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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왕국 엘사의 마법을 만드는 한국인 이야기

조회수 2020. 10. 6. 15:1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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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 블리자드, 디즈니를 거쳐 게임 제작자가 된, TGC 유재현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에서 엘사는 ‘렛잇고’를 부르며 얼음공주로 변신하는 모습을 통해 전 세계의 어린이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습니다. 특히 엘사의 마법을 그려낸 시각효과가 압권이었죠. 오늘 EO가 소개해드릴 분이 바로 이 작품의 시각특수효과(VFX)를 담당했던 유재현 님입니다.


유재현 님은 소니픽처스,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 월트디즈니 등 세계적인 회사에서 게임과 영화 시각효과를 담당했는데요. 이후 소프트웨어의 한계를 느끼고 직접 스크립트를 짜다가 프로그래밍을 배우게 됐고, 지금은 게임 제작이라는 새로운 분야로 진출했습니다. 컴퓨터 그래픽이나 게임 제작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특히 더 공감하실 수 있으실 텐데요. 유재현 님의 이야기를 지금 들려드립니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유재현입니다. 저는 소니픽처스와 블리자드엔터테인먼트에서 일했고, 그다음엔 월트디즈니에서 애니메이션 영화 일을 했습니다. 그 후에는 게임 분야로 옮겨서 라이엇게임즈나 TGC와 같은 회사에서 UX나 게임 디자인, 게임 엔지니어링 등을 맡아 왔습니다. 지금은 개인적으로 게임 개발을 하고 있고, 감각적인 씬 연출로 감성을 자극하는 게임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Q. 시각효과 분야에서 일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학교에서 모션 디자인을 배우면서 소위 말하는 ‘쿨’한 걸 만들고 싶었어요. 엄청 쿨한 거, 멋있는 거요. 어릴 땐 마법 같은 것도 하고 싶었는데, 영상에서는 마법사가 될 수 있잖아요. 손을 앞으로 내밀기만 하면 손바닥에서 불이 나온다든지 하는 것들이요. 그런 세계에서 노는 게 좋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CG 관련 작업물들을 모아놓은 웹사이트를 발견했는데요. ‘이런 걸 만드는 사람은 누구야?’라는 생각이 들어서 찾아봤더니 이름이 한국 사람이더라고요.


당시 PC로는 주로 MSN이라는 메신저를 통해서 소통하던 때였는데, 그걸로 무작정 말을 걸어봤죠. "저는 이런 거 만드는 걸 좋아합니다. 차가 새로 변신하고요. 불이 제 손에서 나오고요. 바다를 만들고요"라고 했더니 그분이 "지금 자네가 하고 있는 건 시각효과라는 분야다"라고 말씀해주셨어요.


제가 LA에 산다고 하니까 LA에서 시각효과를 하는 한국분을 소개시켜주셨어요. 찾아가서 시각효과를 만드는 게 너무 재미있는 것 같다고 말씀드리면서 가르쳐 달라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처음에 배우다가 금방 그만두게 될지도 모르니까, 제가 조금 더 해보고 난 뒤에 정말 배우고 싶으면 다시 이야기해보자고 하셨어요. 그런데 저는 분명히 배우고 싶었거든요. 너무 재밌었으니까요. 그래서 집에 가서 뭔가를 엄청 만들었습니다. 그분 보여드리려고요.


바다 위로 헬리콥터가 지나가면서 파도를 막 퍼트리는 효과가 왠지 복잡해 보이잖아요. 있어 보이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걸 만들어서 다시 찾아갔는데, 그분이 '이 분야를 정말 좋아해서 하고 싶어 하는구나'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1주일에 한 번씩 6주를 배웠습니다. 당시에 그분이 소니픽처스에서 일을 하고 계셨는데, 저녁에는 프리랜서로 광고회사에서 시각효과를 도와주고 계셨어요. 그 광고회사에 저를 데리고 가 주신 거예요. 조그만 거 한 번 해보라고요.

Q. 소니픽처스에 입성하기까지의 과정도 궁금해요.


말씀드린 광고 회사에서는 아침 10시에 가서 저녁 6시에 일과를 마쳤는데, 긴장해서 밥 먹을 때 빼고는 화장실도 안 가면서 자리에서 일만 했어요. 그렇게 한 세 군데를 다녔을 때쯤 되니까 실력이 굉장히 빨리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당시 제 작업물들을 가지고 영화 회사들에 지원했어요. 소니픽처스는 그땐 당연히 안 됐고, 디지털디멘션이라는 비교적 작지만 그래도 이름은 알려진 영화 특수효과 회사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비행기가 출발하는데 조금 더 극적으로 보이기 위해 바퀴에서 연기가 나오게 하는 효과같이 아무도 신경 안 쓸 것 같은 걸 만든다거나, 호스에서 물이 나오는데 스토리텔링 상 물이 더 세게 나와야 해서 파티클로 만들어서 물을 더 세게 나오게 한다든지, 그런 조그만 작업을 맡아서 했습니다. 그렇게 또 릴이 쌓여서 다음에는 조금 더 큰 회사에 가게 되었고요.


