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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억지로 하고 있다면

조회수 2020. 8. 13. 05: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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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대학생에서 화가이자 여행작가로, 김물길 작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그 내용을 책으로 출판해서 먹고 산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생각해봤을 꿈인데요. 오늘 EO가 만난 분은 대학생 신분으로 673일간 세계여행을 다녀온 후, 그 경험을 그림으로 그려서 여행작가가 된 김물길 작가님입니다. 

Q.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여행하면서 영감을 얻고, 그 영감을 그림과 글에 담아 표현하는 화가이자 여행작가 김물길입니다. 대학 시절 학교를 휴학하고 2년 반 동안 궃은 일을 하며 2천 5백만 원을 모았어요. 그 돈으로 673일간 세계 여행을 떠났습니다. 5대륙 46개국을 여행했어요. 여행하며 410장의 그림을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제 이름을 건 전시도 하고 책도 출판했습니다.

Q. 처음 여행에 빠지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제가 대학교 3학년 때, 저희 학교에서 국제 캠프를 열었어요. 캠프 참여자로 선발되어 프랑스에 가게 됐습니다. 프랑스가 저의 첫 여행 국가였어요. 그런데 프랑스에 가니까 한국과 너무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제가 하루 동안 보고 배운 것을 일기장에 그림 그리며 시간을 보냈어요. 여러 날 동안 외국의 풍경, 사람, 냄새, 음식 등을 그렸는데 ‘낯선 곳을 여행하면서 내 그림이 훨씬 풍성해지고 있구나’를 느꼈어요. '세계 여행을 하면서 내 그림 세계를 더 확장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됐고, 한국으로 돌아와 2년 반 동안 휴학하며 다음 여행을 위한 경비를 모았어요.

Q. 여행 경비를 벌기 위해 어떤 일을 하셨나요?


제가 양말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주말에도 다른 일을 병행하면서 쉴 틈 없이 일했어요. 평일에 퇴근하고 나면 야간 벽화 작업을 하러 공사장으로 갔습니다. 공사장 인부들 사이에서 물감통을 짊어지고 벽화를 그리면 새벽 4시가 됐어요. 회사와 외주 일을 병행하며 2년 반을 꽉 채웠을 즈음, 통장에 2천 5백만 원이 모였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제 생활 환경이 늘 익숙함으로 가득했어요. 제가 낯선 사람을 만나거나 낯선 상황에 놓일 일이 없었죠. 그런데 해외 여행을 하면 매순간 낯선 언어와 환경,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아이들과 신나게 떠들고 재미있게 어울리는 모습, 어르신들을 만나서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모습을 보며 제 스스로 자존감이 높아졌어요. 자신감이 생기니 더 도전적으로 여행하게 되고 제 그림과 여행을 남들과 공유할 수 있었어요. 그런 모든 과정이 나비효과로 작용해 여행이 끝난 후에 제게 새로운 도전을 가져다 줬어요.

Q. 여행을 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무엇이었나요?


여행 중간 학교에서 메일이 왔어요. '이번 학기에 복학하지 않으면 제적 대상이 됩니다'. 소식을 들은 부모님은 하루 빨리 귀국해서 제가 학교를 마치길 바라셨어요. 그런데 제 인생에 중요한 기준이 '지금 아니면 안 되는 게 무엇인가'예요. 


'학교에 가서 1년 간 공부하는 것은 언젠가 다시 할 수 있지만, 지금 이 여행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돌아오지 않을 이 여행을 더 누리는 게 내 인생에 더 큰 자양분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학교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렸어요. 그리고 부모님에게 메일을 보냈습니다. 


처음에는 부모님이 반대하셨어요. '그동안 학교를 다닌 시간이 아깝지 않냐, 대학 졸업은 꼭 필요하다' 그런데 제가 진심으로 여행을 원한다는 마음을 지속적으로 전달하자, ‘너의 여행을 믿는다, 남은 기간 건강하게 여행하고 돌아와라’고 말씀해주셨어요. 저는 학교에서 제적당하고 남은 돈으로 제적의 아쉬움을 달래며 여행을 이어갔습니다. 


그런데 제가 부모님을 실망시켜드리고 싶지 않았어요. 대학을 졸업해야겠다고 생각해서 한국에 돌아와 책을 출간하고 다양한 활동을 이어나가는 동시에 학교에 재입학했어요. 입학한 지 9년 만에 학교를 졸업했습니다. 대학 졸업 당시 제 나이가 29살이었어요.

Q. 한국에 돌아와 여행 기간 동안 그린 그림들을 모은 '아트로드' 책을 출간하셨어요.


‘책을 낸다’ 혹은 ‘내 이야기를 가지고 사람들 앞에서 전달한다’는 계획은 없었어요. '긴 여행 기간 동안 건강하게 살아서 돌아오자, 마음껏 그림을 그리자'는 것이 저의 유일한 목표였으니까요. 여행을 하면서 부모님과 제 소통창구로 블로그를 운영했어요. 


