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사법고시 합격 후 창업에 뛰어든 남자의 이야기

조회수 2021. 2. 7. 05:00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국내 최초 사업자를 위한 변호사 견적 플랫폼, 로앤굿 민명기 대표

평소에는 모르고 살아도 그럭저럭 괜찮다가 꼭 중요한 순간마다 몰라서 손해 보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법'입니다. 실생활의 예를 들자면, 이사할 때, 사고가 났을 때, 회사를 새로 다니거나 그만둘 때 등 여러 상황이 있겠죠. 정말 철두철미한 사람이 아니라면 아마 그때마다 부랴부랴 관련 법률 정보를 찾아 헤맨 경험이 한 번쯤 있을 겁니다.


리걸 테크 스타트업 로앤굿은 이 중에서도 보다 큰돈이 오고 가기에 개인보다 더 민감할 수밖에 없는 사업자의 영역에서 고객들에게 알맞은 변호사를 매칭시켜주고자 합니다. 그로써 단순히 정보를 몰라 격차가 생기는 정보 비대칭 그 이상의 정보를 알아도 격차가 생기는 지식 비대칭을 해결하고자 합니다.


사법고시 합격, 대형 로펌 입사로 걸을 수 있었던 탄탄대로 변호사 인생 대신 험난하지만, 더 큰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스타트업의 세계로 뛰어든 로앤굿의 대표 민명기 님의 이야기를 EO와 함께 들어보시죠.

로앤굿 민명기 대표 인터뷰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대형 로펌을 3개월 만에 퇴사하고, 현재는 법률 플랫폼 로앤굿이라는 스타트업을 창업한 민명기입니다.

사법고시 준비 당시 민명기 대표가 공부했던 흔적

Q. 어떻게 법조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나요?


학창 시절에 그냥 공부 잘하는 평범한 문과생이었습니다. 서울대에 가게 됐고, 23~24살부터 사법고시 공부를 시작했어요.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고요. 보통의 남자들처럼 군대를 전역할 즈음에 정신을 차린 거죠. 그때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철이 들었어요.


당시 제 세대는 로스쿨로 인해서 사법고시 정원의 빠르게 감축되고 있는 상황에 놓였었는데요. 그 와중에 고시 공부를 하려다 보니 개인적으로 굉장히 힘들었어요. 그렇지만 저는 '존버' 성향이 있어서 한 번 한 건 끝까지 해야 직성이 풀려요. 로스쿨을 안 간 채로 사법고시 공부를 끝까지 했고요. 결국, 27살에 최종 합격을 했습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합리적이지 못한 선택이었어요. 포기하지 못해서 끝까지 붙잡고 있었다고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니에요. 제 성격이죠.

로앤굿 민명기 대표

Q. 이후에 정석대로 법조인의 길을 갔다면 지금처럼 스타트업을 하고 계시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보통 사법연수원(이하 연수원)에서는 서울대 출신의 법무관을 할 예정인 어린 남자가 가장 유망하다고 보는데요. 저는 연수원에 들어간 이후에 정말 힘들었습니다. 고시는 합격하면 끝이니까 참고 견딜 수 있잖아요. 근데 연수원에서는 법이 직업으로 다가오잖아요. 그걸 못 견뎠죠.


분명 직업이 해결됐으니 불행할 이유가 이제는 없어야 하는데, 너무 불행했습니다. 두 달 정도를 매일 한강에 가서 몇 시간씩 생각했어요. 뭔가 잘못됐다 싶었어요. 그때가 살면서 처음으로 스스로 언제 행복한지를 생각해본 때였던 거 같아요.


계속 고민해보니 법조인이 기본적으로 원칙을 다루잖아요. 꼼꼼하고 정형적인 것을 잘 소화해내는 능력이 중요하죠. 근데 저는 항상 뒤틀린 걸 좋아하고, 새로운 것을 하고 싶어 하는 편인 거예요. 그런 저에게 연수원은 당연히 총체적 난국이죠. 


끝내 내린 결론은 법조인 안 해도 상관없다는 거였습니다. 어차피 소고기 먹으면서 안 자랐고, 닭갈비 먹어도 행복하니까 사회적으로 성공한 삶을 살겠다고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면서 살지는 않겠다고요. 20대에 그렇게 해본 거로 충분하다고 봤고, 연수원을 1년 휴직했습니다. 그 1년 동안 저에게 맞는 길을 찾으면 법조계를 떠나려 했고요.

