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람들만 모르는 세계적인 한국인 보드게임 작가

조회수 2020. 8. 3. 1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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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차 직장인에서 세계적인 보드게임 작가로, 개리키게임즈 김건희 작가

최근 카트라이더, 리니지, 바람의 나라와 같은 PC 게임들이 모바일 게임으로 재출시되며 많은 소비자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모바일 게임과 PC 게임이 익숙한 분들은 많겠지만, 보드게임은 아직은 대중적으로 생소한 분야일 것 같은데요. 할리갈리, 우노 등 히트한 보드게임을 한 번쯤 해본 분들은 많아도 보드게임 시장이 어느 정도인지, 어떤 게임이 유명한지 등은 모르는 분들이 더 많을 것 같습니다. 


오늘 EO가 소개해드릴 분은 2003년부터 지금까지 총 50여개의 보드게임을 제작한 대한민국 1세대 보드게임 마스터 김건희님 입니다. 프랑스와 미국 등 보드게임 선진국에서는 개리킴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스타 작가라고 하는데요. 투자사를 다니던 8년차 직장인에서 사이드 프로젝트로 게임 개발을 시작해 전업 보드게임 작가가 되었다고 합니다. 보드게임이 아직은 대중적으로 사랑을 받지 못하는 한국에서 보드게임 작가로 사는 법, 김건희님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보드게임을 만들고 있는 김건희입니다. 지금까지 50여 개의 보드게임을 만들었고, 대표작으로는 피겨그랑프리(2010), 고려(2013), 조선(2014), 세븐킹덤(2014), 토끼와거북이(2014), 아브리카왓(2014) 등이 있습니다. 보드게임의 성지인 독일에서 올해의 게임상을 수상했고요. 대표작들이 20여 개 국가에 8개 언어로 수출됐습니다. 주로 보드게임을 제작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하는 게임(빅 게임) 및 교육용 게임도 제작하고 있어요.

Q. 보드게임 작가라는 직업이 생소합니다. 주로 어떤 일을 하시나요.


제가 하는 일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오리지널 게임 제작이에요. 제가 게임의 저작권을 보유하고 퍼블리셔와 인세 계약을 합니다. 인세는 백만 원에서 천만 원 단위로 다양합니다. 


둘째는 게임 외주 개발이에요. 회사에서 저에게 보드 게임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합니다. 개발자가 일정 금액을 받고 게임의 저작권을 회사에 양도하는 방식을 의미해요. 업계에서는 '턴키'라고 말합니다. 대표적으로 레진코믹스에서 웹툰을 프로모션 할 때 게임을 만들곤 합니다. 


세번째는 대학교에서 게임컨텐츠학과 학생을 대상으로 보드게임 개론과 프로듀싱 수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방에 앉아 보드게임만 만드는 게 아니라 여러 사람과 소통하며 재미있는 작업들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Q. 처음 보드게임을 접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원래는 제 꿈이 만화가였습니다. 대학에서 생활디자인학과라는 곳에 입학했어요. 그런데 학과 공부가 너무 재미없고, 만화를 그리기에 제 그림 실력이 훌륭하지 못해서 방황하는 시간을 거쳤습니다. 그때 보드게임 붐이 일었어요. 친구들과 보드게임 방에 놀러갔는데, 게임 플레이어끼리 주사위를 던지고 카드를 교환하고 건물도 짓고 길도 내고 놀았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는 게 있었나?' 그때 보드게임에 푹 빠져서 대학에 보드게임 동아리를 만들었습니다. 학업은 뒷전이었어요.

Q. 보드게임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하다가 돌연 주식에 관심을 가졌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학업은 뒷전이고 보드게임에만 정신이 팔려서 졸업학점이 2점이었어요. '내가 만화가는 못 될 것 같은데, 돈 벌 수 있는 일이 있을까'하고 주위를 둘러봤습니다. 주식을 하면 돈을 쉽게 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신문을 찾아보다가 '서울대투자연구회'라는 동아리를 발견했어요. 서울대생은 아니었지만 무턱대고 동아리실에 찾아가서 말했습니다. '저 주식을 가르쳐주세요'. 


그러자 동아리 선배들이 '그럼 너는 우리한테 뭘 해줄 수 있냐?'고 되물으셨습니다. 마침 투자 동아리가 서울대 경제 신문에 웹툰을 연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서 '제가 그림을 조금 그릴 줄 아는데 웹툰을 그려드릴게요'라고 답했습니다. 이후 동아리에 합류해서 주식을 배웠는데, 저에게 주식을 가르쳐준 선배들이 서울대를 졸업하고 나서 투자 자문사를 차렸습니다. 제가 그 투자 자문사에서 7년간 마케팅 일을 했어요.

