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을 틀어줘, 추억 속의 향

조회수 2020. 8. 26. 11:46 수정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그 시절, 그 시간을 추억하는 향이 있다.

‘여름날의 청춘’을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1983년에 개봉한 에릭 로메르 감독의 <해변의 폴린느>가 바로 그것. 거의 38여 년 전인데도 불구하고 공간의 감각, 의상과 오브제, 공기와 무드까지, 모든 요소가 요즘의 스타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주인공 폴린느는 순수한 동시에 놀랍도록 성숙하고,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특유의 생기를 간직하고 있다. 지난달, 바이레도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벤 고햄은 이런 틴에이저들의 복잡한 감정을 고스란히 투영한 ‘릴 플레르 오 드 퍼퓸’을 완성시켰다. 처음엔 블랙 커런트와 탠저린의 아찔한 기운으로 시작되지만, 센슈얼한 로즈, 와일드한 레더, 부드러운 앰버와 바닐라가 소용돌이처럼 몰아친다. 이게 소녀들을 위한 건지 남성들을 위한 건지 구별되지 않고, 달콤하고 기쁜 건지 두렵고 씁쓸한 느낌인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애초에 벤 고햄이 얘기하려고 한 10대들의 감정, 틴에이저의 향기라는 것이 이렇게 카오스처럼 혼재되어 있고 복잡한 것이 아닐까? <뷰티쁠> 편집장 정수현

일상의 압력에 지쳐 무기력해질 때면,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썰물처럼 밀려온다. 조금 어긋나고, 엉뚱한 행동을 한다 해도 모든 것이 용서되는 천진한 나이로. 영화 <문라이즈 킹덤>의 수지와 샘처럼 말이다. 이들의 웃픈 탈주극이 낭만적으로 기억되는 건 웨스 앤더슨식 미장센도, 한여름의 그림 같은 풍경 때문도 아니다. 사회적 관념이나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감정이 이끄는 대로 따르는 용기가 아름다워서다. 순수함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가능했던 무모한 일탈, 그런 자유로움이 간절해질 때 나는 펜할리곤스 ‘사보이 스팀’을 꺼낸다. 로즈메리와 장미의 몽글몽글하고 투명한 느낌에 이어 찾아오는 습한 기운, 그리고 이국적인 사원에서 날 법한 인센스 향까지. 이 낯선 조합으로 이루어진 동화 같은 향기는 이제까지의 향수 취향을 배반하는 일이지만, 이 사소한 변화만으로도 일상에서 벗어난 기분이 든다. 아무도 오지 않는 그들만의 베이스 캠프, 문라이즈 킹덤에 숨어든 것처럼. <뷰티쁠> 에디터 박규연

여름과 닮은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빈티지한 색감과 훈훈한 두 남자의 컬러풀한 패션, 그리고 여유로운 한여름날의 오후를 떠오르게 하는 이탈리아 근교 소도시 크레마의 아름다운 풍경까지. 관객을 햇살에 취하게 만들겠다는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제작 의도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이 영화는 보는 내내 눈을 즐겁게 해준다. 영화 속 눈부신 햇살과 넘실대는 푸른 바다색을 닮은 샛노란, 새파란색 보틀. 그 속에 담긴 루이비통 ‘레 콜로뉴 컬렉션’의 두 향수는 패키지만큼이나 영화를 빼닮았다. 루이비통의 수석 조향사 자크 카발리에 벨루뤼는 이 향수를 만들며 여름 특유의 공기처럼 가벼운 향기를 피부에 오래 머물게 하는 방법을 오랫동안 고민했는데,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싱그러운 시트러스 미스트와 묵직한 플로럴 향이 조화를 이루는 레 콜로뉴 퍼퓸. 6주라는 짧은 기간에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뜨거운 여름날을 보낸 엘리오. 서툴지만 진한 여운을 남기는 첫사랑의 기억을 향으로 표현하자면 이런 느낌일 듯하다. <뷰티쁠> 에디터 박가현


쳇바퀴처럼 정신없이 흘러가는 바쁜 도시의 삶. 이를 잠시 내려놓고 싶은 순간이 있다. 영화 <썸웨어> 속 주인공 엘르 패닝과 스티븐 도프 역시 그랬다. 그리고 그들은 조금 게을러지기로 다짐한다. 알람 없이 일어나기, 아침도 점심도 아닌 식사 시간 가지기, 하루 종일 수영장에 누워 햇빛 쬐기. 이렇게 큰 변화 없이 흐르는 시간에 몸을 맡긴 채 덤덤하게 보내는 나날. 하지만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사소한 순간이 주는 확실한 행복이 있다. 나에겐 미우미우 ‘트위스트’가 그런 존재다. 누군가는 흔한꽃향기 중 하나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익숙한 향기가 가져다주는 편안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만다린과 애플 블라섬으로 우아하게 시작되는 향기는 저물녘 하늘처럼 부드럽고 따뜻한 시더우드로 마무리되어 아름답게 장식하며 지친 나를 감싼다. 달콤한 내음이 온몸을 감쌀 때쯤이면 영화 속 엘르 패닝이 활짝 웃던 장면이 문득 떠오르며 피식 웃음이 나기도 한다. <뷰티쁠> 에디터 김민지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타임톡beta

해당 콘텐츠의 타임톡 서비스는
제공사 정책에 따라 제공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