Q. 휴직 이후에 가장 먼저 어떤 일을 했나요?


우리나라에 어떤 직업이 있는지 찾아봤어요. 그때 스타트업, 벤처라는 말을 처음 알게 됐어요. 그전까지는 아예 몰랐었고요. 만나는 분마다 연수원생인데 뭘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도 창업은 하고 싶다고 얘기하고 다녔어요. 스스로 사업을 잘할 수 있는 사람임을 납득하기 위한 무언가가 필요하겠다 싶어서 셀프 미션도 줬어요.


그 미션은 무조건 길거리에서 돈을 벌어봐야 한다는 거였습니다. 실제 고객에게 500원이라도 벌 수 있어야 뭐든 하지 않겠나 싶었죠. 그래서 제가 서울 사람인데,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으로 내려갔어요. 아이템은 대낮에 해변에서 사람들이 어울려서 놀 수 있는 액티비티였어요.


처음에 닭꼬치 먹어가면서 포장마차 사장님한테 물어봤어요. 여기서 장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그랬더니 아저씨가 "하지 마라. 그냥 마, 올라가라"라고 했어요. 그래도 닭꼬치 먹으면서 계속 장사 허락해주는 사람 좀 소개해달라고 했는데요. 그게 그곳의 질서를 유지하는 어둠의 세력들이고, 그들의 추천 없이는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결국, 일종의 최종 보스를 소개받았는데요. 굉장히 거친 분이라서 3분만 얘기하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빠르게 제 아이템에 관해서 설명했죠. 이런 말도 했어요. "시대도 변하고, 해운대에 사람도 많은데, 언제까지 장돌뱅이들이랑만 사업하실 건가요? 저는 장돌뱅이가 아닙니다. 아이템을 갖고 체계적인 사업을 하려는 사업가예요."


그분이 조용히 제 말을 들으시더니 "맞다. 너 같은 놈이 필요하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러기 쉽지 않아요. 원래는 누군가의 말을 잘 듣지 않으시는 분이거든요. 그래서 그분이 저를 자기 딸의 남자친구라고 소개해서 해운대 내의 최고 금싸라기 땅을 분양받을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 액티비티 부스를 설치하고 사업을 했는데, 나름 잘됐어요.


그러다가 제가 중간에 야반도주를 했어요. 칠성파와 또 다른 땅을 관리하는 세력 간의 다툼에 얽히는 바람에 아쉽지만 어쩔 수 없이 그 판을 벗어날 수밖에 없었어요.

로앤굿 민명기 대표 인터뷰

Q. 위험한 상황까지 겪어가면서 개인적으로 무엇을 느끼고 배우셨나요?


가장 많이 배운 건 깡, 맷집이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1,000원을 벌려고 목숨을 내놓고 장사하는지를 배웠죠. 제가 장사를 했던 해운대 구역에서는 분쟁이 터지면 그냥 때리거든요. 실제로 물리력이 충분히 개입하는 시장에서 두려움을 피부로 느끼면서 장사를 했으니 깡이 좋아질 수밖에 없어요.


자존심을 내려놓는 법도 배웠어요. 법조인은 조금 번듯한 일이에요. 그래서 자존심 상할 일이 많지 않아요. 사업은 하다 보면 자존심 상할 일도 있고, 돈 때문에 고개를 숙여야 하기도 하죠. 하나라도 더 팔려고, 한 명이라도 더 모집하려고 하다 보면 그럴 일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해운대에 다녀온 이후로는 멘탈이 흔들린 적이 없어요.

Q. 야생에서 구르다가 다시 법률 쪽으로 돌아와서 창업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부산에서 작은 사업을 하면서 가장 많이 느낀 게 어쨌든 제가 제일 잘하는 일을 해야겠더라고요. 더해서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법률을 너무 모른다고도 생각했어요. 심지어 업력이 긴 분들도 법률 지식을 너무 모른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법률 지식만 알면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을 모른다는 이유만으로 눈 뜨고 당하는 경우도 많이 봤고요.


그 두 가지 생각이 겹치면서 여러 외도를 거친 끝에 법률 사업을 해야겠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10년 동안 공부한 게 법률이니 저에게는 이 길밖에 없다 싶었어요. 제가 법률가로서 사는 게 힘들었던 거지, 법률 자체에는 흥미가 있었거든요.


그 길로 연수원으로 돌아갔고, 연수원 생활을 잘했어요. 좋은 로펌을 가려는 목적이 아니라 진짜 법을 제대로 알고 싶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했거든요.

