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휴지도 '직원 돈'으로 사야하는 회사

조회수 2020. 12. 24. 07: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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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은 우유 1L에 빵 하나..연차는 공휴일에?"
※ 다음 글은 잡플래닛에 남겨진 리뷰와 못다한 이야기 등을 바탕으로 재구성되었습니다.

어김없이 월요일. 무거운 몸을 이끌고 출근을 합니다. 여러분은 회사에 가실 때 뭘 챙기시나요? 요즘은 손소독제나 마스크를 챙기시는 분이 많을 것 같고, 일하다 먹을 약이나 비타민을 챙기시는 분도 계시겠네요. '두루마리 휴지'를 챙기지는 않으시겠죠? 에이, 회사에 다 있는데 누가 그런 걸 챙기냐고요? 네. 그게 바로 접니다.

무슨 소리인가 싶으시겠지만, 놀랍게도 저희 회사 화장실엔 휴지가 없어요. 다 쓰고 잠깐 없는 게 아니라 아예 주질 않습니다. 제가 입사했을 때부터 휴지는 직원들 몫이었어요. 처음엔 직원들이 '휴지 공구'를 하기도 했답니다.

휴지만 없는 게 문제가 아니에요. 겨울이 되면 화장실 전체가 꽁꽁 얼어붙어서 사실상 사용할 수가 없다니까요. 30명 가까운 여성 직원이 두 칸의 화장실을 함께 쓰는 것도 불편한데, 그마저도 요즘같은 겨울이면 제대로 쓰지 못해서 옆 건물에 드나드는 게 다반사입니다. 옆 건물 화장실에 하도 드나들었더니, 하루는 '타 회사 직원들 그만 좀 오라'는 내용을 써 붙여 놨더라고요. 그 이후로는 회사에서 물도, 커피도 안 마시고 신호가 와도 참습니다. 도대체 이게 사람 사는 건지 모르겠어요.

휴지야 무거운 것도 아닌데 들고 다니면 안 되냐고요? 그럼 이건 어떠세요? 커피는 물론이고, 하다 못해 업무에 쓸 '문방사우'까지 모두 직원들 돈으로 사야 한다면요? 매달 월급날이면 직원 한 명이 돌아다니며 '비품비'를 걷습니다. 이걸로 회사 생활에 쓸 비품을 사요. 그러다 보니 공구한 비품이 다 떨어져도 말할 데가 없어요. 어느 순간부터는 볼펜부터 포스트잇까지 직원들이 가져다 채우는 현실인데요 뭐…

경영진이 이런 걸 모르냐고요? 물어본 적은 없어서 모르지만, 알고도 모른 체하는 거겠죠. 사실 회장님에겐 뭘 기대하기가 어렵거든요.

회장님은 디자인 회의건 기획 회의건 꼬박꼬박 들어오셔서는 일장 연설을 늘어놓습니다. 최소 1시간 동안은 아슬아슬한 직원들 험담을 듣고 있어야 합니다. 내용인즉슨 이렇습니다. "회사가 직원들 모아다가 월급 주면서 일도 가르쳐 주는데, 직원들이 열심히해서 갚아야 하는 거 아니냐. 예전엔 밥만 먹여줘도 일했는데 요새 젊은 애들은 무능하고 노력도 안 하고 월급만 기다리는 잉여 인간이다."

회장님의 마인드가 이래서인지 저희 회사엔 '연차'가 없어요. 저도 말하면서 헛웃음이 나오는데요. 법적으로 주어지는 연차는, 공휴일에 쓴답니다. 누구한테는 당연한 휴일이, 저희 직원들에겐 유일한 휴가 날인 셈이죠. 어떤 사람들은 연차를 눈치 보면서 쓰는 게 힘들다는데, 저희는 그럴 수 있는 연차도 없어요. 공휴일마저 눈치 보면서 쉬는데 어쩌겠어요.

야근을 해도 식사비는 없습니다. 한번은 저녁에 1L짜리 우유와 빵 하나를 주더군요. 우유로 배 채우란 건지… 차라리 돈으로 줬으면 편의점 도시락이라도 사 먹었을 텐데요.

그래도 어찌어찌 지금까지는 잘 참아 왔어요. 그런데, 지난달 정말 참기 힘든 일이 생겼습니다. 월급이 평소보다 적더라고요. 이유는 이랬습니다. 제가 정말 아파서 하루를 쉬었는데, 일주일 근무일 수를 채우지 않은 거라 '주휴수당'이 빠진 거였어요. 연차라도 쓸 수 있으면 좋은데 그걸 못하니 '결근' 처리가 된 거죠. 정말 억울하고 화가 나서… 커피값에, 진료비에, 약값에 모자라 주휴수당까지 빼앗긴 느낌입니다. 이 억울함, 대체 어디에 말해야 할까요?

잡플래닛에라도 호소해 보려고 리뷰 작성 창을 켰습니다. 장점을 쓰라는데 장점이 정말 없어서 답답합니다. "회사가 힘들다는 점을 업계에서 대부분 알기 때문에, 근무했다는 이야기를 하면 '끈기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썼습니다. 30자를 넘기기 참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이거 장점 맞겠죠?

단점은 3000자가 있어도 모자랐습니다. 번호를 매겨 가며 앞서 말한 이야기들을 조목조목 썼습니다. 정리해보니 분노가 더 가라앉질 않습니다. 마지막엔 경영진에게 바라는 점을 쓰라고 하네요. 어차피 나아질 것 같지 않으니 "바란다고 달라질 거면 진작에 달라졌을 것"이라고 썼습니다. 웃음이 새어 나옵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그냥 다 너무한 것 아닌가 싶어요. '현타'가 자주 옵니다.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대체 왜 이러고 있는지도요. '원수에게도 추천하지 않는 회사'라는 농담이 있던데요. 저도 꼭 같은 마음입니다. 지금도 채용공고가 떠 있네요. 원수가 이력서를 쓴대도 양심이 이렇게 외칠 것만 같아요. "저 사람 꼭 말려!"

이 회사에 더 있다가는 성불할 것만 같아요. 물론 그전에 스트레스로 죽을지도요. 제가 여기서 생을 마감한다면 화장을 부탁드립니다. 아마 사리가 한 말은 쏟아질 거예요. 내일은 꼭, 휴지와 함께 사직서를 챙길 겁니다. 휴지도, 커피도, 연차도 없는 회사에 저까지 없는 게 큰 문제는 아닐 테니까요.

장명성 기자 luke.jang@company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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