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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의 윤리와 책임 그리고 가설계

건강한 건축문화를 위한 시작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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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주 입장에서 가설계 도면을 무료로 받은 후 설계계약을 체결했다면, 자신의 건물을 설계하는데 집중하여 시간을 쏟아야 할 건축가가 다른 가설계 도면을 작성하기 위해 시간을 쓸 것이라는 것 또한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

폭스바겐 사태와 건축가의 윤리


몇 년 전 폭스바겐 그룹의 배출가스 조작사건이 큰 이슈가 되었다. 폭스바겐 그룹의 이런 비윤리적인 행동은 단순히 기업 이미지 손상을 넘어 독일의 국가 이미지와 국가적 차원의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범죄행위이다.


이러한 뉴스를 보다보면 건축가가 지켜야 할 법규와 윤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건축물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건축법을 비롯한 다양한 법규를 체크하고 반영한다. 하지만 사무실을 찾는 건축주 중에는 종종 주변에서 이미 불법증축 등으로 수익을 내고 있으니 자신도 법규상관 없이 최대한 수익성이 높은 건축물을 만들어달라는 요구를 하는 경우가 있다. 심지어 허가권자가 불법행위를 유도하는 식의 말을 했을 정도로 낮은 윤리적 인식은 사회 곳곳에 만연해있다.

설계 의뢰를 받고 대지를 살펴보다보면 주변에 너무나도 많은 불법건축물이 있어서 매번 놀라곤 한다. 심지어 카페, 레스토랑을 주차공간까지 불법확장하여 사용하는 건축물이 건축잡지에 버젓이 실리는 경우도 있다.


사실 건축물의 불법행위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전문지식이 필요하지도 않다. 그저 우편함이나 계량기 숫자, 혹은 보일러 연도만 살펴봐도 확인이 가능하다. 많은 지역에서 건축물대장의 세대수보다 2배 이상 세대수를 가진 건축물을 다수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일명 ‘쪼개기‘), 이러한 건물은 법정 주차공간 및 오수처리시설 등을 갖추지 못하여 지역에 다양한 문제를 야기한다.

▲ 한 다세대건축물 외벽에 매립된 우편함. 건축물대장상의 세대수에 비해 2배수가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건축물이 만들어지기까지 건축가의 관여가 없었는가를 묻는다면, 건축가 없이 이렇게 만들기 어렵다고 대답할 것이다. 처음부터 쪼개기를 염두하고 시공하고 감리자와 사용승인 검사자가 도면대로 시공하지 않는 것을 묵인한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대부분의 건축가가 이러한 불법행위를 하지는 않으며, 단지 몇몇 비윤리적인 건축가들이 이러한 쪼개기를 전문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건축현실이 이렇게 된 것은 불법행위를 하지 않도록 건축주를 설득하고 더 나아가 적법하게 지어진 건축물을 설계하여 건축과 도시를 아름답게 해야 할 건축가들의 낮은 윤리의식이 한몫을 한 것이다.

(사진: 제천 장곡리 단독주택)

가설계 하지 맙시다


사무실에 들어오는 프로젝트 의뢰 중에는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고 좋은 건축물을 설계하고자 하기보다는, 가설계 도면만 보내달라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주소만 달랑 던져주고 가설계 도면을 보내달라는 이 상황. 도대체 얼마나 많은 건축가들이 수주를 위해 가설계 도면을 작성해주고 있으면 이처럼 시식코너의 음식을 먹어보고 맛있으면 구입하고, 그렇지 않으면 구입하지 않는 정도의 가벼움으로 자연스럽게 가설계 도면을 요청하는 것일까.

먼저 가설계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말자고 제안하고 싶다. 가설계라는 단어 자체가 존재하지도 않으며, 그것은 건축가가 ‘책임질 필요가 없는’ ‘공짜 가짜설계’라는 뜻으로 인식된다. ‘가설계’ 보다는 ‘규모검토’ 등의 다른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다.


또한 법규 및 규모검토를 진행함에 있어서 인력과 시간, 노력이 필요한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으며, 이에 따라 소액이나마 계약을 체결할 것을 제안한다. 금액을 떠나 최소한의 비용을 지불하는 건축주라면 추후 정식계약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으며, 건축가도 그만큼 책임감을 가지고 검토를 진행할 것이다.


건축주 입장에서는 가설계 도면을 무료로 받은 후 설계계약을 체결했다면, 자신의 건물을 설계하는데 집중해야할 그 건축가는 또 다른 가설계 도면을 작성하기 위해 시간을 쏟고 있을 것이라는 것 또한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 모든 이치가 그렇듯 세상에 공짜는 없다.

윤리-책임-권리


건축은 창조적인 가치를 지닌 문화이다. 올바른 건축문화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사회 전반에 만연한 불법행위들을 근절해야 할 필요가 있다. 건축가만 노력해서는 이루어질 수 없고, 건축주의 윤리, 더 나아가 사회적 제도에 변화가 필요하다. 불법행위를 해야 돈을 번다는 인식이 철저히 지워지고 윤리적인 사람이 더 대우받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를 통해 올바른 인식이 자리 잡고 건축으로 인해 우리 삶과 도시가 더욱 아름다워지기를 기대한다.



글. 박정연 (그리드에이 건축사사무소 대표) / 031-8013-0343 / www.grid-a.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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