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개발자 출신이 성수동에서 수제화를 만드는 이유

조회수 2021. 2. 5. 17:1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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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화보다 편한 구두를 만드는 수제화 브랜드, 쓰담슈즈 백승민 대표

스타트업은 익숙한 것에 질문을 던지고 바뀌지 않을 법한 고정관념에 도전합니다. 오늘 EO가 만나볼 성수동의 수제화 스타트업, 쓰담슈즈는 구두가 불편하다는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구두는 왜 불편할까?'라고 질문했습니다.


자체 개발한 쿠션 인솔(깔창)로 운동화처럼 편한 구두를 제작한 쓰담슈즈의 백승민 대표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편하기만 한 구두는 예쁘지 않다는 고정관념에 도전하고 있는데요. 운동화처럼 편한 구두를 넘어 운동화보다 편한 구두를 만들기 위해 달리고 있는 쓰담슈즈의 이야기를 EO와 함께 들어보시죠.

쓰담슈즈 백승민 대표 인터뷰

Q.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운동화처럼 편한 구두, 쓰담슈즈를 운영하는 어썸FNC 대표 백승민입니다. 쓰담슈즈는 수제화 브랜드로 발바닥 굴곡에 잘 맞는 쓰담슈즈만의 테크니컬 인솔을 개발해 운동화처럼 편한 구두를 만들고 있습니다.


발볼 넓이와 발등 높이, 발가락의 모양까지 반영해 구두를 구매하실 수 있는데요. 쓰담슈즈에서 출시한 시그니처 스틸레토* 시리즈는 지금까지 1만 족 이상 판매됐고, 재구매율도 굉장히 높습니다.

* 길면서 얇고 굽이 높은 하이힐 또는 부츠


혹시 가수 조권 씨가 출연한 뮤지컬 <제이미>를 아시나요? 뮤지컬에서 주인공들이 신었던 빨간 하이힐이 바로 쓰담슈즈가 제작한 구두입니다. <제이미>가 남자 주인공 4명이 빨간 하이힐을 신고 춤을 추는 작품인데, 조권 씨가 그 작품 연습을 하이힐을 신고 하다가 다리를 다쳤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쓰담슈즈에 조금 더 편한 구두가 필요하다며 직접 제작을 요청하셨고, 저희가 구두를 협찬할 수 있었습니다.

쓰담슈즈 백승민 대표 인터뷰

Q. 창업 전에는 '삼성맨'이었다고 들었습니다.


회사에서도 그렇고 학창 시절에도 사업을 하는 게 더 즐거웠던 것 같아요. 대학 축제 때도 축제를 즐기기보다 물건을 떼 와서 파는 게 더 재밌었고요. 그런 활동을 하다가 저도 취업이라는 관문을 만났고 삼성전자에 개발자로 입사했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제가 굉장히 미미한 존재라는 걸 느꼈던 것 같아요. 자동차의 나사 정도라고 해야 할까요? 저는 제가 만든 걸 통해서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기뻐할 때 행복한 사람인데 회사에서는 실현하기가 어렵더라고요. 직장 생활의 여러 부분이 저와 안 맞는다고 느끼니까 스트레스도 커졌어요. 그 길로 퇴사해 창업을 준비했습니다.

Q. 소프트웨어 개발과 수제화는 관련이 없어 보이는데, 왜 구두를 선택하셨나요?


퇴사 후에 아는 대표님께 연락이 왔어요. 본인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개발팀을 만들고 있는데 세팅을 좀 도와달라고 하셔서 잠깐 그 회사에 몸담게 됐죠. 출근해서 보니까 직원분들이 아침부터 굉장히 갖춰 입고 출근을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점심 먹으러 나갈 때는 잘 갖춰 입은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나가시는 거예요.


"지금 옷에는 오늘 신고 왔던 구두가 훨씬 잘 어울리는데 식사하러 갈 때 왜 다들 슬리퍼를 신으세요?"라고 여쭤봤죠. 모두 똑같이 대답하시더라고요. "불편하니까요. 구두는 꼭 필요할 때만 신어요."


대답을 듣고 생각해보니 저도 마찬가지더라고요. 구두는 불편하니까 경조사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신고, 그나마 신는 동안에도 불편해서 힘들었던 기억만 남고요. 그 순간 '이 문제를 해결하면 재밌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단 네이버를 뒤져봤죠. 찾아보니 일차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없었어요. 제가 행동이 먼저인 타입이라 그다음에 바로 성수동을 찾아갔습니다. 우리나라 수제화는 다 성수동에 있으니 성수동으로 무작정 찾아간 거죠.