제가 그린 그림을 매일 블로그에 올리고 하루에 있었던 일을 공유했는데, 어느 날부터 부모님이 아닌 새로운 블로그 이웃분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그 중 한 분이 출판사 직원 분이었습니다. 귀국할 즈음 출판사 직원분이 제게 연락하셔서 제 여행 그림과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고 싶다고 말해주셨어요. '내 이야기가 책이 될 수 있구나' 처음 알게 됐어요. 그 이후 강연, 방송, 전시, 책 출간 등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Q. 물길님이 그림 작품 하나를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 그림을 보면 사람이 있고, 그 안에 맑은 하늘이 비친 굉장히 깨끗한 바다가 있어요. 그리고 두 사람이 사람 눈 위에 앉아 낚시를 하고 있어요. 그 눈이 밖을 바라보고 있는 게 아니라 자기 안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죠. 두 사람은 낚시를 하고 있는데요. 사실은 저 안에 무엇이 있는지,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알 지 못해요. 하지만 분면 그 안에 황금 대어가 있다고 생각하죠. 하루하루 끈기 있게 시간을 보내고 노력해서 제 안에 있는 보물을 낚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며 그렸습니다.

Q. 여러 차례 전시를 하며 새롭게 얻은 경험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처음 전시를 열었을 때, 그림을 사고 싶다는 분이 계셔도 아까워서 그림을 팔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림을 팔지 않으면 그 그림이 제 화실 어딘가에 들어가서 결국 아무도 보지 못하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제 그림이 많은 사람에게 보여지기 원했어요. ‘공짜로 누군가에게 그림을 주더라도 어딘가에 내 그림이 걸려 있으면 두세 사람이 볼 수 있을 텐데, 수백 개의 그림을 혼자 가지고 있으면 무엇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다음 전시부터 그림을 엄청 저렴하게 판매했어요. 고등학생이나 대학생도 제 그림을 구매할 수 있도록 만들어서 제 그림이 많은 사람에게 다가가길 원했어요. 그러면서 그림을 판매할 때마다 너무 좋았습니다. 내 그림을 사람들이 구매한다는 게 신선한 충격이었지만, 내 그림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도 놀라웠어요. 저는 그림이 제 분신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 분신인 그림이 여러 공간에서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할 수 있기를 바라요. 그런 생각을 하면 그림에 더 집중할 수 있고, 더 좋은 그림을 그려낼 수 있어요.

Q.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도 될까 망설이는 분들을 위해 조언 한마디 부탁드려요.


저도 스물 여섯에서 스물 여덟 초반까지 기본 생활 유지를 위한 돈만 벌었어요. 축적을 위해 모을 수 있는 돈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했어요. ‘내 삶이 몇 십년 남아 있는데, 돈이 안 된다고 지금 좋아하는 일을 포기하기엔 젊음이 너무 아깝다, 더 이상 안 되겠다 싶을 때까지 좋아하는 일을 해보자. 그래도 괜찮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해지고 제가 원하는 일을 계속 고집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저는 발전하고 성장했어요. 


저는 해마다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고 있는 이 상황을 내가 몇 년 전까지 상상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요. 솔직히 저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거든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이 생겨서 그 이유를 하고 싶은 이유와 하면 안 되는 이유를 노트에 적어요. 그러면 하면 안되는 이유가 되는 이유보다 야속할 정도로 많아요. 내가 이 일을 해도 되는 이유는 사실 몇 개 없어요. 그런데 제가 안 되는 이유에만 집중했다면 지금의 저는 없을 거예요. 안 되는 이유가 100개여도 지지 않고 되는 이유에 집중했기 때문에 지금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원하는 것을 성취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그리는 작업물을 대학 교수님에게 평가받으면, 단 한 분도 좋은 평가를 해주지 않으실 거예요. ‘이 그림은 너무 가벼워, 이건 일러스트에 불과해’라고 얘기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런 부정적인 평가를 받지 않고 제 마음대로 계속 그림을 그리다 보니 저만의 스타일이 생겼어요. 제 그림에는 상상력이 풍부하고 솔직한 표현력과 아름다운 색감이 있어요. '내 것을 그린다'는 마음이 저를 개성 있는 작가로 만들었어요.  


인생은 매순간이 선택이에요. 그런데 그 중 몇가지 선택은 '내가 되는 이유' 하나만을 믿고 도전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만약 그 선택이 좋은 결과를 내지 않으면 어쩔 수 없지만 실패한 경험이 내 스스로 확신할 수 있는 결과를 만든다고 믿어요. 주변 사람들이 말하는 당신이 안 되는 이유가 수십 가지라도, 추상적이지만 내가 되는 이유 하나가 있다면, 그 이유를 따라가는 게 인생의 신의 한 수 같은 도전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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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유하영

chloe@eoeoeo.net


편집 유성호

hank@eoeoeo.net



EO(Entrepreneurship & Opportu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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