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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주택은 결사반대 재건축은 대환영?

조회수 2018. 5. 21. 10:2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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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솔직히 난 반대야.”


2013년,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가 말했다. 우리는 양천구 목동에서 살았다. 목동은 소위 높은 교육열만큼이나 부동산 시세도 높은 지역이다. 이곳에 그는 ‘행복주택’이 들어서기를 원치 않았다. 행복주택은 국가에서 시행하는 임대주택 종류의 하나. 임대주택 거주자들은 주로 저소득층, 대학생, 신혼부부, 차상위계층 등 경제적 소득이 낮거나 집을 구하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행복주택은 거주가 불안정한 사람들에게 기본적으로 거주를 가능케 하는 창구라고 할 수 있다.

ⓒ연합뉴스

행복주택이 들어서면, 사람이 많아져서 교통난과 주차난을 불러올 것이라고 친구는 말했다. 어느 정도는 동의했다. 실제로 내가 살면서 느꼈던 적도 많았으니까. 그러나 단순히 주민이 많아짐을 이유로 반대를 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그의 말처럼, 애초 행복주택을 추진할 때의 가구 수는 2800가구였다. 주민들의 반대로, 1300가구로 줄여서 타협하기로 했음에도 행복주택은 무산됐다. 바로 그다음 해, 인근에 ‘목동 힐스테이트’가 건설되었다. 총가구 수는 1081가구. 행복주택과 219가구 차이였다. 그만큼만 적었어도 행복주택은 건설될 수 있었을까.



인구과밀만이 반대의 근거는 아니었다. 그 해, 양천구청장은 목동 행복주택 지구지정 취소에 대해 환영한다고 밝혔다. 지역이기주의라는 따가운 시선에도, 사회적 안전에 대한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목동 행복주택 건립예정지는 유수지(홍수 등 유량이 넘칠 때 물을 가두는 시설) 위였기 때문이다. 주택을 건설하게 되면, 지반이 불안정해져서 위험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결국, 국토부는 행복주택 지구지정취소를 결정했다. 행복주택의 취지에 반대한 것은 아니라던 구청장의 말을 여전히 곱씹는다. 가구 수를 더 줄이고, 안전한 부지에 건설하려 했다면, 행복주택은 건설될 수 있었다는 의미였을까. 의문은 떠나지 않는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이제 5년이 흘렀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은 개헌안에 ‘토지공개념’을 명시했다. 현 대한민국의 토지와 부동산 문제의 심각성 또한 지적했다. 토지공개념은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토지의 소유와 처분에 대해 어느 정도 제한을 할 수 있다는 개념이다. 정부는 토지공개념을 바탕으로 집값 안정화와 국민 주거권 보장을 강조하면서, 과열된 재건축 시장을 겨냥했다. 그 타겟 중 하나가 ‘목동아파트(목동 신시가지 아파트)’다. 


목동아파트는 올해 재건축대상이다. 관할 구청과 주민들의 기대 또한 컸다. 재건축이 되면, 이른바 ‘재건축 프리미엄’이 붙기 때문이다. 부동산 시세를 높여주는 등 부수적인 혜택이 뒤따라오는 것이다. 그러나 재건축 기준에서 안전진단기준이 강화됨에 따라, 목동아파트의 재건축이 어려워졌다. 당연히 주민들은 반발했다.

 

목동아파트 재건축 기준강화 반대 현수막과 목동아파트ⓒ고함20

재건축과 함께, 유수지 개발을 목동아파트 주민들은 원하고 있다. 최근에는 ‘벤처기업 혁신성장 밸리 조성’ 역시 추진되고 있다. 이러한 배경에는 유수지 일대가 개발 잠재력이 높다는 항간의 평가 때문이다. 또한, 재건축이 시행되면 현재 목동아파트의 가구 규모는 대폭 늘어난다. 기존 약 2만 6000여 가구에서 5만 3000여 가구 규모의 대단지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기억한다. 유수지 위의 지반이 불안정하고, 인구가 과밀 되어, 교통까지 혼잡해진다는 행복주택의 반대근거들 말이다. 그것들은 어디로 갔을까.


얼마 전 만난 친구를 다시 만났다. 목동아파트 재건축을 어렵게 한 안전진단기준 강화에 대해 그는 반대했다. 그 반대에 근거는 없었다. 재건축이 되면 인구가 과밀된다는 이야기, 약한 지반을 가진 유수지 위에 밸리가 조성되는 것이 안전하지 않다는 이야기 또한 없었다. 행복주택을 반대했던 근거들이 목동아파트 재건축 상황에서는 유효하지 않았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렸다.

우리 모두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라지만 


이제, 나는 2015년에 개봉한 영화를 떠올린다. 제목은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이야기는 간단하다. 집을 사기 위해, 주인공 수남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다. 수남은 잠잘 틈도 없이 일한다. 빌딩청소, 가사도우미, 신문 배달 등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 모든 게 집을 사기 위해서다. 수남에게 집은 특별한 의미였다. 지독한 현실에서 유일하게 안전한 공간. 마침내 주택담보대출까지 받아, 수남은 집을 구했다. 하지만 나날이 갈수록 빚만 더 쌓여간다.


결국, 어렵게 얻은 집을 수남은 다른 사람에게 세 놓는다. 정작 본인은 고시원으로 들어가면서 말이다. 그런 수남에게도 기쁜 소식이 찾아온다. 수남의 집이 재건축 대상 구역에 들어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재건축으로 이익을 본다고 해도, 남편의 병원비로 고스란히 나갈 현실이지만, 그에게 재건축 소식은 로또 아닌 로또였다. 그럼에도 쉽지 않다. 이번엔 수남의 로또, 재건축을 반대하는 이웃들이 문제다. 재건축대상 지역에 포함되지 못한 거주민들이 반대시위를 벌인 것이다. 자칫하면, 재건축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기에 수남에게 위협적인 상황. 여기서 수남은 말한다. “왜 행복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자꾸 생기는 걸까요?”

출처: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내가 살던 곳은 행복주택이 들어서지 못했다. 설사 행복주택이 들어섰어도 환대받지 못했을 터다. 그렇다고 이곳에 사는 모두가 환대받는 것은 또 아니다. 나를 포함해서, 이미 많은 사람이 임대주택에 거주하고 있다. 우리는 마치 내 옆에는 없지만, 어딘가에는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이었다. 행복주택 무산과 힐스테이트의 건설, 목동아파트 재건축을 보면서, 내 집과 내 이웃들의 집을 돌아본다. “내가 사는 곳이 나의 가치를 좌우한다”는 아파트 광고마저 생각난다.


내가 어디에 사는지가 내 주장을 더 가치 있게 만드는 현실. 어쨌든 ‘내 집 마련’이 인생의 목표가 되는 성실한 나라에서, 우리 모두 ‘앨리스’인 셈이다. 그렇게 살아 남겠지만, 더 약자로 분류되는 수남의 행복을 방해할 권리가 내게 없다는 것은 이제 안다. 당신의 집이 당신을 결정하는 순간, 그 가치는 공고하지 않다. 지금, 당신의 집은 안녕한가. 안타깝게도 나는 당신의 안녕보다, 집의 안녕을 먼저 묻는다.


* 외부 필진 고함20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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