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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벤져스 CG를 만드는 회사에서 일하는 한국인

조회수 2020. 11. 6. 05: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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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을 현실처럼 보이게 만드는, ILM 장유진 R&D 엔지니어

지난해 개봉한 영화 <라이온 킹>은 컴퓨터 그래픽 기술의 한계가 끝이 없음을 보여줬습니다. 사자의 갈기 하나하나도 디테일하게 표현해낸 그 수준이 실재인지 아닌지 분간이 어려울 정도였죠. 이는 VR 안경과 블랙 박스 극장 기법이라는 방법을 동원한 결과라고 합니다.


오늘 EO가 소개하는 분은 이렇게 끊임없이 발전하는 CG 기술을 선도한다고 말할 수 있는 프로덕션 중 한 곳에서 근무 중입니다. <어벤져스>, <쥬라기 월드> 등으로 유명한 인더스트리얼 라이트 & 매직(Industrial Light & Magic, 이하 ILM)에서 R&D 엔지니어로 활약 중인 장유진 님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시죠.

Q.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저는 ILM에서 R&D(연구개발)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 장유진이라고 합니다. ILM은 루카스 필름 안에 있는 계열사로, 영화 속 CG 전반을 담당하는 회사입니다.


VFX 시각 효과를 담당하는 최초의 회사이기도 한데요. 작업했던 유명한 영화로는 <어벤져스>나 <쥬라기 월드> 등이 있습니다. 주로 특수 효과가 많이 들어가는 영화를 만드는 편이죠.

Q. 현재 회사에서는 어떤 일을 하시나요?


제가 하고 있는 일은 버추얼 프로덕션(Virtual Production)이라고 불리는데요. 주로 실제 촬영 현장에 흡사한 가상의 스튜디오를 만들어서 여러 사람이 효과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모션 캡처로 예를 들어볼게요. 배우가 딱 달라붙는 쫄쫄이 옷에 트래킹할 수 있는 마커를 붙이고 연기하면, 실제로 봤을 때는 되게 우스꽝스러워도 화면으로 봤을 때는 큰 공룡이나 무서운 괴물로 보여줄 수 있어요. 근데 배우가 실제로 나오는 결과물이 어떨지 모르기 때문에 공룡이나 괴물을 연기하는 게 어려울 수 있잖아요.


그럴 때 저 같은 사람이 촬영한 장면을 실시간으로 렌더링하고 시각화해요. 원하는 그림에 가장 흡사한 결과물을 미리 감독과 상의하고요. 촬영은 현장에서 따로 진행되고, VFX 작업자들은 책상에서만 작업했던 예전과 작업 환경이 무척 달라진 겁니다. 또한, 저희는 작업물들이 후반 작업으로 잘 넘어갈 수 있게끔 도와주는 기술도 개발해요.

Q. 처음에는 어떻게 VFX 분야에 몸담게 되신 건가요?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정말 좋아했습니다. 대사를 외울 정도로 같은 영화를 보고 또 봤어요.


그러다 대학교에 진학할 때, 자연과학부에 들어가게 됐는데요. 처음에는 어떤 게 적성에 맞을까 하면서 포토샵, 웹 디자인, 홈페이지 제작 등 여러 가지를 해봤는데, 전부 다 왠지 제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건 아닌 것 같았습니다.


뭘 해야 할까 고민만 하던 찰나였는데, 어느 날 학교 서점에 가서 책 구경을 하다가 '기초 컴퓨터 그래픽스'라는 책을 발견했어요. 제가 다닌 서강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님이 쓰신 책인데요.


대충 훑어보는 정도로는 솔직히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더라고요. 관련 지식이 전무한 채로 동그라미나 큐브를 어떻게 사진에 입힐 수 있는지에 대한 내용을 이해할 리가 만무했죠. 그래서 그냥 그 자리에서 책을 사서 집에 가져갔습니다.


책을 산 게 대학교 1, 2학년 즈음이었는데요. 사 온 책에 관한 수업을 들으려면 4학년 1학기 정도가 되어야 했습니다. 선수과목이 꽤 있는 거예요. 책을 품 안에만 계속 안고 있다가 나중에 결국 수업을 듣게 됐어요.


교수님이 그 수업의 마지막 강의를 하실 때, 컴퓨터 그래픽스 연구실에서 이런 연구를 하고 있으니 관심 있는 학생은 찾아오라고 하셨는데요. 저는 관심이 있었으니 교수님을 정말 찾아갔습니다.


그때부터 저희 학교 연구실에서 대학원생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되게 쓸모없는 줄 알았던, 학부생일 때 배웠던 숫자들이 컴퓨터로 들어가면 신기한 영상을 만들어 낸다는 걸 깨달았어요. 개인적으로 더 많은 흥미를 갖고 공부를 열심히 했고요.


