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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O

4500억 매출 아이리버 디자이너가 말하는 디자인의 미래

디자인의 불모지였던 60년대 한국에서 피어나 한국의 산업 디자인 업계를 이끌고 있는, 디자이너 김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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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과 MP3가 구분되고, 수많은 피처 폰이 저마다의 개성으로 대결하던 2000년대. 회사를 가리지 않고 포터블한 국산 기기의 디자인을 선도한 한 디자이너가 있습니다. 그는 바로 1950년에 태어나 디자인의 불모지였던 60년대 한국에서 디자인의 꿈을 안고 미국으로 떠났다가 고국으로 돌아와 수많은 제품을 탄생시킨 김영세입니다.


당장 먹고살기도 힘든 시절부터 디자인을 해온 그는 한국이 많은 발전을 이뤄냈지만, 모든 산업이 보다 더 디자인 중심으로 가야 한다고 말하는데요. 그가 말하는 성장과 발전을 위한 요즘 시대의 디자인은 무엇일지 EO가 듣고 왔습니다.

디자이너 김영세 인터뷰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김영세입니다. 이노디자인을 설립한 사람이고요. 디자이너임과 동시에 현재 스타트업들과 여러 가지 꿈을 꾸는 투자자이기도 합니다.


어렸을 때 아이리버 MP3 써보셨나요? 그 MP3의 거의 모든 모델을 제가 디자인했어요. 삼성에서 나온 첫 번째 '가로본능' 모델도 제 작품이죠. 비교적 최근으로 보면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의 성화봉, 성화대도 있네요.

디자이너 김영세

Q. 언제 어떤 계기로 디자이너가 되기로 하셨나요?


16살에 디자이너가 되기로 한 우연하면서도 운명적인 계기가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놀러 간 친구네 집에서 여러 책을 열어 본 적이 있었는데요. 재미있는 게 너무 많은 겁니다.


그중에 한 책 겉장에 'Industrial Design'이라고 쓰여 있는데, 그게 그 당시 미국에서 유명한 디자인 매거진이었습니다. 그 매거진 한 권에서 신천지를 발견하고서는 디자이너가 바로 내 직업이라며 그 자리에서 찜했어요.

디자이너 김영세

Q. 영세 님이 16살 때라면 한국의 경제 발전이 아직 많이 이뤄지지 않은 1960년대였을 텐데요.


네, 그래서 당시 한국에서는 디자인 이야기가 풍부하지 않았던 거로 기억합니다. 볼거리가 진짜 없었던 시대라 서점에서 사서 본 매거진으로 이태리, 미국 쪽의 건축이나 디자인을 많이 찾아봤어요. 결국, 나중에는 직접 유학을 하러 가게 됐고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착륙하기 전에 비행기 유리창으로 내려다보는데, LA 공항이 어마어마한 거예요. '여기 대단한 나라다. 배울 거 많겠다. 미국에서 디자인 회사를 만들어야겠다. 그리고 그걸 통째로 한국에 가져가야겠다'라는 꿈이 생기고요. 제가 하고 싶은 일도 점점 눈에 보이기 시작했죠.


제가 미국에서는 일리노이대학교에서 석사를 마쳤는데요. 한 번은 우리 학교에 제가 한국에서 인상 깊게 본 <인간을 위한 디자인>이라는 책을 쓴 빅터 파파넥이라는 유명한 전설이 특강을 오셨어요. 그때 맨 앞에 가서 부탁했어요. 그 책을 한국어로 번역하게 해달라고요.