그러다가 전에 지원했던 소니픽처스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때 있던 회사에 이 기회를 꼭 잡아야겠다고 말씀드리고, 대신에 저녁마다 와서 제가 맡고 있는 일을 끝내겠다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아침 9~10시에 출근해서 6시까지는 소니픽처스에서 일하고, 저녁 6시부터 밤 10~12시까지는 전 회사에서 일하면서 보냈는데요. 그렇게 하던 때가 제가 슬슬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한 시기인 것 같아요.

Q. 이후 블리자드에서도 일하셨다고 들었어요. 게임 시각효과 분야에서 재현 님은 어떻게 성장해나가셨는지 궁금합니다.


블리자드에서 <와우(WoW)>라는 게임에 들어가는 영상을 만드는 팀에 있었을 때의 일입니다. 당시 맡았던 작업 중 하나가 거대한 용이 불을 쏘면서 와우 세계관에 있는 모든 건물을 거의 다 불태우고 지나가는 장면을 구현하는 것이었는데요. 용이 쏜 불은 굉장히 오래 남아 있어야 해요. 이런 효과는 유체 시뮬레이션이라고 해서, 실질적으로 불이 생기는 과정 자체를 수학적 연산으로 계산을 해서 3D 프로그램 안에서 시뮬레이션하는 방법으로 구현할 수 있는데요.


또 다른 방법으로는 실제로 입자들을 다 그리고 어떤 색깔들을 갖도록 하고, 또 언제 생겼다 사라지도록 만들면 불을 표현할 수가 있거든요. 용이 지나가면서 불을 쏘는 장면 같은 경우에는 매우 실사적이고 자연스러운 유체 시뮬레이션을 만들도록 원하기도 하지만, 또 비자연적인 요소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앞서 말씀드린 두 방법을 섞어야 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데 이런 부분을 구현해주는 툴이 없어서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고민을 하게 됐습니다. 툴 자체에서 지원하지 않는 걸 만들어야 하다 보니 조그만 스크립트를 짜게 됐는데요. 그때 스크립트를 처음으로 건드려보게 된 거 같아요. 기술적인 요소를 만져보면서 내가 조금 더 폭넓게 작업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코딩으로 할 수 있는 다른 것들이 많이 보이게 됐습니다.

Q. 시각효과만을 담당하다가 프로그래밍에 좀 더 집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겨울왕국>이 디즈니에서 작업했던 두 번째 영화인데요. 엘사 공주가 옷을 갈아입는 장면이나 성이 지어질 때 들어가는 얼음이나 마법 효과들을 만들었는데 개인적으로 잘 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디즈니에서도 어쨌든 툴을 가지고 만들어야 했던 장면들에 한계가 있어서 보통 시각효과 작업을 할 땐 프로그래머와 함께 둘이서 작업을 해나갔습니다.


결국은 다 소프트웨어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거잖아요. 제가 그걸 과연 손으로 그릴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렇게 생각해봤을 때 ‘나는 소프트웨어 없이는 되게 무의미한 존재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습니다.


시각효과를 만드는 것에 있어서 더 많은 걸 컨트롤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코딩을 하면 확실하게 CG쪽에서 만들 수 있는 거나 컨트롤할 수 있는 게 훨씬 많아지니까 결국은 그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내가 다룰 수 있는 게 분명해지고 툴에 구애받지 않고 직접 쉽게 만들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서 계속 프로그래밍 공부를 하다 보니까 앱이나 게임, 웹사이트와 같이 ‘코딩 그 자체로도 되게 재밌는 걸 많이 만들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 더 사람들과 넓게 부딪히면서 소통할 수 있는 것들을 만들 수 있겠더라고요.


그때가 라이브러리나 개발에 필요한 다양한 요소들이 많이 오픈소스화 되기 시작해서 앱 같은 것들도 굉장히 만들기 쉬워지던 때였거든요. 그래서 그 때를 기점으로 CG에 들어가는 시각효과도 더 이상 안 해봐도 될 것 같았고 더 늦기 전에 프로그래밍을 가지고 뭔가 더 재미있는 걸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확실하게 든 것 같습니다.


물론 디즈니 안에도 그런 개발자들이 있어요. 하지만 영화 쪽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이 마음에 안 들었던 분명한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랑 소통하는 요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상세계에서 만들어진 세계관에서 상호소통할 수 있는 요소가 없다는 점에 만족하지 못했어요.