마침 또 같이 공부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없어진 터라 연구실에 새로 들어간 게 무척 기뻤던 거 같습니다. 제가 원래 수학과에 컴퓨터공학과를 복수전공을 했는데, 하필 학교를 같이 다니던 남학우들이 다 군대에 갔었거든요. 프로그래밍이라는 게 같이 해 보면서 배우고 공부해야 하는 건데, 그전까지 과제를 비롯해 모든 걸 외롭게 혼자 했었거든요.

Q. 그렇게 한국에서 공부하시다가 어떻게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신 건가요?


실무 영화 작업을 연구개발하는 쪽은 한국 산업에서 크지 않았기 때문에 대학을 졸업하고 멘토도 없이 직장에서 일을 했었는데요. 좀 더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처음부터 미국에 가고 싶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다만, 세계의 모든 사람이 보는 영화에 참여해보고는 싶었어요. 해외의 VFX 아티스트들이 쓰는 기술이 무엇일지 궁금했고, 작업자들이 실제로 쓸 수 있는 툴도 개발해보고 싶다는 꿈이 있었고요. 


처음 해외 쪽으로 알아볼 때는 어떤 회사가 있는지도 솔직히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크레딧에 어떤 회사가 있는지를 먼저 봤어요. 해당 회사의 웹사이트에 가서 사람 뽑는지도 보고요.


그다음에 제가 대학원과 당시 다니고 있던 회사에서 일하면서 만들었던 영상을 모아서 저를 표현할 수 있는 2분 정도의 짧은 영상을 만들었습니다. 이력서도 써서 회사 스무 군데 정도에 온라인으로 지원했었죠. 또, 1년에 한 번씩 컴퓨터 그래픽스 쪽에서는 굉장히 유명한 시그라프(Siggraph)라는 학회에서 항상 같이 열리는 취업 박람회도 갔고요.


시그라프에 가기 전에 다들 안 될 거라고 하니까 저도 이력서를 뿌리기만 하고 와야겠다고 생각했는데요.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품고서 핑크색 봉투에 이력서와 로고와 라벨을 붙이고 제가 만든 영상이 들어 있는 DVD를 담아서 제출했습니다.


그랬더니 행사 첫날 첫 번째 인터뷰 기회가 찾아온 겁니다. 한 서너 분 정도가 인터뷰 장소에 앉아 계셨는데요. 옆에 있는 큰 모니터에 제가 만든 영상을 함께 보면서 제가 그걸 어떻게 작업했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어요.


근데 제가 바보 같았던 게 자기소개만 영어로 준비하고 나머지는 준비를 안 해 갔던 겁니다. 질문을 하나도 못 알아듣겠는 거예요. 그나마 'Particle'이라는 단어 하나를 알아들어서 파티클에 관한 제 경험을 막 이야기했던 것 같아요. 패기 넘치던 아이였죠.

Q. 영어 구사 능력이 완전하지 않은 채로 미국에 가서 일하기가 쉽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미국 회사에 합격해서 미국에 도착한 지 10일 만에 근무를 시작했어야 했는데요. 영어도 안 되다 보니 자존감이 크게 낮아지고, 자격지심이 생기더라고요. 가기 전에 한국에서 '미국에서는 초과 근무를 하면 무능력해 보인다더라' 같은 이야기를 많이 듣다 보니 그러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는데도 많이 힘들었어요.


심지어 이메일 하나를 써도 잘 쓰고 싶었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이 저에게 보낸 이메일 내용을 템플릿화했습니다. '인사말은 이렇게, 마무리는 이렇게' 이런 식으로 퍼즐처럼 조각조각 나눈 내용을 끼워 맞춰가며 메일을 보냈었죠.

Q. 실시간 렌더링에 관한 업무를 하기 시작한 것이 미국에서 일을 하시던 도중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학교 다닐 때 유체 시뮬레이션을 연구했었는데요. 제가 잘하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미국에서도 유체 시뮬레이션을 더 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 와 보니까 제가 공부할 때 보던 논문을 쓴 사람들이 실무를 보더라고요. 경쟁력 측면에서 저는 다른 분야로 가봐야겠다 싶었죠.


유체 시뮬레이션이 아닌 분야로 나아가기를 선택하면서 어떤 걸 하더라도 그저 최선을 다하기만 하면 많은 걸 배울 수 있겠다, 더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마음 하나만으로 실시간 렌더링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게 됐고요.

