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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매니저 출신 저자가 말하는 딥페이크, 알파고, 비트코인

조회수 2020. 10. 5. 12:3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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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혁신을 인문학적으로 바라본, <가상은 현실이다> 저자 주영민

안녕하세요, 저는 2019년 6월 <가상은 현실이다>라는 책을 낸 저자이자 5년간 구글에서 그로스 매니저로 근무한 주영민입니다. 이제부터 제가 할 이야기는 먼 미래가 아닌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당장 현재의 이야기입니다.

2020년이 어느새 100일도 남지 않았습니다. 지난 10년을 돌이켜보면 수많은 기술이 등장했습니다. 압축적으로 기술 혁명이 일어난 것은 인류 역사상 흔치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기술 혁명과 함께 새로운 문제들이 등장했습니다.

가짜와 진짜를 구분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알고리즘이 사람들을 갈라놓기 시작했습니다. 인생샷을 위해 지구 반대편을 여행하고, 인생샷 때문에 목숨을 잃기도 합니다.

봇이 여론을 조작합니다. 반대로 인간이 봇처럼 행동하기도 하죠. 데이터가 우리 시대의 석유라고 하지만, 우리는 우리 데이터가 어디에 저장되는지 어떤 목적으로 활용되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한 발자국 떨어져서 생각해 볼까요? 오늘의 기술 혁명들은 과연 서로 연관이 없는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일까요? 아니면 하나의 방향성을 공유하는 커다란 흐름일까요? 저는 지금 일어나는 기술혁명 뒤에는 하나의 거대한 흐름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상화 혁명'입니다. 가상화 혁명이란 기술이 현실을 가상화시키고, 그렇게 만들어진 가상화된 현실이 다시 실제 현실을 교란하고 집어삼키는 현상입니다.

소셜미디어는 현실을, 인공지능은 지능을, 암호화폐는 화폐를 가상화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가상의 현실, 가상의 지능, 가상의 화폐는 각각의 원본과 충돌하고, 또 대립합니다. 가상은 현실을 위협하고 현실을 가상의 논리로 조작하려 합니다.


Code Name 1: instagramable

요즘 밀레니얼 세대 사이에서 퍼지는 강박증이 있다고 합니다. 바로 셀카 이형증인데요. 인스타그램으로 변형된 자기 자신처럼 스스로의 신체를 바꾸려는 강박증입니다.

옛날에 성형외과를 찾는 사람들은 본인이 닮고 싶은 셀럽 사진을 갖고 왔습니다. 최근에는 인스타 필터로 바뀐 자기 얼굴 사진을 많이 가져온다고 합니다. 그것은 어쩌면 하나의 새로운 인격체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인격체를 굉장히 의식하며 살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able)하다는 말이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좋은 느낌이라는 말이죠. 인스타에 특화된 외모, 인스타에 특화된 신체, 인스타에 특화된 취향. 미국에는 인스타그램을 위한 미술관까지 등장했다고 합니다. 예술 감상이 아니라 인스타에 올리기 좋은 알록달록한 작품만이 가득 찬 공간이죠.

이곳에서 전시되는 것은 미술 작품이 아니라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인스타에 집착하는 사람들 자체가 작품이 되는 것이죠. 이 작품은 우리에게 매우 철학적인 질문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가상에 사로잡힌 그 실체 그 자체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여행도 더 이상 여행이 아니라 사진을 남기는 행위가 되고 있습니다. 그 목적은 인스타그램 세계에서 인정받기 위함입니다. 모든 것이 인스타그래머블하게 바뀌고 있는 이 현상은 가상화 혁명의 가장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모든 실체 자체가 가상에서 보기 좋은 형태로 바뀌어 나가고 있는 것이죠.

이러한 시대에서 우리는 주체적으로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업로드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인스타그램에서 살아있기 위해서 사진을 촬영하는 것일까요?


Code Name 2: AI

인공지능을 생각해봅시다. 인공지능은 인간을 따라 하는 과정에서 인간과 완전히 다른 가상의 지능을 창조합니다.

알파고의 핵심 알고리즘인 뉴럴넷은 인간의 신경망을 흉내 낸 인공지능 방법론입니다. 그러나 뉴럴넷은 인간이 100년 동안 두어야 둘 수 있는 바둑의 기보를 하루 만에 학습하고, 수천 개의 시나리오를 1초 만에 검토할 수 있습니다. 인간 지능과 가장 흡사한 인공지능 방법론이지만, 역설적으로 인간을 완전히 넘어서 버리는 초지능의 단서입니다.

