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만 모르고 있었던" 비공개 촬영회 성폭력

조회수 2018. 5. 23. 18: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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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버의 '촬영회 폭로' 그 이후.

“소라넷이 그러했듯이, 스튜디오 촬영회 또한 여성들만 모르고 있었던 공공연한 섹스 산업이었습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지난 5월 17일 유투버 양예원 씨가 자신이 경험한 비공개 촬영회의 성폭력 정황과 촬영물 불법 유포를 폭로하며 ‘사진계 성폭력’이 다시 화두에 올랐다.

출처: 유투브
비공개 촬영회 성폭력 폭로

양예원 씨의 지인이라 밝힌 배우 지망생 이소윤 씨 또한 같은 스튜디오의 비공개 촬영회에서 성폭력을 겪었다고 주장했고, 이어 다른 모델, 배우 지망생 등 사진계에서 활동하던 일부 여성들이 비슷한 피해 경험을 추가로 폭로하며 논란이 사진계 전체의 성폭력으로 확장됐다.

1. 성폭력적인 ‘비공개 촬영회’의 진상이 드러났다. 


회마다 수십 명의 남성 회원들이 회비를 내며 참가해 왔다는 이번 ‘비공개 촬영회’와 그 내부의 성폭력 문제는 다수 대중들에게 충격적인 사건으로 다가왔지만, 업계에선 이미 공공연한 일이었다는 증언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5월 18일 사진작가 프로젝트 그룹 <유토피아>는 SNS 계정으로 논란의 “사진계 비공개 촬영회 속 악문화를 고발”했다. 유토피아 측의 설명에 따르면 비공개 촬영회라는 이름으로 “여성을 성적인 대상으로 소비하면서, 이를 사진으로 남기는 악취미”는 2000년대 초반부터 현재까지 별 문제없이 존속해온 사진계의 뿌리 깊은 악습이었다.

출처: MBC
비공개 촬영회 회원 모집 공고


“모델이 신었던 스타킹은 촬영회 참석하신 회원님들께 전부 나눠드립니다.”

“얼굴 x 몸 full 노출”

“스마트폰 촬영 모두 환영”


위의 문구는 유토피아 측이 제시한 비공개 촬영회의 참여인 모집 공고 중 일부다. 유토피아 측은 관련 검색어를 조금만 검색해봐도 이러한 문구를 쉽게 찾아낼 수 있다며, 성폭력적인 정황의 비공개 촬영회가 암암리에 계속되고 있었고 촬영회에 대한 수요 또한 끊이지 않아 왔음을 지적했다.


<유토피아> 멤버 곽예인 씨는 5월 21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 업계인 입장에서 문제의 비공개 촬영회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했다. 곽 씨의 말에 따르면 촬영회에 참여하는 수요자들은 “대부분 취미가 사진인 남성들”이며, 모델은 대부분 10대~20대 여성들이 섭외된다.

출처: jtbc
방송에 공개된 비공개 촬영회 스튜디오

지적된 문제는 모델을 섭외하는 과정과 모델을 다루는 방식 등이다. 곽예인 씨가 피해 모델들에게 직접 제보받은 내용에 따르면 비공개 촬영회의 모델 섭외는 대부분 실제 촬영회의 내용을 숨기면서 이루어진다. 계약 또한 구두계약 등을 통해 자의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모델에겐 수위가 일반 프로필 사진, 피팅 사진이나 수위가 그리 높지 않은 컨셉의 촬영인 것처럼 속이고, 촬영 현장에서 (회원들에게 공지했던) 자극적인 의상과 포즈 등을 요구하는 식이다.


일단 촬영장에 방문하면 촬영회 측의 요구를 거부하기란 쉽지 않다. 비공개 촬영회는 대부분 밀폐된 공간에서 진행되며, 섭외된 여성 모델 1인을 제외하면 십 수명의 촬영회 측 성인 남성들로만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모델 입장에선 심리적 압박감은 물론 실제적인 위협을 느낄 가능성이 크다.

출처: SNS 갈무리
모델에겐 알려지지 않지만, 회원 모집 글에선 하드, 섹시, 노출, 누드 등의 키워드가 강조된다

<유토피아>는 인터뷰 이후 시간상 생략된 내용들을 보충하기 위해 사전 답안 전문을 공개했는데, 여기에선 더 자세한 정황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촬영회 측이 모델에게 가하는 금전적, 경력적 압박과 회유의 정황들이다. 앞서 피해를 주장한 양예원 씨 또한 이 점을 주장했는데, 비슷한 양상의 유인, 협박, 강제 행위가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촬영회 측이 물색하는 모델들은 대부분 “유명하지 않거나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의 모델들”인데, 모델이 촬영회가 요구하는 노출, 촬영 (혹은 그 과정에서 가해지는 성폭력) 등에 반감을 보이면 촬영회 측은 자신들이 손해를 입게 됐으니 돈을 물어내라거나, 경력이 막히게 될지도 모른다는 식으로 모델을 압박한다.