성수동 구두 공장이나 수제화 판매점에 찾아가서 이것저것 여쭤봤어요. 그러다 '이 문제는 내가 해결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에 창업을 시작했습니다.

Q. 생각해보면 지금까지의 구두는 '편하다'라는 수식어가 정말 어울리지 않는 것 같네요. 편한 구두를 개발하신 과정이 궁금합니다.


처음에는 정확한 사이즈를 제공하자는 논리로 사이즈 추천 쇼핑몰을 시작했습니다. 사업 초반에는 사이즈가 정확히 맞지 않아서 구두가 불편하다고 분석했거든요. 구두가 불편한 이유를 사이즈에서 찾은 거죠.


개인적인 경험으로 보면, 저도 칼발이라 구두를 신으면 사이즈가 제대로 맞은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사이즈가 맞으면 구두 자체가 편해질 거라는 단순한 논리로 시작했습니다.


쇼핑몰에서 내 사이즈 확인하기를 누르면 '고객님은 평소 이 정도 사이즈를 신으시니 이 구두는 240을 신으세요'라고 추천해주는 기능을 만들었어요. 무료 교환과 무료 반품 서비스와 함께 시작했는데 반품이 엄청 많은 거예요. 추천한 사이즈가 맞지 않았던 거죠. 왜 이렇게 사이즈가 안 맞는지 궁금했어요.


그래서 반품하려는 고객님께 전화를 드려서 직접 찾아가 사이즈를 측정해드렸죠. 직접 측정해보니까 실제 사이즈와 조금씩 다르더라고요. 고객님께 직접 측정한 치수로 제작한 맞춤 구두를 제공해드릴 테니 신어보시겠냐고 묻고 바로 제작해서 보내드렸습니다. 반응도 굉장히 좋았고 판매율도 엄청 좋았어요. 맞춤 구두 제작으로 피벗했죠.


그런데 맞춤 구두 후기 역시 좋지만은 않았어요. 맞춤인데도 불편하다는 의견이 많았고, 치수를 쟀는데도 사이즈가 안 맞는다고 하시는 분들도 많았죠. 쓰담슈즈의 고민과 궁금증은 그때부터 시작된 것 같아요.


'맞춤으로 제작했는데 왜 사이즈가 안 맞을까? 구두 자체가 불편한데 사이즈만 맞게 한다고 편한 걸까?' 하는 고민들이죠. 고민 끝에 치수는 정량적이지만 편하다고 느끼는 건 정성적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났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제 논리가 짧았던 것 같아요. 정확한 사이즈를 제공하면 불편함이 해결될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던 거예요. 지금처럼 구두를 잘 알고 있는 상태에서 그때로 돌아간다면 그렇게 쉽게 결정하지 못할 것 같아요.

쓰담슈즈 공식 홈페이지

Q. 그때부터 편한 구두를 찾기 위한 본격적인 개발 여정이 시작된 건가요?


네, 쓰담슈즈의 가장 큰 특징은 깔창이라고 부르는 인솔이에요. 발 모양에 맞춘 인솔을 자체 개발하기 위해 엄청나게 노력했죠. 쿠션을 어디에 넣어야 편한지 계속 변형해보고 테스트했습니다.


쓰담슈즈 디자이너가 남자분인데 직접 하이힐을 신고 정말 극한의 테스트를 많이 하셨어요. 일부러 하이힐을 신고 산에도 올라가 보고 계단도 많이 오르락내리락하셨죠. 남자가 하이힐 신고 걸어 다니면 이상하게 보일까 봐 '구두 테스트 중입니다. 이상한 사람 아닙니다'라고 적힌 종이를 등에 붙이고 다니면서 테스트를 했어요.


그렇게 계속 반복하면서 지금의 모양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편하기만 해서는 또 판매가 안 되더라고요. 착화감만큼이나 넘어야 할 커다란 산이 있었죠.

Q. 어떤 문제였나요?


저희가 굉장히 편한 구두를 만들었다고 자부하며 찾아가는 서비스까지 제공했는데요. 소비자분들이 구두를 신어보시면 100명에 99명은 편하다고 말씀하셨어요. 너무 편하고 좋다고 하시는데... 구두를 사지는 않으시는 거예요.


한번은 고객님께 편한 구두인데 왜 구매하지 않으시냐고 여쭤봤죠. 그랬더니 "너무 편한데 못 생겨서 안 산다"라고 하시는 거예요. 고객이 원하는 건 예쁜 구두를 편하게 신는 거지, 편하기만 한 구두를 신는 게 아니었던 거죠.