또, 정식 학생은 아니더라도 그분이 교수로 계시는 캔자스시티 미술원에서 한 학기 다니고 싶다고도 했습니다. 빅터 파파넥을 지도교수로 삼아서 말이죠. 놀랍게도 둘 다 허락해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일리노이에서 캔자스까지 왔다 갔다 하면서 그 선생님과 만났고, 세상을 위한 디자인이 무엇인지 배워서 그 생각을 여태까지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디자이너 김영세가 세운 회사 이노디자인

Q. 미국에서 디자이너로서의 커리어는 어땠나요?


커리어가 파란만장했습니다. 창업할 때까지 직장을 총 세 번 바꿨는데요. 학교를 마치고 나서 제일 가고 싶은 데가 당연히 디자인 회사였는데, 면접에서 수십 번 낙방하고 한 군데가 됐어요. 시카고 지역에서 제일 큰 회사 중 하나였어요. 근데 맨날 렌더링만 하라고 하니까 한 6개월 만에 다니기 싫어지더라고요.


이건 아니다 싶어서 이후에 전보다 작은 회사에 갔는데, 훨씬 더 재밌게 일을 했습니다. 그다음에는 제가 다니던 일리노이주립대에서 산업디자인 담당 교수를 모집한다는 공고가 뜬 걸 보고 감히 또 도전했어요.


될 것 같다는 생각보다는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운이 좋았는지 채용이 됐어요. 담당 교수로 지내는 2년 동안 엄청 열심히 일했는데요. 일을 너무 많이 하다 보니까 학생들에게 미안해지기 시작하더라고요. '나는 교수할 사람이 진짜 아니다. 회사를 만들자는 원래 내 꿈을 좇아가자'라고 생각하기 시작했고, 이노디자인을 만들었죠.

디자이너 김영세가 디자인한 아이리버 MP3

Q. 회사에 모멘텀이 되어준 아이리버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요?


회사를 1986년에 설립하고, 90년대 들어서 디자인을 무지하게 많이 했는데요. 프로젝트 의뢰가 들어오지 않으면 제가 작업을 못 하는 거예요. 구현하고 싶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해볼 기회가 없는 거죠.


그런 갈증을 느끼던 도중에 시드니에서 열린 'Design First'라는 세계 디자인 컨퍼런스가 한 번 열렸는데요. 그때 클라이언트가 의뢰하지 않았는데도 모든 아이디어를 총동원한 프로토타입을 만들어서 전시했습니다. 아이리버라는 한국의 작은 회사가 그걸 보고 클라이언트로 나타났고요.


아이리너 측은 이노디자인이 어떤 제품이 됐든 간에 컨셉을 자유롭게 잡고, 계속 디자인을 갖다 달라고 의뢰했어요. 신이 났고, 2000년대 초반에 아주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했죠. 모두가 아시다시피 아이리버는 크게 성공했고, 덕분에 저희에게도 비슷한 프로젝트가 많이 들어왔습니다.


전부 이노디자인이 디자인을 먼저 한 것을 기업이 상품화시켜 세계적으로 성공시킨 모델들이었죠. 늘 디자인이 우선이고, 만드는 건 그다음이었습니다.

Q. 80, 90년대보다는 최근이긴 하지만, 아이리버와 삼성 가로본능도 이제는 꽤 예전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영세 님이 생각하시기에 과거의 디자인과 현재의 디자인은 개념적으로 어떻게 다른 것 같나요?


한 가지 가벼운 예를 들어볼까요? 에어비앤비의 설립자들이 둘 다 로드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의 산업디자인 전공 졸업생인데요. 그 두 사람은 호텔을 디자인하지 않았어요. 대신 에어비앤비라는 숙박 시스템을 디자인해서 어마어마한 회사를 탄생시켰죠.


이전까지의 디자인은 'How to Design', 즉 어떻게 만들지에 초점이 가 있었습니다. 그게 스몰 디자인이라면 이제는 'What to Design', 무엇을 만들지가 중요한 빅 디자인의 시대예요.


이 말에 맞게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요즘은 누구나 디자이너가 될 수 있는 거예요. 세상을 바꾸기 위한 꿈을 사람이라면 말이죠. 창업자의 마인드로 스타트업을 설계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세상을 디자인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디자이너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바뀌고 있어요. 디자인에 대한 니즈가 사업 계획을 그리는 일부터 시작되니까요. 그만큼 디자이너가 남들이 상상하는 게 쉽지 않은 부분에서 부가가치가 더 큰 사업의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거기에 바로 스타트업 같은 혁신적인 기업들의 미래가 있습니다.