동시에 (촬영을 하면) 보수를 얻고 경력을 쌓을 수 있다는 유인책을 제시하며 촬영을 합리화하기도 한다. 위협적인 환경에서 유인책을 동시에 제시하는 행위는 그 의도가 다분히 노골적이다. 특히 사진계의 계약에 대해 지식이 별로 없는 초보 모델들은 “사진작가 또는 실장의 말에 전적으로 의지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러한 압박과 회유가 더 효과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출처: SNS 갈무리
촬영회 모집 공지(왼쪽) / 모 촬영회 유출 사진과 관련한 커뮤니티의 반응(오른쪽)

이렇게 이루어지는 촬영회에서 여성 모델들은 비상식적인 수준의 성적 대상으로 다루어진다. 유토피아 곽예인 씨는 “모델이 음모를 왁싱을 했는지 안 했는지부터 시작해서 … 굉장히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그런 내용을 공지에 써놓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촬영회 측의 여성 모델 취급 방식을 지적했다. 애초 촬영회에서 모델의 역할이 그러하니, 성폭력이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유토피아> 측은 이와 같은 ‘비공개 촬영회’의 문제가 사진계 내부에선 이미 공공연히 알려져 있다고 주장했다. “소셜미디어가 발달하기 이전부터 이러한 일들의 성폭력 문제가 빈번히 발생”했고, 2014년 방송에서도 이를 취재하는 등 문제 제기와 공론화 시도 또한 여러 번 있었지만 “개선 혹은 처벌이 이루어진 적은 거의 없”던 게 문제였다는 이야기다.


유토피아 측은 공개한 사전 답변 전문에선 “이런 일들이 한 달에 한 번에서 적게는 세 달에 한 번꼴”로 일어나고 있으며, “1:1 대화(로 이루어지는 촬영회)를 고려하면 이보다 더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2. 사진계의 성폭력적 문화도 관련이 있다. 


‘비공개 촬영회’로 밝혀진 성폭력 수법들은 비단 비공개 촬영회가 아니더라도 사진계 등 문화예술계에서 벌어지는 성폭력 사건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었던 방식들이었다.

출처: MBC
지난 2월 논란이 된 사진 작가 로타에 대한 성폭력 폭로 (방송 장면)

지난 2016년 트위터 해시태그 운동으로 공론화된 ‘#오타쿠_내_성폭력’ ‘#사진계_내_성폭력’ 등의 이슈에서도 사진작가들이 여성 모델들을 대상으로 비슷한 양상의 성폭력을 가했다는 정황이 드러났었다. 사회 초년생, 초보 모델 등 사회적 지위가 미약한 피해자들을, 상대적으로 우월한 권력 관계를 이용해 압박하여 성폭력을 저지르는 방식이었다.


상식적인 수준의 콘셉트로 사진을 찍자고 모델을 유인하여 수위를 올리거나 성폭력을 저지르는 수법도 이미 여러 번 문제가 된 사안이었다. 지난 2월 미투 운동이 터져나올 당시엔 익명의 피해 모델이 유명 사진작가 로타가 “파티 콘셉트로 사진을 찍자”고 자신을 불러낸 뒤 성폭력을 저질렀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비슷한 방식의 성폭력, 노출 강요 등은 영화계와 같은 유사 업종에서도 일어났었다. 배우에게 사전 고지되지 않은 노출, 베드신 등을 현장에서 강요하는 사례였다. 


2016년 김기덕 감독의 성폭력 폭로로 ‘#영화계_내_성폭력’ 이슈를 불러온 익명의 배우 A 씨는 김 감독이 사전 합의되지 않은 높은 수위의 촬영을 강요했다고 증언했다. 배우 박시연, 이영진 등 이름 높은 배우들도 인터뷰에서 철저한 합의, 계약 없이 설득과 종용으로 노출, 베드신 등이 이루어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진계, 영화계 등 업계 내에선 이런 문제들이 상시로 발생함에도 “결국 촬영자가 동의한 것”이라는 말로 문제가 희석되곤 했다. 커리어나 경제적 타격을 걱정한 피해자들이 공론화 시도를 꺼리는 경우도 있었다. 논란이 된 비공개 촬영회 또한 이같은 배경 속에서 생겨난 악습일 수 있다.

출처: MBC
지난 2월 방영된 '사진계 성폭력' 이슈

<한국여성민우회>는 지난 18일 “1. 상호 간의 평등한 관계에서 2. 두려움에 의한 것이 아닌 3. 능동적으로 선택한 것이어야 ‘동의’라고 할 수 있다”며, 문제 해결을 위해선 여성 모델들을 향한 강압적인 환경이 개선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는 “소라넷이 그러했듯이, 스튜디오 촬영회 또한 여성들만 모르고 있었던 공공연한 섹스 산업”이라며 업계에서 마치 일종의 문화처럼 형성된 성폭력적 촬영 환경과 비공개 촬영회가 이루어지는 사진계의 상업적 구조를 지적했다.

직썰 에디터 한예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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