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선 '암호화'된 미투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조회수 2018. 5. 2. 20: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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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탄압을 피한 '이더리움 미투'

#1

명문대 중문과에 재학 중이던 여학생이 자신의 지도교수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피해 경험 이후 고통에 시달리던 그녀는 자살했고, 피해자의 자살로 사건이 불거지자 학교는 가해 교수를 대학에서 내보냈다. 그러나 학교 측의 조치는 그것이 끝이었다. 추가적인 진상조사도 징계도 없었다. 가해 교수는 이후 다른 대학의 교수로 문제없이 재직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인 1998년 중국 베이징 대학에서 일어난 성폭행 사건이다. 가해 교수에 대한 학교 측의 사임 조치로 일단락됐던 이 사건은 미투 운동이 전 세계를 휩쓴 2018년, 피해자 가오옌의 친구 리유유 씨의 폭로로 세간에 알려지며 재조명됐다. 

출처: 뉴스1
가해자로 지목된 선양 교수. 그는 현재에도 중국의 다른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4월 25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캐나다에 거주 중인 리유유 씨는 4월 7일 중국 인터넷 매체에 “선양(沈陽) 교수를 실명 고발한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베이징 대학의 재학생들은 즉각 반응했다. 대학 내 ‘미투 운동’에 불이 붙었고, 일부 재학생들은 과거에 있었던 교내 성폭력 사건에 대한 정보공개청구서를 제출했다. 24일엔 <뉴욕 타임스>도 이 사건을 보도했다.

#2

베이징대 학생들의 미투 운동엔 방해물이 많았다. 첫 번째 방해물은 선양 교수 성폭행 사건에 일차적인 책임을 가진 학교였다. 아주 전형적인 수순으로 학교는 선양 교수 사건의 진상 규명 요구를 달갑지 않게 여겼다.


<뉴욕 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학교에 정보공개청구서를 제출한 8명의 학생 중 하나인 웨신(Yue Xin) 씨는 23일 베이징대 교직원이 정보공개를 청구한 학생들에게 가한 압박을 SNS에 폭로했다.

출처: 국민일보 제공
올해 초 이미 화제가 되기도 했던 중국의 미투 운동

웨신 씨의 성명서에는 학교 측이 웨신 씨가 진상규명 요구를 계속할 시에 제대로 졸업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식의 협박을 가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더불어 학교는 웨신 씨의 어머니 등 가족에게까지 그를 집에 가둬놓으라는 등의 압박을 행사했다. 그의 휴대전화와 노트북 등에 저장된 선양 교수 사건의 관련 파일을 전부 삭제하라는 요구도 있었다.


(<연합뉴스>가 인용한 <아사히 신문> 보도에 따르면 해당 학생은 현재 실제로 가택 연금상태에 처해 있다) 


그러나 웨신 씨의 성명서는 공개되고 얼마 되지 않아 중국의 온라인상에서 빠르게 삭제됐다. 이것이 베이징대 미투 운동의 두 번째 방해물, 즉 미투 운동에 대한 중국 당국의 검열과 탄압이었다.

출처: 아시아경제

중국 공산당이 미투 운동을 탄압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이미 올해 초에도 <뉴욕 타임스> 등 외신을 통해 소개된 바 있었다. 사회적 동요를 원하지 않는 검열 당국이 소셜 미디어에서 ‘미투’ ‘성폭력 반대’ 등 관련 문구의 사용을 차단하고, 글을 삭제하고, 일부 활동가들에겐 (활동을 지속할 시) 국가 반역 공모로 간주할 수 있다는 경고를 내리기까지도 했다는 내용이었다.


지난 3월엔 중국 여성들이 검열을 피하기 위해 ‘미투’ 대신 ‘쌀토끼’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운동을 지속하고 있다는 소식이 SBS 등 지상파 보도로 국내에도 전해졌다. 쌀(mi) 토끼(tu)의 중국 발음이 me too와 유사한 mitu였기 때문이다.

출처: CNN

#3

미투 운동 초기 단계부터 꾸준히 이를 압박해온 중국 당국이 베이징 대학교의 미투 운동을 환영할 리 없었다. 학생들 입장에선 성폭행 사건을 재조명하기 위해 움직이면 학교에 의해 저지 당하는데, 이를 폭로하려 움직이면 이번엔 정부가 나서 그것을 차단하는 꼴이었다.


베이징대 학생들은 그럼에도 포기하지는 않았다. 24일 <뉴욕 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삭제된 웨신 씨의 성명서가 이미 중국 온라인상에서 광범위하게 퍼져나갔으며, 베이징대 교내에서도 웨신 씨를 지지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베이징대엔 '우리의 용기 있는 웨신을 지지하며'라는 제목의 대자보가 붙기도 했다. 대학생들의 미투 운동을 지지하고 동참을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출처: 연합뉴스

중국 당국의 검열에도 불구하고 온라인에서의 저항 또한 지속되고 있다. 23일 웨신 씨의 성명서가 삭제된 직후, 그의 성명서는 기묘한 형태로 온라인에 다시 기록됐다. 바로 이더리움 블록체인의 거래를 통해서다.


26일 암호화폐 전문 매체 <Coindesk Korea>의 보도에 따르면 한 익명의 이더리움 블록체인 주소에서 자기 자신에게 0이더를 보내며 이루어진 거래의 코드엔 웨신 씨의 성명서 내용이 영문과 중문으로 담겨있었다. 16진법으로 암호화된 코드 메모를 풀면 “북경대의 선생과 학우들에게”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웨신 씨의 공개 성명서가 나타난다.

출처: 이더스캔
암호화폐 거래로 기록된 웨신 씨의 성명문

블록체인 기술에선 사실로 인정된 거래 기록을 누군가 함부로 변경할 수 없는 변경 방지 기능(tamper-proof)이 있는데, 이를 활용하여 중국 당국이 삭제할 수 없는 ‘미투’의 기록을 남긴 것이다.


물론 이렇게 올라간 ‘암호화된 미투’엔 암호화폐 쪽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나 웨이보 등 중국의 주요 소셜미디어에서 미투가 거의 원천 차단된 상황에서, 이 이더리움 미투는 상징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코인 데스크 보도에 따르면 이 미투 메시지는 실제로 삭제되지 않은 채 통용되고 있다. 처음 미투 메시지가 올라온 이더리움 주소에 다른 대학교의 대학생들이 보내는 ‘미투 지지’ 메시지가 거래 형태로 전해지고 있었다. 다음과 같은 메시지들이다.

북경대학교의 공식 성명에 크게 실망했다. 제발 북경대학교가 진실의 편에 서기를 바란다. 포기하지 말자! 칭화대에서 익명의 지지자
진실 앞에서 침묵해서는 안 된다. 시안 유라시아대학으로부터
중산대학에서 당신들에게 지지와 연대의 뜻을 담아 보낸다.

이더리움 블록체인에는 이제 이 같은 메시지들과 웨신 씨의 첫 성명서가 영원히 보관된다. 중국 포털 위챗은 다른 사람들이 이 메시지들을 확인할 수 없게 차단했지만, 아직 사이트 전체의 접속이 차단되진 않았다. 이더리움 거래 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 이더스캔 사이트에선 이 메시지들을 확인할 수 있다.

코인 데스크

중국의 이더리움 미투는 사회운동의 측면에서나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의 측면에서나 여러모로 주목 받고 있다. 우리는 이를 새로운 기술이 더 나은 사회에 이바지하고 있는 장면이라 볼 수도 있을 것이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인간의 몸부림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직썰 에디터 한예섭

썸네일 이미지. ⓒ암호화폐 전문 매체 <코인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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