로앤굿 민명기 대표

Q. 현재 로앤굿의 아이템은 어떻게 찾게 되었나요?


저는 법무관으로서 실무적인 경험을 굉장히 많이 했는데요. 법무관을 마치고서는 대형 로펌 법무법인 세종 M&A팀에 들어갔어요. 약 3개월 정도 근무했는데, 그때부터 리걸 테크 쪽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베타 서비스를 비영리로 운영했었고요. 2년 정도 만에 질문지 기반의 유형별 법률 상담 데이터를 2,000~3,000건 정도 알게 됐어요.


그 과정에서 법률 시장에서 돈과 실수요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점이 중요한 게 법률 시장에서는 실수요와 허수 수요를 구별하는 것이 어려워요. 예를 들어, 누가 게임을 하다가 저한테 욕을 했다고 쳐볼게요. 제가 그 욕한 사람이 너무 싫어서 앙갚음하고 싶어 하는 상황을 두고서도 법률 상담이 가능할까요?


원칙적으로는 가능해요. 근데 사실 이런 경우는 실수요라기보다는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분노에 가깝죠. 의뢰인이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상담을 받기를 원하지는 않거든요. 그럼 어디서 실수요를 찾아야 할까요?


저는 그 답이 사업자라고 생각했고, 로앤굿의 아이템으로 연결했어요. 법률은 무조건 비즈니스 옆에 있어야 해요. 사업자를 대상으로 비즈니스 법률 분쟁을 제대로 해결하기만 한다면 법률 시장의 실수요자를 많이 커버할 수 있을 거거든요. 또, 이전까지는 그걸 하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느꼈고요.

Q. 그래도 법률이라는 영역이 워낙 허들이 있다 보니 새로운 방식으로 혁신을 한다는 게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하셨을 것 같은데요.


약 5~10년 전에 법률 관련 플랫폼이 등장했을 때, 가장 큰 의구심은 '과연 변호사가 그 플랫폼에 가입할 것인가?'였습니다. 그때만 해도 변호사인데 플랫폼에 가입하면 다들 이상하게 생각했거든요. 변호사인데 왜 품위 떨어지게 플랫폼에 가입하냐는 거죠.


그런데 이제는 인식이 많이 바뀌었어요. 플랫폼이 변호사들에게 주요한 마케팅 수단으로 인식됨과 동시에 좋은 클라이언트를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채널로 받아들여지고 있어요. 소비자들도 요즘은 '법률도 당연히 온라인에서 검색할 수 있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졌고요.


IT 기술도 발달했어요. 법률 콘텐츠를 플랫폼에 녹이기 쉬운 환경이 조성된 거죠. 확실히 예전보다 리걸 테크 서비스가 훨씬 더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이 형성되었다고 강하게 느꼈고, 그래서 저는 타이밍을 놓치면 이 흐름을 탈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지금 해야만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커요.

로앤굿 민명기 대표

Q. 실제 팀 빌딩, 서비스 론칭 등 초기의 진척 과정은 어땠나요?


로펌을 퇴사하면서 거의 동시에 투자 결정이 이루어졌는데, 팀원들은 원래부터 있었어요. 제 개인 빚으로 계속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있었거든요. 정식 서비스 론칭이 거의 한 달 만에 빠르게 이루어진 것도 그 때문이죠.


론칭 이후에는 또 한 달 만에 150명의 변호사분이 바로 가입해 주셨어요. 한국무역협회 법률 부문 공식 협력사로 선정되기도 했고요. 관공서뿐만 아니라 삼성이나 하나 금융, KT 등 대기업과도 함께 회원사를 확보하는 논의가 현재 진행 중이에요. 최근 들어서는 견적 서비스를 론칭한 지 3개월만에 변호사 견적 1천 건을 돌파했습니다.

Q. 로앤굿이 바라보고 있는 시장을 대략 어느 정도로 정의해볼 수 있을까요?


김앤장, 세종 등 대형 로펌에서 차지하고 있는 시장이 약 2조 원이 넘는데요. 그 외에 약 5조 원 정도의 시장이 현재 중소 로펌이 가져가고 있는 시장이에요. 이곳에는 브랜드가 있는 곳이 없죠. 거의 2만 명이 넘는 변호사들이 파편적으로 각자의 영업력을 기반에 두고 소송 수임을 하고 있어요. 저희는 이 5조 원의 시장을 타겟팅하고 있습니다.

로앤굿 민명기 대표

Q. 앞으로 로앤굿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는 무엇이고, 또 그것을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해결할 생각인가요?