디자이너 김영세

Q. 현재 한국의 디자인 씬이 처한 현실은 어떤 것 같나요?


기존의 우리나라 기업들은 아직 디자인을 새로운 창조의 기회로 보지 못하는 것 같아요. 창의성에 대한 존경심이 없는 것 같고요. 독창적인 것을 만들 수 있는 디자이너들이 분명 있을 텐데, 가볍고 싸게만 물건을 만들어서 시장에 나가 경쟁에서 자꾸 지면 살아남을 수 있는 디자이너가 있을 리가 없죠. 


억울하게 묻혀 버린 디자이너들이 있다면 그건 정말 아쉽습니다. 근데 그 이유가 뭘까요? 지금까지 해온 방식이 경쟁을 반복하는 것뿐이었기 때문이죠. 늘 'Bigger is better, Cheaper is better'였던 겁니다.


이제는 반대예요. 예전에 유리했던 크고 오래된 회사가 오히려 불리할 때도 있습니다. 'Bigger is better'가 아니라 'Newer is better'의 시대예요. 'Bigger'를 가지고 있으면 'Newer'를 못 하니까요. 그래서 젊은 세대의 창업자들이 힘을 내야 합니다. 저는 그들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거라고 봅니다.


그 지점에서 작년부터 한국무역협회와 함께 만드는 김영세 스타트업 디자인 오디션이라는 콜라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참신한 회사들이 꽤 보이더라고요.


그중 어떤 팀은 피트니스 사이클에 관한 아이디어를 냈는데요. 땅의 굴곡, 각도에 따라 시트가 움직이더라고요. 그냥 피트니스 사이클이면 다른 업체와 경쟁해야 하는데, 그 팀이 만든 특허와 방식은 독보적이라서 경쟁을 할 필요가 없더라고요. 그런 아이디어를 가진 창업자와 디자이너, 그리고 투자자 이 셋이 만나면 어떤 꿈이든 이룰 수 있습니다.

디자이너 김영세 인터뷰

Q. 앞선 세대의 디자이너로서 영세 님이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바가 궁금합니다.


제가 수십 년 동안 안 가본 데가 없을 정도로 세계 방방곡곡을 다녔는데요. 우리나라는 문화 부분에서 제일 아쉬운 거 같아요. 근데 디자인이 국민적 문화가 될 수 있다면 경제 선진국뿐만 아니라 문화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봐요. 이에 제가 앞장서서 이제는 산업 전체가 디자인 중심으로 흘러가게 하고 싶어요.


물론, 왜 디자인 중심이어야 하냐는 의문이 들 수 있을 텐데요. 인간이 가진 최고의 재산은 창의력이죠? 로봇이나 AI 같은 디지털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우리는 상상력으로 그것들을 앞섭니다. 상상력이 만들 수 있는 건 뭐죠? 디자인이죠.


그리고 지금을 기준으로 보면 디자인은 꼭 디자인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에게만 중요한 단어가 아닙니다. 누구나 이걸 인식해야 할 정도로 중요성이 대두되었죠. 저는 미래에 그런 사람이 많아질수록 창의적인 사람이 우대받으며 돋보이고, 그들이 실력을 발휘해서 돈으로 돌아오며 글로벌하게 성공하는 나라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루어질 수 있겠죠? 꿈은 이루어지는 거니까요.

* 본 아티클은 2019년 10월 공개된 <4,500억 매출 아이리버 디자이너 김영세가 말하는 디자인의 미래>의 내용을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 디자인의 불모지였던 1960년대 한국에서 피어나 한국의 산업 디자인 업계를 이끌어 있는 디자이너 김영세 님의 이야기를 영상으로도 만나보세요.


글·편집 김정원

melo@eoeoeo.net






EO(Entrepreneurship & Opportu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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