그렇게 편한 구두를 예쁘게 만들기 위한 또 다른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필요한 곳에만 쿠션을 넣어서 지금의 구두를 출시했어요. 현재 버전의 구두는 편하면서 예쁜 구두를 만들어야 한다는 고민에서 나온 결과물입니다.

Q.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셨는데, 그 과정에서 남모를 고충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아까 찾아가는 서비스라고 말씀드렸는데, 이게 측정기만 들고 가는 게 아니에요. 줄자와 철로 된 기계는 물론, 신발도 적게는 10켤레부터 많게는 18켤레까지 들고 다녔어요. 그렇게 열심히 했죠.


그런데 밤만 되면 술 취한 고객님이 전화로 "구두가 안 맞는다. 너 때문에 다리가 아프다. 어떻게 변상할 거냐?"라고 하면서 화를 내시니까 정말 힘들더라고요. 열심히 했는데도 반응이 부정적이니까 다들 힘들었어요.


당시에 맞춤 서비스를 종료하는 것도 굉장히 빠르게 결정했거든요. 사이즈를 측정해서 제공해도 반품 요청이 많은 걸 보고 사업적으로 전혀 유지될 수 없다고 판단했어요. 빠르게 접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했습니다.


내일 당장 회사가 잘못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1~2주를 더 끌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가 빠르게 결론을 내버린 건데, 너무 독선적으로 진행한 부분은 지금도 팀원들한테 참 죄송해요.

Q. 앞으로 고객들이 쓰담슈즈를 어떻게 인식하길 바라시나요?


제가 인터뷰를 하거나 기사를 내면 항상 욕을 많이 먹었어요. 인터뷰에서 하이힐이 편하다고 말씀드리면 그렇게 편하면 너나 신으라고 말씀하시고요.


쓰담슈즈는 구두를 꼭 신으라고 말하는 브랜드가 아니에요. 저조차도 구두를 매일 신지 않아요. 운동화도 신고 여러 종류의 신발을 다 신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구두를 신어야 하는 상황이 생기잖아요. TPO(Time, Place, Occasion)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구두를 신어야 할 때 단 한 시간이라도 편하게 구두를 신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첫 아이템으로 하이힐을 고른 것도 가장 편하게 신기 어려운 제품이 하이힐이기 때문이었어요. 하이힐 중에서도 스틸레토처럼 뾰족한 제품은 정말 불편한 구두거든요. 가장 신기 어려운 구두를 가장 편하게 제공하기 위해 선택한 겁니다.


지금은 플랫이나 로퍼처럼 낮은 굽도 있고, 다양한 종류의 구두를 편하게 신으실 수 있도록 판매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쓰담슈즈를 하이힐을 강조하고 구두를 강요하는 회사로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구두를 신어야 하는 순간에 단 1분이라도 편하게 신을 수 있으면서도 디자인이 좋은 구두를 만드는 곳으로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쓰담슈즈 백승민 대표 인터뷰

Q. 쓰담슈즈가 앞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저희의 미션이자 목표는 늘 운동화보다 편한 구두를 만드는 거예요. 불가능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어떤 목표를 향해 계속 달려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겁니다.


고객분들이 쓰담슈즈 매장을 방문하시거나 온라인 사이트를 보실 때 '쓰담슈즈 구두는 무조건 편하니까 디자인만 고르면 돼' 하는 브랜드가 되는 게 최종 목표이자 미션이에요.


여기에 최근 하나가 더 추가된 목표가 있는데요. 저희가 성수동에서 계속 구두를 만들다 보니까 성수동에 계신 수제화 장인분들을 자주 만나요. 이탈리아 제품은 명품이라고 생각하고 이 제품을 만드는 분들도 다 명인이라고 생각하잖아요. 저는 성수동에서 수제화를 만드는 분들이 더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성수동 수제화 장인분들과 이분들이 만드는 명품을 더 알리고 싶습니다. 성수동 수제화 장인과 기술자분들에 대한 처우가 개선되고 쓰담슈즈만큼 그분들의 위상도 함께 올라갈 수 있도록 앞으로 더욱 노력할 계획입니다.

* 본 아티클은 2020년 8월 공개된 <삼성전자 개발자 출신이 성수동 수제화거리로 간 이유>의 내용을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 삼성전자 개발자에서 성수동에서 편하면서도 예쁜 수제화를 만드는 쓰담슈즈의 대표 백승민 님의 이야기를 영상으로도 만나보세요.


글·편집 이영림






EO(Entrepreneurship & Opportu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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