법률 시장은 정보 비대칭을 넘어서 지식 비대칭이 너무 심한 시장이에요. 정보 비대칭은 내가 어떤 정보를 획득하기만 하면 되는 상황이잖아요. 제가 쓰는 말인 지식 비대칭은 정보가 있어도 당사자가 정보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한 상황을 뜻해요.


그래서 정보 비대칭은 정보만 주면 끝나는 문제지만, 지식 비대칭은 정보만 준다고 해서 절대 끝나지 않아요. 가령, 고객이 변호사를 5명 정도 소개받고, 그중 한 명은 선임하면요. 선임되는 순간부터 법률 지식이 부족한 을이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법률 시장은 브로커를 강하게 규제했었죠.


그 규제가 결국 플랫폼이 맞서서 극복해야 하는 규제인데요. 브로커는 클라이언트와 변호사를 매칭하는 데 깊숙이 개입하지만, 플랫폼은 양쪽을 소개하는 데 그쳐요. 둘 사이에 어떤 상담이 일어나는지, 또 클라이언트가 어떤 변호사를 선택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개입하지 않죠.


그래서 앞으로 리걸 테크의 가장 큰 과제는 투명하게 지식 비대칭을 해결하는 겁니다. 다른 플랫폼처럼 변호사를 많이 확보함으로써 성장을 일궈내는 데서 그치면 안 돼요. 플랫폼 안에서 어떤 법률 서비스가 일어나는지, 어떤 변호사가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는지를 고객이 판단할 수 있게끔 실질적으로 도와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지금 로앤굿이 고객에게 맞춤형 변호사들을 보여주고, 그 변호사들과 소통할 수 있는 클라우드 기능을 제공하는 이유입니다.

로앤굿 민명기 대표

Q. 마지막으로 명기 님이 로앤굿을 통해 사업에 임하는 자세에 대한 이야기가 듣고 싶습니다.


초반에도 말씀드렸듯이 저는 제 인생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존버라고 생각해요. 저는 될 때까지 하는 사람이거든요. 개인적으로는 그런 성향이 되게 미련하다고 느껴지기도 해요.


누군가는 창업자의 유형을 두더지와 여우로 나누기도 하는데요. 두더지는 하나의 굴을 계속 파는 스타일이고, 여우는 여러 가지를 병행하면서 되는지 안 되는지를 간 보면서 영리하게 선택하고, 아니다 싶으면 바로 빠져나오는 스타일을 뜻해요.


그중에서 저는 정말 전형적인 두더지 스타일이에요. 굴만 팔 뿐인데, 그게 즐거워요. 굴을 파다 보면 반대편 세상이 나올 거라고 생각하고요. 그러니까 두더지죠. 그런 우직하다면 우직하고, 미련하다면 미련한 스타일이기에 저는 일련의 작은 상버 경험을 끝으로 법률로 사업을 하겠다고 했을 때 여기에 뼈를 묻겠다고 생각했어요.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술자리에서 사업을 왜 하냐, 왜 사냐 같은 말을 종종 하잖아요. 저는 죽을 때 뿌듯하게 죽고 싶어요. 헛살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었으면 좋겠어요. 근데 그렇게 느끼려면 내가 가진 모양대로 열심히 살아서 내 모양만큼 세상에 좋은 영향을 미쳐야 할 거 같아요. 그래야 뿌듯하게 죽을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래서 지식 비대칭 격차를 해결하기 위해서 지금 로앤굿을 하고 있는 거예요. 사실 로앤굿이 세상에 미미한 영향을 끼칠 수도 있고, 소리소문없이 사라질 수도 있어요. 그러나 저는 이 과정에서 분명 의미 있는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해요. 리걸 테크는 발전할 거고, 발전해야 하고, 기존의 지식 시장 역시 그래야 해요. 그렇게 될 거고요.


그 사이에서 저라는 사람이 법조인의 삶을 놓고, 제 인생을 걸어서 존버하면 어떻게든 도움은 될 겁니다. 그게 찬란할 거라는 막연한 희망으로 존버를 하는 건 아니에요. 존버는 그냥 그 전체 과정에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 본 아티클은 2020년 10월 공개된 <억대 연봉 대신 존버를 선택한 서울대 출신 변호사>의 내용을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 사법고시 합격, 대형 로펌 입사를 내려놓고 리걸 테크 스타트업에 인생을 건 로앤굿의 대표 민명기 님의 이야기를 영상으로도 만나보세요.


글·편집 김정원

melo@eoeoeo.net






EO(Entrepreneurship & Opportunities)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