Q. 7년간 투자자문사에서 일하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투자사에서 일하는 동안 누군가 제게 '당신 목표가 뭐예요?' 라고 물으면, 저는 'VIP투자자문의 임원이 되는 게 인생 목표입니다'라고 자신있게 말하곤 했어요. 그런데 하루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이 모습으로 쭉 살아서 성공하면 금융 회사의 임원으로 인생을 마감할텐데 그것 말고 다른 길은 없을까? 그 모습이 진짜 나일까? 이대로 가다가는 안될 것 같은데'.


제가 보드게임을 너무 좋아해서 야근이 없는 날에는 보드게임 방을 찾아갔습니다. 보드게임방에 가면 간혹 정모를 하는 분들이 계세요. 그러면 제가 그분들에게 다가가서 '저 좀 껴도 될까요?' 물어보고 같이 게임하는 거예요. 그렇게 보드게임 취미를 계속 이어왔습니다. 그런데 게임을 하다보니 이런 보드 게임은 누가 만드는걸까 관심이 생겨서, 다음 카페에 '한국보드게임개발자모임'을 만들었어요. 보드게임이 취미인 사람들을 모아서 게임 개발도 하고, 저희끼리 테스트도 하면서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면 시장에 출시하기도 했습니다.

Q. 회사를 다니면서 보드게임에 대한 흥미를 쭉 이어오셨군요.


2003년에 보드게임 개발자 모임을 시작했는데 2010년에 첫 게임이 나왔습니다. 김건희, 제 이름으로 게임이 출시됐는데 그 상황이 너무 반가웠어요. 하지만 게임 개발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고, 제가 직장을 다니면서 개발을 하기엔 체력이나 시간이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아내에게 이야기했어요. '회사를 관둬야 할 것 같다'. 저는 게임 개발에 대한 흥미도 있고 주식 일이 서서히 지겨워져서 퇴사를 결심했지만, 내심 아내가 저를 말려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내가 저를 보고 '하고 싶은 일 해라. 지금 당신 얼굴이 완전 썩어있다'고 말했습니다. 처음에는 '딱 3년만 해보자. 3년 해서 돈벌이가 안되면 다시 취업해야지'라는 마음으로 보드게임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Q. 보드게임 개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나서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매주 수요일마다 게임 테스트 모임이 있습니다. 하루는 제가 '고려' 라는 게임의 프로토타입을 가지고 모임에 나갔어요. 마침 프랑스 출판사 관계자분이 모임에 오셨는데, 제 게임을 하고 나서 '이 게임 정말 유니크하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리곤 바로 그 자리에서 저에게 게임 계약서를 내미셨어요. 제가 얼떨결에 계약서에 사인했습니다. 그런데 이 게임이 정말 잘 된 거예요. 프랑스에서 가장 규모 있는 보드게임 온라인 샵에서 매출 1등도 하고, 아마존 인기 게임에 올랐습니다. 게임 개발자로서 제 이름을 전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어요. 지금도 그 분을 만난 건 참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Q. 유명 보드게임 '세븐 원더스' 개발자 브루노 바우자는 건희님을 '대한민국 최초의 모던 보드게임 작가다, 그가 개척해놓은 길을 통해 한국의 다른 작가들이 세계무대로 진출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대한민국 1세대 보드게임 작가라는 호칭이 마음에 드시나요?


외국에서는 개리킴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국내에서는 보드게임 작가라는 직업 조차 모르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제가 본업이 보드게임 작가라고 하면 제일 많이 듣는 질문이 '먹고 살 수 있냐, 수입은 어떻게 되냐, 맞벌이냐' 주로 이런 질문인데요. 그런데 직장 다닐 때보다 오히려 지금 벌이가 더 좋습니다. 


저는 보통 아이들 학교 보낼 시간에 맞춰 일어나서 작업실로 내려가요. 컴퓨터를 키고 작업을 시작합니다. 그 작업이 때로는 게임 프로토타입을 개발하는 것도 있고 게임 설명서를 읽는 일도 있지만, 플레이스테이션으로 게임을 하는 것도 포함돼요. 저는 이 모든 것이 제 작업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았다는 건 이런 게 아닐까 생각해요. 


프리랜서를 할까 말까 망설이시는 분들은 모두 죄책감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있어요. 내가 이렇게 해도 되나 하는 마음이에요. 그런데 제가 퇴사를 이야기했을 때 제 아내의 반응을 보셨잖아요. 결국 자신이 행복하지 않으면 모두가 불행해지는 것 같습니다. 왜 지금까지 좋아하는 일을 안 하고 살았을까. 나 자신을 놓치고 남만 보느라, 상황과 환경만 보느라 그랬던 것 같아요. 


세상에는 너무 자기 자신만 보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남만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는 남과 나, 둘 다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떻게든 타인과 나의 접점을 잘 찾아서, 그 교집합 사이에서 내가 행복할 수 잇는 일을 찾아야 의미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글 유하영

chloe@eoeoeo.net


편집 유성호

hank@eoeoeo.net



EO(Entrepreneurship & Opportu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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