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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를 더 잘 먹기 위해 돼지를 학살하는 인간들

조회수 2018. 5. 16. 10:3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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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 뒤에 숨겨진 축산업계의 비밀
출처: 기호일보
김포 구제역 돼지 살처분 현장

“당신은 이미 공범이 되었다.”


지난 3월, 김포 돼지 농가에서 올해 첫 구제역이 발생했다. 정부는 구제역 발생 농장의 돼지 917마리에 대한 살처분을 결정했다. 2014년 7월부터 이번까지, 국내에서 발생한 구제역은 총 4차례. 그동안 매장된 돼지의 수는 이제 20만 8천 마리를 훌쩍 넘는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어쩔 수 없는 방법’이라고 한다.


정말 살처분만이 답일까?


구제역 예방을 위해 정부는 꾸준히 백신 접종을 해왔다. 그러나 구제역은 단지 백신을 접종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국내 가축전염병의 근본 원인은 ‘공장식 축산’에 있다.


현재 국내에서 유통되는 돼지고기의 99% 이상이 대표적인 공장식 축산 설비 ‘스톨’에서 사육한 돼지로 생산되고 있다. 폭 60cm, 길이 200cm의 쇠로 만들어진 감금 틀 스톨. 어른 돼지의 몸집은 보통 가로 65~70cm, 세로 205~220cm이다. 자신의 몸집보다도 비좁은 공간에서 몸을 웅크린 채 겨우 앉았다 일어서기만 할 수 있는 셈이다.

출처: KBS1

카라(KARA) 등 동물권 단체는 이에 대해 지속적인 시정 호소를 해왔다. “공장식 축산은 과밀하고 비위생적이어서 조류인플루엔자나 구제역 같은 대규모 전염성 질병 발생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작년 6월 OECD가 공개한 ‘한국가축 질병 관리상 농업인 인센티브’ 보고서에는 “급격한 집약화가 고(高)병원성 가축 질병 재발의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AI(조류 인플루엔자), 구제역 등 가축 질병의 근본적 예방을 위해선 결국 현재와 같은 집약적 사육을 벗어나야 한다는 뜻이다.


출처: 카라(KARA)
스톨은 구제역을 비롯한 각종 바이러스가 확산되는 데에 최적의 환경이다.

우리는 모두 공범이다.


공장식 축산을 타개하지 못하는 데에 현실적인 장벽이 없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토지는 부족하고 비싸다. 돼지, 닭, 소를 향한 사람들의 수요는 매년 구제역과 AI가 발생해도 넘친다.


식육 산업이 현재의 이윤 폭을 유지하려면, 과밀한 공장식 축산은 불가피하다. 동물에 대한 복지 따위는 동물의 몸(고기)이 가져다줄 이윤에 의해 무시되고 만다. 여기서 우리는 솔직해져야 한다. “구제역으로 돼지 917마리 살처분”이란 뉴스를 본 우리의 주된 반응은 무엇일까.

“불쌍하지만 어쩔 수 없지 뭐” “한동안 삼겹살값 오르겠네, 치킨 먹자”가 아닐까?


매장당하는 돼지의 사진이나 영상은 불편하니, 빠르게 넘기거나 채널을 돌려버리고 만다. AI가 발생해도 다를 건 없다. 삼겹살과 치킨의 위치만 바뀔 뿐이다.


우리의 무심한 반응 뒤엔 ‘육식의 비(非)가시화’가 있다. 육식의 비가시화란 고기와 고기를 제공한 동물을 연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을까. 왜 족발을 먹으며 귀여운 아기 돼지를 떠올리지는 못할까.

출처: 위키백과
닭의 공장식 축산

‘정말로’ 모르고 있나요?


사실 ‘먹을 수 있는’ 종에 관한 우리의 인식 과정에는 사라진 연결고리가 있다. 영어로 소는 cow라고 부르지만 먹을 때는 beef가 된다. 돼지 역시 pig라고 배웠지만, 돼지 토막은 pork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돼지 토막 구워 먹을까?”라고 말하지 않는다. “삼겹살 먹을까?”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도살’이란 표현 대신 ‘가공’이라고 한다. 가축이 고기로 변하는 과정을 묘사하는 말들이 너무 정확하고, 구체적이면, 소비자들이 불편해한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를 업계 사람들은 이미 잘 알고 있다.

“현대의 소비자는 육류와 가축을 동일시하는 연상을 싫어한다” 영국의 축산업계지 ‘브리티시 미트’의 주장. 여기서 나는 질문한다. 우리도 어느 정도는 진실을 알지 않은가. 식육 생산이 깔끔하지도 유쾌하지도 않은 사업이라는 것을 말이다. 다만 그 이상으로 알고 싶지 않을 뿐이다.


고기가 동물에게서 나오는 줄은 알지만, 동물이 고기가 되기까지의 단계들에 대해서는 짚어 보려 하지 않는다. 동물을 먹으면서, 그 행위가 우리 선택의 결과라는 사실조차 생각하려 들지 않는다. 나쁜 것은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않는다.


물론 축산업계가 자신들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상황에서 정보는 불평등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일이 쉬워지도록 우리 스스로가 돕고 있는 건 분명하다. 그들이 보지 말라고 하면 우리는 고개를 돌린다. 그들이 “동물들은 평화로운 농장에서 뛰어 놀지요”라 말하면, 우리는 그 말을 믿는다. 앞뒤가 맞지 않는 소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출처: 뉴시스
살처분, 생매장. 이것은 학살이다.

다음 구제역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이번에 발생한 구제역이 사라져도 말이다. 동물들은 당연하게 구덩이 속으로 내몰릴 것이다.


돼지를 살리기 위해 돼지를, 닭을 살리기 위해 닭을 죽이는 일. 우리는 그것이 당연하지 않음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 매끼 식사에 수많은 살점이 오르는 한, 공장식 사육과 구제역, 돼지 생매장은 사라질 수 없다. 우리의 식탁을 다시 한번 돌아볼 때다. 저서 <잡식동물의 딜레마>에는 이런 문장이 실려있다.


“당신은 방금 식사를 마쳤다. 도살장이 아무리 먼 거리에 용의주도하게 감추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당신은 이제 공범이 되었다.”

* 참고문헌

– 멜라니 조이,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 마이클 폴란, <잡식동물의 딜레마>


직썰 필진 <고함20>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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