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시상식 논란.."왜 투자자가 피날레 장식했나"

조회수 2020. 2. 12. 06:1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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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의 아카데미 시상식 수상 소감
출처: 연합뉴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4관왕을 수상했습니다. 아카데미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작품상을 포함해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을 쓸어 담으며 극찬을 받았죠.
영화 ‘기생충’이 거둔 성취는 작지 않습니다. '백인들의 잔치'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보수적인 성격을 가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달성하며 세계 영화사에 혁명과 같은 충격을 안겼죠.

봉준호 감독이 시상식에 오를 때마다 전 세계 영화 팬들은 환호했습니다. 하지만 의아한 장면이 있었죠.

‘기생충’이 아카데미 최고상인 작품상을 탔을 때 어떤 여성이 올라와 수상 소감을 전했습니다. 한국인은 물론 시상식을 지켜보던 많은 해외팬들은 ‘저 사람 누구냐?’라며 의문을 표시했죠.
그녀는 바로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이었습니다.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故) 이병철 회장의 장손녀이자 이재현 현 CJ 회장의 누나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는 사촌 관계입니다.
출처: abc
이미경 부회장은 수상소감에서 "이 영화를 사랑해주고 지지해준, 참여해준 모든 분께 감사하다“면서 "영화 제작을 위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은 CJ 이재현 회장에게도 감사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아카데미 최고상인 작품상 시상식에서 이 부회장이 참석한 것을 두고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감독과 배우 대신 투자자가 전면에 나선 것이 과연 적절한가’에 대한 것이었죠.
상황을 다시 돌아보죠. 작품상 시상 무대에서 곽신애 바른손이앤에이 대표가 먼저 수상 소감을 전했습니다. 이번 92회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자 명단에는 곽 대표와 감독인 봉준호 이름이 있었습니다. 발언한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죠.
출처: abc
곽신애 대표가 소감을 말한 뒤 시간 관계로 무대 조명이 꺼졌습니다. 그러자 현장에 있던 참석자들은 손을 위로 올리며 "업(up), 업(up)"을 외쳤습니다. 다음 사람이 수상 소감을 말할 수 있도록 조명을 다시 켜달라는 뜻이었죠.
출처: The Hollywood Reporter
하지만 다음 수상 소감을 말한 사람은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이었습니다. 그녀는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 기생충의 책임프로듀서(CP) 자격으로 참석했죠. ‘투자자’라는 말입니다. 이 부회장은 제법 긴 수상 소감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동생인 이재현 CJ 회장에 대한 감사도 표했죠.
출처: 로이터
이후 조명은 꺼졌고, 봉준호 감독의 작품상 수상 소감은 들을 수 없었죠. 결과적으로 영화의 주인공인 감독과 배우들은 최고의 자리에서 뒤로 물러난 채 행사를 마친 모양새가 됐습니다.
출처: 뉴시스
비영어권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것은 92년 아카데미 역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이런 역사적인 순간에 모든 이들이 듣고 싶었던 것은 아무래도 봉준호 감독의 수상 소감이었겠죠. 그래서 투자자인 이미경 부회장이 피날레를 장식한 것을 두고 ‘부적절했다’는 논란이 이어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출처: 이미경 CJ그룹 부회장과 이재현 CJ그룹 회장 /뉴스1
특히 이 부회장의 수상소감 중 동생인 CJ 이재현 회장에게 고마움을 전한 부분은 불필요했다는 의견이 대다수입니다.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4관왕의 의미를 고려할 때 가족 간 덕담 수준에 불과한 이야기를 굳이 해야 했느냐는 것이죠.
출처: The Hollywood Reporter
그러나 이미경 부회장은 ‘발언 자격이 있다’는 의견도 많습니다. 이 부회장은 과거 박근혜 정권 시절 봉준호 감독이 블랙리스트에 올라 핍박을 받을 때도 지원을 했고, CJ E&M이 투자 및 영화 배급을 맡았으며, 많은 홍보비용을 쓰는 등 아카데미상 수상에 크게 이바지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온라인 커뮤니티 댓글에는 이를 반박하는 내용도 있습니다. 한 누리꾼은 “기업은 투자를 하고, 원하는 수익을 얻는 것이 목표다. 명예는 창작자에게 돌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디즈니나 소니픽처스와 같은 세계적인 기업의 CEO가 아카데미상 무대에 서서 수상 소감을 말하는 걸 본 적 있느냐”라고 적었습니다. 

출처: 영화 '그린북'
그러나 제작사 대표가 발언하는 것이 처음은 아니니 이상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지난해 작품상 수상작인 ‘그린북’, 2018년 ‘셰이프 오브 워터’, 2017년 ‘문라이트’, 2016년 ‘스포트라이트’ 시상식 수상 소감에서 감독에 앞서 제작자들이 발언한 선례가 있다는 것이죠.
출처: 연합뉴스TV
이에 대해 최광희 영화평론가는 자신의 SNS에 “할리우드의 스튜디오 시스템은 한국과 많이 다르다. (할리우드는) 프로듀서가 영화제작 과정에 깊이 관여한다. 한국처럼 투자 결정만 하는 게 아니다. 이 부회장이 프로듀서라면 이 영화에 돈을 댄 모든 이가 프로듀서다. 투자자가 프로듀서 자격으로 영화상 수상대에 올랐다는 건 듣도 보도 못했다”고 썼습니다.

시상식 시청자 중에는 이미경 부회장이 무대에 올라온 것은 괜찮지만 수상 소감을 짧게 끝내고 감독과 배우들에게 마이크를 넘겼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 섞인 의견도 냈습니다.

출처: 기생충 스틸컷 /CJ 엔터테인먼트
일부 누리꾼들은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을 보고 “결말까지 완벽한 ‘현실판 기생충’ 그 자체”라는 평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소득격차, 빈부격차, 계급격차 문제를 다룬 ‘기생충’의 역사적인 수상 순간에, 한국에서 가장 강력한 미디어 파워를 가진 기업의 부회장이 대미를 장식한 것을 꼬집은 것이죠.

강유정 강남대 교수는 “이 부회장이 한국 영화 발전에 기여한 것은 분명하지만 마지막까지 보이지 않는 손처럼 조용히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의미가 큰 만큼 최고상인 아카데미 작품상 시상식에 대한 논란도 끊이지 않는 것 같네요. 판단은 각자의 몫으로 남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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