이렇게 태어난 가상의 지능은 현실 세계의 다양한 판단 과정을 대체하고 있습니다. 범죄자 판단부터 의학적인 판단, 그리고 광범위한 경영적 판단까지 인간과 닮지 않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인간에게 신뢰받고 사랑받고 있습니다. 인간적인 결함이나 한계가 없기 때문이죠.

사람들이 인공지능에 대해 갖는 가장 큰 공포는 아마도 일자리의 자동화일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일자리의 자동화보다 더 걱정해야 할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의식의 자동화입니다.

다양한 추천 알고리즘 속에서 우리는 더 이상 선택할 필요가 없는 존재로 바뀌어 나가고 있습니다. 주체적인 선택을 할 필요 없이 추천된 무엇인가를 고르기만 하면 되는 것이죠. 반대로 추천되지 않는 것들은 영영 경험하지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과연 나의 취향은 나의 취향일까요? 나의 관점과 신념은 나의 것일까요? 그것은 알고리즘의 추천에 누적된 어떤 결과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Code Name 3: Bitcoin

암호화폐는 어떨까요? 비트코인은 실체가 없습니다. 그러나 허상은 아니죠. 가상의 숫자이지만 현실 자산과 마찬가지로 가치를 지닙니다. 때로 이 숫자는 현실 자산보다도 가치가 더 높아지기도 합니다.

베네수엘라에서는 비트코인이 자국 화폐보다 더 귀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베네수엘라 사람들은 자국 화폐를 비트코인으로 바꾸고 있죠. 가상 화폐와 실물 화폐가 역전된 것입니다. P2P 화폐인 비트코인은 단순히 돈거래만을 P2P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윤리 자체를 P2P화시키고 있습니다.

기존의 모든 돈거래에는 정부가 개입해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돈을 보면 그 사회의 가치와 윤리가 나타납니다. 달러로 살 수 있는 것과 원화로 살 수 있는 것의 범위가 다릅니다. 마리화나, 성매매, 포르노, 낙태, 안락사와 같은 거래는 어떤 돈으로는 거래할 수 있지만, 어떤 돈으로는 거래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자본주의 시대에 정부가 윤리를 통제하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비트코인은 이 모든 논의를 무력화시킵니다. 비트코인은 개인과 개인이 합의하게 된다면 모든 거래가 가능합니다.

현실 세계에서는 들여다볼 수 없는 디지털 세계의 거래가 현실 세계에 들이닥치게 된다면 미래의 윤리는 지금과 같지 않게 될 것입니다. 보편 윤리는 약화되고, 사람들 사이의 합의와 상대주의적 윤리는 더욱 강화되는 것이죠.

이처럼 오늘날은 기술에 의해 만들어진 가상과 그 원본이 되는 실재 사이가 충돌하고 있는 세계입니다. 아직은 실재가 권력을 쥐고 있지만, 가상은 빠르게 실재의 권력을 탈취해 나가고 있습니다. 가상과 실재 사이의 권력은 빠르게 뒤집힐 수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10년, 100년, 1000년 뒤의 세계는 어떨까요? 만약 미래가 완전히 가상화된 세계라면, 오늘날은 어떤 역사의 단계일까요? 2010년대는 완전한 가상화 단계로 들어가기 위한 역사의 시발점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지난 5년 동안 구글에서 일하며, 다양한 기술적 변화를 봤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술적 변화들이 언론이나 사람들 사이에서 이야기되는 양상을 보면, 주로 미래와 관련된 이야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기술적 변화를 단순히 비즈니스적 변화 혹은 산업 안에서만의 변화뿐만 아니라 인간성 자체의 변화 또는 문명 차원의 변화로도 이해할 수 있는데, 그러한 관점은 사실 찾아보기가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저는 많은 기술적 논의가 미래가 아닌 오늘을 다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점에서 저는 <가상은 현실이다>를 통해 지금 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기술적 변화를 단순히 산업의 관점이 아니라 인문학적이고 비판적인 관점으로 독해하고자 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이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현실을 좀 더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는 하나의 도구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이 아티클은 구글 그로스 매니저 출신, <가상은 현실이다>의 저자 주영민 님의 비판적인 시각을 담은 영상 속 내용을 재구성하여 만들어졌습니다.






EO(Entrepreneurship & Opportu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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