게임은 가상세계의 모든 것들이 다 플레이어와 소통하는 요소들이잖아요. 어떻게 보면 디즈니 내의 엔지니어가 되는 것보다는 게임 분야의 엔지니어로 가는 게 저에게 맞는다고 느꼈던 것일 수도 있고요. 그래서 지금은 개인적으로 게임 개발을 하고 있습니다. 만들고 있는 게임은 주로 감각적인 장면 연출을 통해서 감성을 자극하는 것들입니다.

Q. 게임 제작자로서의 삶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일단 감성 게임이라고 하면 애매한 게 장르가 딱 정해져 있지 않아요. 어떤 게 감성인지 딱 잘라 말하기도 어렵고 사람들 느끼는 감성도 너무 다양하고요. 굉장히 개인적인 걸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공감할진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제가 존재하고 싶은 세계관 같은 거를 만들고 그 안에 들어가 있는 게 좋아서 계속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단순하게 작업물 만드는 것에만 열중하면서 그걸 더 잘 만들고 싶어서 프로그래밍 공부를 한 케이스인데요. 프로그래밍으로 할 수 있는 게 더 많다는 걸 깨닫고 프로그래머가 되면서 느낀 것은 ‘아, 굳이 내가 어디 속해서 일하지 않아도 충분히 괜찮을 수 있겠구나’라는 점인 것 같아요.


결국은 제가 원하는 대로 만들고 싶은 것을 만드는 게 제일 재미있다는 건 변하지 않으니까 게임회사에 다니면서도 제 개인 프로젝트들을 만들었던 것이고요. 그렇게 몇 가지를 조그맣게 만들다가 조금 더 진지하게 만들어 본 게 <Best Luck>이라는 게임이었어요.


한 달 반 정도 걸려서 만들었는데요. 게임 컨퍼런스 같은 곳이 되게 많아서 여기저기에 데모 버전을 보내봤어요. 사람들이 게임을 많이 플레이해보도록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혹시 잘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있었고요.


그래도 꽤 여러 군데에 선정이 됐습니다. 굳이 비행기 타고 갈 필요는 없는 행사였는데, 어쨌든 선정되었다고 하니 직접 가서 작은 부스에서 게임 설치하고 데모 시연도 했습니다.


제가 바로 옆에서 제 게임이라고 소개하면 솔직한 피드백을 받기 힘들잖아요. 그래서 멀찌감치 서서 어떻게 하나 지켜보고 있었는데, 열 명 중에 적어도 세 명 꼴로 되게 재밌어하는 피드백이 있었어요.


딱 보면 이 사람이 정말로 즐기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있잖아요. 개인적으론 제가 만든 게 다른 사람에게 굉장히 재미를 줄 수 있다는 걸 스스로 증명한 것 같아서 되게 의미 있었다고 느꼈습니다.

Q. 컴퓨터 예술에 대한 재현 님의 생각을 들려주세요.


여태까지는 크고 작은 여러 프로젝트에서 한 명의 팀원으로서 일을 해왔는데요. 제가 직접 만든 게임은 제 생각을 온전히 담아서 사람들 앞에 내놓은 거잖아요. 앞으로도 제가 잘 해나갈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을 그런 컨퍼런스를 통해서 얻은 것 같습니다.


결국 소프트웨어로 할 수 있는 일들은 점점 많아지고 있거든요. 그래서 자신만의 표현 방식을 찾는 게 중요한데, 그것을 컴퓨터에서 찾으려면 소프트웨어를 어느 정도 자기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결국은 요즘 교육 분야에서 대세가 되고 있는 코딩과 분명히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컴퓨터로 예술을 하는 사람이면 결국은 코딩을 어떤 과정을 통해서든 부딪치게 되거든요.


코딩이 꼭 예술가가 하기에는 불편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그냥 또 하나의 툴인 걸로 인식하려고 노력하면 컴퓨터로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표현 방식이 더욱 다양하고 다채로워질 것 같아요. 결국은 그게 지금 당장 산업에서 분명한 경쟁력이 될 것이고, 그런 면에서 코딩이 정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본 아티클은 2019년 1월 공개된 영상 <디즈니 겨울왕국 VFX 아티스트에서 게임 제작자로 | TGC 게임제작자 유재현 [리얼밸리 시즌2 EP 15]>의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머릿속으로 펼치는 상상의 나래를 애니메이션과 게임 속에서 그래픽으로 구현하고, 이제는 게임까지 직접 만드는 유재현 님의 이야기를 영상으로도 만나보세요.


글·편집 조철희






EO(Entrepreneurship & Opportu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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