐데요. 그러면 소셜벤처로서 대표님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을 해나가고 싶으세요?

(왼쪽부터) 딱따구리 유지은 대표와 루트임팩트 박영은 디렉터

지은 제가 '돈' 사진을 가지고 온 이유는 간단해요. 제가 돈이 많아서 돈을 해결하겠다는 것이 아니고요. 처음에 이 서비스를 생각할 때, 정말 많은 분이 저한테 "이 사업은 영리나 민간 사업자로는 안 된다"고 하셨어요. 하지만 저희는 굳이 민간 사업자로 사업자를 냈고, 소셜벤처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실 소셜벤처라는 것이 사회의 문제를 비즈니스로 해결하는 거잖아요. 제가 해결하고 싶은 문제는 아주 뚜렷합니다. 영유아가 만나는 다양한 콘텐츠 안에 있는 어떤 성 고정관념이나 편견을 없앴으면 하는 것. 그러니까 영유아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들이 이제는 더 이상 기존의 방식대로 콘텐츠를 만들어내지 않는 것이 제가 해결하고 싶은 문제 중 하나거든요. 


이걸 콘텐츠 회사에 강요할 수는 없잖아요. 그때부터 '회사는 무엇을 보고 움직이는가'를 고민해봤어요. 결국 사람들의 돈을 따라 움직이더라고요. 소비자들의 구매 흐름이 바뀌어야 콘텐츠 회사들도 ‘아, 소비자들이 이런 식으로 그리는 걸 원하지 않는구나. 우리가 좀 더 다양하게 만들어야겠구나’라고 자각하고 만들 것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소비자들이 원하는 방향을 회사에 건의하거나 항의하는 방법도 있겠죠. 저희는 저희 서비스를 대신 구매하는 방식으로 소비자가 가지고 있는 파워를 보여주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잘 되면 당연히 콘텐츠 회사들도 그런 식으로 방향을 바꿔나가겠죠.


영은 그렇다면 대표님이 꿈꾸는 세상은 무엇인가요?


지은 아까 <빌리 엘리어트>에서 발레리노를 꿈꾸는 소년이 열심히 돌다가 벽에 부딪혔잖아요. 아마 영화에서는 이것이 세상에 정한 남성다움에 부딪힌 소년의 모습을 영상으로써 보여준 거 같아요.

영화 <빌리 엘리어트> 중 한 장면

아이들이 더 이상 이런 세상이 만들어 놓은 틀이나 벽 같은 곳에 부딪히지 않도록 갇히지 않도록 자신이 꿈꾸는 대로 행동하고 선택하고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는 환경이 제가 꿈꾸는 세상이에요.


영은 저는 이게 긴 싸움이 될 것 같거든요. 1~2년 안에 금방 끝나진 않을 거 같아요. 오래오래 딱따구리와 우따따가 같이 있어 주면 좋겠어요. 지치지 말고 계속해서 더 많은 선택지를 보여주는 회사로 나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 본 아티클은 2020년 12월 공개된 <어른들의 딱딱한 편견을 깨는 딱따구리>의 내용을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 루트임팩트 박영은 디렉터가 인터뷰한 성 인지 감수성 교육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 딱따구리의 유지은 대표의 이야기를 영상으로도 만나보세요.


글·편집 유정미






EO(Entrepreneurship & Opportu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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