Q. 지금까지 실무를 진행해 오면서 학교에서 배우고 연구한 게 실질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었나요?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실무를 보면서 필요에 따라 배웠던 기초 지식을 다시 찾아보게 돼요.


저희가 하는 일이 현실의 요소를 수치로 표현하는 거잖아요. 이를테면, 책상이나 의자를 밀었을 때 어떻게 밀리는지도 결국 역학인데요. 저희는 연속적인 공간에 정의된 함수를 컴퓨터 안에서 이산화*된 상황으로 계산해서 그 역학을 나타내는 거죠. 말로만 들으면 무척 어렵게 느껴지는데, 사실 이게 전공자들에게는 대학교 1, 2학년 때 배웠던 것들입니다. 

* 연속적인 함수나 데이터를 불연속적인 점으로 변환하는 프로세스


이런 지식이 차곡차곡 쌓여서 하나의 큰 성이 되는데요. 각각이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다고 느껴지더라도 어느 순간에는 분명 필요해집니다. 행렬 변환, 구의 정의, 점에서의 거리 같은 건 컴퓨터상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계산되어야 하니까요.


저로 예를 들면 대학원 때 유체 시뮬레이션을 공부했지만, 지금은 유체 시뮬레이션이 아닌 걸 공부하고 있잖아요. 제가 그럴 수 있는 근간에는 그래픽스라는 기초 학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본이 없다면 어떻게 새로운 걸 만들겠어요.

Q. 지금까지 일을 해오면서 작업에 참여했던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어떤 작품일까요?


2015년에 개봉한 <쥬라기 월드>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작품은 저희 버추얼 프로덕션이 실제 작업에 제대로 적용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어요. 영화를 보시면 4마리의 랩터가 나오는데, 그 4마리가 실은 전부 저희 회사에 있는 연기자들이에요. 공룡의 포즈를 사람들이 연기하고, 모션 캡처 데이터를 후반 작업에 넘긴 거죠.


그렇게 진행한 작업들이 실제와 거의 흡사하게 마지막 장면까지 쓰이게 됐는데요. 당시 사람들이 저희가 했던 4마리 랩터의 실시간 퍼포먼스 렌더링이 쉬운 작업이 아니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왜냐하면, 사용하고 있는 에셋(데이터)이 최종 퀄리티와 같은 에셋이어서 다루기에 무거웠거든요.


다행히 저희가 그걸 성공적으로 딜리버리해냈어요. 실제 영화에 해당 장면이 나올 때는 자식을 낳은 기분으로 굉장히 기뻤던 거로 기억합니다.

Q. 영화에서 VFX라는 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영화, 특히 실사 영화에서는 저희의 존재가 보이면 안 됩니다. '아, 저거 CG네' 같은 말이 나오면서 저희의 모습이 드러나는 순간 그 영화는 잘 못 만든 영화가 되는 거니까요. 최대한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만들어야 해요. 없지만 실제로 있는 것처럼 만드는 게 저희 기술인 셈이죠.


그게 바로 VFX 아티스트가 되려면 현실 세계와 미학적인 요소에 관심이 많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한데요. 빛이 어떻게 반사되는지 등 실생활에 대한 모든 반응에 대한 관심이 많아야 소위 'CG티'가 나지 않는 작업을 잘 해낼 수 있거든요. VFX는 그런 사소한 관심에서부터 출발하는 것 같습니다.

Q. 마지막으로 VFX 분야 혹은 해외로 나가 일을 하고 싶은 분들에게 전하고 싶으신 말이 있을까요?


꼭 VFX 분야가 아니어도 좋으니 각자 자신을 들여다보고, 무엇을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지를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것도 좋지만, 적어도 자신을 잘 파악하고 무언가 결정했을 때는 남의 말에 많이 휘둘리지 않았으면 해요.


그리고 너무 많은 것을 갑자기 한 번에 이루려고 하기보다 도전하는 영역을 조금씩 넓혀가면서 본인의 역량을 키우시길 바랍니다. 제가 대학교에 다니면서 컴퓨터 그래픽스를 공부했던 것처럼, 그다음에 대학원과 한국의 회사, 그리고 넓은 시장에서 일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 그 한 걸음 한 걸음이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본 아티클은 2019년 2월 공개된 <어벤저스 CG를 만드는 회사에 엔지니어로 취업하기까지 | ILM R&D엔지니어 장유진 [리얼밸리 시즌2 EP 16]>의 내용을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어벤져스의 CG를 만든 회사 ILM에 근무하고 있는 한국인 엔지니어 장유진 님의 이야기를 영상으로도 만나보세요.


글·편집 김정원

melo@eoeoeo.net






EO(Entrepreneurship & Opportu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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